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85

2017.04.26

김승용의 俗 담은 우리말

같은 처지 아니어도 기억해야 할 아픔

‘과부 설움은 홀아비가 안다’

  • ‘우리말 절대지식’ 저자 aristopica@gmail.com

    입력2017-04-25 14: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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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월 14일은 ‘14데이’입니다(저는 이것을 현대에 만들어진 세시풍속이자 절기라고 봅니다). 그중 4월 14일은 ‘블랙데이’입니다. 미신에서 죽음과 어둠을 뜻하는 숫자 4가 겹치기 때문입니다. 2월 14일 밸런타인데이에 초콜릿 고백을 못 받은 남자와, 3월 14일 화이트데이에 사탕 고백을 못 받은 여자가 만나 서로 외로움을 달래주는 날이죠. 이날 그들은 옷과 신발, 액세서리까지 검정색으로 맞추고 짜장면을 먹고 블랙커피를 마십니다. 서로를 위로하다 외로운 사람끼리 이어지기도 하고요.

    요즘 이런 말이 있습니다. ‘전남친 결혼식에 간다 하면 미용실 언니가 영혼을 불태운다.’ 말뿐 아니라 실제 경험담도 심심찮게 들립니다. 어떤 남자는 전여친 결혼식에 간다 하니 사장이 외제차를 빌려주고 비서까지 딸려보냈다고 합니다. 비슷한 경험과 생각으로 이심전심하는 것이 사람의 마음일 것입니다.

    예로부터 외롭고 쓸쓸한 사람들을 환과고독(鰥寡孤獨) 네 가지로 나눕니다. 환(鰥)은 나이 들어 아내가 없는 홀아비, 과(寡)는 나이 들어 남편이 없는 과부, 고(孤)는 일찍이 부모를 여읜 고아, 독(獨)은 자식이 없어 쓸쓸한 이를 각각 뜻합니다. ‘과부 설움은 홀아비가 안다’ ‘과부 설움은 서방 잡아먹은 년이 안다’는 말이 있습니다. 곁이 허전하고 다른 사람 손길이 그리운, 외롭고 쓸쓸한 과부와 홀아비는 비록 성별과 처지는 다르지만 서로 짐작하고도 남을 것입니다.

    앞일을 알 수 없는 게 인생살이입니다. 서로 외로움을 달래던 과부와 홀아비가 단란한 가정을 꾸릴 수 있고, 외로운 처지에 있는 사람을 무시하거나 손가락질하던 이가 같은 처지에 놓일 수도 있습니다. 동병상련(同病相憐)이라 해 같은 병,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끼리 서로를 보듬고 가여워합니다. 하지만 꼭 동병이어야 상련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언제고 외롭고 쓸쓸한 처지가 될 수 있으니까요.

    4월 16일은 세월호 참사 3주기였습니다. 약 1000일 하고도 다시 100여 일의 고통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아직 그 생명들이 침몰한 배 안에 갇혀 있는데도 보상금 얘기부터 떠들어대던 일부 언론과, 청와대는 컨트롤 타워가 아니라고 발뺌하던 정부와, 고작 몇십 미터 깊이에 있는 배를 3년간 방치했던 이들과, 내 가족이 왜 그렇게 죽어야만 했는지 진실을 밝혀달라며 단식을 이어가던 유가족 앞에서 햄버거와 치킨을 먹으며 ‘폭식투쟁’을 일삼은 일부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내가 만약 저런 상황이었다면’이라는 슬픔의 상련(相憐)이 없었습니다. 산목숨을 실은 배가 가라앉는 장면에 온 국민이 발을 구르던 안타까움과 탄식이, 그들에게는 어떤 ‘그림’을 위한 풍경이었던 걸까요.우리는 매년 4월 16일을 또 다른 블랙데이로 기억할 것입니다. 아픔과 반성의 날로 기억할 것입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김승용은 국어학과 고전문학을 즐기며, 특히 전통문화 탐구와 그 가치의 현대적 재발견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 속담이 우리 언어문화 속에서 더욱 살찌고 자랄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하고자 10년간 자료 수집과 집필 끝에 2016년 ‘우리말 절대지식’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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