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84

2011.04.25

인간은 왜 늙어가는가?

노화는 몸의 정교함 떨어져 생긴 총체적인 현상

  • 강석기 동아사이언스기자 sukki@donga.com

    입력2011-04-25 11:23: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인간은 왜 늙어가는가?
    생로병사(生老病死).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누구도 비켜갈 수 없는 인간의 숙명이 이 네 글자에 들어 있다. 사실 인류는 지난 수십만 년 동안 대부분 ‘노(老)’가 빠진, 즉 생병사(生病死)로 삶을 마쳤다. 질병과 사고로 평균수명이 30세도 안 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류는 지난 세기 눈부신 의학발전과 식량증산을 이뤄냈고 이제 생로병사는 명실상부한 인류 대부분의 숙명이 됐다.

    먹고살기도 빠듯하던 시절에는 나이가 드는 것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그러나 경제적 여유가 생긴 지금엔 많은 사람이 ‘도대체 우리는 왜 늙는 거지?’라는 의문을 갖게 됐다. 이미 멀어져 간 젊음을 되찾을 수 있다면 멋지게 살 수 있으리라는 바람과 함께.

    딱 꼬집어 말할 수 없는 원인

    놀랍게도 노화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우리가 이래서 늙는다’라고 딱 꼬집어 말할 만한 원인이 무엇인지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한다. 그 대신 수많은 가설을 내놓아 이를 입증하거나 반증하는 연구결과만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노화는 여러 원인이 복합해 일어나는 총체적 ‘현상’이다. 즉 ‘인체를 조절하고 유지하는 메커니즘의 정밀도가 떨어진 결과’인 셈이다. 우리가 쉬고 있을 때도 몸속에서는 끊임없이 생체반응이 일어나면서 ‘항상성’을 유지한다. 세포는 산소가 공급되지 않으면 몇 분을 버티지 못하고 죽기 때문에 폐가 들이마신 산소를 혈액은 부지런히 몸 구석구석으로 전달해야 한다.

    세포는 이렇게 받은 산소를 이용해 포도당 같은 영양분을 산화함으로써 열과 에너지를 얻어 다양한 생체 물질을 만들고, 때로는 세포분열을 감행하기도 한다. 인체 기능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해서 이런 작업을 거의 완벽하게 수행해낸다. 그럼에도 작은 실수(주로 활성산소 유발)가 쌓여 어느덧 처음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이는데 그 결과가 ‘노화’라는 현상으로 나타난다.

    노화가 불가피한 현상이라는 사실은 맞는 것 같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어떤 사람은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이고 어떤 사람은 더 들어 보인다. 특히 동안(童顔)인 사람은 부러움의 대상이다. 30대인데도 20대로 보이니 60대가 되면 40대로, 90대에는 60대로 보이지 않겠는가.

    사실 이런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동안과 노화는 다른 맥락의 얘기이기 때문이다. 동안으로 보이는 데는 실제 신체의 젊음보다 얼굴 골격이 더 큰 영향을 미친다. 즉, 아이 얼굴에 가까울수록 어려 보이기 때문에 이마가 넓거나 눈이 크고 턱이 작은 얼굴형이 동안으로 보인다. 동안인 사람은 청소년에서 청장년을 거치지 않고 바로 노년으로 접어든다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우리는 보통 상대방의 얼굴을 보고 나이를 가늠하는데 단지 주름이 많다고 해서 나이들어 보인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다. 여기에는 피부톤이나 색소 침착 여부, 피부 늘어짐 정도 등이 복합적으로 기여한다. 여성들이 기를 쓰고 햇빛을 피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인간은 왜 늙어가는가?

    선천적 요인뿐 아니라 꾸준한 운동 같은 후천적 요인도 노화억제에 큰 영향을 미친다.

