주간동아 868

2012.12.24

동북아 첫 여성 대통령 민심은 혁명을 만들었다

21세기 대한민국 ‘여성 리더십’에 미래 맡겨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l.com

    입력2012-12-24 10: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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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북아 첫 여성 대통령 민심은 혁명을 만들었다
    21세기 들어 전 세계적으로 여성 정치인이 국가 최고지도자가 되는 사례가 늘었다. 2012년 현재 대통령이나 총리 등 국가 최고지도자가 여성인 나라는 전 세계 18개국. 독일, 브라질, 아르헨티나, 코스타리카, 스위스, 리투아니아, 슬로바키아, 라이베리아, 방글라데시, 아이슬란드, 트리니다드토바고, 코소보, 태국, 덴마크, 자메이카, 모리셔스, 세르비아, 말라위 등이다.

    전 세계 18개국 여성이 최고지도자

    여성이 국가 최고지도자가 된다는 것은 그동안 정치를 남성 영역으로 치부해온 점을 감안하면 일종의 ‘금기사항’이 없어졌음을 의미한다. 실제로 여성의 참정권을 인정한 것이 세계적으로 100여 년밖에 되지 않는다. 뉴질랜드가 1893년 세계 최초로 여성 참정권을 인정한 이후 호주(1902)가 그 뒤를 따랐으며, 유럽에서는 핀란드(1906)가 처음이었다. 정치 선진국이라는 말을 들어온 미국(1920), 영국(1928), 프랑스(1944)에서도 여성이 참정권을 인정받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21세기 남녀평등 시대를 맞아 여성이 국가 최고지도자가 되는 것은 이제 자연스러운 정치 현상이 됐다.

    여성 국가 최고지도자가 확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 남성 못지않게 능력을 발휘하기 때문일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다. 메르켈 총리는 2005년 독일 최초로 여성 총리가 된 이후 2010년 단 한 차례만 제외하고 매년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1위를 지켰다. 그는 유럽 재정위기의 해결사 노릇을 톡톡히 하며 개인적 부패나 스캔들 없이 리더십을 발휘해왔다.

    메르켈은 독일 최초 여성 총리로서 첫 임기 때 야당인 사회민주당(사민당)과의 대연정을 이끌어내 타협의 정치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2009년 기독교민주당(기민당)의 재집권을 이끌어낸 그는 과감한 결단력을 가진 지도자라는 평가를 받는다. 12월 4일 기민당 대표에 연임되면서 2013년 9월 실시되는 총선에서 3선 총리에 도전한다.



    라이베리아 최초 여성 대통령인 엘런 존슨설리프도 국제사회에서 유능한 국가 최고지도자로 호평받고 있다. 아프리카 대륙 최초 여성 대통령인 그는 20여 년간 계속된 내전 문제를 조사하려고 2006년 취임 이후 ‘진실과 화해 위원회’를 설치해 국민 통합에 앞장섰다. 또한 만연한 부정부패를 없애려고 재무부 직원 300명을 전원 해고하는 등 굳은 의지와 결단력을 보이기도 했다. 2011년 10월 여성의 안전과 인권을 신장하고 평화를 확산한 공로로 라이베리아 평화운동가 리마 보위, 예멘 인권운동가 타우왁쿨 카르만과 함께 노벨평화상을 공동 수상했다. 같은 해 11월 대통령에 재선했다.

    요한나 시귀르다르도티르 아이슬란드 총리도 경제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면서 국민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2009년 2월 집권한 시귀르다르도티르 총리는 국민이 떠안은 채무 가운데 주택가격의 110%를 초과하는 가계부채를 탕감하는 파격적인 조치를 단행했다. 1978년 의정생활을 시작해 아이슬란드 역사상 최장수 의원을 지냈다.

