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44

2010.07.05

앗, 정자가 바글바글 움직였다

현장체험▶ 임신을 위한 남성의 몸만들기 … 쑥스러워 말고 병원 찾아야 난임 해결

  •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입력2010-07-05 11: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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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앗, 정자가 바글바글 움직였다

    축구선수들이 본능적으로 음낭을 손으로 가리는 이유도 수정능력을 지키기 위함이다.

    결혼 4년차 주부 최혜숙(가명·34) 씨는 아이가 생기지 않아 스트레스가 심했다. 시어머니는 노골적으로 “몰래 피임하는 거 아니냐” “숨기는 병이 있느냐”며 채근했다. 친정어머니는 죄인이라도 된 듯 비싼 보약을 지어주면서도 고개를 들지 못했다. 최씨는 병원에서 나팔관, 배란, 자궁근종, 자궁내막증 등 모든 검사를 받았지만 결과는 정상이었다. 최씨는 당장 임신이 된다 해도 노산이라 마음이 조급했다. 고민 끝에 남편 김경남(가명·37) 씨에게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아보라고 했지만 남편은 “나를 뭘로 보느냐”며 펄쩍 뛰었다. 몇 차례 설득 끝에 남편은 마지못해 병원에 갔고 정액검사 뒤 정계정맥류 질환이 있음이 드러났다.

    김씨의 태도는 보통 한국 남성의 모습이다. 무자(無子)는 예부터 칠거지악의 하나로 남편은 아내를 일방적으로 내쫓을 수 있었다. 아이를 갖지 못하는 여성은 ‘돌계집(석녀)’으로 비난을 받았다. 의학기술이 발달하고 난임의 원인 중 3분의 1 정도가 남성에게 있음이 밝혀졌는데도 여전히 남편들은 아내 탓만 한다. 병원을 찾는 남편이 늘고 있지만, 아내가 온갖 복잡하고 비싼 검사를 한 뒤에야 어쩔 수 없어서 찾아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서울대병원 산부인과 김정구 교수는 “남성은 간단한 검사로 난임 원인을 찾을 수 있지만 병원에 잘 오지 않는다. 아내의 보호자로 병원에 오게 한 다음, 남성의 역할을 설명해주고 검사를 받게 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한다.

    자연 임신을 원한다면 남성도 자신의 몸 상태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병원을 찾아 정액검사, 음낭 초음파검사, 성병검사 등을 받을 필요가 있다. 남성 난임의 제1 원인인 정계정맥류도 수술을 받으면 고환이 제 기능을 찾지만 시기를 놓치면 수술해도 기능이 회복되기 어렵다. 성병에 감염된 줄 모르는 상태에서 소중한 아이를 갖게 되는 불상사가 생길 수도 있다. 최근에는 예비 남편들이 결혼 준비의 하나로 이런 검사를 받기도 하지만 여전히 임신 관련 검사를 주저하는 남성이 많다.

    정액검사, 성병검사 등 정확한 검사 필요

    이런 남성들을 대신해 기자가 직접 이윤수비뇨기과를 찾아가 정액검사, 음낭 초음파검사 등을 받았다. 정액검사는 DVD방과 비슷한 시설에서 이뤄진다. 조명이 어두워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 검사라는 생각을 잊고 성인영상물에 집중하다 보면 어렵지 않게 사정할 수 있다. 평소 자위행위에 익숙한 남성 가운데도 부담감 때문에 사정을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는 집에서 정액을 채취해 가져오는 방법이 있다.



    정액이 체외로 나오는 과정에는 변수가 많아 오류를 줄이기 위해 3번 정도 정액검사를 한다. 3일가량의 금욕기간을 둔 뒤 검사를 받아야 정확성을 높일 수 있다. 콘돔 등에 사정했다 옮기면 안 되고, 정액이 유실되지 않게 입구가 넓은 용기를 이용해야 한다. 사정한 정액은 1시간 내에 액화되며 이때 현미경을 통해 정자의 수, 운동성, 형태를 검사한다. 정상적인 정액은 2ml 이상, 유백색, 밤꽃 냄새, 약 3cm 점도, pH 7.2~8.0이다.

