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99

2011.08.08

흰 고래, 음악에 즐겁게 실려 왔다

액터-뮤지션 뮤지컬 ‘모비딕’

  • 현수정 공연칼럼니스트 eliza@paran.com

    입력2011-08-08 11:11: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흰 고래, 음악에 즐겁게 실려 왔다
    유례없는 폭우로 수많은 사람이 수해를 입었다. 이번 물난리는 환경 파괴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인재(人災)이기도 하다. 인간과 자연이 어떻게 공존할 것인지는 인류가 고민해야 할 화두다. 동명 소설이 원작인 창작뮤지컬 ‘모비딕’(대본·작사·연출 조용신, 작곡·작사 정예경, 협력연출·안무 이소영)은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성찰을 담았다.

    이 작품엔 모비딕이라는 이름의 흰 고래에게 다리 하나를 잃은 후 그 녀석을 잡는 일에만 집착하는 에이헙 선장이 등장한다. 선장은 ‘욕망하는 인간’의 결정체, 고래는 ‘자연’을 상징한다. 선장은 자신이 죽을 줄 알면서도 고래와 싸움을 벌이는 비극적 인물. 인간이 도저히 대항할 수 없는 자연의 위대하면서도 무자비한 메커니즘을 극에서 느낄 수 있다.

    이 뮤지컬은 원작 소설을 압축해 갈등 구조를 명확히 했다. 특히 에이헙 선장과 일등항해사 스타벅은 자연을 들여다보는 상반된 방식을 보여준다. 스타벅은 ‘단지 살아보겠다’고 발버둥친 동물에게 복수심을 품는 선장을 비판하고, 선장은 ‘자신에게 복수하려는 바다에 대항하는 것’이라고 반박한다. 극은 이 같은 갈등 구조에서 어느 한쪽에 기울지 않고 담담한 톤을 유지한다.

    사회자 겸 주인공은 말단 선원 이스마엘이다. 작품은 이스마엘의 성장 스토리라고 볼 수도 있다. 이야기가 말랑말랑하게 전개되는 것은 이스마엘과 ‘작살잡이’선원 퀴퀘그의 우정 덕분이다.

    극중 인물 모두가 또렷한 캐릭터를 지녔으며 비슷한 비율로 극에 참여한다. 이는 ‘액터-뮤지션 뮤지컬’이라는 독특한 형식 덕분이다. 액터-뮤지션 뮤지컬은 배우가 연주, 노래, 연기를 모두 소화하는 장르를 가리킨다. 초연부터 액터-뮤지션 뮤지컬로 공연한 작품은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평론가 출신 연출가인 조용신, 신예 작곡가 정예경 등의 창의적 발상이 현실에서 이뤄진 것이다. 각 캐릭터에 맞는 악기로 인물을 표현한 덕분에 음악과 캐릭터가 드라마 안에서 긴밀히 연관돼 살아 숨 쉰다.



    이스마엘은 피아노를 연주하고, 퀴퀘그는 바이올린을 켠다. 스타벅은 지휘봉을 갖고 다니고, 선장은 첼로를 연주한다. 첼로 핀은 선장의 의족 구실도 한다. 모비딕은 덩치 큰 더블베이스를 맡고 있다. 일인다역의 인물은 클라리넷, 색소폰, 기타 등을 다양하게 연주한다. 단짝인 이스마엘과 퀴퀘그는 수준 높은 연주로 경합을 벌이면서 관객의 귀를 호강시켜준다.

    극의 분위기는 맑고 유머러스하다. 무대는 모던하고 심플하다. 실내외를 함께 표현하는 단일 세트다. 콘서트 같은 분위기를 소화할 수 있도록 다채로운 조명을 조화롭게 활용한다.

    이 작품은 주제와 형식면에서 시의성, 독창성을 갖춘 수작이다. 적절한 송 모멘트(음악을 시작하는 지점)와 팝, 재즈, 클래식, 뉴에이지 등 다양한 장르를 효과적으로 편곡한 음악이 세련미를 더해준다. 팝 피아니스트 신지호, 집시 바이올리스트 이일근의 신들린 듯한 연주, 황건(에이협 역)의 무게감 넘치는 연기, 조성현의 감초 같은 일인다역이 빛을 발한다. 8월 20일까지,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