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52

2008.09.09

말썽꾸러기 英 왕자들 대중의 영웅으로

윌리엄 이어 해리 군복무 활약상에 환호 홍보전담팀 나서 우호적 여론 조성도 한몫

  • 전원경 주간동아 객원기자 winniejeon@hotmail.com

    입력2008-09-01 11: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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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썽꾸러기 英 왕자들 대중의 영웅으로

    해군 중위로 복무하고 있는 윌리엄 왕자와 아프리카 레소토에서 자원봉사 중 아이들과 놀고 있는 해리 왕자의 모습.

    ‘전통’을 중시하는 영국인들에게 왕실은 그 전통의 살아 있는 상징이다. 그래서 영국의 신문들을 보면 ‘더 타임스’나 ‘데일리 텔레그래프’ 같은 정론지는 물론, ‘이브닝 스탠더드’를 비롯한 각종 타블로이드판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인물이 왕족, 그중에서도 엘리자베스 여왕과 윌리엄(26), 해리(24) 왕자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 젊은 왕자를 대하는 언론의 시선, 특히 타블로이드판 대중지의 시선이 그리 곱지 않다는 점이다. ‘선(Sun)’으로 대표되는 영국의 대중지들은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생존 당시 무자비한 파파라치 공격을 일삼아온 장본인이다. 최대의 먹잇감(?)이던 다이애나 왕세자비가 결국 파파라치를 피하다 비극적인 죽음을 맞았지만, 이후로도 이들은 그 아들인 윌리엄, 해리 왕자를 뒤쫓아다녔다. 영국 대중은 이런 타블로이드판 신문의 행각을 비난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거의 매일 보도되는 왕실의 가십 기사를 열심히 훔쳐보는 이중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타블로이드 신문들 180도 달라진 보도 태도

    최근 몇 년간 타블로이드판 신문에 실린 왕자들의 기사 제목을 한번 훑어보자. ‘해리,나치스 되다?’ ‘술독에 빠진 해리’ ‘윌리엄, 군용 헬기가 자기 물건인가?’ ‘윌리엄, 왕 되기 싫다고 토로하다’ 등등. 하나같이 왕자들의 잘못을 고발하는 기사들이다. 물론 이중에는 언론의 성토를 받을 만큼 심각한 잘못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젊은 왕자들이 또래 친구들과 엇비슷한 행동을 하다 파파라치에게 걸려 문제가 커진 경우였다. 또 타블로이드판 신문 처지에서는 왕자들이 ‘예의 바르고 진중한 청년으로 자라고 있다’는 기사보다 ‘망나니 왕자’라는 식의 기사가 주목받을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문제는 이같이 부정적인 보도가 몇 년간 지속되다 보니, 적지 않은 영국인들이 군주제 자체에 회의적인 시각을 갖게 됐다는 점이다. 처음 한두 번은 너그럽게 봐주던 영국인들도 몇 년이나 거듭되는 왕자들의 일탈에 대해 ‘저런 친구들에게 영국 왕위를 넘겨줄 수 있겠느냐’는 식의 시선을 보내게 된 것이다.



    그런데 올해 들어 이 같은 타블로이드판 신문들의 보도 태도가 180도 달라졌다. 물론 가장 큰 이유는 아프가니스탄 전방에서 10주간 군복무를 한 해리 왕자의 ‘영웅담’ 때문이었다(재미있게도 해리 왕자는 아프가니스탄 전방에서 가장 좋았던 점으로 자신을 추적하는 파파라치가 없었다는 사실을 들었다). 그러나 이후로도 왕자들에 대한 보도는 긍정 일색으로 돌아섰다. 아프리카의 최빈국 레소토에서 봉사활동을 벌이는 해리 왕자나 군용 헬기에 관측 장교로 탑승해 카리브해의 마약밀매선을 격침시킨 윌리엄 왕자 등등.

    두 왕자 자신감 찾은 것이 가장 큰 이유

    영국의 일간지 ‘가디언’은 이처럼 타블로이드판 언론의 시각이 180도 달라진 까닭을 왕실 홍보팀의 태도 변화에서 찾았다. 즉 클레런스 하우스(찰스 왕세자와 윌리엄, 해리 왕자의 공식적인 거주지) 측에서 왕자들을 숨기는 데 급급하지 않기로 노선을 변경했다는 것이다.

    왕위 계승 서열 2위인 윌리엄 왕자는 올해 말 해군에서 전역할 예정이다. 지금까지 학교와 군대에서 성장해온 그가 이제 ‘미래의 영국 왕’으로 공식적인 생활을 하게 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더 이상 왕자들을 궁전 안에 감추어둘 수만은 없으며, 또 감추면 감출수록 타블로이드판 신문들의 호기심만 증폭시킨다는 점을 왕실이 절감했다는 것이다. 영국 신문편집자협회장인 밥 사치웰은 변화한 클레런스 하우스의 태도에 대해 “앞으로 왕실과 언론이 갈등보다 서로 윈-윈하는 관계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며 환영한다는 견해를 표명했다.

