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64

2010.11.29

서해로 항모 투입하는 미국 체면 구긴 중국은 “…”

미·일·중·러 ‘동상4몽’ 연평도 도발 손익계산서

  • 김용호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ykim1@yonsei.ac.kr

    입력2010-11-29 10: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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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자회담을 흔히 ‘동상6몽’에 비유한다. 북한의 비핵화를 위해 2003년부터 7년간이나 모여왔지만 비핵화는커녕 핵보유 선언과 핵실험을 바라보기만 했다. 그러더니 이젠 우라늄 농축시설까지 공개됐는데도 계속 6자회담 타령이다. 각자의 손익계산을 바탕으로 회담에 응하기 때문에 6자회담의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북한의 연평도 포격으로 조성된 한반도 긴장상황에서도 주변 국가들은 여전히 자국을 위한 주판알을 튕긴다. 그들에게 한반도는 전부가 아니라 외교정책 대상지역의 일부에 그친다. 한반도의 긴장상황을 자국의 세계 전략에 유리하게 활용하려는 국가도 있고, 그렇기에 난감해하는 국가도 있다.

    가장 발 빠르게 움직인 나라는 역시 미국이다. 천안함 사건 직후 서해로 항모를 이동하려는 계획이 중국의 반대에 부딪히자 슬그머니 동해로 투입지역을 변경했던 미국은 북한의 도발이 명백한 이번 사건을 계기로 서해상으로 항모를 진입시켰다. 한미 정상의 긴밀한 안보협력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미국의 속내엔 좀 더 복잡한 계산이 깔려 있다. 오바마 미 대통령은 리스본 나토정상회담을 앞두고 ‘뉴욕타임스’ 11월 18일자에 기고한 글을 통해 나토 회원국가들과 정책 조율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특히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공조를 당부했다. 그만큼 미국에 아프가니스탄은 특별하다.

    우라늄 농축시설 공개됐는데도 6자회담 타령

    미국은 2001년 9·11테러가 발생하자 알 카에다의 정확한 소재도 파악하지 못한 채 두 달 만에 서둘러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했다. 뉴욕의 무역센터가 무너진 뒤라 국제사회의 어느 누구도 미국의 행동에 왈가왈부할 처지는 아니었지만, 실은 인권외교를 앞세웠던 카터 대통령이 소련에 내준 중앙아시아의 거점을 되찾아온 것이었다.



    미군의 아프가니스탄 주둔은 중국을 자극했다. 중국에서 여섯 번째로 큰 지역이자, 석유매장량이 많고 핵실험을 실시하는 전략적 요충지인 신장 성과 국경을 맞댄 곳이 바로 아프가니스탄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미군이 아프가니스탄에 주둔하면서 한국과 일본, 대만 등 동북아시아 지역부터 인도와의 안보협력에 아프가니스탄을 더해 중앙아시아까지 중국을 휘감는 띠를 형성했다. 미국이 서해에 항모를 투입한 것은 대중(對中) 군사전략의 ‘화룡점정’에 해당한다. 북한의 서해상 도발이 일어나면 일어날수록 미국의 대중 군사억제전략은 수월해진다.

    중국은 북한의 도발이 반가울 리 없다. 무슨 일이 터질 때마다 국제사회로부터 북한에 영향력을 행사해달라는 부탁을 받지만, 북한의 핵개발이나 도발을 막지 못해 번번이 체면을 구겼다.

    그렇다고 중국이 북한의 도발을 명분으로 한 미국의 군사력 확대를 마냥 보고 있지만은 않았다. 대북 지원 연료파이프를 차단하거나 안전보장이사회 회부에 동참하는 등 일정 수준 북한을 자제시켜왔던 것. 중국은 또 아프가니스탄에 주둔한 미군에 맞서고자 중앙아시아 국가들과 러시아를 상하이로 불러들여 상하이협력기구(SCO)를 조직했다. 이 기구의 깃발 아래 중국과 러시아는 2005년부터 간헐적으로 서해 공해상에서 합동군사훈련을 실시했다. 바로 그곳에 미국 항모가 들어왔다는 것은 중국으로선 적지 않은 위협이다.

