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64

2010.11.29

화장품 방문판매 지각변동 신호탄?

웅진, 고현정 내세운 공격 마케팅… 1, 2위 아모레퍼시픽·LG생활건강 긴장

  • 이설 기자 snow@donga.com

    입력2010-11-29 09: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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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장품 방문판매 지각변동 신호탄?
    “화장품 2강 체제를 깨고 톱3로 발돋움하겠다.”

    1999년 외환위기의 후폭풍으로 웅진코웨이(대표 홍준기·이하 웅진)가 코리아나를 매각했다. 향후 10년간 화장품 시장에 손대지 않는다는 조건이 따라붙었다. 10년 하고도 1년이 지난 2010년 8월 23일, 웅진은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다시금 화장품 시장에 출사표를 던졌다. 제품명은 ‘Re:NK(리엔케이)’, 모델은 국가대표 피부미인 고현정. 방문판매의 강자인 웅진의 시장 진출은 화장품 ‘방문판매 시장’에 긴장을 불어넣고 있다.

    “똑똑.” 30년 전 손수레를 끌거나 큰 가방을 이고 넉살 좋은 웃음으로 집에 들어서던 ‘아줌마’가 있었다. 아줌마가 영양크림과 샘플 등을 하나, 둘 가방에서 꺼내면 엄마의 눈빛은 행복으로 물들었다. 손등에 이것저것 발라보던 엄마는 때로는 지갑을 꺼내들었고, 때로는 수다로 만남을 마무리했다. 차츰 뜸해지더니 어느 결에 뚝 끊긴 아줌마의 발길. 통상 ‘아모레 아줌마’로 불리던 방문판매자는 시간이 지나면서 전문적 지식과 세련미로 무장한 뷰티 컨설턴트로 모습을 바꿨다.

    화장품 유통 춘추전국시대

    화장품 유통채널은 춘추전국시대다. 백화점, 화장품 전문점, 브랜드숍, 홈쇼핑, 인터넷 쇼핑몰, 약국, 피부과 등 거의 모든 채널이 풀가동 중이다. 이 가운데 방문판매는 화장품 유통의 고전. 시작은 1964년 아모레퍼시픽(이하 아모레)이 낸 ‘태평양 아줌마’ 모집 공고였다. 졸지에 가장이 된 전쟁미망인이 주로 손을 들었다.



    변변한 화장품이 없던 시절 방문판매 전용 브랜드인 ‘아모레’는 승승장구했다. 살가운 아줌마들이 바짝 다가앉아 크림을 내밀면, 주부들은 주저주저하면서 받아들었다. 하지만 방문판매는 1985년을 기점으로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화장품 할인매장이라는 라이벌의 등장 때문이었다. 다양한 구색과 정가보다 낮은 할인가 앞에서 방문판매는 맥을 못 췄다. 1983년부터 4년간 진행된 화장품 수입 개방 탓도 컸다.

    동네 화장품 할인매장은 주부들의 새로운 사랑방으로 떠올랐고, 방문판매는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그러던 1996년, 방문판매는 극약처방으로 기사회생했다. 일명 새로운 방문판매 형태인 ‘신방판’. 어물쩍 정(情)에 기대는 판매 형태를 넘어, 전문 교육과 판촉 지원을 받는 카운슬러 형태로 옷을 갈아입은 것이다. 1997년 외환위기로 취업 시장에 나온 주부들이 새로운 인력풀이었다.

    이후 시장은 해외여행에 힘입은 수입화장품 보편화와 미샤·더페이스샵 등 중저가 브랜드의 등장으로 다각화됐다. 자연히 방문판매도 다른 유통채널에 조금씩 자리를 내줬다. 하지만 2002년 LG생활건강(이하 LG)이 뛰어들면서 다시 커진 방문판매 시장은 꾸준히 매출을 올리고 있다. 그리고 2010년 현재, 방문판매 시장은 또 한 번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생활가전 방문판매 1인자인 웅진이 공격적으로 데뷔 신고를 한 것이다.

    “2003년 화장품연구소를 세워 7년간 기초연구를 했다. 피부 속 에너지발전소 역할을 하는 미토콘드리아를 대신할 특허물질 ‘에너셀’이 제품의 특징이다. 삼고초려 해서 모신 고현정 씨는 공인으로서 책임감을 느낀다며 먼저 제품 사용을 희망했고, 그 결과 긍정적 답변을 보내왔다.”

