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29

2006.04.04

‘위조 보안관’ 홀로그램 갈수록 체면 구기네

화폐·신분증·여권 보안 방벽 허물어져… 3차원 홀로그램 개발 등 가능성은 여전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입력2006-03-29 18: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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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조 보안관’ 홀로그램 갈수록 체면 구기네

    홀로그램은 여권 지폐 신용카드 등의 보안성을 높이는 도구로 이용되고 있다.

    와인냉장고에 넣어둔 1982년산 프랑스 와인 ‘샤토 페트루스’(시가 약 300만원)가 가짜라면? 정교한 상표 위조 기술을 등에 업고 짝퉁 샤토 페트루스를 비롯해 가짜 최고급 와인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위조 와인이 전 세계적으로 창궐하자 프랑스 와인 업체들은 앞 다투어 라벨에 위조 방지용 ‘홀로그램’을 씌우고 있다. ‘보르도마고’의 상표엔 홀로그램뿐 아니라 숨은 문자가 세밀하게 조각돼 있다.

    세계 각국의 신분증, 여권, 지폐, 상품권, 신용카드에도 위조를 막기 위해 홀로그램이 부착되고 있다. 한국은행을 당혹스럽게 한 새 5000원권의 리콜 사태도 ‘홀로그램이 없는’ 지폐가 발견돼 불거진 일이다.

    이렇듯 위조 시장이 확대되면서 홀로그램 제작사들은 대호황을 맞았다. 아름답기로 소문난 유로화의 홀로그램을 납품하는 한 업체는 10여 곳의 명품 업체에 홀로그램을 팔고 있다. 국내 업체들도 수요가 늘어 즐거운 비명을 지른다.

    그렇다면 홀로그램은 ‘방패’ 구실을 얼마나 잘하고 있을까. 결론부터 얘기하면 “아니올시다”다. ‘루이비통’의 핸드백, 구두에 새겨진 홀로그램은 중국에서 정교하게 위조된다. 보안 전문가들은 지폐에 장착된 홀로그램도 보안성을 잃어가고 있다고 말한다.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구축한다’는 옛말에서 미뤄볼 수 있듯 위조는 고대부터 이어져왔다. 1101년에 발행된 고려시대 화폐 은병(銀甁)이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진 것도 위조가 성행해 ‘신뢰’를 상실했기 때문이다.

    홀로그램 제작사 대호황

    1988년 홀로그램이 호주 지폐에 위조 방치 장치로 도입됐을 때 보안 전문가들은 “1000년 넘게 이어져온 위폐와의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선언했다. 홀로그램을 위조하려면 화폐가치보다 높은 비용이 드는 만큼 위조가 사라질 거라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섣부른 ‘승전보’를 비웃기라도 하듯 위조기술은 20년 동안 더욱 정교해졌다. 중국에 똬리를 틀고 주민등록증, 여권, 운전면허증을 위조하는 업자들은 한국 공문서의 홀로그램을 위조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라고 말한다.

    “학생증, 사원증을 만드는 카드프린터로 인쇄한 뒤 홀로그램 제조기를 사용해 홀로그램을 덧씌우는 방식으로 주민등록증을 위조하고 있다.”(공문서 위조 브로커 K 씨)

    ‘위조 보안관’ 홀로그램 갈수록 체면 구기네
    2008년쯤에 보급될 새 주민등록증 시안. 정부는 위조 방지기능이 강화된 새 주민등록증 제작에 나섰다. 새 주민등록증은 지문, 주소, 인증서, 비밀번호 등을 IC(집적회로)칩에 저장해 숨김으로써 개인정보 유출을 막을 계획이다. 주민증 겉면엔 사진과 영문 및 국문 이름, 생년월일, 성별, 발급번호만 인쇄된다. 새 주민등록증에 적용될 위조 방지기술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는데, 전문가들은 비용이 다소 들더라도 보안성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위조 보안관’ 홀로그램 갈수록 체면 구기네

    <b>홀로그램이란</b><br>레이저를 이용해 2차원 문양을 3차원 입체로 도드라져 보이게 만드는 기술. 1947년 영국의 데니스 게이버가 수학적으로 계산해냈다. 그는 이 업적으로 71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63년 미국의 한 기술자에 의해 실현됐는데, 88년부터 공문서 지폐 등의 위·변조 방지 장치로 이용돼 왔다. 미래 컴퓨터에 쓰일 대용량의 데이터 저장 기술로도 주목받고 있다.

    한국의 새 5000원권 지폐를 비롯해 신용카드, 보안카드에 장착된 홀로그램도 보안성을 잃어가기는 마찬가지. 인쇄기, 스캐너, 컬러프린터, 카드프린터의 성능이 크게 향상되면서 비롯된 일이다.

