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85

2011.05.02

프리미엄 아웃렛 ‘땅 따먹기 전쟁’

신세계 선방, 롯데 숨차게 추격, 현대 관망 … 중산층 소비욕구 공략 유통시장 변혁 예고

  • 이설 기자 snow@donga.com

    입력2011-05-02 09: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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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리미엄 아웃렛 ‘땅 따먹기 전쟁’
    속내가 모두 달라 보였다. 신세계와 롯데는 태연함 뒤에 서로를 바짝 경계하는 신경전이 느껴졌고, 현대는 조급함 없이 사태를 관망하는 분위기였다. 과거 군소 백화점을 무서운 속도로 집어삼키며 성장한 공룡 백화점 롯데, 현대, 신세계가 새로운 각축전에 돌입했다. 신세계를 선두로 프리미엄 아웃렛 시장에 경쟁적으로 진출하고 있는 것. 프리미엄 아웃렛은 명품과 국내 고가 브랜드의 시즌 지난 상품을 대폭 할인해 파는 곳이다.

    선두주자는 단연 신세계다. 첼시와 신세계가 절반씩 투자한 신세계첼시는 2007년 경기도 여주에 프리미엄 아웃렛 1호점을 연 뒤, 3월 18일 경기도 파주에 2호점을 열었다. 지금까지 성적은 양호한 편. 여주점은 꾸준히 쇼핑객을 모으고 있고, 파주는 개점 후 한 달 동안 주말에 교통난을 불렀을 정도다. 신세계는 앞으로도 시장을 확대할 방침. 신세계첼시의 한 관계자는 “부산과 대전에 3, 4호점을 세울 계획”이라고 밝혔다.

    신세계와 롯데의 진검승부

    롯데는 신세계를 바짝 뒤쫓고 있다. 2008년 12월 롯데는 경남 김해 관광유통단지에 프리미엄 아웃렛 1호점을 열었다. 수도권에는 올해 12월 파주, 2013년 경기 이천에 아웃렛을 짓기로 했다. 이 아웃렛은 각각 신세계첼시 여주, 파주점과 차로 10분, 30분 거리. 이 때문에 “후발주자인 롯데가 신세계첼시에 맞불을 놓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양측이 신경전을 벌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복잡하다. 가장 큰 원인으로 신세계의 새치기가 꼽힌다. 신세계첼시의 파주 대지는 원래 롯데가 눈독을 들이던 곳이다. 하지만 협상 중 신세계가 롯데보다 비싼 3.3㎡당 120만 원을 제시해 거래가 성사된 것.



    이유 불문하고 신세계와 롯데는 수도권 2곳, 경남권 1곳에서 같은 상권을 두고 경쟁을 치르게 됐다. 이에 대해 양측은 모두 “‘윈윈’할 것”이라고 낙관하면서도, 각자의 강점을 홍보하는 데 열을 올린다. 신세계첼시 측은 “두 회사는 색깔이 확연히 다르다. 우리는 명품 위주인 반면, 롯데는 국내 브랜드를 주로 들여올 예정”이라고 말했고, 롯데 측은 “롯데는 규모 면에서 바잉 파워가 탁월하다. 특히 국내 A급 이상 브랜드를 대거 들여올 수 있다는 점에서 신세계와 차별화된다”고 답했다. 그렇다면 이들이 프리미엄 아웃렛을 욕심내는 이유는 뭘까.

    신세계와 롯데는 시장의 매력으로 3가지 정도를 꼽는다. 먼저 지속적으로 커지는 명품 시장 규모다. 지난 10년간 명품은 대중 곁에 바짝 다가왔지만 중산층이 제 가격에 구매하기는 부담스럽다. 프리미엄 아웃렛은 중산층의 명품에 대한 잠재욕구를 해소한다는 차원에서 잠재 시장으로 인정받고 있다. 위험 부담이 적고 마진율이 높은 것도 장점. 검증된 브랜드의 상품을 괜찮은 마진에 들여와 안정적으로 사업을 운영할 수 있다. 이 밖에 도심 백화점은 포화상태라는 점, 그리고 부동산 자산 확보 차원에서의 이익도 중요한 이유다. 다음은 ‘패션저널’ 강두석 편집장의 설명.

