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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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LOVE NEW YORK

패션·음식·쇼핑·인테리어 등 뉴욕스타일 따라잡기 붐

  • 글=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사진=박해윤 기자 land6@donga.com

    입력2007-06-20 16: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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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 LOVE NEW YORK
    주말 오전, 서울 이태원이나 청담동의 브런치 카페에 가본 적이 있는 사람? 힙(hip·최신 유행의, 앞서가는)한 트렌드를 즐긴다고 자부하는 서울 사람이라면 당연히 이 경험을 해봤어야 한다. 아메리카노 커피를 마시며 프렌치토스트나 오믈렛을 먹는 것. 이것이 바로 요즘 서울에서 한창 유행하는 뉴욕스타일의 주말 풍경이다. 앉은 자리가 테라스면 더욱 좋고, 잠자리 모양의 보잉 선글라스로 햇살을 가린다면 금상첨화다.

    브런치뿐만 아니다. 서울 여성들의 패션은 뉴요커의 그것과 무척이나 흡사하다. 서점에는 뉴욕을 테마로 한 여행서나 여행 에세이가 넘쳐나며 언제부턴가 미술전시 오프닝 행사에는 와인 파티가 꼭 곁들여지기 시작했다. 테라스 카페도 조금씩 늘어가고 있으며, 사람들도 좁은 간격으로 놓인 테라스의 테이블에 앉아 복닥거리며 대화하는 것을 좋아하게 됐다. 회사에서는 스타벅스 커피를 단체 주문해 마시면서 아침 회의를 하는가 하면, 케이터링 파티를 열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이 ‘뉴욕스타일’이라고 하는 신조어 아래에 있다. 대체 뉴욕이 뭐기에 서울이 뉴욕에 풍덩 빠진 걸까?

    뉴욕은 부산이나 대구보다 가깝다. 적어도 심리적으로는. 서울 사람에게 부산이나 대구의 명소를 묻는다면 과연 몇 개나 댈 수 있을까. 그러나 뉴욕은 다르다. 킹콩이 올라갔으며 영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의 남녀 주인공이 재회한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해리와 샐리가 거닐던 센트럴파크, ‘오페라의 유령’ ‘맘마미아’의 친정 브로드웨이, 그리고 뉴욕현대미술관, 록펠러센터의 크리스마스트리, 월드트레이드센터가 있었던 그라운드 제로….

    스타벅스 커피 마시며 회의하고, 회사에서 케이터링 파티 열기도

    유명인사? 부산이나 대구 출신의 몇몇 정치인이 떠오른다. 뉴욕으로 말할 것 같으면 앤디 워홀, 우디 앨런, 루돌프 줄리아니, 존 레넌과 오노 요코 부부…. 그러고 보니 뉴욕에는 고독한 영웅 스파이더맨도 있다! 이 정도면 뉴욕을 밟아보지 못한 서울 사람도 ‘뉴욕을 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뉴욕은 스타일이다. 서울 사람들은 뉴욕을 스타일로 즐긴다. 네이버 추천검색어로 도쿄스타일, 파리스타일, 서울스타일은 없지만 뉴욕스타일은 있다. 짧은 볼레로 재킷에 얇은 소재의 긴 티셔츠, 스키니진을 입고 플랫슈즈에 빅백을 매치하는 것. 이것이 2007년 서울 거리를 평정한 뉴욕스타일 패션의 전범이다. 럭셔리 쇼핑매거진 ‘에비뉴엘’의 김정원 라이프스타일 디렉터는 “캘빈클라인 청바지나 리바이스 501과 같이 특정 아이템이 유행한 적은 있지만, 이처럼 한 도시의 스타일이 모든 트렌드를 독점한 것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뉴욕 패션이 서울을 점령하게 된 데는 뉴욕의 30대 싱글 여성들을 다룬 미국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의 영향이 컸다. 라이선스 패션 매거진을 통해 선진 패션의 이론을 익힌 서울 여성들이 매회 여러 차례 핫한 의상을 선보이는 캐리를 통해 실전 응용법을 터득한 것이다. 2000년 케이블채널 캐치온을 통해 처음 국내에 소개된 이 드라마는 무려 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인기가 뜨겁다. 6월5일 온스타일이 장장 12시간 동안 ‘섹스 앤 더 시티’의 주요 에피소드를 모아 방영했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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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말 오전, 부지런히 브런치 카페를 찾는 것은 배가 고파서가 아니다. ‘뉴욕’을 누리기 위해서다. 이태원에 있는 뉴욕스타일 브런치 카페 ‘수지스’는 정오가 채 되지 않아 긴 대기줄이 늘어설 정도다. 이 카페는 2005년 10월 서울에 거주하는 미국인들에게 미국 가정식을 제공하자는 컨셉트로 문을 열었다. 그러나 지금은 한국인 손님이 더 많다. 박성빈 실장은 “외국인 손님들의 뒤를 이어 미국 교포와 미국 유학생 출신들이 찾아왔다”며 “지금은 일반 손님까지 즐겨 찾고 있어 브런치 붐을 실감한다”고 말했다. 수지스를 비롯해 여러 브런치 카페를 즐겨 찾는다는 전모(28·여) 씨의 말.

    “외국인들과 섞여서 브런치를 먹고 있는 내가 참 멋져 보여요. 그런 기분 때문에 오는 거죠. 그리고 ‘점심 먹자’고 하는 것보다 ‘브런치 먹자’고 하는 게 훨씬 ‘있어’ 보이잖아요.(웃음)”

    뉴욕스타일이란 뭘까? 지난 1년간 각종 매체에서 뉴욕스타일로 소개된 아이템들로 ‘서울이 정의하는’ 뉴욕스타일을 짐작해보자.