    중앙아시아에서 촉발된 미국과 중국의 줄다리기가 공교롭게 한반도 주변에서의 무력시위로 표출되는 셈이니 러시아와 중국, 일본이 한반도를 둘러싸고 한판 대결을 벌이던 19세기의 형국이 연상된다. 분명 북한은 중국에 불편한 존재다. 경제 개방, 핵개발 포기, 도발 중지 등 중국의 숱한 요구를 북한은 무시했다. 그럼에도 중국이 북한의 후계구도를 묵인해주고 식량과 에너지를 원조하는 것은 김정일-김정은 체제의 북한이 불확실한 북한이나 통일한국보다는 그나마 중국의 전통적 안보완충지대를 유지하기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중국·러시아 참여하는 북핵 억제 메커니즘 개발이 해법

    일본은 북한의 도발을 방위력 증강의 구실로 활용해왔다. 일본의 간 나오토 총리는 민주당 당수 시절이던 1999년, 미일 간 안보협력지침인 ‘신(新)가이드라인’의 국회 비준을 반대하는 최전방에 섰다. 그 와중에 북한의 공작선 두 척이 일본 해상에 나타났다. 당시 오부치 총리는 이 상황을 놓치지 않았다. 자위대를 출발시켰다면 쉽게 나포할 수 있었지만 해상경시청 선박을 출동시켜 빠른 속도로 도주 중인 공작선을 추격게 했다. 비록 전쟁에 지긴 했지만 한때 항모전단을 이끌고 미국과 태평양에서 일전을 치렀던 전사를 기억하는 일본 국민은 북한 공작선마저 놓치는 일본의 해상전력에 분노했다. 이를 빌미로 오부치 총리는 이지스함 묘코를 출동시켜 공해상에서 실사격을 가하게 했고, 신가이드라인의 국회 비준도 통과시켰다.

    또 일본은 북한의 미사일 실험을 명분으로 미사일 방어능력을 키우고,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실무전문가그룹에 가입한 한국과의 군사정보 교환도 추진 중이다. 북한의 도발로 미 7함대의 한반도 해역 이동이 잦아지면 일본으로선 나쁠 게 없다. 미군 지원을 이유로 일본군의 군사적 역할을 넓힐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북한은 일본의 과거사를 불식하는 작용을 한다. 6자회담의 회원국으로서 이 지역 안보 현안을 논의하는 장에 참석해 목소리를 내게 해주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북한을 발판으로 냉전시절 초강대국 지위를 되살리려 한다. 북한과의 관계가 냉각됐던 시절, 4자회담에서 제외된 아픈 기억이 있는 러시아는 대북관계 개선을 통해 한반도의 이해당사자로 자리매김했다. 그 때문에 천안함 사건의 자체조사 결과도 공개하지 않고 있다. 김정일과 푸틴의 돈독한 관계로 보아 김정은으로의 후계구도에도 별다른 목소리를 내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과의 합동군사훈련으로 미국의 군사력 확대를 견제해온 러시아도 이번 북한의 포격 도발이 탐탁지 않을 것은 분명하다. 민간인이 사망한 마당에 지역 안정을 위해 미국 항모가 온다는 데 딱히 반대할 명분도 없다. 그렇다고 북한에 영향력을 행사할 만한 카드가 있는 것도 아니다. 시베리아 가스를 운반할 파이프를 북한 지역에 통과시키기 위한 논의도 당분간 중단될 전망이다. 러시아의 천연자원, 북한의 노동력, 한국의 자본으로 한러 에너지협력을 일군다는 이명박 정부의 정책으로 부풀었던 러시아의 꿈이 연평도에 날아든 포탄으로 사라질 형편이다.

    복잡하게 돌아가는 체스판 속에서 한국 군인과 민간인을 공격해 사망케 한 북한의 도발을 여야의 대립정국이라는 틀로만 바라보기엔 사태가 너무 심각하다. 강력한 대응과 확전 방지라는 두 토끼를 모두 쫓아야 하는 우리에게 북한은 늘 해서는 안 될 일을 해놓고 그 일을 그만두는 대가로 무언가를 챙기려 한다. 그러다 일이 심각해지면 6자회담에 복귀해 위기를 넘긴다. 늘 봐온 행태다. 이 행태에 종지부를 찍으려면 중국과 러시아를 설득해야 한다. 당장 북한에 강력한 의지를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북한의 도발로 난감해할 중국과 러시아를 동참시켜 북한의 향후 도발을 억제할 수 있는 메커니즘을 개발하는 게 시급하다. 외교안보와 통일문제는 가슴이 아닌 머리로 푸는 것이 정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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