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17

2006.01.03

朴 vs 朴, 박 터지는 공천 경쟁

민주당 전남지사 후보 놓고 박준영 지사, 박주선 전 의원 격돌 태세 … 당은 흥행몰이 기대

  •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입력2005-12-28 14: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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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朴 vs 朴, 박 터지는 공천 경쟁
    2005년 10월29일, 전남 지역 열린우리당(이하 우리당) 소속 시장과 군수 7명이 박주선 전 의원을 찾았다. 우리당 도당위원장의 지시를 받은 사무처장도 동행했다. 이들은 박 전 의원에게 “우리당 전남지사 후보로 나서달라”고 요청했다. 박 전 의원은 “분당을 반대했던 사람으로 (우리당에) 갈 명분이 없다”며 거절했다. 이들은 11월4일 다시 박 전 의원을 찾아 같은 의견을 전달하고 입당을 요청했다. 그러나 박 전 의원은 역시 제의를 거절했다. 11월 중순에는 이강철 전 대통령시민사회수석이 나섰다.

    “우리당의 전남지사 후보가 돼달라.”

    이 전 수석은 여기에 “대통령 면담을 주선하겠다”는 이야기를 보탰다. 하지만 박 전 의원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대통령에게) 드릴 말씀이 없다.”

    박 전 의원 한 측근은 박 전 의원이 여권의 제의를 승락할 경우 세 번의 구속과 세 번의 무죄를 선고받은 그의 정치 이력에 또 한번 반전의 드라마가 펼쳐질 수 있었음을 시사했다.



    지방선거 출마를 노리는 각 당 후보들의 발걸음이 바빠졌다. 당장은 1차 관문인 당내 경선 통과가 급선무. 민주당 후보로 전남지사 선거에 출마하려는 박준영 전남지사와 박 전 의원도 1차 관문 통과를 위한 신경전을 시작했다. 당초 민주당 전남지사 후보 공천은 박 지사의 독주체제였다. 그러나 박 전 의원이 12월 입당하면서 경쟁구도로 급변했다.

    청와대 함께 근무한 스스럼없는 사이

    민주당은 양박(朴)의 전쟁이 가져올 이해득실에 신경을 곤두세운다. 장고 끝에 당 지도부는 “양박의 경쟁이 흥행몰이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계산서를 손에 쥐었다. 당 대표실 한 관계자의 설명이다.

    “광주와 전남의 표심은 이번 선거를 앞두고 ‘민주당과 우리당’을 놓고 고민하고 있다. 지역 주민들의 이목을 흡수할 대형 재료가 필요했다. ‘양박의 전쟁’이 그 기대치를 충족시키는 흥행몰이 수단이 될 것으로 본다.”

    박 지사 측은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맞아 정무부시장 등 측근들을 통해 대책을 마련 중이다. 박 지사에 대한 지역의 평가는 대체로 호의적이다. 비교적 원칙을 고수하는 그는 ‘힘 있는 전남, 부자 전남, 살고 싶은 전남’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었다. 그는 친환경농업과 J프로젝트 등 전남의 전통과 미래를 아우르는 다양한 정책들을 차분하게 추진했다는 평가도 받는다. 2000여개 섬을 보유한 지역 특성을 살려 섬 관광지화와 J프로젝트를 연계하는 방안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문제는 계획이 아니라 추진력이다. 추진력이 있느냐는 측면에서 박 지사에게는 의문이 따라붙었다. 전남도에 대한 국고 예산은 미미한 데다 전남도의 재정 자립도는 전국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다. 박준영 구상의 승패는 얼마만큼 정부 지원을 끌어내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박 전 의원은 박 지사의 이런 허점을 예리하게 짚는다. 지금 전남에 필요한 지도력이 무엇인지 냉철히 살펴보고 그에 따라 차기 도백을 뽑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박 전 의원은 12월23일 “사람으로 치면 전남의 현재 상태는 빈사상태”라고 진단했다. 긴급처방전이 필요한 시기라는 것.

    “전국에서 노령인구 비율, 인구감소율이 가장 높은 곳이 전남이다. 재정 자립도도 14.4%로 전국 최하위다. 문제는 중증의 병을 치료하는 수단이다. 이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창조적 파괴형의 리더십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 말을 뒤집으면 ‘현실 안주 또는 관리형’이라는 박 지사 리더십에 대한 한계론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이런 지적에 대해 박 지사 측은 반대 논리로 해석한다. 박 지사의 측근으로 분류되는 당 한 관계자의 설명이다.

    “2년 임기를 대과 없이 수행하고 있다. 이미 도정의 문제점을 파악, 대책과 대안을 확보했다. 재선 도백이 되면 이륙할 수 있는 준비를 끝냈다.”

    박 지사와 박 전 의원은 국민의 정부 시절 청와대에 함께 근무했다. 박 전 의원은 민정과 인사를 담당하는 역할을, 박 지사는 공보수석을 역임했다. 박 지사가 네 살 더 많지만 스스럼없는 사이다. 박 지사가 도백 선거에 출마했을 때 누구보다 발 벗고 나선 사람이 박 전 의원이었고, 박 지사는 박 전 의원이 구속됐을 때 면회를 갔다.

    여론조사에선 박 지사 선호도 앞서

    박 전 의원은 “박 지사를 인간적으로 좋아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경쟁관계로 돌아선 지금도 조심스러워한다. 과열 분위기를 의식한 듯 박 전 의원은 “나를 위한 경쟁이 아니라 도민을 위한 경쟁”이라고 말한다. 명분이 있다는 지적이지만 고민의 흔적도 엿보인다.

    “민주주의 결점 가운데 하나가 선의라고 하더라도 경쟁관계가 형성되면 인간적 관계는 뒤로 처진다. 정치가 다 그렇다.”

    전남 지역 여론은 지역에 따라 편차가 크다. 여수 순천 등지에서는 우리당에 대한 지지 정서가 강하다. 우리당은 광주와 전남·북 지사 선거에서 패하면 존립기반에 심각한 상처를 입을 가능성이 높다. 사력을 다할 수밖에 없는 운명인 것이다.

    그 때문에 민주당에서도 경쟁력 있는 후보를 내세워야 한다. 여론조사를 보면 박 지사의 경쟁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12월 지역의 한 언론기관이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더 피플(the PEOPLE)에 의뢰해 전남지역 20대 이상 성인 남녀 110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민주당 후보로는 박 지사가 40.2%라는 높은 선호도를 기록했다. 박 전 의원은 18%대. 또 다른 여론조사에서는 5%대의 저조한 선호도를 기록하기도 했다.

    여론조사 수치만 놓고 보면 두 인사의 경쟁력은 큰 차이를 보인다. 그러나 변수는 많다. 여론조사를 통해 확인한 전남 주민들의 투표 성향은 ‘지역사회 기여도’(44.1%)와 ‘인물 됨됨이’(30.7%), ‘정책 및 공약’ (17.2%), ‘소속 정당’(5.5%) 등이 중요 고려사항으로 지적됐다. 유권자 중 61.7%는 지방선거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영향력이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이런 투표 성향은 경선장에 변화의 바람을 몰고 올 가능성이 높다.

    멀찌감치 앞서 나가고 있는 박 지사를 향해 선전포고를 한 박 전 의원의 추격전은 매우 급박히 전개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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