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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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

트럼프의 핵 강화 우리에게 나쁜 일일까

오바마의 ‘도덕적 책무감’ 벗어버린 극단적 현실주의의 게임 룰

  • 황일도 화정평화재단 연구위원 shamora@donga.com

    입력2016-12-30 16: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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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에도 역시나 트위터였다. “미국은 세계가 핵무기에 대한 분별력을 갖게 되는 시점까지는 핵 능력을 큰 폭으로 강화하고 확장해야 한다.” 2016년 12월 22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올린 140자 남짓의 메시지 한 줄은 이내 온 세계를 뒤흔들었다. 마침 외신을 통해 타전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핵무기 강화 계획과 맞물리면서 파장은 한층 증폭됐고, 냉전 종식 이후 사반세기 동안 사람들의 뇌리에서 사라졌던 ‘핵 군비경쟁’의 공포가 부활한다는 우려가 쏟아져 나왔다.

    논란이 커지자 트럼프 당선인은 12월 24일 다시 한 번 트위터를 통해 “언론이 핵 발언을 보도하면서 (나의 발언 중) ‘세계가 분별력을 갖게 되는 시점까지’라는 부분을 고의적으로 누락했다. 부정직하다”며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지만, 도발적 언급이 남긴 후폭풍은 사라지지 않았다. 뉴트 깅리치 전 하원의장, 제임스 울시 전 중앙정보국(CIA) 국장 등 대통령선거(대선) 기간 조력했던 실력자들이 지원사격에 나선 것 역시 트럼프 당선인의 언급이 단순한 말실수가 아님을 강력히 시사하는 징후였다.



    오바마와는 정반대로!

    상황이 간단치 않았던 것은 핵 강화라는 정책 방향이 단순히 당선인 본인의 돌발성 아이디어가 아니라는 사실 때문이다. 사실 ‘핵무기를 어떻게 다룰 것이냐’라는 물음은 1945년 일본 히로시마 원폭 투하 이후 미국의 가장 뿌리 깊은 토론 주제에 속한다. 냉전 시기를 통틀어 이는 역대 미 행정부 안보정책의 근간을 규정하는 핵심 질문이었고, 미국은 그 위에서 미묘한 줄타기를 하며 현 지위를 구축해왔다. 요컨대 이는 핵무기 자체뿐 아니라 미국의 군사력 구조 전반에 관한 문제이고, 세계 안보질서의 판을 결정짓는 키워드라는 이야기다.

    먼저 트럼프 당선인 발언의 출발점이 전임자인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의 차별성을 과시하려는 것이라는 분석부터 살펴보자. ‘핵 없는 세계’를 모토로 내건 오바마 행정부가 미국의 전체 군사력에서 핵무기가 차지하는 위상을 최소화하고자 애써왔음은 잘 알려진 사실. 2010년 러시아와 신전략무기감축협정(New START)을 체결한 이래 핵무기 수량 자체를 꾸준히 감축했고, 군부를 중심으로 강력히 요구해왔던 핵무기 개량·현대화 프로젝트는 하염없이 미뤄왔다. 트럼프의 핵 강화 발언은 이러한 흐름을 근본적으로 뒤집겠다는 것으로, 이를테면 ‘오바마와는 정반대(Anything but Obama)’ 기조다.



    그간 오바마 대통령은 미군의 미래전력 역시 재래식무기를 중심으로 재편하겠다는 계획을 공식적으로 추진해왔다. 상대 대도시에 대규모 핵 위협을 가하는 대신, 정밀유도가 가능한 순항미사일 등으로 적의 공격무기를 무력화하는 작전을 전쟁수행의 기본 공식으로 삼겠다는 시도였다. 무인기와 스텔스 전력을 활용해 가상적국의 주요 무기체계를 초기부터 핀포인트 방식으로 격파한다는 이른바 3차 상쇄전략(Countervailing Strategy)이 그 대표적 사례였다.

