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62

2016.11.09

스페셜리포트

혼자 출전해놓고 ‘1등’ 자랑 학부모끼리 짜고 순위 조작

정유라 사건 계기로 본 체육특기자제도 실태…학벌주의와 결합해 ‘신분 세습’ 통로 악용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16-11-04 18: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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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전부터 선수가 몇 명 안 되는 종목의 체육특기자 입시와 관련해 뒷말이 많았어요. 이번에 승마가 수면 위로 떠올랐을 뿐이지, 그런 통로를 이용해 자식을 명문대에 밀어 넣은 부모가 그동안 한두 명이었겠어요.”

    최순실 씨의 딸 정유라 씨의 이화여대 입학 특혜 의혹에 대해 한 지방 대학 체대 교수가 한 말이다. 그는 “특정하기는 곤란하지만 올림픽 등 국제대회에 포함되는데도 국내에 학생 선수가 많지 않은 종목이 몇 개 있다. 옛날부터 좀 있는 집에서는 자녀에게 전략적으로 그런 운동을 가르쳐왔다고 들었다”고 말을 이었다.

    “그런 종목을 가르치는 스포츠클럽이나 연습장도 몇 곳 안 되니까, 자연히 학부모끼리는 일찍부터 안면을 튼다고 해요. 그러다 입시철이 되면 자연스레 담합하는 거죠. ‘올해 전국대회가 몇 개 열리니 첫 번째 대회에는 누가, 두 번째 대회에는 다른 누가 출전하자. 순위는 어떻게 하기로 하자’ 이런 식으로요.”

    정씨가 합격한 이화여대 신산업융합대학 체육과학부 체육특기자 지원 자격은 ‘최근 3년 이내 국제 또는 전국 규모의 대회에서 개인 종목 3위 이내 입상자’였다. 체육특기자 전형을 둔 다른 대학도 자체적으로 이런 기준을 갖고 있다. 이 조건을 ‘카르텔’ 안에 들어 있는 학부모의 자녀가 모두 충족할 수 있도록 국내 대회 성적을 골고루 나눠 가졌다는 것이다. 학부모끼리 친분이 더 두터워지면 지원 대학까지 미리 교통정리를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새누리당 한선교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12〜2014학년도 국내 62개 대학에서 실시한 체육특기자 전형 1529개 종목 중 67.5%(1032개)의 경쟁률이 1 대 1에 미치지 못했다. 이 통계의 비밀이 이제야 풀린 셈이다.





    요지경 체육특기자 입시

    “체육계에서 들은 얘기에 따르면 최씨의 문제는 입시 비리 자체가 아니라 지나치게 독불장군처럼 군 거래요. 다른 학부모랑 의논하면서 뒤탈 없게 했으면 모르겠는데, 권력을 움직여 다른 경쟁자들을 아예 원천 배제하려고 한 거잖아요. 다른 학생이 국내 대회에서 1등 했다고 대한승마협회 전체를 들쑤시고 다니고, 자기 딸한테 불리한 지역에서 대회가 열린다고 장소를 아예 바꿔버리려 하고….”

    앞에서 소개한 체대 교수의 말이다. 교육부와 문화체육관광부는 3월 ‘체육특기자 입학비리 근절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입학전형 과정 평가 객관성 강화 △입학 비리 연루 대학 모집 정지 및 지원 예산 삭감 등의 조치를 담았다. 하지만 이런 정책으로 체육특기자 입학 비리가 ‘근절’될 것이라는 시각은 많지 않다. 그 역사가 유구하기 때문이다. 1983년 ‘한국체육연구논문집’에 실린 논문 ‘체육특기자교육의 정상화를 위한 운동선수 학력실태에 관한 조사연구’에 ‘오늘 우리 스포츠계 주변에는 갖가지 탈선과 파행현상이 점차 심화되고 있다. 그뿐 아니라 여러 가지 형태의 부조리가 등장하고 악풍조가 만연일로에 있다’라는 대목이 있을 정도다.

    체육계 인사들 또한 현재진행형인 다양한 체육특기자 입시 비리 사례를 알고 있다. 이화여대의 경우 정씨가 원서 접수 마감일 이후 거둔 수상 실적을 입시사정에 포함해 공분을 일으켰다. 그러나 이것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게 적잖은 이의 의견이다.  