    드레스 안에 레깅스를 입는 것처럼 세련됨 속에서 편안함을 추구하는 것이 뉴욕스타일이며 화이트와 블랙, 나무 소재 가구나 마감재로 장식한 인테리어가 뉴욕스타일이다. 복층 빌라를 복잡한 가구 없이 심플하게 꾸민 여성 연예인의 신혼집이 뉴욕스타일이라고 소개됐는가 하면, 어느 건설업체는 발코니 쪽에 식탁을 놓게 한 구조를 두고 뉴욕스타일 아파트라고 홍보했다. 수성 마카펜으로 유리창에 자연스런 멋이 느껴지는 필기체로 영어를 써넣는 것이 스위트홈을 위한 뉴욕스타일 인테리어라고 한다. ‘뉴욕스타일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뉴욕스타일 다이닝을 지향하는’ ‘뉴욕을 직접 방문해 배워온 뉴욕스타일 인테리어’ 등등이 최근 레스토랑이나 바를 멋지게 표현할 때 즐겨 쓰는 수식어다.

    꿈과 열정 그리고 다양성이 뉴욕의 매력

    뉴욕은 쇼핑천국이다. 이는 뉴욕을 직접 찾아가는 이들에게만 해당되는 얘기가 아니다. 해외 구매대행업체를 통하면 서울에서도 얼마든지 뉴욕을 쇼핑할 수 있다. 해외 구매대행업체들이 주로 서비스하는 나라가 미국, 그중에서도 뉴욕이다. 뉴욕에 가본 적 없는 양은희(28·여) 씨는 뉴욕 브랜드 상품을 전문적으로 공급하는 ‘엔조이뉴욕’의 VIP 고객이다. 양씨는 “엔조이뉴욕 홈페이지에서 뉴욕의 최신 유행 스타일을 연구하고, 한 달에 한두 개씩 뉴욕 브랜드의 아이템을 산다”고 말했다.

    뉴욕에 빠진 서울 (그리고 한국) 사람들에게 뉴욕은 가고 싶은 도시다. 많은 이가 뉴욕으로의 여행이나 유학을 꿈꾼다. 네이버의 ‘뉴욕 이야기와 사진이 있는 카페’는 이런 사람들을 위한 공간이다. 이 카페에는 가고 싶은 뉴욕, 살고 있는 뉴욕, 다녀온 뉴욕에 대한 이야기가 넘쳐난다. 시공사의 여행서 ‘저스트고’ 시리즈는 총 25권인데 2006년 판매량에서 ‘뉴욕’편은 파리와 런던을 제치고 5위를 차지했다. 1~4위가 한국과 가까운 도쿄 중국 오사카 홍콩이었으니 비행시간 4시간 이상의 지역 중에서는 뉴욕이 ‘가고 싶은 여행지’ 1위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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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태원에 있는 브런치 카페 ‘수지스’의 일요일 정오 풍경. 빈자리를 찾아보기 어렵다.

    왜 서울 사람들조차도 “나는 뉴욕을 사랑해”라고 말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을까. 도대체 뉴욕의 매력이 뭐기에? 뉴욕은 롤모델이다. 뉴욕에서 엔터테인먼트 테크놀로지를 공부한 조용신 씨의 말이다. 그는 “음악, 미술, 공연, 금융, 건축 등 어느 분야든 그 분야의 정답은 뉴욕에 있다. 그것이 한국뿐 아니라 세계 각 도시 사람들이 뉴욕을 동경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두 달가량 뉴욕에 머물며 뉴요커를 인터뷰하고 돌아온 박준 씨는 “뉴욕은 스스로 선택한 사람들의 도시”라고 평했다. 뉴요커는 대부분 뉴욕 출신이 아니다. 꿈과 열정을 가지고 뉴욕을 선택해 날아온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모였기에 뉴욕은 활기차고 에너지가 넘치며, 그러므로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뉴욕에서 인테리어 디자인을 배우고 현재 미국 마이애미대학에 재직 중인 박진배 교수는 최근 펴낸 책 ‘뉴욕 아이디어’에서 “한국의 대학에서 근무하던 시절, 문득 뉴욕이 미치도록 그리워 충동적으로 비행기표를 끊고 날아와 사흘 내내 센트럴파크만 거닌 적이 있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뉴욕스타일 아래 소비되고 있는 ‘서울의 뉴욕’은 단편적이고 피상적이다. 전 세계 인종이 모여 살고, 홈리스에서부터 월가의 거부까지 뒤섞여 사는 뉴욕은 참으로 다양하며 그때그때마다 쉼 없이 변한다. 이처럼 다양할진대 과연 무엇을 뉴욕스타일로 부를 수 있을 것인가? 박진배 교수는 “뉴욕을 방문해 잘나가는 레스토랑을 견학하며 인상적인 인테리어, 메뉴, 유니폼 등을 베껴가는데, 그것이 뉴욕스타일은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서울의 브런치는 1인당 2만원이 훌쩍 넘는 비싼 음식이지만, 진짜 뉴욕의 브런치는 커피를 포함해 4~5달러에 불과하다. 서울은 뉴욕을 ‘섹스 앤 더 시티’와 캐리 브래드쇼에서 해방시켜야 한다.

    ‘I ♡ NY!’ 뉴욕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이 깜찍한 구호는 서울에서도 서울 사람들의 티셔츠나 모자 등에서 자주 눈에 띈다. 그러고 보니 서울 사람 어느 누구도 ‘I ♡ NY’을 외치는 뉴요커들처럼 “난 서울을 사랑해”라고 말하지 않는다. 서울이 딱 하나 놓치고 있는 뉴욕스타일이란 바로 이것 아닐까. 뉴욕은 그래서 부러운 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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