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33

2008.04.29

“저요 저!” MB 人事 큰 장 섰다

공기업·공공기관 물갈이 태풍 전야 능력·자질 없는 ‘보은인사’ 절대 안 될 말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입력2008-04-21 16: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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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요 저!” MB 人事 큰 장 섰다

    일러스트레이션·황중환

    지난해 공기업 사장직 공모에 응했다가 쓴잔을 들이켠 C씨는 권토중래(捲土重來)를 노린다. 정부가 공기업 최고경영자(CEO)와 공공기관 기관장의 물갈이에 나섰기 때문이다.

    “지금 와서 보면 노무현 정부 때 공기업 인사에서 낙마한 게 되레 잘됐다. 그때 사장이 됐더라면 지금쯤 벌벌 떨며 조심하고 있을 것이다.”

    이번 18대 총선을 앞두고는 이른바 정권 실세를 자처한 인사들이 그에게 먼저 접근해오기도 했다. 앞으로 도와줄 테니 정치후원금을 내달라는 식이었다.

    “장(場)이 섰다.”

    공기업 감사직을 노리는 L씨는 들떠 있다. 공기업 임원의 대폭 교체가 기정사실화됐기 때문이다. 지난해 대선 때 그는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 후보의 외곽 캠프에서 일했다.



    “대선 때 기여한 바가 없으면서도 줄을 대려는 사람들도 많다. 발바닥에 땀 배도록 뛴 사람들의 상당수가 공기업 진출을 바라고 있다.”

    305개 공공기관 중 200여 개 교체 대상

    노무현 정부는 공기업과 공공기관의 사장, 감사, 임원직을 논공행상(論功行賞)의 도구로 이용했다. 공기업, 공공기관의 방만·부실 경영이 개선되지 않는 데는 정치권과 청와대 출신 낙하산 인사들이 한몫했다는 지적이다.

    “객관적인 경영평가를 바탕으로 인사 개혁을 추진할 것이다. 305개 공공기관 중 200여 개가 교체 대상으로 검토된다.”(정부의 한 관계자)

    노무현 정부 당시 공기업, 공공기관에 잘못 박힌 ‘대못’을 뽑겠다는 취지다. 지난해 4월1일부터 시행된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라 공기업, 공공기관 임원의 임기는 법으로 보장된다. 그러나 경영실적이 부진할 때는 임기가 보장된 임원이라도 해임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의 ‘코드인사’는 여론과 언론의 질타를 받았다. 공기업, 공공기관에 ‘노무현 권력’이 남겨놓은 그늘도 짙다. 이명박 정부에서도 ‘그들만의 잔치’가 되풀이된다면 ‘오만한 권력’ ‘지배하려는 권력’이라는 비판이 반복될 것이다.

    4월14일 공기업, 공공기관 임원을 노리는 범(汎)정치권 인사들을 달뜨게 하는 일이 있었다. 외교통상부의 재외 공관장 인사 때 ‘대선 공신’들이 자리를 꿰찬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외교통상부 인사에서 보은과 시혜의 흔적이 뚜렷한 인사를 했다. 정실인사, 보은인사, 시혜인사, 패밀리 인사를 중단하고 널리 인재를 구하길 바란다.”(대통합민주신당 최재성 의원)

