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00

2011.08.16

당신은 몇 살까지 운전할 수 있을까요?

고령자의 운전면허

  • 김동엽 미래에셋자산운용 은퇴교육센터장 dy.kim@miraeasset.com

    입력2011-08-16 09:58: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당신은 몇 살까지 운전할 수 있을까요?
    은퇴자에게 자동차는 이동수단이면서 사회·경제적 지위를 나타내는 ‘지위재’다. 은퇴한 다음에도 자동차를 처분하지 못하는 이유다. 은퇴 후 자동차를 유지하는 데 드는 비용은 만만치 않다. 유가가 상승하면서 매달 들어가는 유류비도 상당한 데다 자동차세, 보험료를 매년 납부해야 하기 때문이다. 도심 주차도 갈수록 까다로워지고 주차료도 오름세여서 자동차를 운전하기보다 주차장에 모셔두는 시간이 많아지고 있다.

    나이가 들면 시력이 저하하면서 표지판이나 신호등을 눈으로 보고 뇌로 판단하는 인지능력이 떨어지고, 각종 돌발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 또한 약해져운전 횟수가 줄어드는 게 일반적이다. 반사신경이 둔화돼 고령자가 운전하는 것은 본인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안전도 해칠 수 있다. 2010년 고령자 통계를 살펴보면, 65세 이상 고령자 10명 중 6명이 교통사고에 불안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고령자라고 해서 젊은이보다 사고를 많이 내는 것은 아니다. 경찰이 2008~2009년 운전면허 소지자를 대상으로 연령대별 교통사고 발생 비율을 조사한 결과, 71세 이상 고령자 사고율은 0.9%로 20대 이하 사고율(1.83%)의 절반밖에 되지 않았다. 비슷한 연구 결과는 미국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미국 랜드연구소가 1975~2003년 미국에서 발생한 33만여 건의 교통사고를 분석한 결과, 65세 이상 운전자가 낸 사고는 7%로 나타났다. 전체 운전면허 소지자 중 65세 이상 고령자가 차지하는 비중인 15%에 못 미치는 수치다.

    그러나 이러한 통계를 근거 삼아 안심해서는 안 된다. 교통사고율은 젊은이보다 낮더라도 치사율은 더 높다. 교통사고 사망자 중 61세 이상 고령자의 비중은 1998년 22.1%에서 2008년 35.3%, 2009년 37.6%로 높아졌다. 이런 현상은 미국에서도 마찬가지다. 2007년 랜드연구소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고령 운전자와 그 승객의 교통사고 사망률은 평균보다 7배 높았다.

    고령화가 진전할수록 고령 운전자도 늘어나게 마련이다. 국회입법조사처는 2005년 87만5000명이던 고령 운전면허 소유자가 2010년 106만1000명으로 증가했고, 2020년에는 233만 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그러면 고령 은퇴자를 교통사고 위험으로부터 지켜낼 방법은 없을까.



    먼저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이 고령자로 하여금 운전면허를 반납하도록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방법은 노인의 반발을 살 수 있다. 지난해 경찰청이 노인 운전자에 의한 교통사고를 줄이고자 추진했던 ‘노인운전면허반납제’를 백지화한 이유도 노인단체의 반발 때문이었다. 교통사고를 줄이겠다고 일괄적으로 운전면허를 취소하는 것은 오히려 위험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일본에서 생겨난 ‘생필품 난민’이 그 전형. 생필품 난민은 대형마트가 세를 불리면서 구멍가게가 사라지는 가운데 대중교통을 이용해 장보러 다니기가 힘든 노인을 가리킨다.

    따라서 운전면허를 반납하라고 강제하기보다 자발적으로 반납하는 고령자에게 혜택을 주는 방식이 현명하다. 일본은 고령 운전자의 교통사고를 줄이고자 75세 넘는 운전자의 ‘운전면허 자진반납’ 제도를 2002년부터 시행하면서 반납자에게 다양한 특혜를 제공하고 있다. 도쿄에서는 교통 및 제약 관련 기업과 단체가 연계해 운전면허를 반납한 고령자에게 해당 기업 상품이나 서비스를 이용할 때 할인혜택을 준다. 도야마현에서는 반납자에게 대중교통 1년분 승차권을 지급하며, 후쿠이현에서는 시민버스 무료 이용권을 지급한다.

    야마구치현은 2009년 11월부터 운전면허를 반납한 65세 이상 고령자를 대상으로 ‘운전면허 졸업증’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반납’이라는 부정적 표현이 아니라 ‘졸업’이라는 긍정적 수사를 통해 은퇴자의 거부감을 줄인 것이다. 또한 운전면허를 반납한 고령자가 생활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운전 졸업자 서포트 수첩’을 교부한다. 이 수첩을 가진 사람은 전동자전거와 전동차를 구입하거나 온천, 미술관, 관광농원 등을 이용할 때 할인혜택을 받을 수 있다. ‘졸업자’에게는 각종 상품의 배달료를 받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현재 이 현에선 운전면허를 자진 반납하는 고령자가 증가하는 추세다.

    고령자의 운전면허 갱신 절차를 까다롭게 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미국 일리노이주는 운전면허 갱신을 엄격하게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4년에 한 번 운전면허를 갱신해야 하는데 81~86세 노인은 2년에 한 번 시력검사와 도로주행 시험을 치러야 하고, 87세 이상 노인은 매년 면허를 갱신해야 한다. 일본에서는 75세를 넘긴 나이에 운전면허 효력이 만료한 고령자를 대상으로 기억력, 판단력을 측정하는 검사를 실시한다. 검사에서 기억력 및 판단력 저하가 나타나면 운전면허 자진반납을 권유한다.

    당신은 몇 살까지 운전할 수 있을까요?
    일본에서 운전면허 자진반납제가 자리 잡은 것은 반납에 따른 혜택이 크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보다 고령자 수가 계속 증가하는 게 더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제도를 처음 시행할 때 고령화율은 18.5%에 그쳤지만, 지난해엔 23%를 넘어섰다. 2010년 한국의 고령화율은 11%지만, 2018년 14%, 2026년 20.8%를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고령화율이란 전체 인구에서 65세 이상 인구가 차지하는 비율을 말하는데, 고령화율이 7%를 넘어서면 ‘고령화 사회’, 14%를 넘어서면 ‘고령 사회’, 20%를 넘어서면 ‘초고령 사회’라고 일컫는다.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한국의 고령화 속도를 볼 때, 일본 사례를 참고할 만하다. 교통사고로 위험으부터 고령 은퇴자를 지켜야 한다.

    * 미래에셋 투자교육연구소 은퇴교육센터장으로 일반인과 근로자를 대상으로 한 은퇴교육과 퇴직연금 투자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