    클레런스 하우스가 왕자들의 홍보를 전담하는 ‘프로젝트 매니저’를 채용한 것도 이 같은 왕실의 언론관 변화를 알려준다. 최근 클레런스 하우스 홍보팀에 합류한 제프리 매튜는 매킨지 컨설턴트 출신으로 런던 내셔널 갤러리의 홍보 디렉터로 일한 전력이 있다. 레소토의 건설 현장에서 먼지와 땀범벅이 되어 일하는 해리 왕자에 대한 기사가 바로 제프리 매튜의 작품이었다.

    홍보전문가인 마크 보르코프스키는 “타블로이드판 언론이 왕자들에 대해 긍정적인 인식을 갖게 된 것은 무엇보다 두 왕자, 특히 윌리엄 왕자가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을 얻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윌리엄과 해리 왕자는 사춘기인 열다섯 살, 열세 살에 다이애나비의 죽음을 맞았다. 민감한 시기에 어머니를 잃은 이들이 그 죽음의 직접적 원인을 제공한 황색 언론에 좋은 시각을 가졌을 리 만무하다. 그러나 각기 20대 청년으로 성장한 이들은 이제 더 이상 과거의 피해의식에 젖어 있지 않다. 어머니의 그늘에서 벗어나 각자의 인생을 살아가는 모습을 두고 언론이 배배 꼬인 시각을 보일 까닭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가디언’은 클레런스 하우스 홍보팀의 적극적인 유화 정책에는 또 다른 이유도 있다고 분석했다. 윌리엄과 그의 오랜 연인 케이트 미들턴의 약혼이 코앞에 다가온 지금, 미리부터 타블로이드판 신문들을 길들여놓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윌리엄 왕자는 지금까지의 어떤 왕족보다 공개적인 약혼식을 하게 될 겁니다. 당연히 세계의 모든 언론이 관심을 기울일 것이고요. 그 때문에 언론이 도와주지 않으면 우리 처지가 아주 곤란해질 겁니다.” 클레런스 하우스의 홍보 책임자 패디 하버슨의 솔직한 토로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왕실이기는 하지만, 그 때문에 일거수일투족이 공개되는 것을 각오해야 하는 영국 왕족의 생활도 그리 행복할 듯싶지는 않다.

    젊은 왕족들 장래 희망은

    베아트리스 공주도 “언론이 좋아요”


    말썽꾸러기 英 왕자들 대중의 영웅으로

    지난 6월 열린 애스컷 경마에 참석한 여왕의 손녀 베아트리스 공주.

    앤드루 왕자의 장녀이자 영국 왕위 계승 서열 5위인 베아트리스 공주(19)가 경제지 ‘파이낸셜 타임스’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가디언’의 보도에 따르면 올해 고등학교를 졸업한 베아트리스 공주는 ‘파이낸셜 타임스’의 인터넷판과 블로그 관리, 그리고 이 신문이 부유층 여성들을 타깃으로 발행하는 잡지 ‘How to Spend It’의 편집 등을 돕게 될 것이라고 한다.

    평소 패션에 관심이 많은 베아트리스 공주는 현재 고교를 졸업하고 ‘갭 이어(Gap year·영국 고교 졸업생들이 대학 진학 전 여행이나 아르바이트 등을 하며 보내는 1년)’를 즐기는 중이다. 지난 5월에는 런던 중심가의 백화점 ‘셀프리지스’에서 파트 타임으로 근무하기도 했다. 이때 다른 백화점 판매직원들처럼 유니폼을 입고 단화를 신은 채 전화를 받는 공주의 모습이 공개돼 화제를 모았다.

    ‘파이낸셜 타임스’ 측은 베아트리스 공주가 구체적으로 무슨 업무를 맡게 되는지, 보수가 얼마인지 등에 대해 밝히기를 거부했다. 베아트리스 공주는 셀프리지스에서 근무할 당시 무보수로 일했다. 한편 해군 중위로 복무하고 있는 윌리엄 왕자도 제대 후의 직업에 대해 ‘언론 계통에서 일하고 싶다’고 여러 번 말해왔으며, 엘리자베스 여왕의 막내아들인 에드워드 왕자 역시 10여 년간 독립 TV 프로덕션을 운영한 경험이 있다. 영국 왕실의 젊은 층들에게는 ‘언론인’이 최고의 직업으로 각광받고 있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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