    앗, 정자가 바글바글 움직였다

    정액검사(왼쪽)와 음낭초음파검사는 여성들이 받는 검사에 비해 복잡하지 않다.

    이윤수비뇨기과 이윤수 원장은 “정자들이 명동거리의 사람들처럼 바글거리며 움직여야 정상이다. 드문드문 있거나 움직임이 둔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남성도 35세가 넘으면 정자의 질이 떨어져 고령 예비아빠들은 이 검사를 꼭 받아야 한다.

    음낭 초음파검사를 통해서는 고환 내부의 이상이나 손상을 발견할 수 있다. 정계정맥류, 음낭수종, 고환암 등이 그것이다. 이 원장이 초음파 기계로 검사를 시작하자 기자 역시 저절로 긴장이 됐다. 고환에 이상이 있으면 어쩌나, 정력에 문제가 생겼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으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다행히 검사 결과는 정상. 비뇨기과 전문의들은 “혹시 이상이 있을까봐 병원에 오는 것을 꺼려서는 안 된다. 진단 결과 정상으로 나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고, 이상이 있으면 빨리 치료할 수 있어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남성불임 원인의 1위인 정계정맥류는 수술로 치료할 수 있다. 정계정맥류는 고환에서 나오는 정맥이 늘어나 지렁이처럼 얽힌 상태. 정맥이 늘어나면 혈액의 유입과 배출이 어려워져 고환의 온도가 올라 정자가 제대로 생성되지 않는다. 왼쪽 고환의 정맥이 길고 직경이 작아서 오른쪽보다 발병률이 높다. 음낭 초음파검사로 발견할 수 있지만 병원에 오기 전 음낭 자가검진을 해보는 것도 좋다. 음낭이 축 처져 보이거나 혈관이 지렁이처럼 뭉쳐 있거나 좌우 크기가 20% 이상 차이 나면 병원을 찾아야 한다. 평소 자신의 성기를 세심히 관찰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혼전 성관계가 늘어난 만큼 성병검사도 빼놓을 수 없다. 강남차병원 비뇨기과 박정원 교수는 “최근 젊은이들 사이에서 비임균성 요도염이 증가하고 있다. 성병은 생식기의 염증을 일으켜 정자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는 만큼 낯선 사람과의 성관계는 되도록 피하고, 성관계 때는 반드시 콘돔을 사용해야 한다”고 권한다.

    성병은 증상이 없는 경우가 많아 검사를 받지 않으면 알기 어렵기에 반드시 검사를 받아야 한다. 요도염과 전립선염은 정자에 영향을 줘 운동능력을 떨어뜨리고, 고환염은 영구 불임을 일으킬 수 있다. 하부요로감염 등은 성관계 때 여성 생식기 감염을 일으켜 자궁내막염, 자궁내막 유착, 난관염, 골반 유착 등 여성불임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특히 매독, 임질, 클라미디아 등은 태아의 건강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그러므로 태아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성병검사를 받아야 한다.

    고령 예비 아빠들 고환 건강 챙겨야

    치료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예방이다. 건강한 생활습관이 임신 능력을 좌우한다. 검사 결과가 나쁘더라도 낙심할 필요 없고, 좋다고 안심해서도 안 된다. 특히 고령의 예비 아빠라면 건강에 좋은 생활습관을 철저히 지켜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고환 건강이다. 고환은 정자를 만드는 공장으로 시원하게 유지해야 한다. 고환이 음낭 속에 있지만 몸 밖으로 나와 있는 이유도 체온보다 1~2℃ 낮게 유지해야 정자가 활발하게 생성되기 때문이다. 음낭에 땀이 자주 차는 사람은 더 신경을 써야 한다. 음낭의 자유로운 움직임을 방해하는 꽉 끼는 속옷, 특히 스키니진 같은 옷을 피해야 한다. 그렇다고 고환을 서늘하게 한다고 냉욕을 고집하는 것은 좋지 않다. 찬물과 따뜻한 물에 번갈아 들어가고 손으로 음낭을 마사지해주는 것이 좋다.

