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87

2011.05.16

중년의 빈 가슴에 추억과 낭만을

강형철 감독의 ‘써니’

  • 정지욱 영화평론가, 한일문화연구소 학예연구관 nadesiko@unitel.co.kr

    입력2011-05-16 11: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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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년의 빈 가슴에 추억과 낭만을
    언제부턴가 거리를 걷다 ‘뽑기’ 장수를 심심찮게 만나고, 카페 메뉴판에서 ‘추억의 도시락 정식’을 볼 수 있게 됐다. 어린 시절 쪼그려 앉아 손톱에 침을 발라가며 조심스레 모양을 오려내던 ‘뽑기’, 달걀 프라이가 들어가 금상첨화로 여겨지던 ‘양철 도시락’이 젊은이에겐 새로운 호기심으로, 중년에겐 추억으로 쏠쏠한 재미를 던져주는 듯하다. 이렇듯 거리 어디서든 쉽게 만나는 복고 바람이 초여름 스크린에서도 거세질 것 같다.

    주부 임나미(유호정 분)는 알람시계가 울리자마자 일어나 정성스레 아침을 준비하지만 딸과 남편은 등교와 출근 준비에 바쁘기만 하다. 정신없이 오전을 보내고 입원한 친정엄마를 보러 간 나미는 우연히 고등학교 동창인 하춘화(진희경 분)의 병실을 지나게 된다. 이때부터 관객들은 이들과 함께 추억 여행을 시작한다.

    전라남도 벌교에서 서울 진덕여고로 전학 온 나미(심은경 분)는 첫날부터 사투리 때문에 놀림을 받고 잔뜩 주눅이 든다. 하지만 뒷자리의 영웅들, 즉 학교의 의리 짱 춘화(강소라 분), 쌍꺼풀에 목숨 건 장미(김민영 분), 욕배틀의 대표주자 진희(박진주 분), 괴력의 ‘다구발’ 문학소녀 금옥(남보라 분), 미스코리아를 꿈꾸는 사차원 복희(김보미 분), 도도한 얼음공주 수지(민효린 분)와 어울리며 새롭게 서울생활을 시작한다.

    현재와 과거를 오가고, ‘써니’ 멤버를 하나씩 찾아내며 펼치는 다양한 에피소드의 짜임새에 중년은 물론 젊은 관객까지 1980년대 ‘한국의 청춘들’에게 깊이 빠져든다. 영화 곳곳에서 등장하는 그 시절 추억은 실로 다양하다. 여럿이 함께 리듬에 맞춰 춤추던 허슬(Hustle), 방송국에 엽서를 보내고 라디오를 통해 확인하던 밤, 그리고 음악다방 은 그 시절 문화코드의 첨병이었다. 게다가 공무원 아버지와 대립하는 운동권 아들, 사복경찰의 등장, 시위 장면을 통해 그 시절의 아픔을 비록 낭만적이긴 하지만, 요즘 젊은이들이 이해할 수 있을 만큼은 보여준다.

    정치적 불안정, 부동산 침체, 경기 불황 등으로 오늘날은 386세대가 살아가기 참 힘든 세상이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먹고살기 힘들던 그 시절에 비하면 ‘추억으로의 여행’이라는 호기를 부리기에 더없이 적당한 시절이다. 비교적 안정된 가정을 이루었기에 가능한 추억으로의 여행을 꿈꾸는 중년의 모습을 스크린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때맞춰 등장한 추억 마케팅이 시기적절하게 맞아떨어졌달까.



    추억 마케팅을 염두엔 둔 영화는 크게 ‘과거의 옷을 입힌 옛날 이야기’(위험한 상견례), ‘현재의 옷을 입힌 옛날 이야기’(그대를 사랑합니다), 그리고 ‘과거의 옷을 입힌 요즘 이야기’(써니)로 나눌 수 있다. 이 중 가장 넓은 관객층에 호소할 수 있는 영화는 ‘과거의 옷을 입힌 요즘 이야기’다. 따라서 3년 전 ‘과속 스캔들’로 혜성처럼 나타나 831만 명의 관객을 스크린 앞으로 이끌었던 강형철 감독의 재주가 올해도 다시 한 번 돌풍을 일으킬 것이라 조심스레 예견해본다.

    여기에 중년의 가슴을 후벼 파는 감독의 또 다른 내공이 가세한다. 보니 엠의 ‘써니(Sunny)’, 리처드 샌더슨의 ‘리얼리티(Reality)’, 조이의 ‘터치 바이 터치(Touch by touch)’ 같은 팝송을 비롯해 나미의 ‘빙글빙글’ ‘보이네’ 같은 가요 등 주옥같은 삽입곡이 그것이다. 이토록 매력적인 삽입곡과 캐스팅을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을 것이다. 이런 매력이 궁금하다면 (인터넷 검색을 하지 말고) 반드시 영화를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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