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73

2011.01.31

몸도 춥고 마음도 춥고…‘설’까지 서럽게 얼었다

올겨울 없는 사람들에 닥친 한파 시련, “이놈의 날씨 제발 풀렸으면…”

  • 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노정은 인턴기자 중앙대 신문방송학과 4학년

    입력2011-01-28 15:3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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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몸도 춥고 마음도 춥고…‘설’까지 서럽게 얼었다

    한 노인이 리어카에 폐지를 가득 싣고 차도를 건너고 있다.

    유난히도 매서운 한파가 몰아치는 겨울이다. 서울지역의 최저기온이 연일 영하 10℃ 이하를 기록하는 등 전국이 꽁꽁 얼어붙었다. 10년 만에 닥친 한파가 더욱 춥게 느껴지는 이들이 우리 주변에는 너무 많다. 설날을 며칠 앞둔 겨울밤, 모든 이가 집으로 총총걸음을 재촉하는 그때 서울 영등포백화점의 화려한 불빛은 그 뒤로 더 짙은 그림자를 만든다. 그 화려한 그림자 뒤에 쪽방촌이 숨어 있다.

    두 사람이 누우면 꽉 찰 것 같은 방. 모서리마다 수건과 옷가지로 얼기설기 막아놓았다. 차가운 겨울바람을 막기 위한 궁여지책이지만 한기를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이기섭(71) 씨는 내복은 물론 외투까지 겹겹이 입고 막 잠자리에 들 준비를 하고 있었다. 피곤에 지쳐 하품을 할 때마다 하얀 입김이 새어나왔다.

    영하 20℃ 쪽방촌은 시베리아

    “잘 때는 꼭 전기장판을 켜. 얼마 전에 여기에서 전기장판을 안 켜고 자다가 동사한 사람이 있어.”

    이씨처럼 체감온도 영하 20℃의 쪽방에서 전기장판에 의지해 사는 사람이 영등포에만 500명에 달한다. 그나마 이씨는 나은 편이다. 전기장판조차 켜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거주자 905명으로 가장 큰 쪽방촌을 형성하고 있는 용산구 동자동. 김모(47) 씨가 살고 있는 쪽방에서는 전기장판이 허용되지 않는다. 전기요금이 많이 나오는 전열기구를 쓰는지 주인이 수시로 들어와 감시하기 때문이다.



    “영하 17℃까지 내려가는 요즘은 아침에 일어나면 안경에 김이 서리고 입김이 나와. 난방은 12월 초순부터 틀어줬어. 그나마도 새벽에 한두 시간만 틀어주니까 정말 추운 날엔 할인마트에서 핫팩 한 개를 사다가 꼭 안고 자.”

    쪽방촌에 사는 이들에게는 설날이 반갑지 않다. 가족이 없어 그렇지 않아도 외로운데 날씨마저 추우면 견디기 힘들기 때문. 그러다 보니 춥지 않은 것이 소원이라고까지 말한다.

    보일러가 있는 집도 한파 피해에서 예외는 아니다. 이들은 잦은 보일러 고장에 더해 ‘나 몰라’라며 무책임으로 일관하는 보일러 회사들의 행태에 분노를 터뜨린다. 보일러 고장으로 며칠을 고생하던 최모(43) 씨가 AS센터에 전화를 걸자 자동 안내방송 멘트가 나왔다.

    “수도꼭지를 온수 쪽으로 돌려 물이 나오지 않는다면 배관이 언 것입니다. 배관이 언 것은 설비업체에 문의해야 합니다. 수리기사 방문 시 동결로 확인되면 처리가 어렵고 방문 출장비가 부과됩니다. 보일러 고장인지, 내관 동결인지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10분 남짓을 기다려야 겨우 상담원과 연결이 됐다. 보일러 작동이 멈추고 온수가 나오지 않는다고 하자 “동파로 생각된다. 가까운 설비업체에 문의하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보일러 본체 기기만 AS가 가능하고 배관이 언 것은 AS가 불가능하다는 것. 여기에 은근한 협박마저 가해졌다. 상담원은 “수리기사를 부를 경우 만 원의 AS 비용이 추가되고 동파에 관해서는 해줄 수 있는 조치가 없다”고 말했다.

    냉해 피해 농민들 한숨만

    몸도 춥고 마음도 춥고…‘설’까지 서럽게 얼었다

    연일 계속되는 강추위로 보일러마저 고장 난 쪽방촌.

