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24

2006.02.28

CEO 생존 비법? 실적과 혁신!

구 회장 인사 스타일 큰 변화 … 강유식·김쌍수 등 전통의 LG맨부터 외부 영입 인사까지 막강 진용 구축

  • 윤영호 기자 yyoungho@donga.com

    입력2006-02-22 18: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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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EO 생존 비법? 실적과 혁신!

    구본무 LG 회장, 강유식 ㈜LG 부회장, 김반석 LG화학 사장, 남용 LG텔레콤 사장, 구본준 LG필립스LCD 부회장, 김쌍수 LG전자 부회장(왼쪽부터)

    “아무리 가족이라도 실무 경험을 쌓아서 능력과 자질을 키우지 않는다면 승진도 할 수 없고, 중책도 맡기 어려울 것이다.”

    지금은 경영 일선에서 은퇴한 구자경 LG 명예회장이 평소 강조하던 말이다. 구인회 창업 회장의 장남으로 태어나 한때 교사 생활을 하다가 락희화학 공장관리직으로 들어가 고된 경영수업을 받은 뒤 45세 때 그룹 회장직을 승계한 구자경 명예회장으로서는 당연한 얘기일 것이다. 구본무 회장은 이에 따라 과장, 부장, 이사, 상무, 부사장, 부회장 등의 직위를 차례로 거치면서 20여년간 풍부한 실무 경험을 쌓았다. 구 회장은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LG를 전자·화학 중심의 글로벌 기업으로 변모시켰다는 평을 받고 있다.

    과거 LG는 CEO(최고경영자) 인사에서 실적과 함께 연공서열이나 가족관계를 중요한 기준으로 삼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고 구인회 창업 회장이 유교적 전통이 강한 집안의 장남으로 성장한 데다 LG가 구씨, 허씨 집안의 동업으로 시작됐다는 점이 영향을 미쳤다는 게 LG 안팎의 분석이다. 다른 그룹에 비해 스타 CEO가 별로 배출되지 않는 이유도 LG의 이런 인사 스타일과 무관하지 않았다는 평이다.

    그러나 이를 달리 해석하면 오늘날 LG의 성장에는 창업주 집안의 땀과 눈물이 배어 있다는 얘기가 된다. 1995년 구본무 회장 취임과 함께 경영 일선에서 창업 고문으로 물러났던 당시 허준구 LG전선 회장, 구태회 LG 고문, 구평회 LG상사 회장, 허신구 LG석유화학 회장, 구두회 호유에너지 회장 등은 LG의 오늘을 만든 창업 세대라고 할 수 있다.

    최근 들어 구본무 회장의 CEO 인사 스타일은 변하고 있다. 철저히 실적 위주의 인사를 하면서 외부 인사도 과감히 CEO로 받아들이고 있다. 올 초 CEO 인사에서도 실적이 좋지 않은 사장단을 과감히 교체했다. 대신 검증된 외부 인사를 영입했다. 올해 신재철 전 한국IBM 대표를 LG CNS 대표로 영입했고, 지난해에도 한국P&G와 해태제과식품 사장을 지낸 차석용 씨를 LG생활건강 사장으로 발탁했다.



    CEO에 회장실 출신 인사 4명 포함 ‘이채’

    올해 인사에서 새로 선임된 CEO는 앞서 언급한 신재철 LG CNS 사장을 비롯해 김반석 LG화학 사장(전 LG대산유화 대표), 김인철 LG생명과학 사장(전 LG생명과학 의약품사업본부장), 박종응 데이콤 사장(전 파워콤 대표), 이정식 파워콤 사장(전 데이콤 전략기획담당 부사장) 등이다. 철저한 성과주의에 입각해 지속적인 경영 성과를 창출한 임원을 CEO로 발탁했다는 게 LG 측의 설명이다.

    현재 LG의 주요 계열사 16개사 CEO 중 외부 영입 인사는 이들 두 사람이다. 주요 CEO 16명의 평균 연령은 56세다. 이 가운데 과거 그룹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했던 회장실 출신 CEO는 김태오 서브원 사장, 남용 LG텔레콤 사장, 박종응 데이콤 사장, 이정식 파워콤 사장 등 4명이다.