    고환 건강을 위해서는 피해야 할 일도 많다. 장시간 운전을 하거나 오래 앉아 있는 일은 삼간다. 자전거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었지만 자전거를 탈 때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좁은 안장이 성기로 향하는 신경과 혈관이 모인 회음부를 눌러 발기부전 등이 올 수 있고, 음낭이 압박을 받아 고환의 온도가 올라간다. 따라서 자전거 타는 틈틈이 엉덩이를 들어 고환의 부담을 줄여줘야 한다. 또 숙취 해소를 위해 사우나를 찾는 남성이 많은데 고열에 노출되면 고환 기능이 떨어진다.

    임신 석 달 전 금연·금주해야 효과

    예비 엄마뿐 아니라 아빠도 금연과 금주를 지켜야 한다. 정자는 환경오염 물질의 영향을 많이 받는데, 담배 연기 속 유해 물질도 예외가 아니다. 정자세포에 유전자 돌연변이나 염색체 이상이 올 수 있다. 아내와 태아에게도 유해 물질을 전달한다. 꼬리가 없거나 목과 중간 부위 결함 등 정자의 모양에 문제가 있을 때 비타민C 같은 항산화제를 매일 복용하면 도움이 된다. 금주도 마찬가지다. 알코올은 정자 수를 줄이고 정자의 운동성도 떨어뜨린다. 금연, 금주를 성관계 며칠 전부터 시작해서는 효과가 없다. 정자가 만들어지는 100일이란 시간을 고려할 때 적어도 임신 석 달 전부터는 금연과 금주를 해야 한다.

    스트레스도 흡연, 음주만큼 해롭다. 스트레스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예비 아빠가 많지만 정신적 스트레스가 정자의 질을 떨어뜨린다는 연구 결과는 이미 여러 차례 입증됐다. 스트레스 호르몬이 남성호르몬을 줄여 정액의 양, 농도, 운동성 등에 영향을 준다. 스트레스를 푸는 데는 운동이 가장 좋지만 격렬한 운동은 활성산소의 과다 생성을 유발해 정자에 도리어 악영향을 줄 수 있다. 게다가 격렬한 운동을 할 때는 고환 파열도 주의해야 한다. 축구 경기 때 프리킥을 수비하는 수비수들이 음낭에 손을 가져가는 것도 이 때문이다. 고환보호대를 착용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이윤수 원장은 “여성들은 35세가 넘으면 임신이 어렵다는 걸 알고 스스로 조심하지만, 남성들은 자신들도 35세가 넘으면 정자의 질이 떨어진다는 사실을 잘 모른다”고 말한다. 나이가 들수록 정자의 염색체 이상 빈도, 유산율은 증가하고 임신율은 떨어진다. 고령의 남성 정자에서 염색체 이상의 빈도를 감소시킬 수 있는 방법은 아직 없다. 정액 상태를 최적화할 수 있도록 몸을 만드는 방법밖에 없다. 특히 운동, 식단 개선을 통해 뱃살부터 줄여야 한다. 박정원 교수는 “고도비만 남성은 정자 생성에 관여하는 호르몬의 불균형으로 정자의 질이 떨어져 불임 확률이 높다”고 주의를 준다. 비만 남성들은 생식선 자극 호르몬인 황체형성호르몬과 여포자극호르몬의 수치가 정상보다 낮게 나타난다. 비만은 성적 충동도 떨어뜨리고 발기부전 위험을 높여 성관계 자체를 어렵게 만들 수 있다.

    미래학자들은 인류가 멸망한다면 그 원인은 남성의 정자 수 감소일 것이라 했다. 예비 아빠들은 자연 임신이 줄어드는 원인의 3분의 1이 남성에게 있음을 빨리 깨닫고 아내와 함께 노력해야 한다. 이 원장은 “아내를 아끼고 사랑하라. 사랑하며 관계를 맺을 때 임신 확률도 높아진다. 남성들이 본인의 신체 문제점을 정확히 알고 고치려 노력하는 것은 상대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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