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48

2010.08.02

교육정책 변해도 ‘콩고물’은 있더라!

사교육계 20년 A씨의 학원 변천사 … 학부모 불안 노린 사교육 틈새 시장

  • 이설 기자 snow@donga.com

    입력2010-08-02 13: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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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육정책 변해도 ‘콩고물’은 있더라!

    교육정책이 발표될 때마다 학원가는 새로운 마케팅을 고민한다.

    광복 이후 60년간 한국 교육정책은 변덕이 호떡 뒤집듯 했다. 대입제도는 16번, 고입제도는 9번 바뀌었다. 세부 정책이 바뀐 횟수는 셀 수 없을 정도다. 그때마다 사교육 시장도 덩달아 춤을 췄다. 사교육 시장이 과열되기 시작한 15년 전부터는 정부와 사교육 업계의 전쟁이 시작됐다. 결과는 늘 사교육 시장의 승. 학부모의 불안 심리와 정책의 허점을 찌르는 마케팅으로 정부의 약을 올렸다. 서울 지역에서 15~20년 경력 학원장 4명의 이야기를 토대로 사교육 ‘큰손’ A씨의 업종 변경기를 재구성했다.

    1990~2000년 : 보습학원 전성시대

    “일도, 벌이도 그럭저럭 할 만해. 와서 같이 일하자.”

    S대 정치학과 85학번. 졸업을 해도 일할 곳이 마땅치 않았다. 1992년 친구 손에 이끌려 시작한 강사 생활. 가까운 운동권 친구 상당수가 이미 학원계에 진출했다. 서울 양천구 목동에 자리한 ‘대일속셈학원’. 간판은 속셈학원이지만 국어, 영어, 수학 등 주요 과목도 가르쳤다. 명문대 강사진이 포진해 있다는 소문에 학원은 항상 새 학생들로 붐볐다.

    눈속임을 해가며 기타 과목을 가르치는 이유는 법체계 때문. 당시 학원은 주산학원이 전신인 속셈학원과 주요 과목이 가능한 입시학원으로 나누어 평수 제한을 두었다. 입시학원 면적이 속셈학원보다 배 이상 넓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일부 대형 입시학원을 제외한 대부분이 속셈학원이었다. 더구나 학원 신규등록 자체가 동결된 상태였다. 학원은 치솟는데 운영권이 없어 설립자 등록증이 1000만~2000만 원에 거래됐다. 학원 알선 브로커들도 활개를 쳤다.



    “교과서에 도형이 나오는데, 그 부분이 헷갈려요.”

    준법정신을 챙길 때가 아니었다. 학생과 학부모는 모든 과목의 보충을 원하는데 덧셈, 뺄셈만 가르치고 교과서에 나오는 방정식이나 도형도 가르치지 말라니. 과목 단속과 시간 단속 모두 구별로 분위기가 다른데, 목동은 분위기가 엄한 편이었다. 다른 과목을 강의하다 걸리면 바로 쇠고랑을 찼다. 속셈학원 강사를 잡은 경찰은 특진을 한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이리저리 눈을 피해 강의를 하던 나도 결국 범법자 신세가 됐다.

    “안 되겠다. 서울을 떠나야겠다.”

    결심을 밝히자 친구의 눈이 동그래졌다. 1994년, 강원도 춘천에서 일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범법자 낙인이 찍힌 마당에 더 이상 강사 생활을 할 수는 없었다. 서울 33평(109m2)과 달리 일부 지방은 23평(76m2)이라도 입시학원을 낼 수 있었다. 많은 강사가 작은 평수로 전 과목을 가르칠 수 있는 지방으로 터전을 옮겼다. 서울에서 왔다고 하면 말발도 더 잘 먹혔다.

    답답했다. 먹고살 만해지면서 높아진 중산층의 교육적 열망을 정부는 왜 읽지 못하는지…. 부자 부모들은 비밀과외를 시키면 되지만, 중산층은 과외는커녕 멀리 있는 입시학원에 보내는 것도 부담스러운 상황. 결국 불만이 극에 달한 강사들의 끈질긴 건의로 1995년 보습학원의 인가법이 바뀌었다. 보습학원은 23평 이상, 속셈학원은 여전히 33평 이상이다 보니 자연히 속셈학원은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며 사라졌다. 이후 사교육 시장은 폭발적으로 커졌다.

    같은 해, 학력고사 시대가 끝나고 수학능력시험(수능시험) 시대가 열렸다. 암기 위주, 입시 위주 교육에서 탈피하자는 취지로 학력고사와 문제 자체가 많이 달랐다. 정부는 당분간 학력고사와 수능 반영 여부를 대학 자율에 맡기기로 했다. 첫해에는 시험을 두 번 치르고, 시험 적응을 위해 예상시험을 6번 실시했다.

    “선생님, 수능 점수가 엉망이에요.”

    시험 스타일이 완전히 다르다 보니 등수도 뒤죽박죽이 됐다. 꼴찌가 두각을 보이는가 하면, 유독 수능시험에만 젬병인 학력고사형 우등생도 있었다. 학교에서 일찌감치 서울대 감으로 꼽혔던 지석이(가명)가 대표적인 예. 결국 지석이는 재수를 했다. 그런데 아무리 해도 ‘언어’ 점수가 높아지지 않았다. 스스로 읽고 생각하는 훈련이 된 아이들이 수능에 강했다. 학원들마다 언어과목을 크게 강화했다. 발 빠른 학원에서는 토론하고 풀이 과정을 설명하는 수업으로 학부모들의 환심을 샀다.

