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88

2005.06.07

黨-靑 무기력 중증 ‘잔인한 계절’

잇따른 혼란과 갈등 국정 주도권 상실 … 위기 탈출 뾰족한 대책 없어 더 답답

  •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입력2005-06-02 10:4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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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년 5월, 무소속 최인기 의원을 영입하기 위한 열린우리당(이하 우리당)과 민주당의 물밑 경쟁은 치열했다. 4·30 재보궐 선거 패배로 한 석이 아쉬운 우리당으로서는 체면을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최 의원을 잡기 위해 ‘당근’도 제시했다. 최 의원 측근에 따르면 “들어와 계시다 보면 여러 가지 할 일이 있지 않겠느냐”며 중용 가능성을 암시했다고 한다. 행정자치부 및 농림수산부 장관과 광주시장, 전남도지사를 지낸 최 의원 측으로서는 당연히 그 이상(총리급)을 염두에 두었다.

    그러나 최 의원은 움직이지 않았다. 대신 최 의원은 2월부터 광주와 전남 등 특정 지역에 대한 여론을 지켜보았다. 수시로 여론조사도 했다. 그 결과 광주와 전남 지역에서 여당과 민주당의 지지도 격차가 갈수록 커지고 있음이 확인됐다. 5월 이후 격차는 2배(민주당 지지 40% 대 여당 지지 20%)로 벌어졌다. 숫자 속의 함의를 지켜보던 최 의원은 결국 5월25일, 민주당에 전격 입당했다.

    그날 우리당 문희상 의장의 한 측근은 민주당 현관문을 열어젖히는 최 의원을 바라보며 깊은 한숨을 토해냈다. 과반에 가까운 의석 수를 가진 집권여당이 9명의 초미니 정당에 밀렸다는 자괴감보다, 그가 민주당을 선택하게 된 정치 구조와 우리당의 현실에 대한 위기감이 컸기 때문이다.

    “최 의원의 민주당 입당은 4·30 재보궐 선거에서 23대 0으로 패배한 것 이상으로 충격과 여진을 부르는 신호탄이 될 것 같다.”

    이 관계자를 더욱 힘들게 만든 것은 최 의원이 떠나면서 남긴 말이다. “광주와 전남은 서툰 운전수들 같은 우리당에 더 이상 기대하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지난 총선 전만 해도 우리당에는 공천을 받기 위해 광주와 전남 지역에서 올라온 인사들의 줄이 이어졌다. 그러나 집권 3년차를 지나고 있는 2005년 5월, 이는 먼 옛날의 전설로만 존재한다. 대신 우리당은 서툰 운전수들로 가득한 무기력한 집단으로 평가되고 있다. 과거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던 호남은 물론, 서울과 수도권에서도 그들의 무능을 질타하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서툰 운전수들 가득한 우리당”

    黨-靑 무기력 중증 ‘잔인한 계절’

    열린우리당 확대간부회의에 참석한 실용파의 염동연 상임중앙위원(왼쪽)과 개혁파의 유시민 상임중앙위원이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다. (왼쪽 사진) 5월12일 열린우리당 한명숙 상임중앙위원(맨 오른쪽)이 당사에서 혁신위원회 첫 회의를 주재, 당 쇄신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우리당 인사들에게 위기는 우려가 아니라 현실이다. ‘런닝구’와 ‘빽바지’가 전선을 형성하고, 각종 프로젝트를 둘러싼 의혹 사건이 사흘이 멀다 하고 터진 결과다. 이해찬 총리도 이런 당의 상황에 대해 우려를 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5월 중순 이 총리는 재보선 패배와 지지율 하락, 국정의제 설정 실패, 의원들의 결속력 약화를 지적했다고 한다. 그만큼 우리당의 무기력은 심각했고, 그 흐름은 여러 곳에서 동시다발로 불거졌다. 5월26일 오전 원내대책회의. 정세균 원내대표가 먼저 입을 열었다.

    “1분기 GDP(국내총생산) 성장률이 2.7%에 그쳐 기대보다 훨씬 못 미치는 수치다. 잠재성장률의 절반 수준이다. 경제(회복)가 거북이걸음 하는 상황에서 국민들의 고통이 크다.” 다른 한 참석자도 나섰다. “6월 임시국회가 다가왔는데, 경제가 회복되지 못했다. 국민들의 고통이 심할 것이다.”

    우리당은 개혁을 표방했다. 지난 2년간 우리당이 일군 개혁의 핵심 성과는 당정 분리와 기간당원제다. 그러나 4·30 재보궐 선거 후 우리당 개혁의 상징물이었던 기간당원제의 골간이 무너졌다. 20여만명이 넘던 기간당원 가운데 반 정도가 궤도를 이탈한 것. 문 의장은 “기간당원제는 유지할 것이고 8월 말까지 50만명으로 육성할 계획”이라고 말했지만 무너진 신뢰를 복원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최근 교육인적자원부는 평준화 정책의 기조를 지켜야 한다는 명분 아래 ‘3불 정책’(본고사·고교등급제·기여입학제 금지) 법제화 방침을 밝혔다. 이에 서울대 정운찬 총장이 반대하고 나섰다. 그러자 지원 사격에 나선 정봉주 의원이 과도한 발언을 했다.

