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52

2006.09.12

전교조 핵심세력 ‘교찾사’를 아시나요

각종 마스터플랜 짜는 브레인 역할 … 시·도 지부장 다수 소속된 ‘혁단’과 경쟁 관계

  • 김진수 기자 jockey@donga.com

    입력2006-09-06 15:53: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전교조 핵심세력 ‘교찾사’를 아시나요

    전교조는 8월30일 대전 청소년수련관에서 연대의원대회에서‘10월 총력투쟁’을 결의했다(큰 사진). 친북 논란을 불러왔던 전교조 부산지부 통일위원회 통일교재.

    전국교직원노동조합(위원장 장혜옥·이하 ‘전교조’)이 8월30일 대전에서 연 임시대의원대회에서 △학교 급식에 우리 농산물 이용 △학생 체벌 금지 △부교재비 인하 △소외 학생을 위한 지역공부방 활성화 등을 강화하는 내용의 특별결의문을 채택한 데 대해 몇몇 언론은 투쟁 일변도의 전교조가 이른바 ‘일상적 교육운동’ 강화로 활동 노선을 전향(轉向)하려는 신호탄이 아니냐는 성급한 예측을 내놓았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전교조 이민숙 대변인은 “이번 대의원대회는 4월 전국대의원대회에서 교원평가 저지, 학교자치 실현, 신자유주의 교육정책 저지 등 총력투쟁 안건과 함께 2006년 2대 핵심 과제로 확정된 아이들 살리기 운동을 구체화하기 위한 것”이라며 “총력투쟁과 일상적인 참교육 실천활동은 한 몸으로, 분리할 수 없는 것”이라고 못 박았다.

    PD 계열로 전교조 내에선 ‘좌파’로 통해

    말하자면 일상적 교육운동의 강화는 이례적인 일이 아니며, 전교조의 투쟁 기조엔 아무런 변화가 없다는 의미다. 실제로 전교조는 이날 대의원대회에서 차등성과급제 및 교원평가제 시행 저지를 위한 10월 중 연가투쟁 등 총력투쟁을 벌이기로 결정했다.

    이쯤에서 드는 궁금증 한 가지. 그렇다면 전교조의 투쟁 기조가 최고의결기구인 대의원대회를 거쳐 확정되기까지 물밑에서 ‘마스터플랜’을 짜는 브레인 역할은 누가 맡고 있는 것일까.



    전교조 안팎의 분석에 따르면, 현재 전교조의 핵심 세력은 전교조 내 최대 의견그룹(전교조 내부에선 ‘정파’라는 표현도 쓴다)인 ‘교찾사’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교육과 노동을 찾는 사람들’이라고 잘못 아는 사람도 있지만, 정확한 명칭은 ‘교육노동운동의 전망을 찾는 사람들’.

    교찾사의 태동은 1999년 전교조 합법화 전후로 알려진다. 87년 9월 출범한 전국교사협의회(전교협)를 전신(前身)으로 해 89년 5월 탄생한 전교조는 합법화 이전인 ‘법외노조’ 시절, 집행부를 직선제로 선출했다. 이 시기에 자연스레 선거 파벌이 생겨났고, 한편으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과의 협력이 긴밀해지면서 전교조 핵심 활동가들의 외연(外延)이 확대됐다. 그리고 합법화 이후 전교조 초대 위원장(통산 제8대)인 이부영 씨의 당선과 2000년 민주노동당 창당을 맞아 교찾사도 활동을 시작했다고 한다.

    전교조 핵심세력 ‘교찾사’를 아시나요

    교원평가제 등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에 대한 반대투쟁은 PD 계열인 ‘교찾사’의 ‘작품’이다. 지난해 11월 전교조 본부 사무실에서 교원평가제 반대 기자회견을 갖고 있는 조합원들.

    이념 노선이 전교조 집행부 구성의 절대적 조건은 아니다. 그럼에도 교찾사는 이념적으로 PD(민중민주) 계열에 가깝다. 합법화 이전엔 이념 구분이 무의미했지만 합법화 직후의 이부영 위원장을 비롯, 원영만(제10대) 위원장과 현 장혜옥(제12대) 위원장은 PD 계열로 분류된다. 반면 이수호(제9대), 이수일(제11대) 위원장은 NL(민족해방) 계열로 분류된다.

    교찾사는 서울교찾사, 경기교찾사, 충남교찾사, 충북교찾사, 강원교찾사, 대전교찾사, 인천교찾사 등 지역조직을 두고 있다. 여기에 소속된 전교조 조합원은 800여 명가량. 이 가운데 핵심 활동가는 200~300여 명으로 추산된다. 교찾사 회원 중 일부는 인터넷을 통해서도 교류한다. 실제로 포털사이트 ‘프리챌’에는 460여 명이 ‘교찾사 2004’라는 커뮤니티를 만들어 활동 중인 것으로 취재과정에서 확인됐다. 운영자의 승인을 받아야 가입이 가능하다.

