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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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뭇잎 살짝 실격 진짜 억울해!

골프 룰 잘 이용하면 약, 못하면 독 … 세계적 골퍼들도 깜박하는 경우 허다

  • 이종현/ 골프칼럼니스트

    입력2005-11-23 15:3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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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골프 천재소녀’ 미셸 위(16·나이키골프)가 프로 데뷔전에서 골프 룰 때문에 웃다가 울었다.

    미셸 위는 10월에 열린 삼성월드챔피언십에서 ‘오소(誤所) 플레이’ 규정 위반으로 프로 데뷔전을 제대로 망쳤다. 2라운드에서는 공을 덤불에 빠뜨리고도 벌타 없이 구제를 받아 웃었지만, 3라운드 때는 덤불에 빠져 언플레이어볼을 선언한 뒤 드롭을 잘못해 뒤늦게 실격당한 것이다.

    정점에 오른 세계적인 선수들도 골프 룰을 깜박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렇듯 골프 룰을 어떻게 잘 활용하느냐에 따라 ‘울고 웃을’ 수 있다. 골프는 멘탈이 중요한 운동경기여서 세계적인 선수도 실수를 한다.

    실수의 가장 흔한 유형은 스코어카드 오기. 이외에도 룰을 잘못 알거나 깜박 잊어버리는 경우, 규칙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해서 실격당하는 경우 등 많다.

    미셸 위의 ‘오소 플레이’ 실격을 계기로 세계적인 선수들의 실격 사례를 알아보았다.



    스코어카드 오기의 대표적 사례는 바로 ‘캐리 웹 사건’일 것이다. 한창 잘나가던 신인 캐리 웹은 96년 한국서 열린 로즈오픈에서 스코어를 오기하는 바람에 실격을 당했다. 이후 국내서 미 LPGA(미국여자골프협회) 대회가 매년 열리고 있지만 캐리 웹은 단 한 차례도 한국을 찾지 않고 있다.

    티오프 3초 늦어 2벌타 받아

    ‘백상어’ 그레그 노먼(호주)은 2004년 유럽프로골프(EPGA) 투어 BMW아시아오픈 3라운드 18번홀에서 공을 해저드에 빠뜨린 뒤 잘못된 장소에 공을 놓고 치다가 스스로 실격을 인정한 예도 있다. 노먼은 이외에도 혼다클래식 2라운드 때 자신의 티샷이 연못에 빠졌다고 생각해 잠정구를 치는 실수를 범하기도 했다. 골프 규칙 제27조 제2항에 따르면 원구가 분실됐다고 판단되거나 OB일 때만 잠정구로 플레이할 수 있다. 그러나 노먼은 원구를 발견하고 잠정구를 주머니에 넣었지만 ‘오구 플레이’로 실격됐다.

    그런가 하면 한국의 최경주는 국내 대회에서 나뭇잎을 치우다 공을 건드렸다. 아무도 보지 않았지만 스스로 룰 위반을 밝히고 벌타를 받았다. 이외에도 미 PGA 투어 투산오픈 때 첫날 첫 홀 티오프 시간이 3초 늦어 2벌타를 받았다.

    헤일 어윈은 2월 미국 시니어PGA투어 에이스그룹클래식 1라운드 5번홀 그린에서 퍼트하기 전 우연히 공을 떨어뜨려 볼마커(코인)를 움직였다. 이 경우 볼마커를 제자리에 갖다놓아야 한다. 그러나 어윈은 리플레이스하지 않고 라운드 후 스스로 1벌타를 부과했다.

    가장 억울한 룰 위반은 누가 뭐래도 허석호일 것이다. 허석호는 2003년 JGTO투어 메이저타이틀 PGA 선수권에서 줄곧 1위를 달리다가 2라운드 때 공이 숲에 빠졌고, 나무 아래서 공을 탈출시켜야 했다. 허석호는 연습 스윙 후 멋지게 볼을 탈출시켜 1위 자리를 지켜나갔다. 그런데 연습 백스윙 때 아이언 헤드가 나뭇잎에 살짝 닿는 장면이 TV로 중계된 것이다. 본인도 감지 못할 정도로 아주 살짝 닿았지만 결국 시청자의 제보로 실격당하는 아픔을 맛봤다.