    그러나 이러한 재래식 정밀무기 중심의 전력 재편 계획이 워싱턴 조야에서 다양한 비판을 받아온 것 역시 사실. 압도적인 기술력을 응용해 민간 피해를 최소화하는 전쟁 개념을 목표로 삼겠다는 의도 자체는 아름답지만, 개발 과정에 막대한 재원 투입이 불가피한 새로운 무기체계가 과연 실전에서 얼마나 효과적일지는 확신하기 어렵다는 문제 제기가 대표적이었다. 쉽게 말해 ‘돈 먹는 하마’로 전락하고 마는 것 아니냐는 우려다. 이제 막 걸음마 단계를 벗어난 레이저나 레일건 등 공상과학영화에서 봤음직한 첨단 무기체계가 대안으로 거론돼온 것 역시 이러한 목소리에 힘을 실어준 배경이었다.

    ‘핵을 활용한 보복능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견해는 정확히 그 반대 지점에 서 있다. 아직 세상에 없는 첨단무기체계 대신 이미 충분히 실효성이 입증된 핵과 탄도미사일을 확충해 압도적 보복능력을 갖추는 게 훨씬 더 믿음직한 대안이라는 반론이다. 오바마가 꿈꾼 전쟁 개념이 상대의 공격무기를 무력화하거나 날아오는 미사일을 중간에 요격하는 방어 중심이었다면, 상대가 한 발이라도 날릴 경우 민간과 군사시설을 가리지 않고 엄청난 핵무기를 퍼부어 응징한다는 개념은 처참한 보복 시나리오에 가깝다. 이를 통해 상대가 아예 도발을 생각조차 못하게 만든다는 게 그 기본 뼈대다.



    최악과 최선의 사이에서

    언뜻 무의미한 돌출 발언처럼 느껴지기 십상인 트럼프의 핵 강화 언급에는 이렇듯 미국의 군사력을 방어 대신 응징보복에 중점을 두고 구축해야 한다는 유서 깊은 주장이 숨어 있다. 핵이라는 무지막지한 주먹을 온 세상에 휘둘러 보이는 게 훨씬 경제적이고도 영리한 태도라는 믿음이다. 핵무기 자체를 일종의 악(惡)으로 인식해 하루빨리 세상에서 없애는 것이 옳은 일이라고 믿었던 오바마 행정부의 도덕주의와, 핵무기 역시 다른 무기들과 마찬가지로 필요하다면 실제 전쟁에서 얼마든지 써먹을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 트럼프 당선인 진영의 극단적 현실주의 사이에 커다란 간극이 똬리를 틀고 있는 셈이다.

    언제나 그렇듯, 미국의 변화는 미국의 변화로만 그치지 않는다. 최근 수년간 러시아와 중국이 스텔스 전투기와 정밀타격능력을 중심으로 한 재래식전력 확충에 몰두해온 것은 역시나 오바마 행정부의 군사력 건설 기조를 따라잡기 위해서였다. 언제나 미국과 전쟁을 전제로 전력구조를 고민할 수밖에 없는 이들로서는 거꾸로 워싱턴이 핵 강화에 나설 경우 역시나 핵 보복능력 확충을 피할 수 없다. 특히 이른바 최소억제(Minimal Deterrence) 개념을 바탕으로 260기 내외에 불과한 핵탄두 수를 유지해온 중국이 먼저 고민에 휩싸일 것으로 보이고, 이미 잠수함발사핵미사일을 증강하겠다고 선언한 러시아 역시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이렇게 주변 강대국의 군사력이 핵을 중심으로 재편되면 한반도도 후폭풍을 피할 길이 없다. 당장 북한은 한층 더 핵 능력 강화에 매달리게 될 것이므로 비핵화는 요원해진다고 예상하는 전문가가 다수인 이유다. 그러나 거꾸로 보자면 이러한 흐름이 반드시 한국에게 불리하게만 작용할지는 따져봐야 한다는 반론도 만만찮게 설득력이 있다. 당장 미국의 핵우산 신뢰성 문제가 대표적 사례라는 것이다.

