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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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의사’ 씨가 마른다?

‘가축’ 분야는 외면 반려동물에만 몰려 … 소수 노령화 가속도 방역 근간 ‘흔들’

  • 유재영 기자 elegant@domga.com

    입력2011-02-14 10:2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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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의사’ 씨가 마른다?

    국가 가축 질병 관리와 방역의 중추 노릇을 해야 할 산업동물 분야 수의사들이 흔들리고 있다.

    지난해 11월 발생한 구제역이 전국 축산농가를 휩쓸고 있다. 허술한 초동 대처와 가축 방역체계가 도마에 오른 가운데 정부와 각 지방자치단체(이하 지자체)는 ‘씨가 마른’ 산업동물(소, 돼지, 닭) 수의사를 수소문하느라 한바탕 홍역을 치르고 있다. 구제역이 터질 때마다 산업동물을 전문으로 다루는 수의사의 확충과 진료체계 개편, 인프라 구축의 필요성이 대두됐지만 우리 정부에는 쇠귀에 경 읽기였다. 이로 인해 구제역 백신 접종, 방역업무 및 감염 가축의 살처분 작업의 진행에 차질이 빚어진 것은 물론, 구제역 현장에 남은 몇 안 되는 수의사는 말 그대로 ‘사투’를 벌이는 실정이다.

    경상남도 축산진흥연구원의 김철호 계장(수의직 6급)은 지난해 12월 20일 구제역 백신을 접종하다 흥분한 소 뒷다리에 가슴을 차여 갈비뼈 1대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었다. 경기도 축산위생연구소 최영화 수의사는 새해 첫날 경기도 김포시 구제역 살처분 현장에서 소가 갑자기 달려들어 목과 어깨를 심하게 다쳤다.

    병원에서 전치 3주 진단을 받았지만 수의사가 없다는 소식을 듣고 열흘 만에 시퍼런 멍과 찰과상을 옷으로 가린 채 안양시 박달동 도축장으로 달려가야만 했다.

    경상남도의 경우 18개 시·군에서 채용된 27명의 7급 수의직 공무원이 한우 30~35만 마리, 돼지 120여만 마리를 관리해야 한다. 진주시, 사천시, 밀양시, 창녕군, 함양군 등 10곳은 수의직 공무원 1명이 예방접종과 지도·단속까지 맡고 있다. 합천군의 가축 전염병 대응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1명의 수의직 공무원이 육아휴가를 가서 임시직이 합천군 내 소 3만7000마리와 돼지 18만 마리를 관리해야 하는 실정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산업동물 수의사들은 구제역 사태의 확산으로 극심한 스트레스와 과로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 1월 경기도 축산위생연구소 등에선 10여 명의 수의사가 이직과 정신적 고통을 이유로 사직을 하거나 휴직을 신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몇 안 되는 그들 구제역과 사투



    민간 동물병원 수의사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 수의사들이 산업동물 분야를 기피하는 현상이 두드러지는 데다, 산업동물 수의사라 하더라도 구제역 현장에 가길 꺼리기 때문이다. 대한수의사회에 따르면 2007년 6월 기준으로 등록 수의사 3822명(3231개 병원) 중 산업동물 분야 종사자는 748명(682개 병원)으로, 전체 수의사의 19.6%에 해당한다. 이에 반해 개, 고양이 등 반려(애완)동물 분야 종사 수의사는 2547명(2100개 병원)으로 산업동물 수의사보다 3.4배나 많았다. 애완동물과 산업동물 분야를 공통으로 진료하는 혼합 분야 수의사 527명(449개 병원)을 더해도 반려동물 수의사 수의 절반에 못 미친다.

    산업동물 수의사는 해마다 감소하는 추세. 수의대가 있는 전국의 10개 대학에서 매년 500명 이상의 졸업생이 배출되는 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자발적 진입’이 거의 이뤄지지 않는 셈이다.

