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81

2011.04.04

여전한 공포의 질주

  • 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입력2011-04-04 09: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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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재를 위해 버스를 타고 이동하던 중이었습니다. 버스가 정거장에 멈춰 서자 백발의 노인 한 분이 올라탔습니다. 교통카드를 단말기에 찍는 순간 버스는 잠시의 여유도 주지 않은 채 내달렸습니다.

    “우당탕탕.”

    1초도 안 되는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미처 자리를 잡기도 전에 무서운 속도로 버스가 출발하자 노인은 그대로 나뒹굴었습니다.

    “이걸 어째, 크게 다치시진 않았을까.”

    놀란 승객들이 소리를 질렀고, 그제야 광란의 질주를 벌이던 버스는 멈춰 섰습니다. 그런데 버스 운전기사의 말이 가관이었습니다. “아니, 손잡이를 꼭 잡고 계실 것이지”라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보다 못한 승객들이 “그게 무슨 소리냐”며 거세게 항의하자 그제야 마지못해 뒤를 돌아봤습니다. 다행히 노인은 크게 다치지 않았지만 하마터면 큰 사고로 이어질 뻔한 아찔한 순간이었습니다.



    버스를 타면 이런 경우를 종종 보게 됩니다. 승객이 제대로 자리를 잡기 전에 출발하는 것은 일쑤요, 카레이스를 벌이듯 광속으로 난폭 운전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이럴 때는 30대인 건장한 저조차도 겨우 버티고 서 있을 정도니, 연세 많은 어르신은 오죽하겠습니까.

    그러다 보니 상당수의 노인이 “버스 타기가 무섭다”며 지하철을 택합니다. 그나마 지하철은 이런 난폭 운전은 하지 않으니까요. 물론 모든 버스가 그렇다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런 경험을 해본 사람이 비단 저만은 아닐 것입니다.

    여전한 공포의 질주
    마침 버스 안에 ‘승객 여러분이 지켜야 할 사항’이라며 10가지 항목을 적어 놓은 안내판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정거장이 아닌 곳에 승차를 요구하지 말 것, 차 안에서 큰 소리를 지르지 말 것, 버스 운전기사에게 폭력을 행사하지 말 것 등이 적혀 있었습니다. 구구절절 옳은 말이지만, 한편으로는 아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승객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기에 앞서 승객을 먼저 배려했으면 하는 씁쓸함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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