    교찾사는 전교조 내에서 ‘좌파’로 통한다. 계급 지향성을 띠고 노조로서의 활동을 우선시하며, 한국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타파하는 사업에 치중한다. 성향도 강성이다. 2003~04년 위원장을 맡은 원영만 씨와 현 장 위원장은 교찾사의 핵심 회원이다. 교찾사의 수장(首長)은 조희주 전 부위원장으로 알려지고 있다.

    전교조의 내부 상황에 정통한 전교조 간부 출신 인사는 “현 장혜옥 집행부는 곧 교찾사의 동의어나 다름없을 만큼 주요 간부 대다수가 교찾사 활동가로 채워져 있다”고 밝혔다. 그는 또 “9만여 명에 달하는 조합원 중 절대다수가 교찾사의 존재조차 모르고 있다는 사실은 그만큼 교찾사의 활동이 공개적이지 못하다는 방증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교선보연대’도 회원 1500여 명 보유

    교찾사와 함께 전교조의 한 축을 이루는 의견그룹이 ‘혁단’이다. 혁단은 ‘혁신과 단결을 위한 전국교사 모임’의 줄임말. 전교조 내에선 ‘우파’로 통한다. 혁단의 이념 노선은 NL 계열에 가까우며, 대중적인 참교육 실천운동을 주된 사업으로 한다. 교찾사에 비해 느슨한 조직 형태로, 온건 성향을 띤다.

    혁단에는 전교조의 전국 16개 시·도 지부장 중 12명가량이 소속돼 있지만, 조직력은 교찾사만큼 강하지 않다. 중심인물로는 이수일 전 위원장과 김민곤 전 부위원장 등이 꼽힌다. 6월, “지금의 전교조는 교육 발전에 도움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방해만 되는 세력”이라며 직격탄을 날린 김진경 전 청와대 대통령교육문화비서관도 친(親)혁단 인사로 분류된다.

    혁단의 교찾사와 두드러진 차이는 전교조 집행부 선거 시 투표 블록으로서 기능할 뿐 교원평가, 방과후 학교, 차등성과급제, 교장 공모제 등 참여정부의 이른바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에 강력히 반대하는 이데올로그 역할엔 적극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이는 혁단이 2002년까지 존재한 소규모 의견그룹인 ‘참솔’과 ‘교육과 노동 포럼’이 교찾사에 맞서 2003년 선거연합의 결과로 탄생한 ‘연합군’인 사실과도 무관하지 않다.

    전교조 내 의견그룹엔 교찾사와 혁단만 있는 건 아니다. ‘교선보연대’도 있다. 교선보연대의 공식 명칭은 ‘교장선출보직제와 학교자치 연대’다. 2003년 출범했으며, 김대유 교사(서울 서문여중)가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회원 수는 1500여 명이지만, 지역에 지부를 두고 있진 않다. 그러나 교찾사 진영에 대한 내부 비판은 서슴지 않는다. 6월, 교장 공모제 반대투쟁과 관련해 장 위원장의 공개 사과 및 정책실장의 교체를 촉구한 것이 그 예다. 교찾사가 교육정책과 관련한 대(對)정부 투쟁에 주력한다면, 교선보연대는 학교라는 테두리 안에서 학생과 학부모를 ‘억압’하는 교장에 대한 투쟁을 전개한다는 데 차이가 있다.

    교찾사와 혁단은 상호 경쟁과 견제의 관계에 있다. 따라서 두 의견그룹은 떼놓고 언급하기가 곤란하다. 대표적 사례가 얼마 전 벌어진 이른바 ‘충남교찾사 사건’이다. 충남교찾사 홈페이지에 전교조 충남지부 전체 조합원의 이름과 e메일 주소 등이 조합원들의 동의 없이 게재되자 혁단 측이 “교찾사가 조합원보다 선거를 먼저 챙긴다”고 비판한 것. 전교조 충남지부 집행부는 혁단 소속이다. 이 사건은 대외적으로 표면화되지는 않았다.

    전교조의 한 조합원은 “조합원들의 개인정보는 전교조 본부 정보통신국이 관리하는데, 선거기간에만 전교조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제한적으로 제공해야 한다”며 “충남교찾사 사건은 본부 집행부를 장악한 특정 정파인 교찾사가 지부 조합원의 개인정보를 점유, 차기 선거에 활용하려 했다는 점에서 ‘권력의 사유화’라고 본다”고 말했다.

    강경파인 교찾사와 온건파인 혁단의 갈등은 2005년 11월 당시 이수일 위원장의 사퇴로까지 이어지기도 했다. 전교조가 교원평가제 시범운영을 저지하기 위해 강행하려던 연가투쟁을 두고 조직 내 강온파의 대립이 벌어진 끝에 결국 혁단 진영이 지지하던 이 위원장이 2006년 12월까지인 임기를 채우지 못한 채 사퇴에 이른 것. 이에 따라 교찾사는 올해 3월 이뤄진 보궐선거에서 현 장혜옥 집행부를 출범시켰고, 이로써 원 위원장 시절에 이어 전교조 내 제1 정파의 입지를 다시 한번 다지게 됐다. 장 위원장은 전교조가 교육정보시스템(NEIS) 도입 문제를 놓고 정부와 정면 충돌을 빚던 2003~04년 당시 전교조 수석부위원장이었다.

