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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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난초촌 ‘홍등’ 언제 꺼지나

집창촌 여성과 춘천시 철거 놓고 신경전…도시정비계획 첫 대상지로 주목

  • 춘천=한상진 기자 greenfish@donga.com

    입력2012-12-10 09: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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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천 난초촌 ‘홍등’ 언제 꺼지나
    강원 춘천시 근화동 786-35번지 일대, 이곳에 ‘난초촌’이라고 부르는 성매매집결지(집창촌)가 있다. 호반의 도시 춘천에 남은 마지막 집창촌. 6·25전쟁이 끝나고 미군기지 캠프페이지가 자리 잡은 1950년대 초반부터 하나둘 모여든 홍등이 군락을 이룬 곳이다. 그리고 60년 넘는 세월이 흘렀다. 20년째 난초촌을 지킨다는 한 업주는 “춘천에는 꽃이 드물다. 그래서 사람들이 우리 아가씨들을 꽃이라고 불렀다. 군인들의 도시에 핀 한 송이 꽃이었다”고 난초촌 유래를 설명했다.

    춘천에는 난초촌 말고도 장미촌, 개나리촌이라고 부르던 집창촌이 있었다. 캠프페이지 정문 쪽 소양동에 있던 장미촌엔 주로 미군이, 춘천역에서 가깝고 훈련소(102보충대) 가는 길목에 있던 난초촌엔 주로 한국 군인이, 춘천 중심인 명동에 있던 개나리촌에는 외박 나온 군인이 들락거렸다. 춘천에서 가장 규모가 컸던 장미촌은 춘천을 대표하는 소설가 이외수 씨의 첫 장편소설 ‘꿈꾸는 식물’에서 배경이 됐던 곳이다. 그러나 장미촌은 2006년 소양동 일대가 재개발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난초촌 주차장 되나

    한때 난초촌에는 30, 40개가 넘는 성매매업소가 불야성을 이뤘다. 몸 파는 여성만 100명이 넘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2005년 캠프페이지가 폐쇄되면서 난초촌 홍등은 힘을 잃어갔다. 기자가 난초촌을 찾은 11월 26일, 난초촌엔 15개 업소에서 일하는 성매매 여성 42명만 남아 있었다.

    최근 춘천시는 난초촌을 도시공원으로 정비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감정평가를 거쳐 건물주들에게 합당한 보상을 해준다는 것이다. 계획이 지켜진다면 내년 4월 이곳 홍등은 모두 꺼지게 된다. 춘천시는 내년 4월 캠프페이지 담벼락을 없애는 것과 동시에 난초촌을 철거한 뒤 캠프페이지 자리에는 메밀꽃과 유채꽃, 난초촌 자리에는 메밀꽃과 유채꽃을 보러 오는 손님들을 위한 주차장을 만들 예정이다. 춘천시는 2005년 3월 캠프페이지가 폐쇄된 이후부터 난초촌 문제를 고민해왔다.



    11월 22일 춘천시는 ‘난초촌’ 건물주들을 모아 간담회를 열었다. 그 자리에서 ‘근화동 집결지(난초촌) 정비계획’(정비계획)이 처음 공개됐다. 정비계획에 따르면, 춘천시는 올 11월부터 내년 3월까지 건물주들과 협상을 통해 이 지역을 모두 사들일 예정이다.

    수년 전까지만 해도 난초촌 건물주들은 춘천시의 난초촌 매입 제의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캠프페이지 땅이 개발되면 주변 부동산이 엄청난 혜택을 누리리라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그러나 최근 부동산시장이 침체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상당수 건물주가 춘천시 정비계획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춘천시 한 관계자는 “25명 건물주 가운데 상당수가 관심을 보인다. 부모로부터 소유권을 넘겨받은 2세들은 대부분 춘천시 매입 결정을 반긴다. 원만하게 매입이 이뤄지리라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 건물주는 “솔직히 집창촌에 부동산을 가지고 있다는 게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살 사람을 찾기 어려워 처분도 못 했다. 적절한 보상이 이뤄진다면 당장이라도 매각하겠다”고 말했다.