    실제 2008년 9월 기준으로 산업동물 분야 수의사는 751명(678개 병원)으로 변화가 없었다. 1년 3개월여 사이에 의사 수는 고작 3명이 증가했고, 오히려 병원은 4개 줄었다. 전체 수의사(4109명, 3315개 병원)로 따지면 18%로 2007년 6월보다 낮아졌다. 대한수의사회의 2011년 1월 기준 전국 동물병원 현황에 따르면, 산업동물 수의사는 2007년 6월 조사 때보다 15명(733명)이 적게 나타났다. 이는 등록 수의사(4249명)의 17.2%로, 3년간 산업동물 분야 수의사 수가 2.4% 줄어든 셈. 병원은 633개로 50여 개나 문을 닫았다.

    반면 반려동물 수의사는 계속 늘어나 현재 2945명으로 전체 수의사의 70%에 육박한다. 수치만 보더라도 반려동물과 산업동물 분야 진출 빈도는 차이를 보인다. 마치 몇 년 전부터 의사들이 안과, 성형외과 등의 전공을 선호하는 것과 비슷한 모양새다. 자연히 산업동물 수의사들의 노령화도 빨라지는 추세다. 2008년 9월 기준으로 전체 산업동물 수의사의 34%(256명)가 60대 이상이다.

    이처럼 산업동물 분야 전공 수의사가 줄어드는 이유는 뭘까. 수의업계와 학계에선 공통적으로 현재의 법 제도 및 정책 운영, 인력관리 체계가 운신의 폭을 좁히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중에서도 수의사 처방 외에 자가 진료가 허용되는 것을 결정적인 이유로 꼽는다.

    대한수의사회 우연철 상무(수의사)는 “가축에 대한 자가 진료 비중이 높아지면서 산업동물 분야 수의사들이 제대로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했고, 전체적으로 인력 구조에 균열이 생겼다”며 “이런 상황에 직면한 산업동물 분야 수의사들 사이에선 ‘내 역할을 다 할 필요가 없다’라는 인식이 팽배하다”고 말했다. 또한 자가 진료 실패에 따른 1차 병증 진행 이후 수의사에게 진료를 받는 행태의 관례화는 수입의 많고 적음을 떠나 수의사들에게 진료 부담까지 가중시켰다. 우 상무의 말이다.

    “자가 진료 땐 약의 양과 적절한 투여 시기 및 부위, 가축의 스트레스 정도 등을 구체적으로 고려하지 않기 때문에 치료 실패 소지가 크다. 결국 항생제 내성만 증가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 단계에선 수의사들이 진료를 해도 2차 치료 실패율이 높아지는데 결국 이에 대한 부담으로 산업동물 수의사들이 위축되고, 공중보건상의 위해 요소도 증가해 전체적으로 축산업 생산성 하락과 방역이 뚫리는 문제가 동시에 발생하고 있다.”

    대접도 시원치 않다. 국민건강을 위한 수의사연대 박상표 정책국장은 “자가 가축 진료 허용으로 산업동물 수의사들이 자기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가 적어 입지가 불안해지다 보니 현장에 나가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수준의 푸대접을 받는 일도 빈번해졌다”며 “방역과 진단 과정에서 수의사의 말이 통하지 않을 때가 많다. 그러다 보니 한 지역의 수의사들이 구제역 파동 현장에서 백신 접종 및 매장을 거부한 일도 있었다”고 전했다.

    정부나 지자체에서 선발하는 가축 담당 수의직 공무원, 공(公)수의사 등의 열악한 업무조건 및 처우 현실도 산업동물 분야 기피 풍조를 가속화한 원인으로 지적할 수 있다. 6, 7급 수의직 공무원의 경우, 가축 방역에서 수의 행정업무까지 전담하는 실정이다. 구제역과 같은 사태가 벌어지면 그야말로 자신의 업무 시스템에 ‘과부하’가 걸린다. 인사 적체로 진급도 쉽지 않다.

    인천 수의사회 허주형 회장은 “수의직 공무원이라면 자기 직을 걸고 일할 수 있는 권한이 보장돼야 하지만 실제 방역 담당 간부 자리는 비수의사들이 차지하고 있고, 중앙 정부 방역대책회의도 수의사 없이 열리는 게 현실”이라며 “그들에게 무조건 상황을 받아들이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라고 말했다.