    이번 인사에서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총영사로 내정된 김재수 미국변호사는 한나라당이 BBK 주가조작 사건 공방에 대처하고자 꾸린 클린정치위원회(위원장 홍준표) 네거티브대책단에서 해외팀장으로 일했다. 외교관 경력이 없음에도 총영사로 내정된 김 변호사는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이라기보다는 한나라당의 공신(功臣) 격이다. 그는 2002년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3남 홍걸 씨가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부촌 팔로스버디스에서 97만5000달러짜리 고급주택을 구입한 사실을 밝혀냈다. DJ의 레임덕을 가속화한 이 스캔들은 당시 정치권을 뜨겁게 달군 바 있다. 캘리포니아주 오렌지카운티에 거주하던 그는 한나라당과 함께 DJ 비자금을 추적하기도 했다. 병역 기피자를 겨냥한 홍준표 의원의 국정법 개정에도 그의 손때가 묻어 있다. 미국 영주권자인 그를 LA 총영사로 내정한 것에 대한 평가는 “10년 넘게 한국의 정치권을 기웃거린 인사가 낙하산으로 환향하는 데 고개를 가로젓는 이들이 많다”(LA 교민 송대근 씨)는 비판과 “미주한인총연합회 법률고문으로 일한 데다, 재외동포 참정권 획득 운동에도 앞장선 만큼 총영사로 적합하다”(한나라당 한 관계자)는 옹호가 엇갈린다.

    “저요 저!” MB 人事 큰 장 섰다

    이명박 대통령이 4월15일 청와대에서 권철현 신임 주일대사에게 신임장을 주고 있다.

    미국 애틀랜타 총영사로 내정됐다가 “대통령의 국정 수행에 누가 되지 않겠다”며 사퇴한 이웅길 전 미주한인총연합회 수석부회장은 미국 국적이다. 한국 국적을 갖지 않은 사람이 공관장으로 내정된 전례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가공무원법에는 ‘대한민국 국적자가 아닌 사람은 공무원이 될 수 없다’고 규정돼 있다. 이 전 부회장은 지난해 대선 때 ‘이명박 선거대책위원회’(이하 선대위) 비서실에서 해외 파트를 담당했는데, 그를 바라보는 교민들의 반응은 대체로 싸늘하다. 한마디로 총영사‘깜’이 안 된다는 것이다.

    미국 시애틀 총영사로 내정된 이하룡 전 한전산업개발 사장은 선대위 정책특보와 한나라당 중앙위원, 대통령취임준비위원회 자문위원을 지냈다. 중국 상하이(上海) 총영사로 내정된 김정기 전 베이징대 연구교수는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서울필승대회 준비위원장을 지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자문위원이던 김우상 연세대 교수도 대사로 내정돼 아그레망(상대국 동의)을 밟는 것으로 알려졌다. 선대위 특보단장이던 권철현 의원은 낙천한 뒤 총선이 끝나자마자 주일대사로 임명됐는데, 그는 17대 국회에서 한일 의원연맹 부회장 겸 간사장으로 활동했다.

    애틀랜타 총영사 자진사퇴 반면교사 삼아야

    총영사(總領事)는 주재국 영토 안의 자국민을 보호 감독하고, 통상·항해에 관한 사항을 본국에 보고하며, 주재국에 근무하는 자국의 영사 및 관리를 감독하는 최상급의 영사다. 외교통상부 고위관료를 지낸 K씨는 “노무현 정부가 김구 선생의 손자인 김양 현 국가보훈처장을 상하이 총영사로 임명했을 때도 격에 맞지 않는다는 얘기가 많았다”면서 “총영사를 보은의 도구로 활용할 만큼 헐렁한 자리로 여겨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인사 태풍을 눈앞에 둔 공기업, 공공기관이 술렁이고 있다. 노무현 정부 때 임명된 기관장들이 줄줄이 사퇴하면서 후임을 노리는 인사들의 물밑경쟁도 치열하다. 전문성이 떨어지면서도 인맥을 이용해 자리를 꿰차려는 이들도 적지 않다. 이번 총영사 인사가 앞으로의 인사를 예측하는 가늠자로 기능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제 밥그릇 챙기기 인사를 하면 거센 정치적 역풍을 맞을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가슴에 새겨야 할 현진권 아주대 교수(경제학)의 지적이다. ‘코드인사’라는 ‘대못’이 뽑힌 자리에 ‘보은인사’라는 또 다른 ‘대못’을 박지는 않는지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볼 일이다. 능력, 자질, 성과에 따라 인사가 이뤄져야 한다는 데 이견이 있을 수 없다. 또한 그것이 정권의 실패를 막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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