    한 사례를 보자. 국내 대학은 체육특기자를 선발할 때 대한체육회 가맹 경기단체에서 발행하는 경기실적증명서를 입학사정 자료로 활용한다. 그런데 한 가맹단체가 2008년, 그해 열린 전국대회에서 두 차례 3위를 한 고등학교 3학년생 A에게 두 번 모두 2위를 차지한 것으로 기재한 경기실적증명서를 발급했다. A는 이 서류를 B대학에 제출해 체육특기자로 입학했다. 이 사건은 이후 감사원 감사 과정에서 드러났다.

    C대학은 2009학년도 체육특기자 입시에 지원한 D의 제출서류에서 전국 규모 대회 입상 기록이 경기실적증명서에는 2위, 상장 사본에는 3위로 각각 다르게 기재돼 있는 걸 확인하고도 경기실적증명서상의 2위를 실제 성적으로 인정해 D를 체육특기자로 선발했다. 그러나 이후 확인된 D의 실제 대회 성적은 3위였다. 이것이 입학사정에 반영됐을 경우 입시 결과가 달라질 수 있었다.

    한 경기단체에서는 2010년 학생 대상 대회를 열기로 했는데, 참가 신청 마감일까지 접수자가 없었다. 이 경우 대회 자체가 무산돼야 하지만, 해당 단체는 뒤늦게 참가 의사를 밝힌 E만을 대상으로 경기를 실시했고, 그가 1위에 입상한 것으로 경기실적증명서까지 발급했다. E는 이 성과를 바탕으로 F대 체육특기자 전형에 합격했다. 체육계에서 공식적으로 확인한 사례다.

    ‘동아일보’ 보도에 따르면 정씨 역시 초등학교 6학년(2008) 때 5개 승마대회에 출전해 모두 금메달을 땄는데, 이 중 4개가 혼자 출전한 대회였다. 체육계 관계자들은 학생 선수 수가 많지 않은 특정 종목에는 이렇게 ‘빈틈’이 적잖다고 말한다.

    정씨는 이화여대 입학 원서 접수 마감 3년 전인 2011년 9월 16일부터 2014년 4월까지 국가대표 선발 포인트가 부여되는 국내 대회에서 57차례 3위 안에 든 것으로 알려졌다. 이 중 절반 이상은 1위에 올랐다. 그리고 이 실적은 아시아경기대회 단체종목 금메달과 더불어 이화여대 체대 입시에서 정씨의 자산이 됐다. 정희준 동아대 체육학과 교수는 이에 대해 “우리나라 체육특기자제도는 학벌주의와 결합해 승부 조작, 입시비리 등 각종 사회적 물의를 양산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귀족스포츠의 대가, 체육특기자

    이런 현상이 우리나라에만 나타나는 건 아니다. 미국 하버드대를 졸업하고 블룸버그통신 등에서 일한 언론인 대니얼 골든은 저서 ‘왜 학벌은 세습되는가?’를 통해 미국 명문대 체육특기자제도를 날카롭게 비판했다. 그에 따르면 ‘(애초부터 학벌 세습을 전제로 하는) 동문특혜나 기부입학과 달리 체육특기제도는 부모가 아닌 지원자 본인의 실력에 의해 당락이 결정되는 ‘공정한’ 입시제도다. 하지만 스쿼시, 요트, 스키, 조정, 수구, 펜싱, 승마 등 귀족스포츠 종목이라면 전혀 공정하지 못하다.’ 골든은 이 책에서 미국 아이비리그 등 명문대가 이와 같은 ‘귀족스포츠’ 체육특기자를 대거 선발함으로써 이 제도를 사실상 특권층 자녀의 입학 경로로 활용하고 있음을 꼬집었다.

    그의 조사에 따르면 많은 대학이 저소득층 가정 자녀가 주로 참여하는 육상, 레슬링 등의 스포츠팀을 없애고 요트, 조정 등 귀족스포츠팀을 만들었다. 이화여대가 정씨가 입학한 2015학년도부터 승마를 체육특기자 종목에 추가한 데 대해 뒷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2017학년도 대학 입시에서 승마 특기생을 명시적으로 선발하는 대학은 많지 않다. 단국대 천안캠퍼스(4명), 순천향대(4명), 전주대(1명) 등이 입시요강에 선발인원을 밝혀뒀다. 다른 대학은 승마를 포함한 23개 종목에서 6명의 체육특기자를 선발하는 이화여대처럼 승마선수가 합격자에 포함될 수도, 안 될 수도 있다. 허정훈 중앙대 스포츠과학부 교수는 정씨가 고등학교 3학년 때인 2014년 이런 전형을 이용해 중앙대 체대에도 원서를 냈다고 밝혔다.