    대다수 조합원은 교찾사·혁단과 무관

    그러나 전교조의 대다수 조합원들은 교찾사나 혁단과 무관하다. 때문에 혁단과 교찾사에 쓴소리를 던지는 조합원도 적지 않다. 이수일 위원장의 사퇴 당시, 교찾사 회원으로 원 위원장 시절 전교조 대변인을 지낸 송원재 교사(서울 공항고)와 ‘페르귄트’라는 ID를 쓰는 수원의 한 교사 사이에 인터넷 상에서 벌어진 ‘교찾사 논쟁’이 대표적 사례다.

    3월, 저서 ‘교사의 사회의식과 전교조’를 펴낸 경상대 정진상 교수(사회학)는 “대중조직의 성격을 띤 노조에서 의견그룹의 존재는 자연스런 현상이며, 그 활동이 공개적인 토론과 경쟁으로 이어지면 조직의 건강성을 담보할 수 있다”면서도 “정파 투쟁에 매몰될 경우 조직 발전에 폐해로 작용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동안 전교조와 관련하여 벌어진 일련의 사태와 투쟁들이 교찾사나 혁단 중 어느 특정 진영에서 조직적으로 전개한 것으로 보기는 어려운 측면이 없지 않다. 참여정부 출범 직후 불거진 NEIS 반대투쟁을 비롯해 최근의 수준별 수업과 교원평가제에 대한 반대투쟁, 차등성과급 반납투쟁 등을 교찾사 진영이 이끈 것은 사실이지만, 대정부 투쟁인 만큼 선명성을 지녀 정파와 무관한 다수 조합원의 지지를 얻었기 때문이다.

    한편, 북한 역사책을 베낀 통일교재를 활용한 전교조 부산지부 통일위원회의 교사 연수, 서울지부의 북한 ‘선군(先軍)정치’ 포스터 교실 게재 권장 등은 ‘돌출행동’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 전교조 내부 소식에 밝은 한 인사의 얘기다. 그는 “전교조의 통일운동 노선은 교찾사 차원이라기보다 전교조 통일위원회가 지휘한다”며 “통일교재 건은 전교조 본부 차원에서 ‘기획’한 일이 아니라 부산지부의 돌출행동을 본부 측이 몰랐던 측면이 있다”고 귀띔했다.

    전교조의 위원회 중 하나인 통일위원회는 이데올로그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히는 박미자 씨가 위원장으로 있다. 박 위원장은 이수일 전 위원장의 퇴진을 강력히 주장한 ‘5인방’ 가운데 한 명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또 2005년 7월 평양에서 열린 ‘남북 교육자 통일행사’에 전교조 대표로 참석했다.

    창립 17년을 맞은 전교조는 11월 새 집행부 선출을 앞두고 있다. 교찾사 진영과 혁단 진영의 힘겨루기는 어떤 결과를 불러올까. 전교조의 한 관계자는 “이미 두 의견그룹이 선거를 위한 물밑작업에 돌입했다”고 전했다.

    ‘교찾사’의 이론적 토대, 진보교육연구소

    교찾사 회원 대상으로 정치학교 열어


    전교조 핵심세력 ‘교찾사’를 아시나요

    진보교육연구소 홈페이지.

    교찾사의 이론적 토대 구실을 하는 기관이 진보교육연구소다. 서울 용산구 갈월동에 사무실을 둔 이 연구소는 전교조가 합법화된 1999년 7월1일의 이틀 뒤 문을 열었다. 진보교육연구소는 ‘신자유주의적 교육개혁을 반대하고 새로운 사회로의 도약을 위해 진보적인 교육운동의 이론적·실천적 토대를 만들어 나가려는 연구모임’이라고 스스로의 정체성을 밝힌다.

    진보교육연구소의 설립은 1997년 하반기 진보적 교육운동 진영의 조직적 연구단위로서 교육연구소 설립의 필요성에 대한 논의가 전개되면서 이듬해 2월 준비모임이 만들어지고, 두 달 뒤 가칭 ‘21세기 교육연구소 설립추진위원회’를 결성함으로써 성사됐다. 당시 추진위원장은 원영만 위원장 시절, 전교조 교섭국장을 맡았던 김종연 교사(서울 개포고)다.

    진보교육연구소는 교찾사 진영과 함께 1999년부터 2004년까지 해마다 일종의 ‘정치학교’격인 워크숍을 개최함으로써 교찾사 회원들에게 이론적 바탕을 제공해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진보교육연구소 관계자는 “2005년 이후엔 교찾사의 요청이 있을 때만 워크숍을 연다. 지금은 교찾사와 같이하는 행사가 없다”고 답했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