    1996년 춘천에서 다시 서울로 돌아와 학원을 열었다. 이번에는 초·중·고등부로 전문화된 학원이었다. 학원 경영은 순조로웠다. 금융위기로 고학력 강사를 쉽게 끌어올 수 있었고, 수능 체제가 자리를 잡으면서 대부분의 학생이 학원을 다녔다. 특히 1999년 수능 난이도가 낮아지자 하위권 학생도 대거 학원으로 몰려들었다. 강사에게는 족집게 과외 요청이 쏟아졌다. 시험이 쉬워 변별력이 없어지자 경제력 있는 학부모들은 과목마다 전문 과외교사를 붙이는 것이 유행처럼 번졌다. 한 달 과외비가 700만~1000만 원을 훌쩍 넘는 경우도 많았다. 이들이 사교육 시장을 폭발적으로 늘려놓은 ‘이해찬 1세대’다.

    “좀 더 일찍 외고 중심으로 학원을 개편할 걸….”

    바야흐로 외국어고등학교(외고) 시대가 열렸다. 1984년 각종 학교로 시작, 1992년 특수목적고(특목고)에 편입된 외고가 완전히 자리를 잡았다. 이 학교의 졸업생 상당수가 입시 홈런을 치자, 전국의 우등생들이 ‘외고 합격’이 새겨진 머리띠를 둘러맸다. 2001년 특목고 지정 권한이 중앙부처에서 시도교육감으로 이양된 뒤 외고 수가 대폭 늘자, 특목고 시장도 급성장했다.

    학원도 변신을 시도했다. 외고 필기고사에 대비해 특급 강사진을 꾸리고 김포외고, 명지외고, 한영외고 등 학교별 입시를 공략한 전문반을 개설했다. ‘하이스트’ ‘페르마’ ‘토피아’ 등이 당시 외고 붐을 타고 성장한 학원들이다. 스타 학원에 맞서기 힘든 동네 보습학원들은 한 과목만 특화한 전문 학원으로 돌아서기 시작했다. 인터넷 강의 붐을 타고 ‘메가스터디’ 같은 히트 상품도 등장했다.

    2004년부터 외고 폐지론이 불거지기 시작했지만 학원가는 여전히 호황이다. 고등학생도 풀기 어려운 외고 지필고사. 머리가 좋고, 중학교 3년 꼬박 수험생 모드로 보내야 합격 티켓을 손에 쥘 수 있었다. 하지만 영원한 강자는 없다. 과목 수를 줄여가던 지필고사가 2007년 완전히 폐지되면서 외고 시장에도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외고 합격을 좌우하던 영어 청취시험마저 사라지고 전국에서 광역 단위로 선발 규정이 바뀌더니 지난해에는 급기야 ‘자기주도 학습 전형’이 도입됐다. 외부 경시대회 수상 경력과 영어 인증시험도 평가에서 제외하겠단다. 풋, 겉으로 울면서 속으로는 웃는다. ‘그런다고 사교육이 사라질까?’

    2000~2010년 : 인터넷 강의 붐 속 기업형 학원 등장

    예상대로다. 2010년 상반기, 부쩍 중등부 학부모의 발길이 잦아졌다. 내신은 영어만 보고 서류와 면접 전형을 실시하겠다는데, 도대체 고입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느냐는 호소. 그런 학부모들에게 ‘스펙 관리 프로그램’을 권한다. 목표에 따른 경력 관리, 독서 지도, 그리고 500자 이내로 자기소개서 작성법을 묶음 제공하는 컨설팅이다. 2004년 논술 전형 반영률이 높아질 때 만든 논술학원과, 2007년 대학 입학사정관제에 대비해 만든 리더십 학원이 기사회생하는 순간. 이래서 사업도 길게 하고 볼 일이다.

    영어는 꾸준히 수익을 내는 효자다. 2000년 중반 대학 특례입학 문이 넓어지고 영어에 한 맺힌 세대가 부모가 되면서, 영어는 성적과 관계없이 갖춰야 할 기본기라는 인식이 형성됐다. 2008년 이경숙 대통령직인수위원장의 ‘오린지’ 발언 이후 영어학원을 하나 더 냈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영어’ ‘글로벌’에 대한 외침에 앞으로 토털 영어에 대한 수요가 늘겠다 싶었다. 부산국제중학교, 청심국제중학교 등 국제중 시장도 뜨겁다. 교육청 영재반 대비 수업과 영어 특별전형을 위한 영주권 브로커들이 큰 재미를 봤다.

    속셈학원, 보습학원, 외고 전문학원, 온라인 학원, 컨설팅 학원…. 2010년 7월, 학원가는 또 한 번 패러다임 전환을 맞고 있다. 올해 처음 시행되는 고입 ‘자기주도 학습 전형’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아직은 못 미더워하는 학부모가 많지만, 제도가 정착하면 학원가는 새로운 먹을거리를 찾아야 한다. “EBS만 보면 대학 간다”는 말로 사교육 시장을 잠재우지는 못한다. 학원들은 EBS 강의의 ‘엑기스’만 뽑은 교재를 만들고 방송을 시청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춘 뒤, 진학 정보까지 제공한다.

    학교를 죽이고 학원을 살리자는 얘기가 아니다. 나도 보충수업이 필요한 아이들만 학원을 찾는 날이 오면 좋겠다. 그럼에도 크게 불안하지 않다. 학부모들은 어떤 상황에서든 학원을 찾는다는 걸 알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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