    노화 개인차가 생기는 이유

    외모뿐 아니라 신체 생리 나이도 개인차가 크다. 과도한 다이어트로 20대인데도 골밀도가 60대 수준인 여성이 있는 반면, 꾸준한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70대인데도 40대 근육량을 자랑하는 사람도 있다. 실제로 운동이나 식사 같은 생활습관은 신체 나이에 큰 영향을 미친다.

    최근 주간과학학술지 ‘미국립과학원회보(PNAS)’에는 유전적 결함으로 노화가 빨리 오는 생쥐를 대상으로 한 실험 결과가 실렸다. 노화 유전자 결함 쥐에게 5개월 동안 매일 45분씩 달리기를 시켰더니 조로(早老) 현상이 사라졌다는 결과였다. 연구자들은 ‘운동요법’이 인간의 노화를 억제하는 데도 효과적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운동 같은 후천적 노력의 결과가 아닌, 선천적(유전적) 요인이 노화 속도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까. 키를 생각해보자. 지난 수십 년간 평균수명이 늘어난 것과 비슷한 양상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의 평균 키도 많이 커졌다. 그럼에도 키가 작은 사람들은 여전히 있으며 집안에 따라 유전되는 경향도 보인다. 실제로 키에 관여하는 유전자를 최근 다수 발견하기도 했다.

    노화(수명)도 비슷하다. 어떤 집안을 보면 대를 이어 오래 산다. 최근 노화 속도에 영향을 미치는 유전자 후보가 밝혀지고 있다. 예를 들어, 동유럽의 아슈케나지 유대인 가운데는 100세까지 사는 사람이 많은데, 조사해보니 이들에게서 IGF-1 수용체 유전자의 변이가 발견됐다. 이 유전자는 세포의 대사활동을 조절하는 구실을 한다. 앞으로 노화 유전자에 대한 연구를 축적하면 개인의 노화 속도 차이를 어느 정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대체로 몸의 노화에 민감하지만 더 중요한 건 정신의 노화일지도 모른다. 물론 정신은 뇌 활동의 결과이고 뇌는 신체의 일부이므로 정신도 생리활동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아무튼 노령화사회에 접어들면서 치매 같은 신경퇴행성 질환으로 고생하는 사람이 급증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운동이 팔다리 근육뿐 아니라, 정신 근육(뇌세포 연결)도 강화한다는 연구 결과가 속속 보고되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운동이 뇌의 신경세포(뉴런)가 세포 분열을 하도록 유도해 새로운 신경세포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노화 늦추는 약 나올까

    인간은 왜 늙어가는가?

    의학의 발달로 현재 80세 내외인 현대인의 평균수명은 점점 늘고 있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성인의 뇌에서는 신경세포가 죽을 뿐 결코 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게 정설이었다. 그런데 성인의 뇌에서도 신경세포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게 밝혀지고, 그 뒤 운동이 이 과정을 촉진한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 결국 노화 자체는 불가피한 인간의 숙명이지만 개인의 노력은 노화의 질과 속도를 결정짓는 데 큰 구실을 한다는 것을 현대과학이 보여주고 있다.

    인간의 최대 수명은 120세라는 게 현재까지 정설이다. 최장수 공식기록은 122세다. 그러나 현대인의 평균수명은 80세 내외다.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알게 모르게 노화를 조금씩 앞당기는 생활을 한다는 말이다. 따라서 우리가 한계치까지 노화를 늦추려고 온갖 노력을 한다면 최대 40년 정도는 수명을 더 늘릴 여지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노화 속도의 한계치 자체를 바꿀 수는 없을까. 만일 최대 수명을 150세로 늘리는 기적의 약이 나온다면 우리의 평균수명은 100세가 넘을지도 모른다. 황당한 얘기일까. 불과 13년 전까지만 해도 ‘고개 숙인 남자’에게는 보약이나 해구신 같은 천연물이 유일한 희망이었다. 그러나 1998년 비아그라가 나오면서 중년과 노년의 성혁명이 일어났다.

