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83

2011.04.18

‘무조건 외우고 풀어라’ 강요 흥미는커녕 “아이고, 지겨워”

수학 사교육 정면 승부 ② - 피타고라스 전설

  • 이설 기자 snow@donga.com

    입력2011-04-18 11: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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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 9일 열린 ‘수학 사교육 정면 승부 5부작 교실’ 두 번째 시간. 서울대 수학교육과 최영기 교수가 “수학은 인간의 기본이자 신비로운 학문”이라며 수학의 본질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수학은 세계와 우리를 잇는 가교다” “0은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게 만든 위대한 발명”이라는 구절에서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무조건 외우고 풀어라’ 강요 흥미는커녕 “아이고, 지겨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주관하는 국제수학과학능력평가(TIMSS)의 국가별 수학성취도 추이를 보자. 대한민국은 1995년부터 최근까지 매년 상위권에 올랐다. 다음은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의 수학성취도 결과다. PISA는 서술형이 많은데 역시 3, 4위를 기록했다. 한데 선호도 결과는 판이하다. TIMSS의 자신감, 즐거움 인식, 가치 인식 항목은 각각 43, 43, 45위를 기록했다. PISA도 마찬가지로 선호도는 38위다. 성취도와 선호도가 극과 극인 것이다. 이건 우리 수학교육에서 굉장히 중요한 포인트다. 학생들이 재미는 못 느끼는데 성적은 잘 나온다는 말이니까.

    문제 풀수록 재미는 반감

    이는 기계적인 수학교육의 결과물이다. 대한민국은 과거 후진국이었다. 그래서 빨리 선진국의 지식을 습득해야 했다. 그 결과 우리는 놀라운 속도로 성장했다. 2, 3위를 달리는 지식의 힘이 그 원동력이었다. 그런 분위기가 지금껏 면면히 이어져 현재의 시험도 무조건 외우는 식의 지식을 요구한다.

    예전에 뉴질랜드 교과서를 본 적이 있는데 깜짝 놀랐다. 수열 부분이었는데, 분량이 서너 장밖에 안 됐다. 반면 우리 교과과정은 그보다 훨씬 어렵고, 수학능력시험 때까지 반복해 수업을 들어야 이해가 될 정도다. 문제를 많이 풀다 보면 흥미가 떨어진다. 문제 푸는 능력은 향상되지만 재미는 반감되는 것이다. 한데 이 지식은 쓸모없는 지식이다. 기계적으로 풀던 삼각형 문제나 수열 문제, 살면서 쓸 일이 있는가. 그렇다면 그 문제를 왜 푸는가. 입시 때문이다.



    실질적으로 수학으로 얻어야 하는 자질은 세계에 대한 자신감과 사고능력이다. 수학은 감동적인 학문인데, 그렇게 못 가르치기 때문에 문제다. 따라서 학생들은 수학에서 즐거움을 전혀 느끼지 못한 채 기계적으로 문제 푸는 데 열중한다. 하지만 이는 미래사회에는 필요 없는 능력이다. 나는 지금의 교과과정을 성공신화의 함정으로 본다. 지금은 이런 자질이 선진국 또는 리더가 되는 데 크게 도움이 안 된다.

    자, 다음은 노벨의학상을 받은 사람들의 학부 때 모습을 조사한 자료다. 명문대 출신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우리의 경쟁력은 과거 지향적이다. 대학에 머물러 있다. 후진국은 줄 세우기식 학력사회가 유용한데, 선진국은 그렇지 않다. 방향전에서 줄 세우기는 상당한 낭비이기 때문이다.

    다음은 그간 한국을 방문했던 노벨상 수상자와의 인터뷰다. 첫 번째, 콜로라도대 칼 와이먼 교수. “과학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다면?”이라는 질문에 “중학교 1학년 때 과학 선생님의 수업을 듣고 매력을 느꼈다”고 답했다. 과학시간에 감동을 받고 목표를 가지게 된 것이다. 그는 대학 때 연구가 즐거워 기숙사 방을 아예 빼버리고 연구실에서 살았다고 한다. 매력을 느끼고, 그것을 열정으로 발산한 사람은 누구도 못 당한다. “과학교육에 무슨 문제가 있나”라는 질문에는 “원리를 암기식으로 주입하려는 것”이라고 답했다. 이것이 현재 우리 교육 문제의 핵심이다.

    다음은 UCLA 의대 루이스 이그내로 교수다. 그는 30년간 한 가지 연구에 매달렸는데 “노벨상이 목표였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생각해볼 것은 ‘비전’이다. 어려움에 처했을 때 비전이 있는 사람은 작은 어려움에 개의치 않는다. 에베레스트를 오르는 사람과 관악산을 오르는 사람이 어떻게 같겠나. 비전이 크면 담대해지고, 비전이 작으면 사소한 데 짜증이 난다.