    한국의 새 5000원권은 홀로그램 위조로 골머리를 앓아온 유로화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요판인쇄로 세 가지 무늬가 번갈아 나타나는 3중 홀로그램을 적용했다. 또 홀로그램을 따로 위조해 지폐에 붙이는 것을 막기 위해 홀로그램 아래에 볼록문자를 인쇄했다. 그럼에도 새 5000원권의 보안성에 대한 국내외 전문가들의 평가는 인색하다.

    “홀로그램은 비용이 많이 들지만 효과가 적어 시장성을 잃고 있다. 상업시장에서 판매가 이뤄져 위조범들이 홀로그램을 구입할 수도 있다.”(호주의 지폐 보안전문가 B. A. 하드윅)

    명품 브랜드들도 적외선 잉크 도입(세관에서 위조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을 검토하는 등 홀로그램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프라다’의 보안책임자 클라우디오 디 사바토는 ‘월스트리트저널’과 한 인터뷰에서 “아무 노력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홀로그램도 이미 복제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위조기술’이 득세하면 ‘방지기술’도 진화하게 마련. 낮은 수준에서의 보완책은 벌써부터 실행되고 있다.

    예컨대 명품 브랜드 ‘펜디’는 홀로그램 위조가 성행하자 로고의 ‘F’자에 붙은 홀로그램에 특수 스캐너로 읽을 수 있는 ‘비밀 코드’를 추가로 숨겨놓았다. 스위스는 레이저로 구멍을 내 액수를 표시한 최첨단 지폐를 98년부터 발행하고 있다. 호주, 뉴질랜드, 멕시코 등은 플라스틱 소재인 ‘폴리머’로 지폐를 만든다. 호주는 폴리머 기술을 수출해 쏠쏠히 재미를 보고 있다.

    “위조되지 않는 보안장치는 없다”

    과학자들도 위조를 근절할 ‘비책’을 마련하기 위해 눈을 벼리고 있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학 후안 히네스트로사 교수는 지름이 150nm(나노미터, 1nm는 10억분의 1m)인 특수섬유를 개발했는데, 옷을 만들 때 이 섬유를 첨가하면 스캐너를 이용해 진품 여부를 쉽게 판독할 수 있다. 나노 섬유는 지폐에도 적용할 수 있다. 나노 입자가 덧씌워지지 않은 위조지폐는 앞으로 보급될 상점용 위폐감별기, 은행의 현급지급기(ATM)에서 자동으로 걸러진다.

    ‘종이 지문’을 통해 지폐와 공문서 위조를 막자는 주장도 제기된다. 영국 임페리얼대학 러셀 코우번 교수는 ‘네이처’에 기고한 논문에서 종이에 레이저를 쪼여 ‘밝음’과 ‘얼룩’으로 이뤄진 ‘식별 무늬(지문)’를 만들고, 이를 디지털로 저장해 공적인 용도로 쓰이는 종이에 새겨넣자고 제안했다.

    ‘역전의 용사’ 홀로그램도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 지금은 천덕꾸러기가 되어가고 있지만, 위조방지 기술로서 홀로그램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홀로그램을 이용한 사이버섹스를 떠올려보자.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2002년)에서 존 앤터튼(톰 크루즈 분)이 ‘촉각 장치’를 덮고 눕자, 옷을 벗은 미모의 여성이 올라타 자극하는데, 이러한 ‘3차원 홀로그램’이 위조 방지에 쓰일 수 있다. 현재의 홀로그램은 3차원 영상은 아니다. 눈의 착시 효과를 이용해 영상이 입체로 보이도록 만든 것.

    일본 게이오대학 연구팀은 올 초 레이저를 공간의 한 점에 집중시켜 초점 근처의 공기를 플라스마 상태로 만들어 빛을 내는 원리를 이용, 3차원 공간에 이미지를 표시하는 장치를 개발했다. 현재는 초점부터 3~4m 거리에 1초에 100개 정도의 점을 표시하는 수준이지만, 지폐 위 3~4cm 공간에 위폐 방지용 3차원 홀로그램을 구현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그렇다면 인류는 과학기술로 위조를 뿌리뽑을 수 있을까. 한국과학기술원(KAIST) 이용희 교수(물리학)는 고개를 가로젓는다.

    “위조방지 장치로서의 홀로그램은 계속 진화해나갈 것이다. 현재 기술로도 한동안 위조를 효율적으로 막아낼 수 있는 홀로그램 제작이 가능하다. 다만 비용이 많이 들어 사용하지 못하는 것뿐이다. 그러나 보안기술이 발전하면 위조기술도 도약한다. 위조되지 않는 보안장치는 없다고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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