    방역과 검역 전문인력 육성 시급

    ‘수의사’ 씨가 마른다?

    산업동물 분야의 위축은 국가 방역시스템 전반에 걸쳐 2차, 3차의 부작용을 야기할 수 있다.

    수당 등 낮은 처우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도 존재한다. 수의직 공무원의 직급 수당은 현재 월 7만 원에 불과하다. 의사 면허가 있는 의료직 공무원의 직급 수당 65만~130만 원과 비교하면 10배 이상의 차이가 난다. 지역자치단체에서 위촉하는 공수의 수당도 월 50만~70만 원 수준이다. 월 6~10회의 가축전염병 예찰, 여기에 예방접종과 별도 지역자치단체장이 지시하는 업무를 소화하면서 받는 보상치고는 상당히 적다는 게 수의업계의 지적. 게다가 공수의는 위촉직이기 때문에 업무 중 부상을 당해도 공상 처리 규정에 따라 보상을 받을 수 없다.

    이처럼 산업동물 수의사들과 수의직 공무원 기반 자체가 불안정한 상황에서 전문가들은 국가 가축 방역 시스템과 수의사 인력구조 전반에 걸쳐 부작용이 악순환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한국양돈수의사회 박최규 부회장은 수의직 공무원들이 과다한 업무를 소화할 수밖에 없는 현 구조에서 자칫 방역과 현장 진단의 중요성이 계속 희석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박 부회장은 “이번 구제역 파동에서도 실제 방역에 동원된 수의직은 30%도 안 될 것”이라며 “‘외부에선 으레 방역을 하는구나’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정작 방역 등 현장 업무에 나설 수 있는 인력은 턱없이 부족하다”고 우려를 표시했다.

    이미 현장 방역 업무는 수의직 공무원들 사이에서도 기피 분야다. 사실상 ‘3D’ 분야다. 그러다 보니 초년병이나 경험 없는 수의직 공무원이 맡는 경향이 심해진다. 문제는 이 공무원들이 교육 등으로 자리를 비우면 대체 인력이 없다는 것. 일부 지자체의 경우 수의직 공무원이 없는 곳도 있다. 박 부회장은 “심지어 현장에 나온 수의직 공무원이 구제역이 뭐냐고 묻는 경우도 있다. 이런 구조는 구제역이 상시 발생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우리 스스로 만들어주는 것과 다름없다. 업무 특성과 수준에 맞는, 특히 방역이라는 고유 업무에 집중할 수 있는 수의사 수가 절대적으로 보장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박상표 정책국장은 수의직 공무원 수를 떠나 정부와 지자체 수의직 공무원 간의 유기적 교류가 이뤄지지 않는 점도 산업동물 분야 기반을 흔드는 요인으로 지적했다. 박 국장은 “중앙정부 검역원과 지자체와의 수의직 인사 교류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정보도 교류하지 않기 때문에 국가 전체 방역 시스템이 손발이 맞지 않는 결과를 내고 있다”며 “서로 경쟁하고 보완하고 검증하는 과정이 전혀 없기 때문에 수의직 공무원 간에도 실력 차가 발생하고 전체적으로 수준이 높아지지 않는 문제가 발생한다”고 밝혔다.

    학계에선 산업동물 수의사들의 장래에 대한 불안감이 가중되면서 대학 수의학 교육 방향의 균형감이 깨져 산업동물 분야에 대한 기대감이 계속 상실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강원대 수의학과 김두 교수는 “대학 교육도 산업동물에서 반려동물 쪽으로 기울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산업동물 분야로 가려는 10% 정도의 학생을 집중 교육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려운 실정”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농림수산식품부 축산정책과 우만수 사무관은 “현재 농림수산식품부가 마련 중인 축산업 선진화 방안에 구제역 진단과 방역, 검역 기능을 맡는 전문인력 육성 계획이 포함돼 있다. 취약한 지방의 가축 방역 기능 활성화, 방역 인력 전문가의 효율적 활용과 육성 방안을 구체적으로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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