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88

2007.06.05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선거권을”

공직선거법 헌법소원 제기한 재일동포 3세 이상은 씨 “한국 국적인데 모국도 차별하나”

  • 정현상 기자 doppelg@donga.com

    입력2007-05-29 15: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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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선거권을”
    “한국 국적을 갖고 있지만 일본에서도 한국에서도 한 번도 선거를 해보지 못했어요. 저뿐 아니라 저희 아버지, 오빠, 언니 모두 마찬가지예요. 일본에서도 외국인, 한국에서도 외국인, 그러면 대체 제 나라는 어디인가요?”

    5월14일 저녁, 재일동포 학생들이 다니는 건국고교 영어교사 이상은(27) 씨의 전화 목소리는 조금 흥분돼 있었다. 이씨는 일본에 거주하지만 한국 국적을 갖고 있는 ‘재일국민’으로, 2004년 최상영 씨 등 9명과 함께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이하 공직선거법)에 대해 헌법소원을 제기한 인물이다. 공직선거법은 선거인명부 작성 대상자를 관할구역에 ‘주민등록’이 돼 있는 국민으로 제한해 국내에 주민등록증이 없는 재외 공관원과 한국 국적을 가진 재외동포의 투표 참여를 막고 있다. 이 사건은 5월10일 헌법재판소(이하 헌재)가 공개변론을 실시하면서 새삼 여론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국내에 주민등록 안 된 재외동포 투표 참여 막아

    재판과정에 국민 신뢰를 높이기 위해 해당 분야 전문가나 참고인의 의견을 듣는 공개변론은 지금까지 신문법이나 사립학교법 등 사회적 파장이 예상되는 중요 사건들에 대해 열렸다.

    특히 청구인 측(정지석 변호사·법무법인 남강)과 피청구인 측(외교부·선관위) 간에 찬반 양론이 팽팽히 맞선 이번 공개변론은 대통령선거를 7개월여 앞둔 시점에서 진행돼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앞으로 헌재 결정에 따라 선거 변수가 될 가능성도 있다. 2005년 기준 일반 해외체류자는 114만명, 영주권자는 170만여 명으로 추산된다. 이는 지난 대선 때 당락을 결정지은 표가 수십만 표(1997년 39만여 표, 2002년 57만여 표)에 그쳤던 것에 비춰보면 무시할 수 없는 수치다.



    “그동안 몇 분이 같은 취지로 헌법소원을 제기했지만 모두 기각됐고, 관심도 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이렇게 공개변론까지 열려 우리 가족 모두 선거권을 가질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있습니다. 선거권은 인간의 기본 권리이자 국민의 권리입니다. 따라서 우리도 당연히 받아야 할 권리라고 생각합니다.”

    한국 국적을 가진 재일동포는 60만명에 이른다. 이들은 식민지 시절 어쩔 수 없이 일본에 정착한 이후 지금까지 온갖 차별을 받으면서도 귀화하지 않고 한국 국적을 지킨 1세대와 그 후손이다.

    이씨가 참정권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의 아버지 이건우(55·사업) 씨는 오랫동안 재외동포 참정권 되찾기 운동을 벌여온 인물이다. 이씨는 그런 아버지 밑에서 당당한 한국인으로 살아왔다.

    “저는 일본에서 외국인(한국인)으로 살아왔어요. 한국인이라는 것을 숨긴 적도 없고 숨기고 싶은 마음도 없었습니다. 그게 다 부모님의 가르침 덕분이었다고 생각해요. 일본 이름(通名)을 써본 적도 없습니다. 일본학교에서도 ‘난 한국사람이다’라고 당당히 말했습니다. 그런데 저희 오빠는 고등학교 때 차별을 많이 받았습니다. 하루에도 수십 통씩 집으로 협박전화가 걸려왔고 ‘김치냄새 나! 빨리 돌아가!’ 등 심한 말을 들어서 제가 더 충격이 컸지요.”

    일본사회에서 재일동포에 대한 사회적 차별은 지금도 여전하다. 이런 차별 탓에 일본 귀화를 택하는 이들이 매년 크게 늘고 있다는 보도도 있었다. 일본사회에서 편하게 살기 위해, ‘한국인임을 숨기기 위해’ 귀화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통명’을 갖고 있는 이들도 상당수다.

