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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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우리 동네에는 아무것도 짓지 마!

혐오시설 아닌 관공서  ·  의료시설도 주민 반대 부딪혀…‘님비’ 넘어 ‘바나나’ 현상

  •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입력2017-02-27 15:0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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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주지 안에 혐오시설이 들어서는 것을 반대하는 님비(NIMBY·Not In My Backyard) 현상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최근엔 관공서나 편의시설까지 반대하는 현상이 늘고 있다.

    서울 금천구에선 주민들이 소방서 건립에 반대하고 있다. 상가 밀집지역인 데다 근처에 소방서가 없어 화재가 나면 큰 피해가 발생할 수 있는데도 주민들은 지역경제 발전에 악영향을 미친다며 반대 의견을 내고 있다. 경기 의왕시 내손동에서는 노인들이 노인복지시설(요양원) 건립을 반대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문화재보호구역 앞으로 구급차가 지나다니는 게 부적절하다는 것.

    공공기관이나 편의시설 건립은 기존 주민에게 해를 끼치기보다 이득이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일부 주민은 아예 새로운 시설이 들어오는 것 자체를 꺼린다. 한국 사회에 님비를 넘어 넓은 의미의 바나나(BANANA·Build Absolutely Nothing Anywhere Near Anybody)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필요한 시설이라도 우리 지역은 절대 안 돼

    원래 바나나 현상은 일부 주민이 본인이 사는 지역에 혐오시설을 절대 짓지 못하게 하는 지역 이기주의 현상을 일컫는 말이다. 님비와 다른 점은 주민이 집값 하락 등 경제적 손실을 염려해 건립을 반대하는 시설이 사실은 그 지역에 꼭 필요한 시설이라는 것이다. 국내의 바나나 현상은 심각한 편이다. 혐오시설이 아닌, 소방서 등 관공서나 요양원 같은 편의시설도 반대하는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금천구 한복판인 독산2동 말미고개의 3192㎡(약 966평) 대지를 지난해 5월 금천소방서 땅으로 지정하고 지상 4층, 지하 1층 건물의 설계를 공모 중이다. 1월 5일에는 독산2동주민센터에서 구로소방서와 함께 ‘금천소방서 건립 설명회’를 열기도 했다. 서울시가 금천소방서 건립에 박차를 가하는 이유는 25개 자치구 가운데 금천구에만 소방서가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일대에는 남문시장, 우시장 등 전통시장이 밀집해 있고 최근 롯데캐슬골드파크 등 고층빌딩이 들어서 화재 위험도 적잖다.  

    그러나 일부 주민은 ‘근조(謹弔) 소방서 유치반대’라는 현수막까지 내걸며 반발하고 있다. 소방서를 건립하면 버스정류장과 횡단보도를 옮겨야 해 불편해지고, 소음과 교통 혼잡 탓에 지역경제 발전이 저해된다는 것. 주민들은 금천소방서 건립 반대 서명운동까지 벌이고 있다.

    독산2동 주민 김모(55) 씨는 “왜 하필 이 지역인지 모르겠다. 안 그래도 독산2동은 금천구의 다른 10개 동에 비해 상대적으로 낙후한 지역이다. 안전 문제로 소방서가 필요하다는 것은 이해한다. 그러나 소방서가 독산2동이 아닌 금천구를 위한 시설인 만큼 다른 곳에 짓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서울시는 말미고개가 최적의 땅이라고 말한다. 해당 대지가 왕복 12차선인 시흥대로에 접한 교통요충지이기 때문. 서울시 관계자는 “현재 소방서 건립 예정지가 금천구 전 지역에 차로 5분 내 도착할 수 있는 곳이라 화재 진압의 골든타임인 5~10분을 지킬 수 있다”고 말했다. 만약 소방서 건립이 무산될 경우 금천구는 중심가에서 대형 화재사고가 발생해도 차로 15분 거리에 있는 구로소방서공단119안전센터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지역이기주의 타파하려면 주민 설득 필요

    내손동에서는 요양원 건립을 주민들이 반대하고 나섰다. 의왕시는 지난해 8월 내손동 능안마을 입구에 연면적 1498㎡(약 450평) 대지에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의 노인복지시설 건립을 허가했다. 하지만 ‘전주이씨 임영대군 파종회’(파종회)와 일부 주민의 반대로 지금까지 착공이 미뤄졌다. 능안마을에 사는 임영대군의 후손은 20여 가구, 100여 명으로 대부분 노인이다.

    임영대군은 세종대왕의 넷째아들로 능안마을 진입로 인근에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98호인 임영대군이구묘역 및 사당이 있다. 이곳에서 반경 500m가 문화재보호구역으로 지정돼 있다. 요양원이 들어설 곳은 문화재보호구역 밖이다.

    하지만 파종회와 일부 주민은 문화재보호구역 인근이고, 마을 입구에 요양원이 들어서면 마을에 대한 인상이 나빠진다며 반대하고 있다.

    이들은 요양원 공사장 입구에 컨테이너로 가건물을 짓고 수시로 집회를 열어 공사 진행을 막고 있다.

    한 노인단체 관계자는 “요양원이 들어서면 집값이 떨어진다며 인근 지역 주민이 건립을 반대하는 경우는 종종 있다. 하지만 요양원의 잠재적 수혜자인 노인들이 나서서 건립을 반대하는 것은 특이한 현상”이라고 말했다.