    11월 17일 신제품 출시로 정신없는 웅진 사무실을 찾았다. 코스메틱사업본부를 이끄는 조정현 상무는 업무로 다소 피곤한 기색이었지만 목소리에서는 초심자 특유의 열정이 묻어났다. 웅진그룹은 출판업으로 출발해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출판 업체인 웅진씽크빅, 생활가전 렌탈 업체인 웅진코웨이가 대표적이다. ‘신화’로 불릴 만큼 단기간에 몸집을 불린 웅진의 저력은 바로 방문판매. 취업길이 막힌 운동권 여성들이 책을 만들고 대졸 여성들이 그렇게 만든 전집을 들고 시작한 방문판매는, 정수기·비데·공기청정기로 이어지면서 명실공히 웅진의 DNA로 자리 잡았다.

    뷰티플래너 모집 고객 공략

    방문판매는 말 그대로 판매자가 집집이 방문해 물건을 파는 유통 형태를 뜻한다. 마음을 사기 어렵지만 일단 물꼬를 트면 그 다음은 일사천리다. 1대 1로 피부 컨설팅을 하고 취향에 맞는 제품을 자리에 앉아 받아볼 수 있어 편리하기로는 순위를 다툰다. 또 집에서 만나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가 싹튼 인간적 교감은 자연스레 제품에 대한 충성도로 이어진다. 웅진의 코스메틱사업본부를 이끄는 조 상무는 “방문판매의 핵심은 판매자의 노하우와 제품의 질이다. 필요할 수도, 아닐 수도 있는 제품을 고객이 필요하다고 느끼게끔 한 뒤, 우수한 품질로 지속적인 구매를 끌어내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웅진은 현재 ‘코디’라 부르는 판매사원 1만2000여 명을 두고 있다. 그들이 관리하는 회원은 450만 명에 이른다. 광고에서 보듯 이 ‘코디’들이 가족이 먹을 물과 들이마시는 공기, 그리고 매일같이 드나드는 화장실을 책임진다. 웅진 홍보팀 김현정 과장은 “웅진에서 왔다고 하면 고객들이 선뜻 문을 열어준다”라고 전했다.

    웅진이 리엔케이를 100% 방문판매 하겠다는 것은 당연한 선택이다. 현재 화장품 업계는 양강 구도. 업계 1, 2위인 아모레와 LG가 국내 화장품 시장의 50% 정도를 차지하고, 수백 개 업체가 나머지 시장을 두고 경쟁하는 꼴이다. 전체 시장의 20~30%를 차지하는 방문판매 시장도 마찬가지. 아모레가 70%에 이르는 시장점유율을 보이고, LG가 그 뒤를 쫓고 있다. 아모레와 LG의 컨설턴트는 각각 3만여 명과 1만3000여 명에 이른다.

    리엔케이는 방문판매사원을 ‘뷰티플래너’라 부른다. 웅진은 지금까지 약 900명의 뷰티플래너를 모집했고, 올 연말까지 1500명 규모로 확대할 예정이다. 또 직영점을 에스테틱을 받고 제품을 체험할 수 있는 카페형으로 꾸며 대고객 친밀도를 높인다는 구상이다. 웅진에 따르면 제품 출시 두 달 만에 달성한 매출은 올해 목표액(100억 원)의 40%. 고현정이라는 파워 모델과 특허물질인 ‘에너셀’, 그리고 공격적 마케팅이 맞물린 결과로 보인다.

    화장품 방문판매 지각변동 신호탄?

    웅진코웨이가 화장품 방문판매 시장에 진출하면서 기존 강자인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이 경계 태세에 나섰다.

    웅진의 요란한 신고식을 지켜보는 경쟁사들의 마음은 불편한 한편 불안하다. 겉으로는 태연하지만 새로운 라이벌에게 밀리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중. 화장품 방문판매(23%)는 백화점(27%) 다음으로 비중이 큰 유통채널. 아모레가 24.3%, LG가 30% 매출을 방문판매로 올리고 있다. 결코 허허실실 웃으며 나눠가질 수 없는 규모다. 최근까지 아모레가 2200여 명, LG가 1100여 명의 방문판매원을 추가 모집한 것도 이 때문이다. LG 홍보팀 성유진 과장은 “방문판매는 컨설턴트 인원이 절대적으로 중요한데, 그런 의미에서 웅진은 아직 시작이다. 후발주자가 뛰어들면 새로운 경쟁을 해야겠지만 크게 신경 쓰는 것은 아니다”라고 입장을 밝혔고, 아모레 측은 답변을 회피했다.