    “외곽이지만 기업 처지에서는 부동산 자산 확보 측면이 크다. 예전에 뉴코아가 전국 요지를 매입하기 위해 개발부서에서 수백 명을 굴렸지 않나. 공개적으로 말하긴 뭣하지만, 그런 측면이 있다. 마진이 남지 않아도 땅을 소유하고 있고, 업무용 부동산이라는 거다. 면세 혜택이 있으니까.”

    상품 수급·시장 잠재력이 관건

    프리미엄 아웃렛 ‘땅 따먹기 전쟁’

    올해 3월 개점한 신세계첼시 프리미엄 아웃렛 파주점.

    하지만 시장 잠재력을 보수적으로 예측해야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가장 큰 문제는 상품 수급. 신세계첼시 여주점은 초반 문을 열었을 때 상당한 호응을 얻었지만, 특정 상품의 부족과 특정 사이즈 옷의 품귀 현상으로 갈수록 방문 열기가 식었다. 롯데백화점의 한 관계자는 “명품은 아웃렛을 위한 상품을 따로 만들지 않기 때문에 재고량이 들쭉날쭉하다”고 말했고, 강 편집장은 “신세계첼시 파주점 개점은 여주점에 다시금 관심을 모으기 위한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현대는 이런 상황을 긍정적으로 관망하고 있다. 현대가 개점한 프리미엄 아웃렛은 0곳. 서울 근교 50km 이내에 아웃렛 개점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방안은 나오지 않았다. 현대백화점의 한 관계자는 “명품 시장의 성장세는 긍정적이지만, 아웃렛에 대한 조급한 마음은 없다”고 밝혔다.

    “지난해 3000억 원을 투입해 대구점을 열었는데 개점 1년간 매출액이 5000억 원이었다. 신세계첼시 파주점은 3년 남짓한 기간에 2000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백화점 매출이 훨씬 높은 것이다. 또 프리미엄 아웃렛은 A급 명품 브랜드가 없는 데다 백화점과 입점 브랜드가 상당 부분 겹쳐 매력이 떨어진다.”

    대기업 진출로 프리미엄 아웃렛이 떴지만, 그 전에도 도심형 아웃렛은 있었다. 2005년에는 하이브랜드와 뉴코아 아웃렛 강남점, 2009년과 2010년에는 코엑스몰 W콘셉트레드와 목동 est 프리미엄 아웃렛이 문을 열었다. 상권은 다르지만 이들도 대기업의 아웃렛 진출에 따른 대책 마련에 나섰다. 하이브랜드 이지현 씨는 “올해 3월 말 대형 스포츠 멀티숍인 인터스포츠와 LG 계열 상품을 종합적으로 파는 멀티숍을 열었다. 30~50대 인근 주민이 주 타깃이라 대형 아웃렛보다 입지 측면에서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미국발(發) 프리미엄 아웃렛 첼시는 명품 브랜드와 소비자의 욕구가 맞아떨어지면서 대박을 터뜨렸다. 일반 브랜드와 달리 명품은 재고 처리가 쉽지 않다. 전 세계를 무대로 공격적인 마케팅을 전개하다 보니, 재고가 생기기는 하지만, 브랜드 이미지에 흠집이 날까봐 ‘떨이’ 처리를 못하는 것. 첼시는 이 점을 포착했다. 여러 브랜드를 한꺼번에 처리해 각 브랜드의 부담을 덜어준 것이다.

    국내에 상륙한 프리미엄 아웃렛은 미국보다 높은 마진율에도 승승장구하며 유통시장의 변혁을 예고하고 있다. 백화점, 면세점, 인터넷 쇼핑몰, ‘짝퉁’ 시장에 이어 조금 지난 ‘진퉁’을 저렴하게 구입할 기회가 대폭 늘어난 것이다. 프리미엄 아웃렛의 장기적인 성공은 지속적인 상품 수급과 중산층 이상의 소비력이 뒷받침돼야 가능하다. 선택권이 많아져 즐거운 ‘쇼퍼홀릭’은 팔짱 끼고 추이를 지켜보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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