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26

2008.03.11

생명공학 잘나가도 육종 기술 “기 안 죽어”

형질전환 작물 보급에 큰 구실 … 위기론 속에서도 변신 또 변신

  • 임소형 동아사이언스 기자 sohyung@donga.com

    입력2008-03-05 14:4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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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명공학 잘나가도 육종 기술 “기 안 죽어”

    형질전환 옥수수를 시험 재배하는 모습.



    오메가3 강화 대두(大豆), 가뭄저항성 면화, 차세대 해충저항성 옥수수….

    농업생명공학기업 몬산토가 2012년경 출시하겠다고 1월 발표한 작물들이다. 모두 첨단 생명공학 기술을 적용해 기존 작물의 단점을 개량한 ‘형질전환 작물’이다. 안전성 논란이 아직 식지 않았지만, 형질전환 작물은 이미 세계적으로 널리 재배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형질전환 작물들이 보급되는 데 전통 기술의 구실이 컸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바로 육종(育種) 기술이다. 최근 전통 육종기술이 첨단 생명공학에 밀려 점점 설 자리를 잃는다는 위기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죽어도 씨앗은 배고 죽는다”



    오메가3 강화 대두는 대두에 오메가3 생성 유전자를 삽입해 오메가3 성분을 스스로 만들어낼 수 있게 바꾼 것이다. 신진대사와 뼈 형성을 돕는 오메가3 성분은 주로 어류에서 생성된다. 오메가3 강화 대두가 시장에 나오면 처음으로 어류가 아닌 식물을 통해 오메가3 성분을 섭취할 수 있게 된다.

    해충저항성 옥수수에는 곤충의 위벽을 갉아내는 유전자가 삽입돼 있다. 재배 과정에서 해충이 이 옥수수를 먹으면 죽고 만다. 옥수수가 해충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도록 만든 것이다. 또 가뭄저항성 면화에는 물 사용 효율을 높이는 유전자가 삽입돼 있어 물이 부족한 환경에서도 잘 살아남을 수 있다.

    몬산토가 개발 중인 이들 작물은 다른 생물에서 추출한 유전자를 가져다 끼워넣어 새로운 품종으로 만들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예를 들면 해충저항성 옥수수에 삽입된 유전자는 세균(바실리스 튜닝겐시스)의 것이다.

    농민들 사이에서는 “죽어도 씨앗은 배고 죽는다”는 옛말이 회자된다. 새로운 품종을 개발하고 그 씨앗을 확보하는 일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얘기다. 농가 소득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형질전환 품종이 등장하기 시작한 건 불과 10여 년 전부터다. 199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우리 과학자나 농민들은 새 품종을 개발하기 위해 생명공학이 아닌 육종기술을 사용했다.

    1년 내내 배추 먹을 수 있는 까닭

    육종이란 한마디로 더 나은 품종을 만들어내는 기술이다. 같은 종 내에서도 잘 살펴보면 다양한 특성을 가진 것들이 섞여 있다. 그 가운데 이용가치가 높은 것을 골라 재배하면 다음 세대 작물은 이전 세대보다 더 나은 특성을 갖게 된다.

    1900년대 들어 육종기술은 체계적인 학문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인위적으로 꽃가루를 옮기거나 화학물질을 처리하는 등의 방법으로 서로 다른 품종이나 돌연변이를 교배시켜 원하는 특성을 갖는 자손을 얻을 수 있게 됐다.

    생물을 인간 생활에 좀더 유용한 방향으로 변화시켜 간다는 점에서 육종은 ‘인공 진화’를 이끄는 기술인 셈이다.

    벼와 무, 배추, 고추처럼 우리 식단에 자주 오르는 농작물의 육종기술은 우리나라가 이미 세계적 수준에 도달해 있다.

    서울대 농대 박효근 명예교수는 “1년 내내 통배추를 먹을 수 있게 된 것도 육종기술 덕분”이라며 “배추는 원래 가을에 심는 게 일반적인데, 봄에 심어도 재배가 가능한 품종이 육종기술로 개발됐다”고 말했다.

    배추는 서늘한 기후를 좋아한다. 싹이 난 뒤 60~90일 지나면 잎 수가 늘어 속이 알맞게 찬다. 과거에는 봄에 배추씨를 뿌릴 경우 제대로 자라지 않은 채 생육이 멈추기 때문에 상품가치가 떨어졌다.