    의왕시 관계자는 “지구단위계획상 노유자시설(아동·노인복지시설)로 확정된 필지에 합법적으로 건축허가가 난 사안이다. 따라서 일부 주민의 행동에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주민의 요양원 건립 반대 집회를 시가 나서서 막을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말했다. 건축주는 “공사가 벌써 6개월 가까이 지연됐다. 공사방해금지 가처분신청과 손해배상 청구소송 등을 고려 중”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주민에게 도움을 주는 시설 건립이 외려 주민 반대에 부딪힌 사례는 과거에도 있었다. 2013년 9월 경남 양산시 양산소방서 중앙119안전센터는 건물 노후화와 좁은 출입로 문제로 북부동에서 신기동으로 이전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자 신기동 일부 주민이 119안전센터가 들어오면 대형소방차가 출동할 때마다 사이렌 소음이 발생하고 교통 불편이 가중된다며 반발했다.

    양산소방서 관계자는 “당시 주민의 반발이 일부 있었으나 소방서와 시에서 지속적으로 설득해 2015년 신기동에 새 119센터를 완공했다. 막상 119센터가 들어오고 나니 화재나 안전사고에 빠르게 대처할 수 있다는 이유로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는 주민이 늘어났다”고 밝혔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통상 경찰서, 소방서 같은 관공시설이 들어오면 관공서에서 일하는 공무원 등 유동인구가 늘어 지역경제가 활성화된다. 하지만 드물게 관공서 주변의 소음이나 교통 불편 때문에 집값이 떨어지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정연정 배재대 공공행정학과 교수는 “다양한 이해관계가 충돌하면서 주민 안전을 위한 관공서에도 바나나 현상이 일어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필요하다는 이유만으로 지방자치단체(지자체)에서 일방적으로 관공서 건립을 추진한다면 반대에 부딪힐 수 있다. 각 지자체가 사전에 주민들과 충분히 협의해 반발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서울시는 금천소방서 건립을 위한 설명회를 다시 개최하는 등 주민 설득에 나설 계획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1월 5일 설명회에서 주민들에게 소방서 신설 대지 앞 횡단보도와 버스정류장은 이전하지 않겠다”며 “주민설명회를 통해 의견을 수렴하고 대책을 마련해 2019년 안에는 소방서를 완공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행복주택은 애물단지 아닌 보물단지

    젊은 층의 주거안정을 위해 공급되는 공공장기임대주택 ‘행복주택’은 주변 집값 하락을 유발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대부분 지역 주민의 설립 반대에 부딪힌다. 주민들이 지역에 행복주택이 들어오면 집값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공공임대주택에 대한 선입견 때문. 그러나 정작 행복주택이 들어선 지역에서는 청년 인구 유입으로 지역 자체가 활성화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행복주택은 대학생, 사회초년생, 신혼부부 등 젊은 층의 주거안정을 위해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국토교통부(국토부)가 제공하는 공공장기임대주택이다. 직장이나 학교가 가까운 곳에 건설되고 주변 시세보다 임차료가 20~40% 저렴해 많은 청년이 행복주택 입주를 원한다. 국토부에 따르면 행복주택 입주 정보를 알려주는 알림서비스의 가입자가 지난해 4월 서비스 도입 이후 100일 만에 7만 명을 넘어섰으며, 매일 600명가량이 지속적으로 가입하고 있다.

    그러나 수요에 비해 공급이 너무 모자라 ‘행복주택 입주가 로또복권 당첨만큼 어렵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LH 조사에 따르면 지난 한 해 LH가 전국에서 입주자를 모집한 행복주택은 총 19개 지구 9872가구다. 총 청약자 수는 6만5062명, 평균 경쟁률은 6.6 대 1을 기록했다. 특히 서울 가좌(47.5 대 1), 오류(17.9 대 1)를 비롯해 130 대 1 경쟁률을 보인 경기 성남 단대지구 등 주요 수도권 지역의 경쟁이 치열했다.

    공급이 수요를 따라오지 못하는 이유는 주민들의 반발로 행복주택 건립이 어렵기 때문. 국토부와 LH가 행복주택을 지으려 했던 서울 동대문구 휘경동, 강남구 수서동, 경기 고양시 장흥동 등은 주민 반대로 길게는 10개월 이상 사업 진행이 멈춰 있다. 공공임대주택 때문에 저소득층이 유입돼 집값이 떨어지고 학군 면에서 손해를 볼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행복주택을 반대하는 일부 주민 사이에서는 “행복주택이 지역 주민의 집값을 떨어뜨리는 불행주택”이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행복주택지구 건립 계획이 발표된 지역의 집값이 실제로는 10~20%가량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6월 KB국민은행 조사에 따르면 서울 구로구 행복주택지구 인근에 위치한 천왕이펜하우스 5  ·  6단지의 매매가(84㎡ 기준)는 행복주택 발표 시점인 2014년 7월 3억7500만 원에서 2016년 5월 4억2500만 원으로 13.3% 상승했다. 경기 김포시 김포한강 행복주택지구 인근에 위치한 전원월드2단지는 행복주택 건립이 발표된 2014년 6월 매매가 2억500만 원(84㎡ 기준)이었지만 2016년 5월에는 2억6500만 원으로 29.3%나 올랐다. 이 밖에 서울 강동, 경기 하남 등도 행복주택 건립 발표 이후 집값이 상승했다. 같은 기간 전국 평균 집값 상승률이 5.6%였던 것을 감안하면 2~4배 빠르게 집값이 오른 것.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행복주택이 들어서면 집값이 떨어질 것이라는 선입견이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청년 인구 유입으로 지역경제가 활성화될 가능성이 높아 행복주택이 집값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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