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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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탐색전…큐피드 화살 날아가고

SBS 리얼 시추에이션 다큐멘터리 ‘짝’ 촬영 현장

  • 박혜림 기자 yiyi@donga.com

    입력2011-05-09 10: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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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주일 탐색전…큐피드 화살 날아가고

    자기소개 중인 11명의 출연자. 이 시간에는 사복을 입고 자신만의 개성을 표출할 수 있다.

    봄기운이 완연한 4월 28일, 강원 영월군 한 산골마을에 11명의 미혼 남녀(남성 6명, 여성 5명)가 모였다. 20대 중반에서 30대 후반인 이들은 7박8일 동안 동고동락하며 결혼 상대자를 찾는다. 이곳은 매주 수요일 밤 11시경에 방송되는 SBS ‘짝’ 촬영 현장. 제작진이 창조한 세계인 ‘애정촌’에서 이들은 동일한 유니폼을 입고, 자신의 이름 대신 등 번호에 따라 ‘남자 1호’ ‘여자 1호’로 불리며 생활한다. ‘짝’은 몇 가지 설정 상황(시추에이션)만 주고, 출연자 사이의 감정 교류나 애정 표현에는 개입하지 않은 채 사실 그대로 촬영한다. 이 때문에 제작진은 ‘짝’의 장르를 ‘리얼 시추에이션 다큐멘터리’라고 부른다.

    3월 말 방송을 시작한 ‘짝’은 SBS 스페셜 신년특집 3부작 ‘짝’의 1부 ‘나도 짝을 찾고 싶다’를 정규 편성한 프로그램이다. 신년특집 ‘짝’은 시청률 10.2% (TNmS 기준)를 기록할 정도로 반응이 좋았다. 그동안 ‘짝짓기’를 소재로 한 프로그램은 남녀 연예인이 출연해 몇 시간 동안 게임과 장기자랑을 반복하다 짝을 정하는 식이었다. 하지만 신년특집 ‘짝’은 일반인이 일주일이라는 꽤 긴 시간 동안 함께 지내며 진지하게 짝을 찾았다.

    출연자 보며 감정 이입 대리 만족

    4월 29일 오전, 미혼 남녀가 불꽃 튀게 사랑의 화살을 날리는 촬영 현장을 찾았다. 출연자가 많은 데다 이들 각자의 움직임은 물론, 은밀한 데이트까지 따라다녀야 하기 때문에 PD와 작가, 카메라맨 등 스태프가 출연자보다 많았다. 출연자들이 머무는 방에는 CCTV를 설치해 이들의 움직임과 말소리를 모두 담고 있었다. 촬영 현장에 함께 있었지만 숨죽여 출연자들을 지켜봐야 했기 때문에 마치 그들의 세계를 다른 세계에서 관찰하는 기분이 들었다.

    매주 방송에서 확인했듯 이번에도 여성들의 외모가 사회적 기준으로 평균 이상이었다. 뚱뚱한 사람 한 명 없을 정도. 그런데 이들 중에서도 청순하고 여성스러운 이미지와 늘씬한 몸매로 유난히 눈에 띄는 이가 있었다. 반면 남성들은 미남만 있지는 않았다. 유머가 넘치는 삭발한 머리의 남성, 턱수염을 기르고 패션 센스가 남다른 남성, 키가 크고 젠틀한 느낌을 주는 남성 등 개성이 뚜렷했다. 그간 ‘짝’은 출중한 외모의 여성과 화려한 스펙을 가진 남성이 출연해 시청자의 눈길을 끌었다. 이날도 그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애정촌’에서 남녀는 만난 지 이틀째가 돼서야 직업, 나이 등을 공개할 수 있다. 그 전까지는 함께 밥 먹고 이야기를 나눌 순 있지만 자신의 신상정보를 말해서는 안 된다. 제작진은 사회적 조건이 짝을 선택하는 데 미치는 영향을 관찰해보고 싶었을 것이다. 자기소개 시간을 갖기 전, 남녀는 어떤 사람에게 호감을 느꼈을까. 예상대로 여성 중에서는 외모가 출중한 사람이 인기가 많았다. 남성 6명 중 4명이 그를 지목한 것. ‘짝’의 윤소영 작가는 “이전 방송을 보더라도 대부분 남성은 첫 선택에서 여성 외모를 중요시했다”고 전했다.