    여성 국가 최고지도자가 늘어나는 또 다른 이유는 여성 특유의 섬세함으로 국가를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부정부패에 연루되는 일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2010년 2월 코스타리카 역사상 최초의 여성 대통령으로 당선한 라우라 친치야가 대표적이다. 코스타리카에서는 그동안 정치인의 부정부패가 심각한 문제였다. 라파엘 앙헬 칼데론 전 대통령(1990~94년 재임)은 기업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5년 징역형을 선고받고 지금도 감옥살이를 하고 있다. 반면 친치야 대통령은 청렴하기로 유명하다. 미국 조지타운대학에서 행정학 석사 학위를 받은 그는 공공안전부 부장관과 장관, 국회의원, 법무부 장관을 역임했다. 1987년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오스카르 아리아스 산체스 대통령 밑에서 부통령을 지낸 그는 부정부패를 뿌리 뽑겠다는 단호한 의지를 갖고 있다. 교육 예산을 국내총생산(GDP)의 8%까지 늘려 공교육을 강화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여성 특유의 섬세함과 추진력

    동북아 첫 여성 대통령 민심은 혁명을 만들었다

    메르켈 독일 총리.

    역대 여성 국가 최고지도자는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하나는 영국 최초의 여성 총리 마거릿 대처 같은 유형이다. 1979년 5월 4일 총리로 취임한 그는 11년간 장기 집권하면서 만성적인 노사 분규와 ‘고물가·저성장’으로 어려움을 겪어온 영국 경제를 회생시켰다. 1982년에는 아르헨티나와의 포클랜드 전쟁을 성공적으로 이끌었으며, 철저한 반공주의를 추구하면서 미국과 협력 체제를 구축해 소련과의 냉전에서 승리했다.

    대처는 남성 못지않은 카리스마로 ‘철(鐵)의 여인’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대처형 지도자들은 여권이 신장한 유럽 국가에서 주로 배출된다. 메르켈 독일 총리, 존슨설리프 라이베리아 대통령은 물론, 할렘 그로 브룬틀란 전 노르웨이 총리, 달리아 그리바우스카이테 리투아니아 대통령, 골다 메이어 전 이스라엘 총리, 헬렌 클라크 전 뉴질랜드 총리 등이 그렇다. 대처형이라고 해서 모두 남성적인 카리스마만 지닌 것은 아니다. 여성으로서의 섬세함도 갖췄다.

    여성 국가 최고지도자의 또 다른 유형은 인도 최초 여성 총리 인디라 간디 같은 유형이다. 인도 초대 총리 자와하랄 네루의 외동딸인 그는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역사를 전공했으며, 1938년부터 아버지를 따라 독립운동에 참여했다. 42년 변호사 페로제 간디와 결혼하면서 남편 성을 따라 인디라 간디가 됐다. 59년 여당인 인도 국민회의파 당수가 된 이후 66년 인도 최초 여성 총리가 됐다. 77년에 총선 패배로 실각했다가 80년 재집권에 성공했다.

    간디는 경제개발계획을 주도하고 여권신장에 기여했다. 녹색혁명으로 농업개혁에도 앞장섰다. 빈곤 타파를 목표로 했던 그는 지금도 ‘인도의 국모(國母)’로 불린다. 부친이나 남편의 명성과 후광의 도움을 받아 정치적으로 성공한 간디형 지도자로는 코라손 아키노 전 필리핀 대통령, 글로리아 마카파갈 아로요 전 필리핀 대통령,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 전 인도네시아 대통령, 베나지르 부토 전 파키스탄 총리, 베굼 칼레다 지아 전 방글라데시 총리, 찬드리카 반다라나이케 쿠마라퉁가 전 스리랑카 대통령,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아르헨티나 대통령 등이 있다.

    간디형 지도자들은 상당한 능력과 경험, 학력을 바탕으로 국가를 무난히 통치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간디형과 대처형 지도자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소신과 원칙을 지키면서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하는 실리주의자라는 점이다. 또한 남성 중심의 질서에도 항상 도전한다. 위기를 돌파하는 과감한 성격으로 갈등을 해결하고 협상에 능숙하다는 분석도 있다.

    여성 국가 최고지도자는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까. 미국 미래학자 존 네이스비츠는 저서 ‘메가트렌드’에서 21세기는 ‘3F 시대’로 간다고 진단했다. 3F는 여성성(Female), 감성(Feeling), 상상력(Fiction)을 의미한다. 21세기는 지식과 정보, 창의력을 강조하는 시대이며 여성의 섬세한 감각이 능력을 발휘할 것이라는 얘기다. 21세기 지식기반 사회는 정보화·자동화·소프트웨어적 특성을 지니므로 직업상 남녀 구별이 무의미해져 부드러움과 섬세함을 지닌 여성적 성향이 국가경쟁력을 끌어올리는 데 훨씬 유리하다고 보는 것이다.