    중앙대 수시전형 모집요강에 따르면 중앙대 스포츠과학부가 선발하는 개인종목 체육특기자(2015학년도 기준)는 골프 5명, 볼링 5명, 테니스 3명, 스노보드 3명, 스쿼시 3명, 사격 6명, 배드민턴 4명, e스포츠 2명, 수상스키 2명 등으로 종목과 인원수가 정해져 있다. 이외에 사범대학 체육교육과에서 ‘올림픽 정식종목’에 해당하는 선수를 대상으로 1명을 선발하는 별도 전형을 운영한다. 해당 종목의 국가대표급 선수로서 ‘올림픽, 종목별 세계선수권대회, 아시안게임 8위 이내 입상자’가 지원 대상이다. 정씨는 바로 이 전형에 응시한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정씨가 아시아경기대회 금메달을 획득한 시점이 모집요강상 원서접수 기간 이후라 그 결과를 입학사정에 반영하지 않은 걸로 알고 있어요. 그래서 정씨가 불합격했죠.”

    허 교수의 말이다. 그는 “체육특기자 입시제도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지만, 일반적으로는 엄정하고 객관적인 기준에 따른다. 체대 교수들이 함께 논의해 합격자를 정한다. 이번 사건 같은 권력형 비리로 체육특기자 입시제도 전체에 대해 오해하지는 않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서울지역 대학의 또 다른 체대 교수도 “요즘 정씨 때문에 얼굴을 못 들고 다니는데, 모든 체대 교수가 입시 비리를 저지르는 게 아니다. 모든 체대가 그렇게 엉망진창으로 입시를 관리하지도 않는다”며 “특히 개인종목 체육특기자의 경우, 김연아 선수나 박태환 선수처럼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누구를 선발하는지가 학교 명예나 교내 스포츠팀 운영 등의 문제와 직결되지 않기 때문에 학교가 주도하는 입시 부정은 많지 않은 편”이라고 밝혔다.



    돈 내고 학벌 얻는 단체종목 비리

    이 교수의 이야기는 달리 말하면, 단체종목 체육특기자 선발은 여전히 학교 명예나 스포츠팀 운영상의 문제로 입시 부정이 일어날 여지가 있다는 뜻도 된다. 골든은 앞서 언급한 저서에서 미국 대학 체육특기자 선발 과정을 소개하며 ‘대학은 체육특기자를 선발할 때 기금 조성 가능성 여부를 살핀다. 체육관이나 장학금을 기부할 수 있는 부유한 부모를 둔 어중간한 성적을 내는 학생을 위해 체육특기자 명단에 빈자리를 남겨둔다. 성적과 운동 실력이 합격과 불합격의 경계선에 위치한 특권층 지원자의 경우에는 실력을 따지는 감독의 의견보다 입학처의 강력한 입김으로 요트를 타듯 부드럽게 대학 문을 통과한다’고 썼다.

    이는 우리나라에서도 일정 부분 유효한 지적이라는 것이 체육계 관계자들의 얘기다. 차이가 있다면 우리나라에서는 감독 역시 실력이 다소 떨어지더라도 돈 많은 집 자제를 환영하는 사례가 있다는 점이다. 프로야구단 롯데 자이언츠 사령탑까지 맡았던 양승호 씨가 고려대 야구부 감독 시절 돈을 받고 체육특기자를 선발했다 징역 1년3개월형을 선고받은 게 한 사례다.  2013년에는 울산의 한 대학 축구감독이 고교 감독으로부터 총 1억2000만 원, 학부모에게 별도로 6900만 원 상당의 금품을 받고 학생을 입학시킨 사실이 적발되기도 했다.

    감사원이 2011년 실시한 ‘학사 운영 및 관리 실태’ 감사에서도 유사 사례가 무더기로 드러났다. G대학은 2011학년도 수시모집 체육특기자전형에서 H고교 우수선수 2명을 입학시키는 조건으로 같은 학교 학생 1명을 추가로 선발했다. 그러나 그는 이미 각종 대회에서 체육특기자가 되기엔 기량이 부족하다는 점이 드러난 선수로, 입학 후 운동을 그만두고 일반 학생이 됐다.