    여성은 외모 남성은 자상함이 어필

    일주일 탐색전…큐피드 화살 날아가고

    도시락 선택 시간. 두 여성이 같은 남성을 택했다. 그는 자상하고 가정적이다.

    그렇다면 여성은 남성의 사회적 조건을 모를 때 어떤 점에 끌릴까. 여성 5명 중 2명이 훤칠한 키에 준수한 외모를 가진 남성을 택했고, 또 다른 여성 2명은 사투리를 쓰고 수더분해 보이는 남성을 택했다. 나머지 1명은 선택을 유보했다. 선택을 받은 두 남자의 공통점은 어느 정도 나이가 있어 진지해 보인다는 것. 또한 자상하고 차분한 인상을 풍긴다는 것이었다. 선택을 받지 못한 남성 출연자 중에는 나이가 어리거나 유머감각이 뛰어나거나 더 준수한 외모를 가진 이도 있었다. 이에 대한 ‘짝’의 남규홍 PD와 윤 작가의 해석.

    “우리 프로그램은 결혼을 전제로 짝을 찾는다. 연애 상대와 결혼 상대를 찾는 기준이 다르다. 연애 상대는 멋있거나 재미있는 사람을 선호하지만, 결혼 상대는 나에게 잘해주고 잘 맞을 것 같은 이성에게 끌리는 것 같다.”(남 PD)

    “여성은 자신에게 호의적이고 친절한 남성에게 좋은 첫인상을 갖는 경향이 있다. 여성의 선택을 보면, 애정촌에 들어온 첫날 자신의 짐을 들어주거나 가까이에서 잘 챙겨주는 남성을 꼽았다.”(윤 작가)

    남성들도 이런 여성의 심리를 잘 아는 듯 자신이 얼마나 친절한지를 표현하려고 갖은 노력을 했다. 날씨가 쌀쌀해지자 자신의 목도리를 여성의 목에 둘러주기도 하고, 벤치에 앉을 때는 손수건이나 종이를 꼭 깔아줬다. 이도 안 되면 손으로 먼지라도 털어줬다. 이전 방송에서는 한 남성이 우유를 좋아하는 여성에게 편의점에서 파는 모든 종류의 우유를 사다주기도 했다.

    이에 비해 여성은 지나치게 수동적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애정촌은 우리 사회의 모습을 반영하는 측면도 있지만, 남녀의 특성을 지나치게 단순화한 측면도 있다. 지금까지 ‘짝’에 출연한 여성 대부분이 남성의 적극적인 대시와 구애를 받는 수동적인 위치에 있었다는 사실은 거슬리는 부분이다. 현장에서도 여성 과반수가 자기소개를 할 때 “따뜻한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많이 낳는 게 꿈이다” “천생 여자이고 요리를 좋아한다” “최종 목표는 좋은 아내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드디어 직업과 나이, 학교, 가족 관계 등을 밝히는 자기소개 시간이 왔다. TV로 볼 때는 1분도 걸리지 않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한 시간을 훌쩍 넘겼다. 그 정도로 서로에게 궁금한 점이 많았다. 자기소개를 한 후 인기가 높아진 남성 출연자는 30세의 수의사와 대기업에 다니는 27세 직장인이었다. 수의사는 첫인상에서도 2표를 받았는데 소개 후 4표(중복 포함)로 늘어났다. 그를 선택한 여성들은 그 이유로 “부모님이 아직도 손을 꼭 잡고 다닐 정도로 사이가 좋다는 말이 인상적이다” “따뜻한 가정에서 자라 화목한 가정을 이룰 것 같다”고 밝혔다. 박미영 PD는 “결혼을 전제로 해서인지 가정적인 남성을 중시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대기업에 다니는 남성은 첫인상에서 1표도 받지 못했다가 2표를 받았다. 그는 새벽에는 영어학원에 다니고 독서, 운동을 게을리하지 않는 데다 외모 관리도 열심히 한다고 했다. 최종적인 인생 목표 역시 컸다. 그를 택한 여성은 “자기 관리가 철저한 점이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37세의 디자인 회사 최고경영자(CEO)는 자기소개 전후 모두 2표를 받았다. 표를 던진 여성도 동일했다. 여성들은 속마음을 밝히는 인터뷰에서 하나같이 “직업보다 성격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수의사, 대기업 사원, 디자인 회사 CEO라는 직업이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는지는 끝까지 명확한 대답을 듣지 못했다.