    CEO 생존 비법? 실적과 혁신!
    지주회사인 ㈜LG의 강유식 대표이사 부회장은 구본무 회장을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보좌하는 최측근 참모다.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일명 쌍둥이빌딩) 동관 30층에 마련된 구본무 회장실 바로 옆에 그의 집무실이 있는 것만 봐도 이를 알 수 있다. 57년에 이르는 구씨, 허씨 양가의 동업관계 분리 작업을 맡아 깔끔하게 마무리한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는 72년 럭키(현 LG화학)에 입사, 97년 회장실로 오기 전까지 25년을 현장에서 뛰었다. 그의 진가가 발휘된 것은 외환위기 이후 그룹 구조조정본부장을 맡고 나서다. 한 계열사 고위 임원은 “구본무 회장은 강 부회장이 외환위기로 인한 어려운 경영 환경 속에서도 외자유치, 외국 선진기업과의 합작 등 구조조정을 적극 추진했고, 특히 지주회사 체제로의 전환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함으로써 그룹 경영을 안정시켰다는 점을 높이 평가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당시 기업 구조조정 업무를 담당했던 금융감독위원회 관계자도 “강 부회장이 처음부터 방향을 잘 잡고 구조조정 작업을 진두지휘한 것은 평가할 만하다”고 회고했다.

    LG 관계자는 “강 부회장은부드러운 원칙주의자”라며 “평소 온화한 표정으로 임직원을 편하게 대해주면서도 일에 관한 한 원칙과 정도를 견지하고 사업의 본질을 중시하는 전형적인 외유내강형 경영자”라고 평했다.

    김쌍수 LG전자 부회장은 LG의 스타 경영인 가운데 한 사람. 69년 LG전자에 입사한 이후 냉장고공장장, 리빙시스템 사업본부장, 디지털가전 사업본부장 등을 역임하면서 LG전자의 백색가전 사업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린 주인공이다. 입사 이후 줄곧 생산 현장 가까이에서 일해온 김 부회장은 중단 없는 혁신을 강조한다.

    백색가전의 승부사 김쌍수 부회장 “중단 없는 혁신” 강조

    김 부회장의 승부사적 기질이 유감없이 발휘된 것은 97년 말 외환위기 직후였다. 당시만 해도 ‘백색가전은 내수산업’이라는 인식이 강했고, 실제 97년의 경우 내수가 매출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70% 정도였다. 그러던 차에 외환위기로 98년부터 내수가 얼어붙자 사내외에서는 백색가전 사업에 대한 회의적인 전망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당시 김쌍수 부사장이 선택한 전략은 수출 부문 강화였다. ‘사람이 생활하기 위해선 가전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신념으로 프리미엄급 제품 개발 및 외국시장 공략에 나선 것. 김 부사장의 전략은 성과를 나타내 98년 수출과 내수 비중이 50대 50이 됐고, 이후 수출 비중이 내수를 앞질렀다. 위기를 제품 경쟁력을 강화하는 기회로 삼은 전략이 성공한 것이다. 이런 성과에 힘입어 그는 2001년 사장, 2003년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남용 LG텔레콤 사장은 그룹 내에서 영어 실력이 가장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76년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던 해에 LG전자에 입사한 이후 85년까지 수출 기획 등 해외 업무를 담당해왔기 때문이다. 그는 구자경 명예회장 비서실장 시절 완벽한 통역 담당자로 그룹 내에 정평이 날 정도였다.

    영입된 신재철·차석용 사장 조직에 새바람 몰이

    그는 업무에 관한 한 빈틈없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의 밑에 들어오면 혹독한 훈련과정을 거쳐야 한다. ‘견디지 못하면 조직을 떠나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러나 이런 검증 과정을 거쳐 실력을 인정받으면 끝까지 깊은 신뢰로 힘을 실어주는 스타일이다. 98년 10월 LG텔레콤 사령탑을 맡아 LG의 현직 사장 가운데 최고참. 지난해 확고한 흑자 기조를 정착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신재철 LG CNS 사장은 외부에서 발탁된 CEO. 73년 한국IBM에 입사한 이후 23년 만에 한국IBM 대표가 됐고, IBM 아시아·태평양 지역 총괄본부장 등을 맡으면서 우리나라 IT 기술을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린 글로벌 CEO다.