    스투어트 애플비는 첫 메이저대회인 마스터스 1라운드 13번홀(파5)에서 공이 물에 빠졌다. 벌타 없이 그냥 치기로 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샷하기 전에 클럽 헤드를 그만 물에 대버렸다. 해저드 상태 테스트로 인정돼 2벌타가 부과됐다.

    LPGA 톱 프로 박세리도 실격의 아픈 추억이 있다. 2000년 오피스디포대회에서 스코어 카드에 서명하지 않아 실격당했으며, 펄 신도 2000년과 2001년 LPGA 투어 오피스디포대회에서 스코어 오기로 실격당했다. 박세리는 이외에도 2003년 한일여자프로골프대항전 매치플레이에서 규정보다 2개 더 많은 18개의 클럽을 백에 넣어와, 1~4번홀이 모두 패배 처리되는 황당한 실수를 저지르기도 했다.

    일본에서 활동하는 고우순은 2003년 국내 여자프로골프 파라다이스레이디스 인비테이셔널 2라운드에서 동반 경기자가 작성한 스코어카드에서 5번홀 성적이 잘못 기록된 것을 발견하지 못하고 전체 성적만 확인한 뒤 제출해 실격된 일이 있다.

    룰 활용한 파머 우승 이끌어

    미 PGA 투어 MCI헤리티지클래식에선 톰 카이트와 알렉스 체카가 실격당했다. 카이트는 2라운드 8번홀(파4)에서 보기를 하고도 스코어카드에는 ‘4’로 적어 스코어카드 오기로 실격됐으며, 체카는 3라운드 9번홀 그린에서 퍼팅 순간 원래 쓰던 공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스스로 2벌타를 부과했고, 이후 그 공이 비공인 제품이라는 것이 드러나 실격 처리됐다.

    미국 프로무대 2년차 나상욱(코오롱엘로드)도 지난해 PGA 투어 루키 시절 미셸린챔피언십 2라운드에서 마지막 18번홀 버디퍼트가 빗나가자 무심코 다른 공을 꺼내 연습 퍼팅을 했다가 실격 처리되기도 했다.

    반면 룰을 적절히 활용해 좋은 결과를 만들어낸 사례도 있다.

    지난해 브리티시오픈 때 요아킴 해그만(스웨덴)은 그린 옆 벙커에서 탈출을 시도했지만 짧은 샷으로 공이 그린 가장자리에 맞은 뒤 다시 벙커로 굴러 떨어지자 재빨리 모래에 생긴 클럽 자국과 발자국을 발로 지웠다. 규칙 제13조 제4항 ‘공이 해저드 내에 있을 때’에만 해당하므로 공이 벙커 바깥에 있을 동안 모래를 정리해도 벌타가 없다는 사실을 이용했던 것이다.

    2004년 마스터스 3라운드 때 어니 엘스(남아공)의 11번홀 티샷이 훅이 나면서 왼쪽 나무 아래로 들어갔다. 공이 겨우내 떨어진 나뭇가지들 속에 있었다. 가지를 치우면 공이 움직이게 돼 벌타 위험이 큰 상황. 엘스는 경기위원을 불러 ‘수리지’라고 어필했고, 위원 2명의 반대에도 위원장이 그의 편을 들었다. 벌타 없이 드롭을 한 그는 파를 기록했다.

    골프 황제 아널드 파머도 룰을 적절히 활용해 우승으로 끌어낸 사례가 있다. 58년 마스터스 라운드 12번홀(파3)에서 파머의 공이 흙 속에 파묻혔다. 무벌타 드롭이 거부당하자 ‘규정 적용이 모호할 때는 2개의 공으로 플레이해 홀아웃한 뒤 추후 스코어를 인정받는다’는 룰에 따라 먼저 흙에 파묻힌 공으로 경기를 속행해 더블보기를 범한 뒤 다시 다른 볼로 드롭해 파를 잡아내 우승으로 이끈 것이다.

    이같이 골프는 룰을 잘 활용하면 약이 되고, 잘 활용하지 못하면 독이 된다. 그래서 신사의 스포츠라고 불리는 듯하다. 골프는 혼자 하는 플레이기 때문에 남에게 오해를 사거나 의심스러운 플레이는 절대 금물이다. 또한 ‘규칙만 알아도 5타는 줄인다’고 할 만큼 룰에 대한 지식은 스코어와 직결되므로 아마추어 골퍼들은 프로들의 실수를 ‘타산지석’으로 활용하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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