    아모레는 특히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지난 3월 웅진이 시장 진출을 선언한 뒤 아모레는 ‘소심한’ 대응에 나섰다. 대리점 150곳의 웅진 정수기 계약을 줄줄이 해지한 것. 지금도 아모레는 네거티브 프로모션을 진행하고 있다. 웅진의 한 관계자는 “웅진 관련 렌탈을 해지하면 15만 원을 주고, 리엔케이 측 뷰티플래너를 아모레로 스카우트하면 100만 원을 준다고 들었다. 이건 좀 쩨쩨하지 않나”라며 불만을 털어놓았다.

    “정수기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아모레 카운슬러’(아모레), ‘오휘 컨설턴트’(LG), 그리고 ‘뷰티플래너’(웅진) 간 경쟁은 어떤 그림으로 마무리될까. 이에 대해서는 시각이 엇갈린다. 우선 긍정적인 전망. 한 업계 관계자는 “화장품과 정수기는 질적으로 다르다. 웅진의 기존 방문판매 노하우로는 극복이 힘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방문판매 고객의 특성은 충성도다. 화장품이 쉽게 브랜드를 바꾸는 제품군이라고 해도, 판매자와 밀착한 방문판매는 사정이 다르다. 아모레는 40여 년, LG는 10년에 가까운 방문판매 히스토리를 갖고 있다. 이를 깨뜨리는 데는 상당한 공력이 필요할 것이다.

    또 정수기 등 가전제품과 화장품은 다르다. 화장품은 미용은 물론 개개인의 피부 상태, 취향과 관련 있는 복합적 성격의 제품이다. 그리고 피부에 대한 컨설팅과 서비스가 특히 중요하다. 화장품 시장에 뛰어들었으나 지지부진한 청호나 교원 L·C 사례에서 보듯, 기존 판매 노하우로는 역부족일 것이다.”

    이에 웅진은 다소 시간이 걸리겠지만 문제없다고 맞받아친다. 조정현 상무는 “불모지인 중국에서도 맨땅에서 출발해 성공했다. 그에 비하면 지금 상황은 양호하다. 경쟁사들의 방해도 결국 웅진의 저력을 보여주는 것 아닌가”라고 방문 했다. 다음은 이어지는 그의 설명.

    “코리아나를 매각한 뒤 10년간 중국에서 사업을 벌였다. 제품도, 브랜드 파워도 없었지만 영업사원에게 소규모 가게를 차려주는 전략으로 결국 자리를 잡았다. 지금은 훨씬 다행스러운 상황이다. 기존 ‘코디’ 조직도 있고, 중국에서 사업을 하면서 연구개발한 화장품 기술도 있다. ‘코디’가 직접 제품을 판매하는 것은 아니지만 가교 노릇은 할 수 있다. 친숙한 코디가 제품을 홍보하면 마음의 문이 수월하게 열리지 않겠는가. 제품 출시 후 웅진 ‘코디’들에게 화장품 샘플을 나눠준 뒤 체험하게 한 것도 이 때문이다. 제품에 대해 알아야 설명할 수 있으니까. 이 밖에 기존 생활가전 제품과 화장품 간 상호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다양한 ‘윈윈’ 전략도 구상해뒀다.”

    리엔케이가 시장에 나온 지 두 달. 화장품에 관심 있는 여성들 사이에서 ‘고현정이 광고하는 브랜드’로 알려지고 있지만, 품질 검증을 거치기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웅진의 등장으로 방문판매 시장의 열기는 당분간 ‘스팀 모드’를 유지할 전망. 이와 관련해 대한화장품협회 안정림 부회장은 “품질과 서비스 강화로 이어지는 건설적인 경쟁은 좋다. 하지만 막 자리를 잡기 시작한 글로벌 시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줘서는 안 될 것”이라고 충고했다.

    화장품 방문판매 지각변동 신호탄?

    1 아모레퍼시픽 ‘설화수 진설라인’. 2 LG생활건강 ‘후 라인’. 3 웅진 ‘리앤케이 라인’.