    스티브 잡스는 한 연설에서 애플에서 해고당했을 때 낙담에 빠졌다가 이런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아, 내가 여전히 사랑하는 일이 있구나.’ 그래서 잡스는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그는 “사랑하는 일을 찾아라. 못 찾으면 계속 찾아라”라고 강조한다. 그러면 행복해질 거라고 말한다. 그는 열정이 대단하다. 자신이 무엇을 사랑하는지, 그로 인해 어떤 비전을 갖는지는 정말 중요한 부분이다. 그게 없으면 삶을 주도할 수 없다.

    한데 우리 아이들은 작은 경쟁에 허덕인다. 평균수명이 90세를 바라볼 텐데, 비전 없이 평생을 영위하기는 힘들다. 서울대 들어가면 뭐하나. 아이의 에너지가 소진됐는데, 뭘 배우고 즐기고 꿈을 꿀 수 있겠는가. 스무 살까지 모든 에너지를 단지 입시를 위해 쓰는 것은 굉장한 낭비다. 지금 여기 있는 우리끼리라도 경쟁을 위한 사교육을 어떻게 줄일지 고민해야 한다.

    그렇다면 수학이란 무엇인가. 다들 피타고라스 정리는 들어봤을 것이다. 이는 직각삼각형 가장 긴 변의 제곱은 나머지 두 변의 각 제곱값을 합한 것과 같다는 삼각형 성질에 대한 기본 정의다(a2+b2=c2). 피타고라스는 정말 위대한 사람이다. 그에게 수학을 배우면 감동받아 결혼도 안 한 채 평생 수학에만 매달리는 제자가 수두룩했다고 한다. 그것이 피타고라스학파다. 이상하지 않나. 가정도 재산도 버리고 수학에 몰두한다는 것이. 이를 설명하려면 잠깐 유클리드 이야기를 해야 한다.

    흥미 느끼고 아름답다는 것 가르쳐야

    피타고라스는 수많은 업적을 이뤘음에도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그래서 후대 수학자인 유클리드가 수학 연구결과를 차곡차곡 기록했는데, 그 제목이 ‘엘리먼트(Elements)’, 즉 ‘모든 것의 근본이 되는 것’이었다. 왜 수학이 근본일까. 스승인 소크라테스가 허망하게 간 뒤 플라톤은 절대가치인 이데아를 주장했다. 한데 사람들이 “이데아가 과연 존재하느냐”라고 의문을 표했을 때 플라톤이 예로 든 것이 수학이었다. “똑바른 직선과 삼각형을 본 적 있느냐. 그것이 직선과 삼각형임을 확신할 수 있느냐”라고. 그래서 당대 사람들은 수학을 통해 인간을 정화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피타고라스의 제자들은 수학을 통해 인간과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기대하며 목숨을 건 것이다. 그때의 수학은 사물의 본질이자 변치 않는 근원이었다.

    이렇듯 수학의 태생은 지겹지 않았다. 학생들에게 이런 이미지를 가르치는 게 중요하다. 수학에 대한 선호도를 높여줘야 한다. 그러면 아이들이 수학에 흥미를 느끼고 그것을 사용하게 된다. 미국은 수학 시험문제를 실제 데이터로 낸다. 줄 서는 시간, 다이빙하는 거리 등을 진짜 데이터에 근거해 구하도록 한다. 한데 한국은 정수로 떨어지도록 하기 위해 숫자를 조작한다. 가상 데이터다 보니 아이들은 친밀감을 느끼지 못하고, 실제 활용하는 일도 드물다.

    수학은 어떻게 공부해야 할까. 모든 사람이 수학교육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더 큰 문제는 이를 바꿀 만한 환경이 전혀 구축돼 있지 않다는 점이다. 수학은 눈에 보이지 않는 본질이거나, 눈에 보이는 현상이다. 한데 우리 교육은 이 둘을 모두 놓치고 있다. ‘박사가 사랑한 수식’이라는 소설 중 한 대목을 살펴보자. “0을 발견한 인간은 위대하다고 생각지 않나? 고대 그리스 수학자들은 아무것도 없는 것을 가르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어. 없으니까 숫자로 표현하는 것도 불가능했지. …그런데 무(無)를 숫자로 표현한 거야.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게 했지.”

    0뿐 아니다. 초등학교 수학을 알고 보면 참 감동적이다. 제자가 수학에서 감동을 못 느꼈다면 저자의 수학 실력이 부족한 게 아니라 가르치는 내가 부족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가르치는 방식이 잘못된 것이다. 나도 자녀 교육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아이들이 공부를 못하면 마음이 많이 쓰인다. 이런 내 문제가 그대로 사회 문제라고 본다. 문제 해결방법은 내가 나의 문제를 해결하는 길밖에 없는 것 같다. 다른 것을 탓하기 전에, 내가 생각을 바꿔서 아이들에게 비전을 주고, 그들이 행복하게 성장하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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