    1월 22일 오랜만에 날씨가 풀렸지만 그래도 한기는 여전했다. 서울 신월동 고물상 거리로 할머니, 할아버지가 저마다 리어카를 끌고 나왔다. 이들은 헌 손수레와 폐지에 생계를 건다. 난방비가 걱정돼 겨울철 차가운 방에서 지내지만 자식이 있거나 집이 있다는 이유로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 대상에서 제외됐기 때문. 책을 가득 싣고 나온 이모(80) 씨는 얼굴과 손이 빨갛게 얼고 피부는 허옇게 일어났다. 한가득 담아온 헌책을 팔아 수중에 넣은 것은 단돈 1만 원. 13kg짜리 손수레를 꽉 채워 3~4번 왕복한 결과다.

    “눈이라도 안 오면 좋겠어. 눈까지 오면 미끄러워서 위험해. 폐지도 젖어서 더 무겁고.”

    그의 말처럼 눈이나 비가 오는 날엔 폐지를 수거하기가 더 힘들다. 폐지가 젖어 옮기는 데 힘이 많이 들 뿐 아니라 젖은 폐지는 고물상에서 반 정도 무게를 삭감한다. 더 큰 문제는 자칫 강추위에 길이라도 얼면 다칠 수 있다는 점이다.

    “아이고, 뭔 놈의 눈이 이렇게 와.”

    날이 풀리는 듯싶더니 다음 날 함박눈이 쏟아졌다. 길거리의 연인은 다정히 손을 잡고 지나가고 아이들은 눈싸움에 여념이 없지만 대로 뒤편 시장 골목은 손님 하나 없이 휑했다. 서울 송파구 새마을시장에서 35년째 채소가게를 운영하는 양춘재(69) 씨의 옷과 머리에는 벌써 눈이 얼어붙었다. 양배추와 당근에도 눈이 쌓였다. 설 연휴가 다가와 장사가 잘될 법했지만 손님은 거의 없었다.

    “10년 전만 해도 장사가 잘됐어. 동네에 마트가 들어선 뒤로 점점 손님이 끊겼지. 특히 이렇게 춥고 눈이 오는 날은 더 안 와. 추운데 다들 마트 가지, 시장에 나오겠어?”

    특히 새마을시장은 지붕이 없어 눈비가 오면 속수무책이다. 상인들은 길이 얼세라 모두 나와 눈을 치우고 있었다. 몇몇 재래시장은 현대화가 진행돼 아케이드와 주차장을 설치했지만 새마을시장은 부근에 30년이 넘은 주택가가 있어 재개발지역으로 묶인 바람에 지원 대상에서 제외됐다. 전통재래시장 지원을 담당하는 중소기업청 시장상권과 관계자는 “당장 1~2년 안에 재개발이 되는 지역도 있지만 재개발 선포만 하고 10~20년 동안 진행이 되지 않는 지역도 있다. 그런 지역은 당장 지원이 필요하지만 현행법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기록적인 한파에 몸과 마음이 얼어붙기는 지역 농가도 마찬가지였다. 영하 20℃를 돌파하는 추위와 전년 대비 20% 이상 오른 유류비, 냉해로 인한 생산량 감소 등 ‘한파 3중고’에 농민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특히 작물의 특성상 따듯한 온도를 유지해야 하는 시설농가의 고민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농업용 면세유의 가격이 고유가 행진의 영향으로 지난해 ℓ당 800원이던 것이 올해 970원으로 대폭 상승했기 때문.

    딸기, 토마토 등 시설작물을 주로 재배하는 경남 밀양시 임천리의 경우 전체 농가 70가구 중 40%에 달하는 27가구가 심각한 냉해 피해를 입었다. 영하의 날씨에 적정 온도를 유지할 수 없어 열매와 가지가 얼고, 대량의 낙과가 발생했다. 온풍기를 틀어도 날씨가 워낙 추운 까닭에 끝이 없다. 임천리의 한 농민은 “기름값이 작년보다 30%는 더 들어가는데도 하우스 가장자리의 작물은 얼어 죽는다”며 울상을 지었다.

    예년에 비해 유류비 부담은 더 커졌지만 작물 생산량은 오히려 20%가량 감소했다. 더욱이 변변한 온풍기 시설조차 갖추지 못한 일부 영세 농가는 이미 재배를 포기한 상태다. 하우스 농가는 당장 출하를 앞두고 있는데 얼어붙은 것을 내놓을 수 없어 고민이 많다. 이렇게 한파 피해가 커지자 정부는 1월 18일 ‘한파 대비 종합대책’을 마련하고 농가 피해 조사에 나섰지만 아직 정확한 규모조차 파악하고 있지 못한 실정이다.

    까치 설날이 바로 내일이지만 마음조차 얼어붙은 그들. 우리의 ‘복지제도’가, 또 ‘사회안전망’이 정치인들의 입 밖에서 실제 거리로 나와 제대로 작동되는 그날, 그들의 주름살 짙은 얼굴에 한 줌의 햇살이 비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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