    ‘핵 위협을 가하는 초강대국’이라는 이미지를 피하고자 애썼던 오바마 행정부는 그간 반복되는 북한 핵실험에도 유사시 대규모 핵 보복공격 의지를 노골적으로 과시하는 일에 난색을 표했다. 그러나 거꾸로 핵우산에 대한 한국 측 불신이 커지면 독자 핵무장론이 힘을 얻으리란 우려도 피할 수 없었다. 재래식 억제와 미사일방어(MD), 핵우산을 모두 포괄하는 ‘확장억제(Extended Deterrence)’라는 표현만 반복해서 사용한 것 역시 이러한 백악관의 곤혹스러운 처지 때문이라는 분석이 꾸준히 제기된 바 있다. 2016년 10월 열린 한미 연례안보협의회(SCM)와 12월 20일 열린 고위급 확장억제전략협의체(EDSCG)에서 우리 측이 요구한 전략자산 상시 배치에 대해 미국 측이 난색을 표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향후 미국이 핵 사용을 대놓고 과시할 경우 전략폭격기와 핵잠수함 등 미군 전략자산의 대규모 한반도 전개 같은 ‘위협용 이벤트’는 지금보다 훨씬 수월해질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거꾸로 보자면 북한의 도발과 트럼프 행정부의 강경대응이 맞부딪혀 한반도 긴장지수가 치솟는 일이 반복되는 최악의 시나리오도 배제하기 어렵다. 북핵 문제라는 측면에서만큼은 오바마 행정부 8년보다 트럼프 행정부 시기가 훨씬 험난할 것으로 예상되는 이유다.

    반면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문제로 대표되는 최근 현안이 전혀 다른 방향으로 뻗어나갈 개연성도 충분하다. 앞서 말했듯 트럼프 본인은 물론, 안보 분야 주요 참모 중에서도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는 방어형 첨단무기 개발의 실효성에 회의적인 시각을 피력한 경우가 적잖기 때문. 미사일방어체계 구축이 공화당의 오랜 의제였던 만큼 단정하긴 이르지만, 핵 보복능력을 강화한다는 기조가 뿌리를 내리고 나면 사드 문제에 대한 백악관의 의지 역시 힘이 빠질 공산이 적잖다. 특히 지금처럼 미군 국방비로 구매한 체계를 동맹국에 배치하는 방안이 살아남을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는 것. 2016년 11월 미 대선 이후 미 국방부와 주한미군사령부를 중심으로 사드 배치를 조기에 끝내려는 움직임이 가시화된 것도 같은 맥락에서 풀이할 수 있다.



    질서의 변화, 구조의 변화

    더욱이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트럼프 당선인의 핵 강화 정책이 노리는 타깃이 러시아보다 중국일 것이라는 분석이 힘을 얻는다. 당장은 세계 1, 2위를 다투는 미·러 두 나라의 핵 군비경쟁 시나리오가 도마에 올랐지만, 트럼프 당선인의 최근 행보는 오히려 러시아의 손을 잡은 채 중국을 포위하려는 ‘새로운 냉전’에 가까워 보이기 때문. 무역 불균형과 환율 문제로 상징되는 경제 이슈에서부터 베이징을 길들이겠다는 의지가 또렷이 묻어난다. 핵전력 규모만 놓고 보면 미국의 30분의 1에 불과한 중국이 워싱턴의 핵전력 강화에 대응하려면 엄청난 군사비 지출이 불가피하다. 가뜩이나 경제성장 둔화로 고전을 면치 못하는 상황에서 새로운 출혈을 피할 수 없게 된다.

    두 나라 사이에 그려지는 대립선이 한반도 미래에 긍정적으로 작용할지, 부정적 파장만 남길지는 아직 단정하기 일러 보인다. 분명한 것은 트럼프 당선 이후 적잖은 국내외 전문가가 쏟아낸 ‘희망 섞인 예측’이 빗나갈 개연성이 한층 커졌다는 사실이다. 의회 중심의 의사결정 체계와 전문관료들의 강한 발언권, 오랜 기간 뿌리내린 국익 중심의 사고방식을 감안할 때 트럼프 한 사람으로 미국 안보정책의 골간이 흔들리긴 어려울 것이라는 예상이 주를 이뤘지만, 아직 임기도 시작하기 전에 세상을 놀래키는 일이 반복되고 있기 때문. 어쩌면 이는 단순한 정책 변화가 아니라 세계 질서의 변화, 구조의 변화일지도 모를 일이다. 게임의 룰 자체가 달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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