    춘천시는 난초촌이 자연스럽게 사라지기를 바란다. 그러나 생각만큼 쉬운 일은 아니다. 성매매 업주들과 여성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기 때문. 취재 중 만난 여성 업주 A씨는 “한겨울에 집을 비우라는 식이다. 전셋집을 빼더라도 몇 달간 시간을 주는 게 도리고 관례다. 춘천시에서 철거를 밀어붙인다면 우리는 끝까지 싸울 생각”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업주 B씨도 “이대로는 못 나간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춘천 난초촌 ‘홍등’ 언제 꺼지나

    ‘난초촌’의 한 성매매 여성.

    현재 난초촌 사람들은 춘천시 측에 “2015년 말까지 시간을 주면 자진해산하겠다”는 뜻을 밝힌 상태다. 그러나 춘천시는 이를 무시한다. “난초촌 사람들의 말을 신뢰할 수 없다”는 이유다. 춘천시 한 관계자는 “성매매 업주와 여성은 수시로 바뀐다. 지금 약속한 사람들이 2015년에도 난초촌에 있으리란 보장이 없다”고 말했다. 업주 대표인 임모 씨는 “난초촌 아가씨의 평균 나이가 34.5세다. 더 일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2015년까지 난초촌을 해산한다고 신문에 광고라도 내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춘천시 측은 “신문에 광고를 낸다고 약속이 지켜지겠나”라며 부정적 시각을 보였다.

    성매매 업주와 여성들은 “춘천시가 적절한 보상을 해준다면 난초촌을 떠나겠다”는 제안도 해놓은 상태다. 난초촌 성매매 여성인 김○○(36) 씨는 “서울 용산 집창촌 여성들도 보상을 받고 떠난 것으로 안다. 2000만~3000만 원 보상이 이뤄진다면, 나도 난초촌을 떠날 생각이 있다. 생계를 위해 그동안 성매매를 해왔는데, 재활하려면 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춘천시 측은 이런 요구도 받아들이지 않을 방침이다. 현행법상 불법인 성매매 행위에 대해 금전 보상을 해줄 수 없다는 논리다. 춘천시 한 관계자는 “보상한다면 결국 춘천시민이 낸 세금을 쓰는 것인데, 이것을 춘천시민이 동의하겠나”라고 말했다. 다만 춘천시 측은 성매매 여성뿐 아니라 업주에게도 충분한 재활교육을 하겠다는 처지를 밝혔다.

    잠옷 차림으로 말싸움

    얼마 전 춘천시 한 고위 간부는 난초촌을 찾아 성매매 여성 42명과 대화를 시도했다. 그러나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 난초촌 여성들은 “춘천시 공무원이 자기 이야기만 하고 돌아갔다. 우리 이야기는 듣지도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춘천시 측은 “여성 대부분이 잠옷만 걸친 채 간담회에 나와선 ‘보상을 해달라’는 요구만 반복했다. 대화가 되지 않았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그날 이후 양측은 서로 연락을 끊었다. 한 업주는 “춘천시가 우리를 만나주지도 않는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평행선을 달리는 난초촌과 춘천시, 이대로 철거가 진행된다면 충돌은 불가피해 보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난초촌은 결국 사라지리라는 점이다. 이에 대해선 난초촌 사람이나 춘천시 간 이견이 없다. 문제는 시간이다. 내년이 될지 2015년이 될지 알 수 없는 일. 춘천시는 이에 대해 “분명히 조만간”이라고 강조했다.

    해방 이후 우리나라에는 40개가량의 집창촌이 여기저기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중 10여 개가 사라졌다. 자연히 소멸했거나 민간개발업자들이 사들여 철거한 경우다. 난초촌의 경우처럼 도시정비계획에 따라 사라지는 집창촌은 아직 없었다. 집창촌을 가진 전국 지방자치단체가 난초촌에 주목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난초촌 운명에 따라 다른 지역 집창촌 운명도 달라질 수 있기 때문. 춘천시 한 관계자는 “전례가 없는 일이라 더욱 긴장된다. 첫 사례라는 사명감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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