    21세기 여성 리더십은 카리스마와 여성성을 동시에 요구한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아줌마 리더십’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브라질 첫 여성 대통령인 지우마 호세프는 게릴라 전사 출신으로 강력한 카리스마가 특징이었으나 지금은 이미지를 완전히 바꿨다. 호세프 대통령은 머리 스타일부터 복장, 행동에 이르기까지 다정다감한 이웃집 아줌마 같은 모습을 보인다.

    카리스마 넘치는 메르켈 독일 총리 역시 한편으로는 후덕한 아줌마 이미지를 유지해왔다. 그는 집에 돌아오면 평범한 주부로 변신한다. 금요일에 쇼핑목록을 작성해놓으면 남편이 주말에 장을 보고 자신은 남편이 사온 재료로 음식을 만들고 빵을 굽는다고 밝힌 바 있다. 대처 전 영국 총리도 선거운동을 할 때는 아줌마 전략을 구사했다. 21세기 아줌마 리더십이 더욱 부각하는 것은 과거와 달리 교육, 복지, 노인, 환경 등 여성이 강점을 지닌 의제가 현안으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여성 국가 최고지도자들의 결혼 여부도 더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호주 역사상 최초 여성 총리인 줄리아 길라드는 공식적으론 미혼이지만 헤어스타일리스트인 남자친구가 있다. 2006년부터 교제한 두 사람은 현재 파트너(동거인) 관계를 유지한다. 호주에서 파트너는 결혼식만 올리지 않았을 뿐 부부에 준하는 권리와 의무를 갖는다. 그는 2007년 노동당이 집권에 성공한 뒤 부총리 겸 교육·고용·노사관계부 장관으로 일하다 2010년 6월 총리가 됐다. 호주 정가에서 ‘여장부’라는 말을 들어온 길라드 총리는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동분서주하면서 국민의 지지를 받고 있다.

    ‘아줌마 리더십’에 주목

    여성 총리가 동성 파트너와 결혼한 사례도 있다. 시귀르다르도티르 아이슬란드 총리는 2010년 6월 동성파트너인 작가 요니나 레오스도티르와 결혼해 세계 최초 동성과 결혼한 총리가 됐다. 두 사람은 2002년부터 연인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아이슬란드에는 ‘결혼은 성(性)에 관계없이 두 성인의 합의에 따른 결합’이라고 규정한 동성결혼법이 있다.

    미첼 바첼레트 전 칠레 대통령(2006~2010년 재임)은 두 차례나 이혼했으며, 자녀 세 명 중 한 명은 미혼모 상태에서 낳았다. 칠레는 2005년에야 이혼을 합법화했을 정도로 남미 국가 중에서도 특히 보수적이며, 인구의 90%는 가톨릭을 믿는다. 그럼에도 국민이 무신론자인 바첼레트를 대통령으로 선택한 것은 남녀차별 철폐 등 변화를 원했기 때문이다. 1인당 국민 소득이 1만 달러를 넘어선 칠레에선 맞벌이부부가 늘어나는 등 여성의 사회참여가 국가 발전에 매우 중요한 밑거름이 되고 있다.

    아직까지 여성이 정치적으로 활발하게 활동하지 못하는 지역은 이슬람과 유교 문화가 지배하는 중동과 동북아시아다. 중동 지역에선 아직도 여성이 외출은 물론 복장조차 자유롭지 못할 정도로 억압을 받는다. 중국, 일본, 한국 등 동북아시아 3국에선 국가적으론 남녀평등을 강조하지만 실제로는 사회 각 분야에서 성차별이 없어지지 않고 있다.

    미래학자들 모임인 토플러협회는 2010년 ‘40년 뒤 일어날 40가지(40 FOR THE NEXT 40)’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전 세계적으로는 앞으로 여성 지도자들의 비율이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로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여성 지도자가 통치하는 시대가 빠르게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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