    이처럼 체육 분야 명문대들이 실력 우수자를 선점하려고 체육특기자 선발 기준에 못 미치는 학생까지 합격시키는 것은 체육계의 고질적 입시 부정으로 꼽힌다. 한선교 의원이 교육부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2〜2014년 국내 62개 대학에서 체육특기생으로 선발된 뒤 운동을 포기하고 일반 학생으로 졸업한 비율은 16%였다. 이들 중 상당수는 대학에 쉽게 들어가려고 체육특기자제도를 악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게 체육계 관계자들의 해석이다.

    이런 ‘금수저’를 보는 평범한 체대 지망생들은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2017학년도 체대 입시를 준비하는 한 고3 수험생은 “고대 체육교육과에 합격한 한 선배의 경우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에서 한 과목 2등급을 제외하고는 전부 1등급을 받았다. 그러면서 운동까지 하느라 발톱도 여러 번 빠졌다더라. 요새 체대에 입학하는 게 얼마나 힘든데, 사람들이 말 좀 타고 돈 좀 쓰면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 화가 난다”고 토로했다. 17학번 체대생을 꿈꾸며 서울 한 입시체육학원에서 구슬땀을 흘리는 한 재수생도 “수능을 준비하면서 일주일에 세 번씩 운동하고 있다. 뒤늦게 체대 준비를 시작해 첫해 입시에서 실패했는데, 주위에는 삼수를 하면서까지 체대만을 목표로 달려가는 수험생도 많다. 이번 기회에 체대 입시 부정이 사라지면 좋겠다”고 밝혔다.  

    군사 정부가 만든 체육특기자제도 반복되는 비리와 뒷말체육특기자제도가 만들어진 건 박정희 대통령 재임기인 1972년 11월이다. 당시 제정된 교육법 시행령(대통령령 제6377호)은 체육특기자가 입학 시험 성적과 무관하게 고등학교, 대학교에 진학할 수 있도록 했다. 학교장 재량에 따라 등록금 및 수업료 감면 등의 특혜도 주어졌다. 한태룡 국민체육진흥공단 체육과학연구원 선임연구원은 2011년 ‘학생운동선수 권리보호를 위한 대토론회’에서 발표한 ‘학생운동선수 권리보호 실태와 원인’ 보고서에서 이에 대해 ‘한마디로 이는 학생선수 개인이 운동만 잘하면 대학까지 순조롭게 입학할 수 있게 제도적으로 보장한 장치’라며 ‘공부나 학교 활동과 같은 요소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 이러한 제도는 1972년만 하더라도 상당한 혜택으로 받아들여져 우수한 인적 자원이 체육계로 흡수되어 운동에 몰입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평했다.

    그러나 1990년대 초반부터 체육특기자의 학력 저하와 은퇴 후 사회 부적응 등이 문제점으로 부각됐고, 체육특기자제도를 악용한 입시 부정 사례도 지속적으로 적발되면서 제도 개편 논의가 시작됐다. 이에 따라 김대중 정부는 2000학년도 대학 입시 때부터 체육특기자가 대학의 체육계열학과에 지원하도록 규정하고, 재학 중 다른 계열 학과로 전과하는 것도 금지했다. 그러나 정유라씨 사례에서 드러난 것처럼, 체육특기자 통로를 활용한 부정이 여전해 사회적 우려가 높은 상황이다.

    학생의 학업 수준과 수학 능력을 고려하지 않은 채 체육특기만으로 선발하는 이 제도가 학생선수의 인권과 학습권을 침해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정희준 동아대 교수는 “2012 런던올림픽에서 탁구 은메달을 획득한 일본 후쿠하라 아이는 와세다대 스포츠과학부에 입학했지만 운동과 학업을 병행하기 어려워 자퇴했다. 이처럼 선발 과정에서 체육 ‘특기’를 인정하더라도, 대학에 들어온 이후에는 학생으로서 본분을 다 하도록 엄정하게 학사를 관리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체육특기자제도를 악용하려는 시도가 크게 줄어들 것”이라고 밝혔다.

    체육특기자제도를 처음 만든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71년 제52회 전국체육대회 개회식에서 “스포츠 정신 생활화를 통해 자신의 안일보다 국가 발전을 앞세우며, 나라를 위해서는 언제든 사리를 희생할 줄 아는 진정한 민주시민 생활윤리를 더욱 성실히 실천해나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라고 연설했다. 그런데 그렇게 강조하던 ‘스포츠’가 특정인의 ‘사리’를 채우는 데 사용되고, ‘민주시민 생활윤리’를 파괴하는 주범으로 지목되는 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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