    결혼 상대자는 화목한 가정에서 자란 남성

    여성들도 자기소개 후 인기도에 변화가 생겼다. ‘짝’에서 상대방에게 호감을 드러낼 수 있는 기회는 도시락을 먹는 시간. 일명 ‘도시락 선택’ 시간으로, 자신이 함께 밥을 먹고 싶은 이성에게 가야 한다. 제작진이 남성들에게 도시락을 함께 먹고 싶은 여성을 비공개 질문한 결과, 첫인상에서 4명의 남성 표를 받은 여성과 먹고 싶다는 남성이 2명이었다. 나머지 4명의 남성은 각기 다른 4명의 여성과 밥을 먹고 싶다고 대답했다. 남성 몇 명이 밝힌 선택 이유가 흥미로웠다. 첫인상에서 여성이 자신을 선택해줬기 때문에 ‘의리’를 지키고 싶다는 이유도 있었다. 남 PD는 “간혹 남성 중에는 자신이 선택을 안 하면 그 여성이 혼자 밥을 먹어야 한다고 생각해 택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제작진은 남성들이 자기 감정에 솔직해질 수 있게 여성이 ‘도시락 선택’을 하도록 상황을 바꿨다. 그러자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첫인상에서 자신을 선택해줬으니 의리를 지키겠다던 남성은 그 여성이 다른 남성에게 가자 “나를 찍지 않았으니 이제부터 다른 여성에게도 적극적으로 대시해보겠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짝’이 회를 거듭할수록 식상하게 느껴진다는 의견도 나온다. 여성은 외모, 남성은 능력이라는 공식이 반복된다는 것. 이 프로그램을 자주 보는 직장인 한모(27) 씨는 “다양한 사람을 섭외하는 것 같지만 결국 여성은 대부분 예쁘고, 남성은 좋은 스펙을 가진 사람이 나온다. 제작진 스스로 이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제작진은 ‘짝’에 출연하기를 희망하는 이가 넘쳐난다고 말했다. 방송에 출연해 굳이 짝을 찾고자 하는 이들의 심리는 대체 어떨까. 심리학박사이자 영화평론가인 심영섭 씨의 분석이다.

    “짝짓기 프로그램에 출연하면 더 많은 선택지가 생긴다. 세상을 살면서 좋은 남성을 만나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설령 방송에서 짝을 찾지 못하더라도 자신을 노출시켜 홍보 효과를 얻는다. 또 자기를 객관화해 들여다볼 수 있는 ‘자기 확인’의 시간이 되기도 한다.”

    연세신경정신과 손석한 원장은 이 프로그램이 대중의 관심을 끄는 이유를 이렇게 분석했다.

    “원래 사람은 남녀 짝짓기에 흥미를 느낀다. 누가 누구를 좋아하는지에 관심이 많다. 특히 요즘은 짝짓기가 잘 이뤄지지 않는 시대다. 사람들은 방송을 통해 대리 만족을 느낄 수 있다. TV 앞에서 여러 출연자를 평가하고, 나라면 어떻게 할지 감정 이입을 하기도 한다.”

    영화평론가 심씨의 설명은 좀 더 직설적이다.

    “짝짓기는 비합리적이고 감정적인 선택이면서도 한 사람의 평생을 좌우하기도 하는 중대한 선택이기도 하다. 예측 불가여서 그 자체로 흥미롭다. 또 인간은 짝을 얻고자 구애하고 경쟁하고 질투도 한다. 인간의 본성, 원형적 행동이 드러나니 재미있을 수밖에 없다.”

    인터뷰/ ‘짝’ 남규홍 PD

    “최대한 사랑에 집중…짝 찾을 때 아이처럼 순수”


    일주일 탐색전…큐피드 화살 날아가고
    ‘짝’을 기획하고 연출한 남규홍(46) PD를 촬영 현장에서 만났다. 그는 자신을 애정촌 촌장이라고 불렀다. ‘짝’의 모티프인 SBS 스페셜 신년특집 ‘짝’ 3부작 역시 그의 작품. 촬영 현장에서 그는 좀처럼 화를 내지 않는 다정다감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인터뷰에 들어가자 표정이 사뭇 진지해졌다. 다음은 남 PD와의 일문일답.

    어떻게 ‘짝’을 기획하게 됐나.