    “그래도 저는 일본사람으로 귀화하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귀화한다고 해서 달라질 게 뭐가 있죠? 제 마음은 한국인인데 어떻게 일본인이 될 수 있겠어요? 일본인이 돼서 그 다음엔 제가 그들과 같이 한국인을 차별해야 하나요? 아니면 저희처럼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보고도 모르는 척해야 하나요? 그렇게 하면 이 힘든 상황이 조금도 개선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한국에서 대학을 다니고 싶었던 그는 1999년 일본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 대학로에 있는 국제진흥교육원 어학당에 들어가 한국어와 입시공부를 병행했다. 그리고 이듬해 고려대 영어교육과에 입학했다. 그때부터 그는 대학 졸업 뒤 한국에서 교사생활을 하기도 마음먹었다.

    한국서 교사 되려면 해외 영주권도 포기해야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선거권을”

    이상은 씨는 한국 교단에 서고 싶었지만 한국사회의 차별로 꿈을 이루지 못했다. 고대부고 교생실습 때 학생들과 함께.

    그러나 한국사회 역시 그를 이방인 취급했다. 그는 주민등록이 돼 있지 않아 e메일조차 이용할 수 없었고, 의료보험 혜택도 받지 못했다. 휴대전화는 아는 언니의 이름을 빌려 사용했다.

    “일본에서는 어릴 때부터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한국에 살면서 오히려 나는 과연 어느 나라 사람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사람들도 재일동포라고 하면 일본사람 취급했으니까요.”

    더욱이 대학을 졸업하고 임용고시를 준비하다 ‘해외영주권을 가진 자는 그 영주권을 포기해야 교사자격증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그는 5년간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는 듯해 충격에 빠졌다.

    “대학 4학년 때 고대부고로 교생실습을 가서 1학년을 맡아 한 달간 가르쳤습니다. 정이 많이 들어 헤어질 때는 학생들이 ‘교사가 되면 우리 학교로 와주세요. 선생님이 담임 해주세요’라고 해 무척 감격했습니다. 그래서 더욱 한국 교단에 서고 싶었는데….”

    한국사회에 서운한 마음은 들었지만 그는 한국문화나 한국사람들을 좋아하기에 한국에서 살고 싶었다. 다시 일어교육과에 다녀 일본어 교사가 되려고 생각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러나 다시 대학을 다니기에는 여건이 허락하지 않았다. 결국 그는 2년 전 일본으로 돌아가 모국의 말과 문화, 역사를 가르치는 ‘민족학교’ 교단에 서게 됐다.

    “어려서는 한국 국적을 지키고 살아야 한다든가 한국인이랑 결혼해야 한다는 이야기, 일본사회에서 살려면 일본인보다 2배는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아버지 말씀이 그리 가슴에 와닿지 않았어요. 그런데 이제는 그 말이 이해가 돼요. 일본사람과 결혼하면 한국에 대한 제 마음이나 재일동포로 살아온 삶을 이해해주지 못할 것 같아서 꼭 한국사람하고 결혼하고 싶어요.”

    이씨가 이처럼 애타게 모국을 생각하며 사는 동안 한국사회는 그에게 무엇을 해주었는가. 정치권에서는 재외동포 참정권 문제를 인간의 기본권 차원보다 ‘표’의 논리로 보아왔다. 외교통상부는 이번 공개변론에서 재외동포에 대한 참정권 부여는 ‘거주국에서의 현지화보다는 정부의 각종 지원에 대한 기대심리와 과다한 모국지향성을 촉발할 가능성을 감안해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답변했다. 심지어 한국사회는 일정한 범위의 주한 외국인에게까지 주민투표권과 지방자치선거권을 부여하고 있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유일하게 재외국민에게 참정권을 주지 않는다.

    “꿋꿋하게 국적을 지키는 우리 동포들을 위해, 미래 세대를 위해 참정권은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희 학교에서도 매일 많은 동포 아이들이 모국의 말과 문화, 역사를 배우고 있습니다. 그중에는 저처럼 모국에 대한 희망과 기대를 품고 한국 대학에 진학하고 싶어하는 학생도 있습니다. 그런 아이들에게 제가 받은 충격과 절망을 그대로 물려주고 싶진 않습니다. 그리고 올해 대선에는 꼭 투표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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