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91

2007.06.26

권선징악 변신로봇 ‘흥행 어게인’ 도전장

  • 입력2007-06-25 10: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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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선징악 변신로봇 ‘흥행 어게인’ 도전장
    마이클 베이 감독의 데뷔작 ‘나쁜 녀석들’(1995년)은 재기 넘치는 영화였다. 2인조 형사 이야기를 다룬 흔한 소재의 버디 무비지만, ‘나쁜 녀석들’에는 상투성을 극복하는 연출의 힘이 있었다. 마이클 베이 감독은 이후 승승장구했다. 노장 숀 코너리에 젊은 피 니콜라스 케이지를 수혈한 ‘더 록’(1996년)은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발휘했다. ‘아마겟돈’(1998년) ‘진주만’(2001년) ‘아일랜드’(2005년)로 이어지는 그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할리우드 여름 블록버스터의 단골 연출자로 자리를 굳힌 것처럼 보인다.

    마이클 베이 감독의 신작 ‘트랜스포머’는 6월11일 국내 시사회에 이어 아시아 최초의 정킷(영화사가 매체에 속한 기자나 영화평론가를 초청해 영화를 시사하고 감독과 배우를 인터뷰하는 행사)을 N서울타워에서 개최했다. 한국 영화시장이 할리우드의 타깃이 될 정도로 성장한 것은 분명하지만, ‘트랜스포머’가 서울에서 아시아 최초의 정킷을 한 데는 여러 노림수가 있다는 생각이다.

    ‘더 록’ ‘아마겟돈’ 등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단골 연출

    먼저 ‘트랜스포머’에는 북한(North Korea)이라는 단어가 여러 번 등장한다. 미국을 위협하는 정체불명의 세력이 규명되기 전, 미국에 가장 적대적이며 기습공격을 감행할 수 있는 나라로 이란 중국과 함께 북한이 거론되고 있다. 그리고 마이클 베이 감독은 봉준호 감독의 ‘괴물’을 할리우드판으로 리메이크해 달라는 제의를 받았다고 한다.

    검은색 싱글 정장 차림에 노타이로 기자회견에 나선 마이클 베이 감독은 “‘트랜스포머’ 후반 작업 때문에 아직 ‘괴물’을 보지 못했지만 훌륭한 영화라고 들었다. 리메이크에 대해서는 더 할 말이 없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하지만 옆에 있는 ‘트랜스포머’의 여주인공 메건 폭스는 “‘괴물’은 내가 본 영화 중 ‘트랜스포머’ 다음으로 재미있는 영화이며, 웃기면서도 무서운 최고의 작품이었다”고 답했다.



    마이클 베이 감독은 “스무 살 때인 20년 전 어머니와 함께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어 이번이 두 번째 방문이며, 아직 서울을 돌아보지 못했지만 그때보다 도시가 훨씬 커진 것 같다”고 말했다. 키가 크고 호남형인 그는 올 여름 블록버스터 시장이 ‘스파이더 맨’ ‘캐리비안의 해적’ ‘슈렉’ 등 모두 시리즈물의 3편으로 제작된 영화들이 점령한 것을 의식한 듯, ‘트랜스포머’는 신작 블록버스터라는 점을 강조했다.

    “1년 반 전 스필버그 감독이 변신로봇 트랜스포머로 영화를 만들자고 했을 때는 관심이 없었다. 단순한 장난감 영화인 줄 알았다. 하지만 ‘트랜스포머’를 알고, 나 또한 팬이 됐다. 어른들에게 동심이 살아나게 할 영화다. 만화가 원작이기 때문에 현실화하는 과정이 쉽지는 않았다. 40명의 아티스트와 함께 어떻게 하면 영혼이 살아 있는 로봇을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하고 노력했다. ‘트랜스포머’는 올 여름, 시리즈가 아닌 신작 블록버스터로 획기적인 신선함을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아동 취향 영화 … 흡인력 있는 연출로 초반 기선 제압

    로봇이 주는 충격은 기계가 생명이 있는 사람처럼 행동한다는 것이다. 기계에도 생명이 깃들어 있을까? 어린 시절, 로봇과 대화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변신로봇을 처음 봤을 때를 잊지 못한다. 분명히 자동차였는데 두 다리로 우뚝 선 로봇으로, 다시 트럭으로 변신하는 로봇의 놀라움은 ‘이 세계에는 무한한 가능성이 존재하며 어떤 꿈도 현실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하다. 마이클 베이의 ‘트랜스포머’는 변신로봇의 크기를 더 키우고 액션을 전 지구적 차원으로 확장한 것만 다를 뿐, 어린 시절 장난감놀이를 그럴듯하게 포장한 아동 취향 영화다.

    카타르 사막 지대에 있는 미군기지가 정체불명의 세력에게 습격당한다. 생존자는 파악되지 않으며, 미 국방부는 비상사태에 들어간다. 미군기지를 습격한 괴물은 다름 아닌 거대한 변신로봇들. ‘트랜스포머’의 도입부는 이렇게 관객의 시선을 집중시킨다.

    권선징악 변신로봇 ‘흥행 어게인’ 도전장
    마이클 베이 감독은 ‘더 록’이나 ‘아마겟돈’에서처럼 스피디한 편집 감각과 클로즈업 샷을 활용한 흡인력 있는 연출로 초반 기선을 제압한다.

