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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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도 반할 창작동화 빨리 나와라!

  • 한기호 출판마케팅연구소장 khhan21@hanmail.net

    입력2011-05-09 10: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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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른도 반할 창작동화 빨리 나와라!
    1999년 12월 황선미 동화 ‘나쁜 어린이 표’가 출간됐다. 이 해에는 한국 아동문학사에서 주목할 수밖에 없는 창작동화가 한꺼번에 쏟아졌다. 이금이의 ‘너도 하늘말나리야’, 김중미의 ‘괭이부리말 아이들’, 박기범의 ‘문제아’, 이미옥의 ‘가만 있어도 웃는 눈’, 고정욱의 ‘아주 특별한 우리 형’ 등 주옥같은 창작동화가 대거 쏟아져 1920년대에 이어 제2의 ‘아동문학 도약기’로 여겨졌다. 그리고 2000년 황선미의 ‘마당을 나온 암탉’이 출간됐다.

    2001년 11월 MBC ‘느낌표’ 선정도서가 된 ‘괭이부리말 아이들’은 방송 특수로 200만 부 가까이 판매됐다. 이 작품과 1984년에 출간된 권정생의 ‘몽실 언니’를 제외하고는 밀리언셀러가 된 창작동화가 없었는데, 최근 ‘나쁜 어린이 표’와 ‘마당을 나온 암탉’이 동시에 100만 부 넘게 판매되면서 황선미는 작품성과 상업성을 겸비한 당대 최고의 작가로 불려도 무방하다는 평가를 받기 시작했다.

    1999년 무렵이 창작동화의 전성기가 된 것은 1980년대를 치열하게 살아낸 뒤 부모나 작가가 된 ‘386세대’가 아이들에게 좋은 책을 읽히려는 열의, 양서를 골라주는 다양한 활동을 펼친 어린이도서연구회 같은 시민단체의 맹활약, 1980년대에 인문사회과학을 펴내던 양식 있는 출판사들의 아동분야 대거 진출, 어린이 책 전문서점과 전문도매상의 등장, 아이를 중시하는 학교 교육현장의 변화, 일간신문의 아동서적 소개 지면 확대에 힘입은 바 크다. 간단히 말해 다양하고 긍정적인 사회 저변이 좋은 작품을 생산하는 밑거름이 된 것이다.

    20세기 말 혜성처럼 등장한 황선미의 작품은 ‘마당을 나온 암탉’처럼 의인화한 동물을 주인공으로 인간세계를 그린 동물동화, 아이를 키워본 엄마의 시각으로 아이들을 바라보는 ‘나쁜 어린이 표’로 대표되는 생활동화, 작가의 어린 시절 경험이 온전히 드러나는 성장동화, 판타지동화 등 스펙트럼이 무척 넓다.

    황선미 동화의 등장인물은 체벌 구실을 하는 ‘나쁜 어린이 표’라는 스티커를 불공정하게 남발하는 교사처럼 결코 선한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악인에 가까운 묘사가 대부분이다. 아이들의 눈으로 그려지는 교사나 어른의 허위의식이 너무 냉철하고 사실적이어서 황선미 동화는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도 즐겨 읽는다.



    황선미는 해방 후 최고의 작가로 손꼽히는 권정생과 대비된다. 힘없는 자와 약한 것에 대한 남다른 관심은 물론 건강한 역사와 정신을 추구하는 작품을 주로 발표한 권정생에 비해, 황선미는 일상에서 벌어지는 세상의 온갖 부조리에 도전한다. 그런 작품이 무너진 학교에서 상처받는 아이들의 마음을 잘 대변했기에 두 작품 모두 100만 부 돌파라는 대업을 이룰 수 있었다.

    그러나 2000년대 한국 아동문학은 유망한 신인이나 창작동화를 거의 배출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1999년의 성취에 도취한 출판계가 수준 이하의 책 출간을 남발한 탓이 무엇보다 크다. 이미 발표된 작품을 저학년 동화라는 미명 아래 과대 포장해 대거 펴내는 바람에 독자의 신뢰를 잃기 시작했다. 온라인서점의 과도한 할인경쟁은 양서를 시장에서 밀어내고 있을 뿐 아니라, 어린이책 전문서점과 전문도매상의 붕괴를 몰고 왔고 결국 비평 기능까지 담당했던 어린이도서연구회의 약화로 이어졌다.

    어른도 반할 창작동화 빨리 나와라!
    또 독서운동을 빙자한 상업적 독서단체인 한우리독서운동본부의 ‘이상한 추천도서’ 선정은 양서의 존립기반을 좀먹었다. 성적으로 줄 세우는 학교교육은 교과 연계가 되지 않는 창작동화가 살아남기 어려운 풍토마저 조성했다. 비평의 부재로 쏟아져나오는 작품 중 옥석을 가리지 못했다. 그렇다면 이 사태의 해법은 무엇인가. 1999년의 도약을 가져온 1990년대 같은 사회 저변이 바로 정답이다.

    1958년 출생.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학교도서관저널’ ‘기획회의’ 등 발행. 저서 ‘출판마케팅 입문’ ‘열정시대’ ‘20대, 컨셉력에 목숨 걸어라’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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