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91

2011.06.13

어물어물 넘어가다 곪은 상처 더 키울라

승부조작 파문

  • 황승경 국제오페라단 단장 lunapiena7@naver.com.

    입력2011-06-13 11:2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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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물어물 넘어가다 곪은 상처 더 키울라

    축구 승부조작 파문이 연일 커지고 있는 가운데 일시적인 대책보다 재발 방지를 위한 축구계 전반의 시스템 개선이 시급하다.

    6월 3일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세르비아와의 평가전에서 한국 대표팀이 2대 1 승리를 거뒀음에도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밝혀지는 축구계의 승부조작 때문이다. 5월 25일 K리그 선수 2명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되면서 그동안 소문만 무성하던 불법베팅, 배당금을 위한 경기사주 등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양 팀을 합해 22명 이상이 그라운드를 누비는 축구에서 승부조작을 선수 2명만 할 수는 없다. 당연히 보이지 않게 거미줄처럼 여기저기에 연결됐을 것이라는 예상이 가능하다. 일단 수사는 구속된 대전 시티즌 선수 4명과 광주FC 선수 1명, 불구속 입건된 선수 4명 등 9명을 기소하는 선에서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이번 사건을 보면서 2006년 전 이탈리아반도를 발칵 뒤집어놓았던 ‘칼치오폴리’라는 승부조작 사건이 머리에 떠올랐다. 22년간 유벤투스를 이끈 단장 루치아노 모지(75)는 엄청난 이권이 달린 시즌 우승을 위해 한 시즌 38경기 가운데 29경기에서 심판을 교묘한 방법으로 매수했다. 증권시장에 상장한 축구클럽의 우승은 여러 이해당사자의 큰 이익과 연결된다. 또한 선수 비즈니스 측면에서 아주 유리한 조건으로 다른 클럽에 선수를 이적시킬 수 있다.

    하지만 유벤투스 수뇌부가 심판들과 은밀한 관계를 지속한다는 제보가 언론에 처음 포착됐을 때는 그리 놀랄 만한 일이 아니었다. 암묵적인 관행으로 여겼기에 이렇게 큰 파장을 일으키리라고는 언론도 짐작하지 못했다. 그러나 후폭풍은 거셌다. 이탈리아 축구의 자존심이라는 유벤투스는 두 시즌 챔피언 타이틀을 박탈당한 채 B리그로 강등됐다. AC밀란, 라치오, 피오렌티나, 레지나는 승점 감점 조치됐다.

    위기는 또 다른 기회였던가. 이탈리아축구협회는 모든 것을 투명하게 밝힌다며 진상규명에 앞장섰다. 국제적인 비난과 망신을 감내하며 속전속결로 재판을 진행했다. 그 결과 이탈리아는 2006년 독일월드컵에서 우승을 차지해 자존심을 회복했다.



    하지만 이탈리아 역시 승부조작에서 영원히 벗어나지 못한 모습이다. 5년 전처럼 허리케인급은 아니지만 세리아B 선수 16명이 승부조작 혐의로 구속됐다. 강력한 대안이 제시되지 않다 보니 또다시 승부조작이 기승을 부리는 것이다. 이번 승부조작에는 국가대표로 활약했으며 세리아A 득점왕 3번에 미스 이탈리아 출신 아내까지 모든 면에서 전 국민의 부러움의 대상이던 주세페 시뇨리(43)까지 연루됐다.

    대한축구협회는 어떤가. 2008년 K3리그(현 챌린저스리그)에서 승부조작 사건이 발생했을 때 해당 선수들에게 출전 정지 3~5년 징계로 마무리했다. 이번에는 프로축구연맹 정몽규 회장의 사과문 발표, 부정 행위 근절 서약식, 승부조작 비리근절 비상대책위원회, FIFA의 조기경보시스템 도입 등 여러 대책이 나오고 있지만 그다지 믿음이 가지 않는다.

    어물어물 넘어가다 곪은 상처 더 키울라
    지금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재발 방지 대안을 위한 당근과 채찍이다. 그런데 그 어디에도 당근, 채찍은 없는 것 같다. 우산은 비 오는 날 만드는 것이 아니라 맑은 날 만들어야 한다는데, 이미 비를 맞고도 우산 만들 생각을 안하는 격이다. 과연 태풍이 다시 불지 않을까.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 황승경 단장은 이탈리아 노베 방송국에서 축구 전문 리포터로 활약한 축구 마니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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