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84

2007.05.08

‘유럽 小國’ 안도라 공국의 나 홀로 한국인

  • 안도라 공국=이남희 기자 irun@donga.com

    입력2007-05-07 10: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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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럽 小國’ 안도라 공국의 나 홀로 한국인
    스페인과 프랑스를 잇는 피렌체 산맥에 자리한 작은 나라 안도라 공국(公國·군주가 아닌 대공이 통치하는 나라). 우리에겐 별로 알려지지 않은 이 ‘산골 나라’에 유일한 한국인이 살고 있다. 30년째 태권도를 가르치며 ‘한국 문화 전도사’로 활약하는 문동근(55) 씨다.

    4월14일 그를 만난 곳은 ‘제6회 승용(昇龍)컵 어린이태권도대회’가 열리던 에스칼데스 주립 체육관. 하얀 도복을 입은 파란 눈의 어린이들이 “차렷” “준비” 구호에 맞춰 태권도 겨루기에 한창이었다. 이들을 지켜보던 문씨는 이곳의 태권도 열기를 전했다.

    “부모가 시켜서라기보다는 아이들이 원해서 태권도를 배우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아이들에게 태권도를 하는 보람과 성장의 기쁨을 느끼게 하려고 이 행사를 열게 됐습니다.”

    그가 안도라 공국에 온 것은 1977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1년 가까이 태권도 사범으로 일했던 그는 “미지의 세계에 태권도를 알리지 않겠냐”는 그곳 제자의 권유로 안도라 공국에 오게 됐다. 처음엔 자본이 없어 전자제품 가게, 보석상 점원 등을 전전했던 그는 태권도에 관심을 가진 한 현지인의 투자를 받아 1978년 2월 50평 규모의 작은 태권도장을 열 수 있었다.

    “당시 이소룡이 죽은 지 얼마 안 돼서 동양 무술에 대한 관심이 높았거든요. 태권도장 이름을 ‘승용’으로 지었는데, 한글 이름은 상표로 등록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Gimnas Escaldes(에스칼데스주의 체육관)’란 이름을 써야 했지요. 태권도장을 열자마자 70명의 현지인들이 찾아왔는데 지금도 비슷한 학생 수를 유지하고 있어요.”



    그가 30년간 안도라 공국에서 배출한 제자는 무려 2000명. 465km2(서울 면적이 605km2)의 국토 면적에 인구가 8만명에 불과한 안도라 공국의 규모를 감안할 때 태권도 인구 수가 상당한 셈. 마르크 포르네 전 안도라 공국 총리의 아들도, 스페인 세오 데 우르헬시(市) 현직 경찰서장인 마르티네즈(47) 씨도 모두 그의 제자다. 이들은 그를 ‘문’이라 부르며, ‘태권도 거장’에 대한 존경심을 드러낸다. 20년 넘게 그의 곁에서 태권도를 수양해온 제자들은 이제 한가족과 다름없다.

    “안도라 공국은 과거 강대국으로부터 침략을 받던 나라이기에 외부인에 대한 경계의식이 큽니다. 그들에게 태권도 사범으로서 신용을 얻기 위해 애쓰다 보니 술 마시는 것조차 조심스러웠죠.”

    그는 자신에게 태권도를 배웠던 현지 여성과 결혼해 딸 나디아(23)와 아들 카를로스(18)를 두었다. 특히 태권도 3단인 카를로스는 문씨의 도장 일을 도우며 아버지의 뒤를 잇고 있다.

    30년간 이곳에 살아온 문씨는 아직도 한국 국적을 포기하지 않았다. “한국이 더 좋지 않느냐”는 게 그의 대답이다.

    “태권도를 시작하기 전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합니다. 제자들에게 ‘태극기에 경례를 하며 여러분이 좋아하는 운동과 그 운동이 온 나라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말해주었죠. 전 그저 한국을 선전하는 사람으로서 나쁜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것이 애국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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