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96

2007.07.31

산소 부족한 경기장이 뭐 어때서

FIFA 회장 “해발 2500m 이상 경기 불가” … 볼리비아 대통령 거친 저항에 결국 철회

  • 축구 칼럼니스트 prague@naver.com

    입력2007-07-25 14: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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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소 부족한 경기장이 뭐 어때서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가운데)이 해발 6000m 고지에서 공을 차며 FIFA의 조치에 반발하고 있다.

    야구의 나라 베네수엘라에서 열린 2007 코파아메리카 대회가 막을 내렸다. 이 대회에서 브라질이 아르헨티나를 3대 0으로 누르고 권좌를 차지했다. 그러나 승리자는 따로 있었다. 볼리비아의 에보 모랄레스 대통령이다.

    6월26일 베네수엘라 산크리스토발에서는 코파아메리카 개막 행사가 열렸다. 개막전 출전국 수장인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대통령과 볼리비아의 에보 모랄레스 대통령이 월드스타 디에고 마라도나와 함께 공을 차는 장면을 연출한 것이다.

    남미 특유의 의전 행사였지만, 모랄레스 대통령은 국제축구연맹(FIFA)을 향해 거듭 저항의 액션을 취했다. 문제의 발단은 5월27일, 조셉 블래터 FIFA 회장이 해발 2500m 이상의 고지대에서는 국제축구 경기를 열 수 없다고 발언한 내용이었다. 볼리비아 에콰도르 콜롬비아 등이 이에 반발하고 나섰다.

    그 맨 앞에 모랄레스 대통령이 있었다. 열혈 축구광으로 알려진 그는 직접 안데스산맥의 해발 6000m 고지까지 올라가 공을 차면서 ‘부당한 차별’이라며 저항했다.

    기후가 지배하는 그라운드 또 다른 재미



    FIFA의 조치대로 할 경우, 에콰도르는 5년 반 동안 한 번도 진 적이 없는 수도 키토(2850m)에서의 홈 경기를 포기해야 한다. 수도 리마(해발 1548m) 대신 3400m의 유적지 쿠스코에서 국제경기를 치르려던 페루의 꿈도 사라질 수 있었고, 수도 라파스가 해발 3600m에 자리한 볼리비아는 큰 곤경을 치를 뻔했다. 이 국가들은 수도 말고는 국제경기를 치를 만한 큰 도시가 없기도 하다. 모랄레스 대통령은 거칠게 저항했고, 결국 FIFA가 손을 들고 말았다. 그 상한선을 3000m로 수정했다가, 이마저도 이번 코파아메리카를 통해 수도 라파스에서도 월드컵 지역예선을 치를 수 있다고 발표했다.

    평지보다 산소가 적은 고지대에서 뛰면 당연히 그곳을 홈으로 하는 나라가 유리하다. 멕시코는 해발 2240m인 멕시코시티 아즈테카 스타디움에서 자주 승리의 노래를 불렀고, 1970년과 86년에 치른 멕시코월드컵에서 8강까지 올랐다. 역시 고지대 국가인 볼리비아도 94년 월드컵 지역예선에서 브라질을 2대 0으로 격파하고 본선에 진출했다.

    그러나 늘 고지대 선수들만 승리하는 것은 아니다. 고지대 선수들도 평지로 내려오면 컨디션 조절에 실패하곤 한다. 그들은 해외원정에서 난생처음 강추위와 폭설을 경험하기도 한다. 게다가 FIFA의 이번 발상이 남미의 일부 국가뿐 아니라 에티오피아의 아디스아바바(2400m), 예멘의 사나(2365m) 등 다른 여러 지역에도 영향을 줄 뻔했기 때문에 ‘공은 둥글다’는 축구장의 휴먼 철학이 자칫 일그러질 뻔했다.

    축구는 러시아의 강추위에서도 열리고 중동의 폭염에서도 열린다. 잉글랜드의 폭우 속에서도 열리고 숨만 쉬어도 땀이 나는 동남아시아에서도 열린다. 그러므로 당연히 고지대에서도 열릴 수 있다. 1983년의 멕시코청소년대회. 이 대회의 우승은 브라질에게 돌아갔고 아르헨티나와 폴란드, 그리고 마스크를 쓴 채 고지대 대비 훈련까지 한 박종환 감독의 한국 대표팀이 4강 신화를 일궜다. 공이 둥글기 때문에 가능한 일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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