    요즘 화장품 업계 키워드

    내수에서 수출산업으로 ‘글로벌’ 시장 공략


    명동 거리는 한 집 건너 화장품 브랜드숍이다. 샘플을 나눠주며 소매를 잡아끄는 직원들 등쌀에 길을 지나다니기 힘들 정도다. 치열한 거리 프로모션에서 보듯, 국내 화장품 시장은 과호화 상태다. 우후죽순 들어선 중저가 브랜드 상당수는 고전하고 있고, 신고 즉시 폐업하는 소규모 업체도 수두룩하다.

    그럼에도 화장품 시장의 잠재력은 무궁무진하다. 모든 유통채널에 강자들이 자리를 굳힌 상황이지만, 화장품이라는 제품 특성상 성장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브랜드를 갈아타는 경우가 잦아 진입장벽이 낮고 투자비용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점도 강점. 대한화장품협회 안정림 부회장은 “가계가 힘들어도 화장은 한다. 웅진을 비롯한 새 사업자가 속속 시장에 들어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실제 국내 화장품 시장은 2004년 이후 성장세에 있으며, 2008년부터는 성장률이 연간 10%에 이르는 고공행진 중이다.

    신생 기업이 내수 시장 틈새를 노린다면, 중견 기업은 해외로 눈을 돌린다. 현재 한국 화장품 업계의 세계 시장 순위는 13위.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해서는 인구 5000만 명의 내수 시장을 넘어서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 때문에 아모레, LG 등 대기업은 물론 더페이스샵, 미샤 등 중소기업도 해외 시장 진출에 총력을 기울인다.

    아모레는 2002년 라네즈, 2005년 마몽드로 중국 시장에 진출한 뒤 연평균 25.7%의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2006~2009년 기준). 중국 시장에서 생활용품으로 안착한 LG도 2011년부터 본격적으로 해외 시장에 진출해, 브랜드 인지도를 높인다는 방침이다.

    주요 수출 시장은 중국·일본과 동남아시아. 대한화장품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중국(28.2%), 일본(17.1%), 홍콩(10.6%), 미국(9.7%), 대만(8.1%) 순으로 수출량이 많았다. 6위부터 10위 사이에는 시장 자체가 협소한 베트남, 태국, 말레이시아 등이 포함됐다. 최근 5년간 한국 화장품의 선전을 이끈 일등 공신은 한류. 한류로 형성된 ‘미의 국가’ 이미지가 우수한 제품과 만나 막강한 코리아 브랜드 파워를 탄생했다. 대한화장품협회 김진경 과장은 “한국의 대중문화가 널리 알려지면서 화장품의 브랜드 이미지도 덩달아 좋아졌다”라고 평가했고, 안정림 부회장은 “수출로 시장을 넓히면 세계 13위에서 10위로 발돋움하는 것은 시간 문제”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최근 한국 브랜드의 선전에 대한 반격 움직임도 감지된다. 올해 4월 중국은 규제를 바꿔 화장품 성분검사 절차를 강화했고, 대만은 비비크림에 유해물질이 있다는 보도를 터뜨려 여론몰이를 했다. 지식재산권에 대한 법적 근거가 마련되지 않아 기승하는 ‘짝퉁’도 문제. 김진경 과장에 따르면 중국 등지에서 한국 브랜드 ‘소망’을 흉내 낸 ‘소왕’과 ‘라끄베르’의 이름과 용기를 그대로 본뜬 제품 등이 버젓이 판매되고 있다.

    화장품이 하나의 산업군으로 인정받은 것은 최근의 일이다. 외면에 마음 쓰는 것을 천박하다고 여긴 조선시대 선입견이 이어져, 오랜 기간 경쟁력이 과소평가됐다. 화장품은 단순한 화학제품을 넘어 아름다움과 건강, 브랜드에 깃든 철학과 디자인의 느낌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복합적인 제품이다. 젊은 남성은 물론 미중년까지 화장품을 바르는 오늘에야 화장품 산업은 패션에 필적할 만한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안정림 부회장은 “현재 화장품 업계의 화두는 글로벌이다. 내수 시장에서 출혈경쟁을 하기보다 중국·대만의 견제를 잘 이겨내 한국 화장품의 새 장을 열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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