    “인간이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욕망이 있다. 잘 먹고 잘 자는 것은 물론, 사회적 성공까지. 좋은 짝을 만나는 것 역시 이에 속한다. 짝의 문제는 인생의 가장 중요한 화두이자 행복의 요소일 수 있다. 짝을 찾는 과정을 들여다보면 인생의 희로애락(喜怒哀樂)이 다 농축돼 있다. 애정촌이라는 가상 공간에 모인 남녀가 짝을 찾는 과정을 들여다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인만의 짝을 찾는 특징이 있나.

    “한국인만의 특징을 분석하는 것은 내 능력 밖의 일이다. 그저 A라는 사람은 이렇고 B라는 사람은 저렇다는 식으로 다양한 사례를 보여주는 방법밖에 없다. 세대별로 조금씩 변화한 것은 있다. 예를 들어 과거에는 터프한 남성이 인기 있었지만, 요즘에는 세련되고 약간의 여성스러움이 있는 남성이 인기 있더라. 하지만 크게 보면 여전히 기본 속성은 같은 것 같다.”

    ‘짝’을 촬영하면서 의외라고 생각한 결합이 있었나.

    “이 사람은 저 사람이랑 잘 통하겠다고 생각했는데 이를 벗어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애정촌에 출연자가 막 들어온 초반에는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지만 3~4일 지나면 의외의 결합이 생긴다. 예를 들어 이종격투기 선수는 눈물로 미녀를 얻었다. 또 눈에 띄게 예쁜 여성이 가장 인기가 많을 것이라 예상했지만, 7명의 남성 중 단 한 명도 그녀와 함께 밥을 먹지 않은 일도 있었다. 지나치게 예쁜 여성에 대한 부담감, 모델이라는 직업, 경쟁의식 등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했다. 의외로 아주 잘생기거나 예쁜 이성보다 자신과 잘 어울릴 것 같은 이성을 택하는 경우도 있다.”

    섭외는 어떻게 진행하나.

    “출연진의 80% 정도를 신청자 중에서 뽑고, 20% 정도는 직접 섭외한다. 각계각층의 사람을 출연시키고자 하는데, 애초에 내가 원하는 섭외 대상도 있다. 예를 들어 재벌가 아들이 오면 거기에 맞는 여성을 배치해야 한다. 국가대표 스키점프 선수, 김춘수 시인의 손녀처럼 화제가 되면서 짝이 없는 인물을 설득해 출연시키기도 했다. 이들이 애정촌에 들어가면 상대방과 어떤 화학작용을 일으킬까 궁금했다. 생각해봐라. 대머리 때문에 고민이 많은 청년이 있다. 다른 조건은 다 우수하다. 어떤 결과가 나올지 궁금하지 않나.”

    일주일 탐색전…큐피드 화살 날아가고
    출연자들은 이름 대신 ‘1호’ ‘2호’라고 불리고 유니폼을 입는다.

    “누구에게나 이름은 있다. 애정촌에서만큼은 최대한 사랑에 집중하도록 만들고 싶었다. 같은 의상을 입고 번호로 불리는 순간, 다 똑같아지는 거다. 사회적 조건보다 내면에 좀 더 집중하도록 하고 싶었다.”

    차분한 내레이션이 시청자로 하여금 출연자를 냉정하게 관찰하도록 만든다.

    “성우 김세원 씨의 목소리는 지적이고 한국적 느낌이 난다. 냉정하고 객관적이며 신뢰감을 주는 힘이 있다. 보통 짝짓기나 미팅 프로그램은 가볍고 희화적인 요소가 많아 너무 오락적으로 가는 듯한 느낌도 있다. 성우가 이를 눌러줘 균형을 맞추고 싶었다.”

    짝을 찾는 인간의 모습은 어떤가.

    “지성적인 인간이 짝을 찾을 때는 아이처럼 순수해지고 본능적으로 굴기도 한다. 아무리 똑똑하고 유능한 사람도 유치한 일을 서슴없이 할 때가 있다.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짝이 탄생하는 순간, 얼마나 순수하게 그것에 집중하는지 볼 수 있다.”

    출연자들의 촬영 후 소감도 궁금하다.

    “애정촌은 애정에 관한 문제를 집중적으로 고민해볼 수 있는 공간이다. 가족, 일 모든 것을 떠나서 일주일 동안 애정 문제만 고민한다. 사랑을 할 때 내가 어떤 모습이었고 이성에게 어떻게 비치는지를 객관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그들은 짝을 찾는 것이 일차 목적이었지만, 짝을 얻지 못해도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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