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82

2007.04.24

한·러 춤꾼들이 부활시킨 ‘스파르타쿠스’

  • 장일범 음악평론가·KBS 클래식 FM ‘장일범의 생생 클래식’ DJ

    입력2007-04-18 19: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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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러 춤꾼들이 부활시킨 ‘스파르타쿠스’
    발레 ‘스파르타쿠스’를 처음 안 것은 어렸을 때다. 아마 중학생 때였던 것 같다. 영국 출장을 다녀온 아버지가 런던에서 소련 볼쇼이 발레를 봤다며 ‘호두까기 인형’과 함께 ‘스파르타쿠스’ 비디오테이프를 내놓으셨다.

    그 비디오테이프는 국내 비디오 기기에서는 재생되지 않아 결국 보지 못했지만, 볼쇼이 하면 ‘백조의 호수’도 ‘호두까기 인형’도 ‘지젤’도 아닌 ‘스파르타쿠스’를 떠오르게 했다. 또 오랫동안 ‘스파르타쿠스’는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던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대표 예술이었고, 금단의 열매였다.

    그 후 10여 년이 지나 러시아어를 전공한 나는 처음 모스크바로 공부를 하러 떠났고, 볼쇼이극장에서 거의 매일 살다시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비디오테이프 속 그 발레 ‘스파르타쿠스’를 직접 보게 됐다. 러시아어로는 ‘스파르타쿠스’가 아닌 ‘스파르탁’이다.

    섬뜩할 정도로 힘이 넘치는 폭발적 군무, 아름답고 서정적인 하차투리안의 아다지오 음악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스파르타쿠스와 프리기아의 2인무, 지금 그의 이름은 잊었지만 스파르타쿠스의 아내 역을 맡은 발레리나의 아름다운 보디라인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 후 한동안 모스크바에서도 ‘스파르타쿠스’가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대표하는 발레라는 이유로 상연되지 못했다. 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와 개방정책 이후 ‘스파르타쿠스’ 같은 작품이 설 자리는 없어 보였다. 스파르타쿠스는 로마의 노예 출신으로 장군이 된 영웅적 인물이었던 만큼 그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발레 역시 민중봉기라는 주제를 담고 있었다. 당시 개방의 혼돈 속에서 구태를 벗고자 했던 러시아인들로서는 돌아가기 싫은 과거를 연상케 하는 작품이었던 것이다.



    스파르타쿠스를 다시 만난 것은 2001년 예술의전당에서 펼쳐진 국립발레단의 공연에서였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색채가 많이 엷어진 국립발레단의 ‘스파르타쿠스’는 남성적 힘이 넘치는 군무와 스파르타쿠스 역을 맡은 이원국의 빼어난 연기력이 돋보인 작품이었다.

    그런데 또다시 이 시원한 발레 ‘스파르타쿠스’를 볼 수 있게 됐다. 국립발레단이 4월20일부터 25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시베리아 중심도시 노보시비르스크(뉴 러시아) 발레단의 주역들과 함께 무대에 오르는 것. 아름다운 보디라인과 갈수록 풍부해지는 표현력으로 관객을 사로잡는 한국 최고의 발레리나 김주원이 프리기아 역으로 이원국과 호흡을 맞추며, 노보시비르스크 발레단의 비탈리 폴로브니코프와 안나 오딘쇼바가 러시아 커플로 출연한다. 특히 장대한 군무 장면을 위해 70명에 이르는 국립발레단과 노보시비르스크 발레단의 남성 단원이 총출연, 파괴력 넘치는 장면을 선보일 예정이다.

    한·러 춤꾼들이 부활시킨 ‘스파르타쿠스’
    놀라운 변신이다. 2005년 세종문화회관에서 서울시향과 협연하며 클래식 무대에서 박수를 받았던 곱상한 외모의 클래식 바이올리니스트 데이비드 가렛이 로커 커트 코베인처럼 변했다. 겉모습만 변한 것이 아니다. 음악도 변했다. 거장 이다 헨델, 예후디 메뉴인, 이작 펄만을 사사한, 훤칠한 키(190cm)의 그가 이번에는 클래식 애호가뿐 아니라 대중음악 애호가도 끌어들일 수 있는 크로스오버 앨범 ‘프리(Free)’를 발표했다.

    자유와 해방감이 느껴진다. 플라멩코 기타리스트 파코 페냐와 함께 녹음한 ‘카르멘 판타지’나 몬티의 ‘차르다쉬’ 같은 집시풍 곡에서는 그의 바이올린이 강렬한 비브라토와 함께 울고, ‘웨스트사이드 스토리’의 ‘섬웨어(Somewhere)’에서는 한없는 부드러움으로 감미롭게 노래한다. 엔니오 모리코네의 ‘라 칼리파’를 첫 곡으로 담은 이 앨범은 ‘파가니니 랩소디’나 ‘왕벌의 비행’ 같은 클래식 레퍼토리뿐 아니라 메탈리카의 ‘Nothing else Matters’가 담겨 있어 신선하다. 메탈리카의 음악이 드뷔시처럼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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