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52

2006.09.12

책이 책을 부른다

  • 출판칼럼니스트

    입력2006-09-11 11: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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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이 책을 부른다
    책을 읽다 보면 책이 책을 부르는 경험을 하게 된다. 책이 책을 부르는 방식이야 여럿이지만 책 속에 언급된 책을 따라 읽는 게 가장 흔하다. 그리고 이런 이유 때문에 간혹 뜻하지 않게 팔려나가는 책들이 생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가 한참 인기를 끌던 2000년 무렵, 갑자기 ‘위대한 개츠비’가 베스트셀러에 오른 적이 있다. 이유는 오직 하나, ‘상실의 시대’ 주인공 와타나베가 “죽은 지 30년이 되지 않은 작가의 작품은 읽을 가치가 없어”라며 ‘위대한 개츠비’를 소설 속에서 읽었기 때문이다.

    최근 베스트셀러 중에도 이렇게 한 권의 책이 계기가 돼 다른 책까지 화제가 된 경우가 있다. 김현근의 ‘가난하다고 꿈조차 가난할 수는 없다’가 그 주인공인데, 저자인 김현근은 외환위기로 아버지가 실직한 어려운 가정형편에도 굴하지 않고 노력해 한국과학영재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한 뒤, 미국 프린스턴대학에 수시 특차 합격했다. 5월에 출간된 이래 지금까지 10만 부 정도 팔렸을 뿐만 아니라 인생의 역경을 딛고 일어선 휴먼스토리라는 점 때문에 김현근에게는 강연과 방송 요청이 줄을 잇고 있다. 재미난 것은 건 김현근의 책이 화제가 되자 덩달아 홍정욱의 ‘7막7장 그리고 그후’까지 팔려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아예 서점에서는 ‘가난하다고 꿈조차 가난할 수는 없다’ 옆에 ‘7막7장 그리고 그후’를 나란히 진열하고 있다.

    김현근은 초등학교 5학년 때 아버지 책장에서 발견한 ‘7막7장’이라는 책을 홀린 듯 읽고 난 뒤, 세상에는 서울대 말고 하버드대학도 있다는 사실을 알았고 아이비리그로 유학을 꿈꾸게 됐다고 한다(홍정욱 역시 미국 대학 진학을 결심하게 된 동기가서점에서 우연히 본 ‘무서운 아이들’이라는 한국인의 하버드 유학 체험기였다고 밝힌 바 있다).

    ‘7막7장’은 1993년 출간돼 100만 부 이상이 팔리며 당시만 해도 소수의 상류층 자녀들로 한정되었던 조기유학 열풍을 일으킨 책이다. 하버드대학 졸업까지의 이야기를 담은 ‘7막7장’에 헤럴드미디어의 CEO가 되기까지 10년간의 이야기를 추가한 개정판이 ‘7막7장 그리고 그후’다. 2003년에 출간된 개정판은 현재까지 12만 부 정도가 팔렸는데, 최근 한 달 만에 2만 부가 팔려나갔다. 7월 말에 방송된 ‘피플 세상 속으로’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김현근이 홍정욱을 직접 만나는 장면이 전파를 타면서부터다. 손자나 자녀에게 선물하겠다며 ‘가난하다고 꿈조차 가난할 수는 없다’를 구입하는 독자는 대부분 ‘7막7장 그리고 그후’까지 한 권 더 산다고 한다.

    홍정욱과 김현근은 책이 만든 길을 따라 자신의 길을 개척하고 다시 책을 통해 후배들에게 길을 보여준 셈이다. 책의 길은 이렇게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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