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13

2011.11.21

“내래 필로폰 줄께 삼성 노트북 다오”

북한산 마약 중국으로 넘어와 대량 유통…일본·태국은 물론 한국으로도 보내

  • 옌지 =한상진 기자 greenfish@donga.com

    입력2011-11-21 10:04: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내래 필로폰 줄께 삼성 노트북 다오”
    중국 지린성(吉林省) 옌볜조선족자치주 주도(州都) 옌지(延吉)에서 만난 사업가 P씨를 통해 마약을 유통하는 북한 외화벌이 일꾼을 접촉할 수 있었다. P씨가 소개한 사람 중에는 중국 병원에서 일하는 의사도 있었다. 공공기관이 밀집한 연룡로에 있는 4층짜리 Y병원 의사였다. 이 병원은 북한 의사와 간호사가 일하는 곳으로, 한방과 양방을 병행해 병을 고치는 것으로 유명하다. 수술실과 탕제실이 함께 있는, 한국에선 볼 수 없는 형태의 병원. 2층의 북한 의사 진료실 앞에는 이력과 사진이 있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북한 평양의과대학을 졸업했으며 박사학위를 받았고 평양의과대학 교수를 지냈다는 것이다.

    그는 외화벌이를 위해 북한에서 중국으로 파견 나온 공무원이다. 기자 신분을 속이고 그와 대화를 나눴다. 그는 북한에 대해 상당한 자부심을 갖고 있으면서도 한국의 경제 수준 등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써보니 삼성에서 만든 TV가 소니 것보다 훨씬 화면이 좋다거나 현대자동차가 소음이 적어서 좋다는 등의 얘기를 했다. 김태희 같은 한국 배우, 소녀시대 같은 걸그룹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병원에서 받는 월급은 모두 북한으로 보내고 월급은 북한에서 따로 보내준다고 했다. 그가 일하는 병원은 한국의 한 선교회가 설립 및 운영에 깊이 관여한 곳이다. 인터넷에서 이 병원의 개관식 사진을 볼 수 있었는데, 병원과 관계있는 한국 사람들도 소개돼 있었다. 한국 사람이 병원장에 임명됐다는 내용도 있었다. P씨와 이 의사 사이에는 이런 대화가 오갔다.

    파견 나온 Y씨 1∼2kg씩 받아

    ▼ 왜 요즘엔 물건(필로폰)이 안 들어와요.

    “기다려 봐요. 좀 기회를 봐야 해요. 아직 강(두만강) 너머에서 연락을 못 받았어요.”



    ▼ 언제 오는데요. 지난번에 왔을 때 (또 다른 필로폰 유통업자) 강○○한테는 주고 나한테는 안 줬잖아요.

    “다음 주면 올 거예요. 그때 줄게.”

    ▼ 얼마나 줄 건데요. 그리고 필로폰 값으로 얼마 준비하면 돼요? 전자제품 같은 거 필요하면 따로 얘기하시고….”

    “우리 딸이 노트북을 하나 갖고 싶다고, 삼성 노트북이 아주 좋다더라고. 그거하고 전자레인지, 사진기, 그 정도면 되지 뭐.”

    P씨는 이 의사가 북한에서 한 번에 받는 필로폰 양은 1~2kg이라고 말했다. 한국 시가 기준으로 수십억 원에 달하는 양이다. 이 의사와 거래하는 사람 중에는 한국으로 마약을 보내는 일을 업으로 하는 사람도 있다. 이들은 보따리상이나 국제우편을 통해 북한산 마약을 한국으로 보낸다고 한다.

    마약이라고 다 같은 마약이 아니다. 생산지가 어느 곳이냐, 순도가 얼마냐에 따라 가치와 가격이 달라진다. 대중적인 마약인 필로폰이 특히 그렇다. 최근 들어 생산지 기준으로 가장 높은 가치를 인정받는 게 북한산 필로폰이다. 불순물이 상대적으로 적어 환각 효과가 큰 것으로 알려졌다.

    마약 세계 은어 중 ‘크리스탈’이라는 게 있다. 순도 70% 넘는 필로폰을 가리키는 말이다. 북한산 필로폰은 순도가 100%에 가까운 것도 있다고 한다. 최상품 크리스탈인 셈이다.

    동아시아에서 주로 제조 및 유통하는 필로폰은 순도가 50~60%다. 50%만 넘어도 나쁘지 않은 물건 취급을 받는다. 유통 과정이 복잡할수록, 생산지가 불분명할수록 소금이나 백반 비중이 높아진다. 돈에 눈이 먼 일부 업자는 소량의 필로폰에 밀가루를 섞어 유통하기도 한다.