    현재 전 세계 여러 곳에서 노화를 늦추는 약을 ‘진지하게’ 개발하고 있다. 과학자들은 노화과정을 규명한 수많은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노화에 관여하는 생체 메커니즘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약물을 개발하고 있다.

    앞으로 13년 뒤인 2024년에는 정말 노화를 늦추는 약이 나와 인류에게 비아그라와는 비교도 안 되는 충격을 안겨줄지 누가 알겠는가.

    소식으로 노화억제 어떻게?

    칼로리 제한 → 에너지 소모 최소화 → 만성질환 걸릴 위험성 ‘뚝’


    인간은 왜 늙어가는가?
    노화를 늦추는 약은 아직 안 나왔지만 과학자들이 노화를 늦추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밝혀냈다고 볼 수 있다. 바로 적당량보다 덜 먹는 것인데 이를 ‘칼로리 제한’이라고 한다.

    칼로리 제한이 노화 속도를 늦춰 수명을 늘린다는 사실은 1930년대 쥐를 대상으로 한 동물실험에서 처음 확인됐다. 그 뒤 초파리, 선충은 물론 심지어 효모 같은 단세포 생물에서도 칼로리 제한이 수명을 극적으로 늘린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2009년 과학 학술지 ‘사이언스’에는 사람과 가까운 영장류인 붉은털원숭이를 대상으로 20년에 걸쳐 진행한 칼로리 제한 연구 결과가 실려 큰 화제가 됐다. 놀랍게도(연구자는 예상한 결과겠지만) 원숭이에게 칼로리 제한은 노화 속도에 뚜렷한 영향을 미쳤다.

    1989년 연구자들은 7~14세인 다 자란 원숭이를 임의로 두 집단으로 나눈 뒤 한쪽은 보통 음식을, 다른 한쪽은 거기서 칼로리를 30% 줄인 음식을 공급하기 시작했다. 이때 중요한 점은 칼로리를 줄인 집단일지라도 비타민과 미네랄 등 필수영양소는 따로 보충해준다는 것. 순수하게 칼로리(열량)만 줄인 셈이다.

    20년 동안 노화와 관련해 죽은 원숭이가 비교집단에서는 38마리 가운데 14마리였고(37%) 칼로리 제한 집단에서는 38마리 가운데 5마리였다(13%). 그때까지 살아남은 원숭이를 비교해봐도 한눈에 노화 정도가 다름을 알 수 있다. 비교집단의 원숭이는 얼굴이 수척해 보이고 몸의 털도 군데군데 빠져 있는데 반해, 칼로리 제한 집단의 원숭이는 눈이 초롱초롱하고 털도 무성했다.

    그렇다면 칼로리 제한이 어떻게 노화를 억제하는 걸까. 여러 연구 결과 칼로리 제한은 세포에서 영양소를 감지하는 시스템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즉, 우리 몸의 세포는 칼로리가 부족할 경우 ‘어려운 시기’라고 판단해 세포 분열을 멈추고 활동을 줄여 에너지 소모를 최소화한다는 것. 그 결과 세포 노화가 억제되고 암이나 당뇨 같은 만성질환에 걸릴 위험이 줄어든다.

    실제로 칼로리를 제한하면 암이나 심장질환에 걸릴 확률이 절반 수준으로 떨어지고, 특히 대사성 질환인 당뇨에 거의 걸리지 않는다. 과식하는 현대인에게 가장 위협적인 질병이 당뇨인 것과 일맥상통하는 결과다.

    실제로 100세를 산 사람을 보면 대부분 소식하고 몸도 마른 편이다. 또 일상생활에서 끊임없이 몸을 놀리는 스타일이 많다. 현대 과학이 수십 년 동안 찾아온 젊음 유지와 장수의 비결은 ‘소식과 운동(또는 활동), 마음의 평정(스트레스는 노화를 촉진)’이다. 오래된 지혜의 재발견인 셈이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