    박 교수는 “우리 육종기술로 개발된 무와 고추의 신품종 종자도 현재 일본이나 동남아시아에 꾸준히 수출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최근 국내 육종학자들은 과일이나 화훼로도 눈을 돌리고 있다. 우리나라 딸기는 수년 전만 해도 대부분이 일본 품종이었다. 그러나 2003년경 새로운 국산 품종인 매향과 설향이 개발됐다. 이들은 현재 국내에 유통되는 딸기의 30% 이상을 점하고 있다고 한다.

    형질전환 작물 보급엔 육종기술이 필수

    생명공학 잘나가도 육종 기술 “기 안 죽어”

    몬산토가 개발한 형질전환 면화.

    육종학자들의 이 같은 노력에도 국내에서 육종학은 첨단 생명공학에 밀려 위기를 맞은 상황이다. 손으로 일일이 꽃가루를 옮기고 땡볕 아래서 씨를 심고 작물을 가꾸는 등 현장에서 ‘몸으로 때우는’ 일이 많다 보니 젊은 과학자들이 기피하는 학문분야가 되고 있다.

    생명공학 기술이 눈부시게 발달한 현대에 굳이 수작업 위주인 전통 육종학이 필요한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다. 그러나 육종학자들은 어떠한 첨단 형질전환 작물도 육종기술을 거치지 않고는 재배나 보급에 성공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1997년 농가에서 처음으로 생명공학 기술로 개량한 작물을 심기 시작한 이래 2006년까지 세계적으로 1억200만 종의 형질전환 작물이 재배됐다. 특히 형질전환 콩은 미국 전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가장 많이 퍼져 있다.

    생명공학 기술로 개발한 형질전환 품종의 종자를 바로 토양에 심는다고 해서 모두 잘 자라는 건 아니다. 지역마다 싹이 트고 잎이 나고 꽃이 피는 양상은 다르게 마련이다. 같은 종자라도 어느 지역에선 키가 너무 작게 자라고 다른 지역에선 꽃이 너무 일찍 피기도 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가 바로 육종기술이다. 그 지역에서 자라는 원래 품종과 형질전환 품종을 교배(여교잡·backcross)시키는 것이다. 원래 품종이 해당 지역의 자연조건에 적응하기 위해 갖고 있는 특성과 형질전환 품종의 특성이 섞여 있는 새로운 품종을 선별해 재배하면 된다.

    다른 종에서 유전자를 추출해 작물에 삽입하는 형질전환 기술은 전통 육종방법으로는 불가능하다. 반대로 형질전환 작물은 지역 특성에 적응하지 않으면 상품가치를 얻지 못한다. 박 교수는 “결국 전통 육종학과 첨단 생명공학은 결코 대립관계가 아니라 함께 발전해야 하는 관계”라고 강조했다.

    전통 육종학은 변신 중

    국내 육종기술은 최근 변신을 꾀하고 있다. 꽃가루를 옮기거나 화학물질을 처리하는 등의 전통적 방식뿐 아니라 ‘분자 표지자’를 개발하려는 것. 전통 육종기술의 최대 단점은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점이다. 분자 표지자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분자 표지자는 특정 형질이 있는지 없는지를 한 번에 알아볼 수 있는 유전자의 특정 부위다. 예를 들면 고추 농가의 가장 골칫거리는 탄저병인데, 이 병에 걸린 고추는 반점이 생기며 수확량이 현저히 줄어든다. 고추의 생육기간은 8~10개월. 육종기술로 탄저병에 강한 신품종을 개발하려면 탄저병에 잘 걸리지 않는 고추를 골라 교배시켜 심고 기른 뒤 그 자손을 다시 키워 정말 탄저병에 걸리지 않는지 여부까지 확인해야 하는데, 이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그러나 탄저병 분자 표지자가 있으면 신품종 고추가 유전적으로 탄저병을 갖고 있는지를 일일이 키우지 않고도 어릴 때 간단한 검사로 확인할 수 있다. 시간이 훨씬 단축되는 것이다.

    바스프와 듀폰 파이오니어, 몬산토, 신젠타 등 형질전환 작물 관련 기업의 협회인 ‘크롭라이프 아시아’의 바버라 파 생명공학 매니저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육종기술도 선발 과정이 개선되고 있다”며 “이는 향후 농작물의 생산량과 품질, 다양성 등의 측면에서 크게 기여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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