    오랫동안 필로폰을 다뤄온 이들은 가루를 맛보는 것만으로도 크리스탈인지, 아닌지를 알아차린다. 투약했을 때 몸이 반응하는 정도를 체득했기 때문이다. 크리스탈은 한국의 ‘소문난 약장이’도 쉽게 만나기 어렵다고 한다. 마약 세계를 취재하던 중 만난 40대 유모 씨는 이렇게 말했다.

    “예전엔 술(필로폰)이 아주 독했어요. 순도가 높았거든요. 먹어보면 바로 알아요. 요즘에 유통되는 술은 약해요. 같은 효과를 보려면 양을 2배 가까이 늘려야 하죠. 그래서 돈이 과거보다 더 들어가요. 최근 시중에 도는 술 중 북한산이 질이 좋은 것으로 알려졌어요. 순도가 최소 75%를 넘는다는 겁니다. 실제로 맞아보면 아∼그렇구나 하고 느껴요. 75% 순도면 아주 괜찮은 크리스탈이죠. 북한산 필로폰은 일본으로 주로 수출되고 우리나라에는 별로 안 들어온다고 해요. 중국을 통해 들어와야 하는데, 중국에서 마약 단속이 심해졌거든요. 중국은 마약을 투약하는 데는 관대하지만 마약을 유통하는 사람은 사형하는 나라잖아요.”

    북한산 마약은 중국, 일본, 태국에서 주로 유통된다. 그중 일부가 한국으로 유입돼 수사기관에 적발되곤 한다. 북한산 마약을 한국으로 밀수하는 조직이 중국에서 활동하는데, 규모가 큰 조직도 적지 않다고 한다.

    외화벌이 일꾼 통해 공식 유통

    “내래 필로폰 줄께 삼성 노트북 다오”
    북한산 마약이 중국으로 넘어가는 경로는 크게 두 갈래다. 북한 외화벌이 인력이 거간하거나 민간인이 밀수하는 것이다. 밀수는 탈북자, 조선족, 중국 공안, 북한 국경경비대가 복잡한 커넥션을 형성해야 가능하다. Y병원 의사 같은 외화벌이 인력은 단속에 걸릴 위험이 덜 하다. 중국에 나와 있는 북한 외교관, 북-중 무역을 담당하는 사업소 직원도 마약을 거간한다. 이들은 당국의 허가를 받거나 묵인 하에 부업 형태로 필로폰을 거래한다고 한다. 수익의 일부는 기름칠 용도로 관료에게 상납한다.

    Y병원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북한 출신 의사는 북한이 파견한 공무원이다. 북한 당국이 의사 급여를 일괄해 가져간 뒤 일부를 떼어내 의사들에게 준다. 북한 당국이 의사들에게 나눠주는 월급은 2000∼2500위안(한국 돈 36만 원)에 불과하다. 중국 옷가게나 식당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생 월급이 1000∼1500위안인 것과 비교하면 아주 적은 금액이다. 가족을 데리고 나와 살고 있는 북한 사람이라면 기본적 생계를 꾸리기도 버거운 수입이다. 사정이 이런 터라 좋든, 싫든 마약거래에 나서는 것이다.”

    중국에 나와 있는 북한 외화벌이 인력이 거래하는 필로폰 양이 최근 수년간 급격히 늘었다고 한다. 중국 공안이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전후한 시기부터 필로폰 등 마약 제조에 대해 좀 더 엄격한 감시와 단속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옌지에서 취재 도중 만난 한 필로폰 유통책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전에는 두만강을 통해 밀수되는 것이 훨씬 많았다. 중국 공안, 북한 경비대와 짬짜미 한 뒤 한밤중에 두만강으로 사람을 보내 돈을 건네고 마약을 받아오는 식이었다. 화물에 넣어서 보내기도 했다. 그런데 요즘에는 공식적으로 외화벌이에 나선 북한 사람이 유통하는 물량이 더 많아졌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중국에서 만드는 필로폰이 당국의 단속으로 줄어든 탓에 북한산 필로폰 유통량이 더 늘어났다. 대만, 태국 등으로 넘어가는 물량도 상당하다.”

    한국에선 필로폰 1g이 100만∼200만 원 선에서 거래된다. 옌지에서는 200∼300위안(한국 돈 3만6000∼5만 원)이면 필로폰 1g을 구할 수 있다. 한국 중국의 가격차가 20∼40배까지 나는 것이다. 마약 유통책이 위험을 감수하고 한중 간 무역에 나서는 이유가 있다.

    “내래 필로폰 줄께 삼성 노트북 다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