    변신로봇 트랜스포머가 관객에게 놀라움과 이질감을 준다면, 미국의 평범한 고등학생 샘 윗위키(샤이어 라버프 분)와 그가 짝사랑하는 미카엘라(메건 폭스 분) 이야기는 관객의 눈높이로 시선을 옮기며 현실감을 부여한다. 고등학생 정도의 보통 관객을 대상으로 만든 ‘트랜스포머’는, 첫 차를 사기 위해서 아버지와 약속한 대로 A학점을 3개 받아야 하는 샘이 교실에서 발표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중고 자동차 판매장에서 그가 고른 첫 차는 노란색 낡은 스포츠카. 그런데 그 차는 라디오 주파수를 마음대로 맞춰 샘의 형편에 맞는 노래를 내보내고 시동이 자동으로 걸린다.

    이제 지구를 공격하는 외계의 지능적 생명체인 변신로봇이 등장했다면, 지구를 지켜줄 힘이 필요하다. 샘이 고른 자동차는 사실 정의를 수호하는 착한 로봇 범블비가 샘을 지키기 위해 변신한 것이다. 에너지를 공급하는 큐브를 둘러싸고 우주생명체 중에서 정의를 수호하는 오토봇 군단과 악을 대변하는 디셉티콘 군단 로봇들은 서로 전쟁을 하며 치열하게 싸워왔다. 그러나 행성 폭발로 큐브는 우주 어디론가 사라지고, 디셉티콘 군단은 큐브가 지구에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지구를 공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탐험가인 샘의 고조할아버지는 북극을 탐험하던 중 빙하 속에서 잠든 거대한 로봇을 발견했다. 미 정부에서는 국방장관도 모르게 대통령 직속의 비밀기관 ‘섹터 7’을 운영하면서 외계생명체에 대한 연구를 계속했다. 큐브의 존재가 샘의 고조할아버지가 남긴 안경과 관련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샘을 둘러싸고 선과 악의 대혈투가 시작된다. 오토봇 군단의 변신로봇들과 디셉티콘 군단의 변신로봇들이 부딪치는 과정에서 미 정부는 그들의 신원을 몰라 갈팡질팡한다.

    결과는 물론 모두 예상하는 것처럼 해피엔딩이다. 악이 영원히 승리하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는 없다. 그것은 다수의 관객이 원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마이클 베이의 장기는 긴장된 힘의 대결 속에서도 유머 감각을 잃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이 영화를 편하게 즐기면서 볼 수 있게 하는 대중적 힘을 제공한다. 그러나 그만큼 문제의식은 희박해질 수밖에 없다.

    ‘트랜스포머’는 흥미 있고 사실감을 바탕으로 한 극적 구조보다는 변신로봇들의 변신 과정과 결투가 최고의 흥행 요소다. 오토봇 군단의 리더 옵티머스 프라임은 18개의 바퀴로 움직이는 트랙터에서 거대한 로봇으로 변신해 부하들을 지휘한다. 자신들을 희생해서라도 인류를 지키려는 선한 의지로 가득 차 있다. 폰티악 승용차에서 날렵한 스포츠카 이미지를 가진 로봇으로 변신하는 재즈, 샘을 지키는 범블비 등 총 5개 로봇이 오토봇 군단을 이룬다. 여기에 맞서는 디셉티콘 군단은 지휘자 메가트론을 중심으로 장갑차에서 파괴력 있는 로봇으로 바뀌는 본크러셔, 헬리콥터에서 변신하는 블랙아웃 등이다. 그러나 디셉티콘 군단의 가장 파괴력 있는 로봇은 몸집은 작지만 해킹 전문가인 프렌지 로봇이다. 대통령 전용기 에어포스 원에서 소형 카세트 라디오로 변신해 잠입했다가 국가 일급기밀 사항을 해킹한다.

    아시아 정킷 서울 행사 여러 가지 포석

    ‘트랜스포머’는 장난감 변신로봇을 거대한 스케일로 확장해놓고 선과 악의 대결이라는 권선징악적 주제를 다룬다. 거기에 착한 로봇이 악의 로봇과 싸워 인류를 지킨다는 대중성 있는 줄거리로 여름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소재와 주제가 거부감이 없고, 소재의 중압감에 짓눌리지 않고 경직되지 않으면서 유머 감각을 부여하는 마이클 베이의 능청스러운 연출이 대중적 친화력을 갖기에 상업적 파괴력은 막강할 것이다. 그러나 팥빙수 하나 먹는 것 이상의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공식대로 영화의 엔딩은 시리즈 제작을 위한 미끼 던지기로 돼 있다. 착한 로봇 중에서 노란색 스포츠카로 변신했던 범블비는 주인공 옆에 남기를 원한다. 서울 남산에서 개최된 ‘트랜스포머’ 아시아 정킷에 범블비가 실물 크기로 전시된 것은 시리즈의 성공을 의식한 포석이다. 마이클 베이 감독은 “한국에서 ‘트랜스포머’가 좋은 반응을 얻어 시리즈로 만들어질 수 있으면 좋겠다. 2편에서는 현대차를 쓰겠다”고 말했다. ‘트랜스포머’에 나온 차들은 모두 GM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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