    역시 지난해 외부에서 영입된 차석용 LG생활건강 사장은 그룹에 새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평. 그는 취임 직후 1등 회사를 만드는 1등 인재가 되기 위해선 자기 계발도 해야 한다며 ‘칼퇴근’을 독려하기도 했다. 그는 한국 기업의 조직문화에 상당히 비판적이다.

    “사람이 창의적인 능력을 최고조로 발휘할 때는 20~30대다. 그러나 많은 한국 기업에서는 머리가 딱딱하게 굳어버린 부장이나 임원 밑에서 이들이 대리, 과장으로 10년씩 썩는 구조다.”

    차 사장은 과거의 패러다임으로만 보면 한국적 조직문화에서는 ‘이단아’다. ‘조직 부적응자’로 찍혀 제 발로 걸어나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구본무 회장이 이런 차 사장을 CEO로 발탁한 것을 보면 LG를 글로벌 기업으로 변신시키고야 말겠다는 강한 의지가 읽힌다.

    구본무 회장 가족들은?

    구본준 LG필립스LCD 부회장만 LG 경영에 참여


    CEO 생존 비법? 실적과 혁신!

    LG전자 회장 시절의 구자홍 LS 회장(오른쪽).

    구자경 LG 명예회장은 슬하에 4남2녀를 두었다. 유교적 전통이 강한 집안 분위기로 볼 때 장남 구본무 회장이 부친의 뒤를 이어 그룹 회장직을 승계한 것은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졌다. 현재 구씨 패밀리 가운데 LG 경영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은 구본준 LG필립스 LCD 부회장이 유일하다. 한국 전자업계의 대표적 CEO였던 구본무 회장의 5촌 당숙 구자홍 LG전자 회장도 2003년 9월 말 사임하고 계열 분리된 LS그룹 회장으로 옮겨갔다.

    구본준 부회장은 구본무 회장의 둘째 동생. 첫째 동생 본능 씨와 막냇동생 본식 씨는 일찍이 희성금속·희성엥겔하드그룹으로 분가해 나갔다. 본식 씨는 희성전자 사장을 맡고 있다.

    구본준 LG필립스 LCD 부회장은 오너 경영인보다는 전문 경영인으로 평가받을 만하다. LG필립스 LCD 관계자는 “구 부회장이 외환위기 이후 필립스사와의 LCD 합작을 성공적으로 일궈내 만족스러운 경영 실적을 올리지 못했다면 50%의 지분을 가진 필립스 측이 이미 문제제기를 했을 것”이라면서 “그런 얘기가 없다는 것은 필립스 측도 구 부회장을 유능한 CEO로 인정한다는 증거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바로 이 점이 구 부회장이 LG 경영에 참여하고 있는 배경이기도 하다.

    LG필립스 LCD가 대형 LCD 시장 1위에 올라선 이유 가운데 하나는 대규모 선행 투자를 적기에 했다는 점이다. LG필립스 LCD 관계자는 “외국 회사의 경우 대규모 투자에 신중하게 마련인데, 구본준 부회장이 적기 투자를 이끌어냈다는 것은 합작 파트너인 필립스 측을 잘 설득했다는 얘기가 된다. 그것이야말로 구 부회장의 돋보이는 경영능력 가운데 하나가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구본무 회장도 동생 구본준 회장의 경영 능력을 높이 산다. 지난해 9월 구본무 LG 회장은 계열사 CEO 30여 명을 대동하고 파주 LCD 단지를 방문했다. 구본무 회장은 이 자리에서 계열사 CEO들에게 “짧은 기간 내에 1등으로 올라선 LPL의 강력한 추진력을 배워야 한다” 며 ‘1등 경영’ 현장을 직접 눈으로 보고 배우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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