    “공교육을 살리기 위해 서울대 총장이 사퇴하라.”

    이날 우리당 홈페이지에는 이 발언에 대한 문제제기가 이어졌다.

    5월17일 문 의장이 광주에서 모처럼만에 ‘봉숭아 학당(기자간담회)’을 열고 사면론을 언급했다.

    “정치·경제범은 물론이고, 사소한 규정 위반 등의 기록, 행정범까지 모두 사면할 때가 됐다.”

    그 직전 정대철 전 의원의 형집행정지 및 노무현 대통령과 가까운 강금원 전 창신섬유 대표 등의 사면에 대해 심기가 불편했던 국민들은 그의 발언에 경악했고, 여당이 오만하다는 비판이 쇄도했다.

    외교도 실속이 없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북한 핵 문제로 혼선을 빚고 있는 사이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중국을 방문, 후진타오를 만나 유연한 대북정책을 제시했다. 그 뒤를 박 대표의 북한 방문설이 받쳐 준다. 청와대에서는 이상음이 들려온다. NSC(국가안전보장회의) 상임위원장인 정 통일부 장관이 노 대통령 지시로 지난달 두 차례에 걸쳐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문제와 관련해 자체 조사를 벌인 사실이 공개된 것. 내부 조사가 아닌 점검 회의로 표현했지만 내부 분위기는 험악했다. 노 대통령의 절대적 지지를 받고 있는 NSC 이종석 사무차장이 조사 대상이라는 점에서 파문은 더욱 커졌다. 이는 곧바로 권력 내부의 파워게임설로 이어졌고, 파문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내부의 혼선과 갈등, 무기력증이 겹쳐지면서 정국 주도권은 야당에 뺏긴 지 오래다. 이슈 선점은 꿈도 못 꾼다. 과거 여권의 강점이던 기민한 정국 대응과 의제 설정 능력도 상실했다는 지적을 면키 어려운 실정이다. 위기론은 증폭되지만 누구 하나 타개책을 내놓지 않는다. 극도의 무기력증만이 당을 감싼다. 여당의 이런 무기력증은 곧잘 오만함으로 투영된다. 이 때문에 “우리당이 변했다”는 오해에 휩쓸리기도 한다. 이는 핵심 지지층이 우리당을 떠나게 하는 현상으로 이어진다. 한 여론조사의 당별 지지도를 보면 여당의 아성이던 30대 층에서 한나라당이 우리당을 추월했다.

    내분을 뒤로하고 외곽을 둘러봐도 막막하기는 마찬가지다. 참여정부와 우리당의 외곽은 이미 각종 프로젝트와 관련된 ‘게이트’에 포위된 지 오래다. 이광재 의원을 정점으로 한 사할린 유전개발 의혹은 4·30 재보궐선거는 물론 이후 우리당의 정체성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 의원의 경우 해명 과정에서 수시로 말을 바꿔 도덕성에까지 흠집을 냈다. 참다못한 문 의장이 5월25일 “의혹의 빌미를 제공한 두 분도, 아니 더 나올지도 모르는 사람들도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의 말은 영이 서지 않았다. “당 지도부가 격려는 못할망정 소환되는 날 뒤통수를 치느냐”는 반발이 문 의장 뒤통수를 때렸다.

    핵심 지지층 하나둘 등 돌려

    검찰은 유전개발과 관련 이 의원과 이기명 씨를 불러 수사의 마지막 절차를 밟았다. 그러나 유전개발과 관련된 의혹의 실체를 찾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유전개발 의혹 사건은 미수에 그친 실패한 프로젝트다. 돈을 주고받거나 한 정황은 실재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국민들에게는 이 사건이 엄청난 권력형 비리 스캔들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때문에 검찰이 어떤 결론을 내놓더라도 파장은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은 이 사건을 국민의 정부 당시 DJ(김대중 전 대통령) 레임덕을 불러왔던 옷로비 사건에 곧잘 비유한다. 수사결과 옷로비 사건은 4, 5명의 안방마님이 만든 해프닝으로 밝혀졌지만 결과는 혹독했다. 국민의 정부 실세들이 낙마했고, DJ는 그들이 남긴 짙은 그림자에 갇혀 곧바로 레익덕으로 빠져들었다.

    유전개발 의혹을 뒤따르는 충남 당진군 행담도 개발사업 의혹의 불길도 예사롭지 않다. 이미 청와대 담을 넘어간 불길은 몇몇 청와대 핵심 인사를 덮치려 하고 있다. 민간사업에 청와대 및 권력 핵심인사가 직접 개입, 권한을 남용하는 등 의혹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상자기사 참조). 동북아시대위원회 문정인 위원장은 행담도개발㈜ 측과 사업협력양해각서(MOU)까지 체결하는 등 권한을 남용, 결국 사퇴했다. 정찬용 전 대통령인사수석비서관도 재임 중 이 사업에 관여한 것이 업무 영역을 넘어섰다는 비판으로 이어진다. 이와 함께 또 다른 청와대 핵심들의 이름도 조금씩 머리를 내밀고 있다.

    그러나 이 사건도 ‘권력형 비리’ 사건으로 규정하기는 마땅찮다. 한국도로공사가 돈을 떼인 것도 없고, 당사자 간 금품이 오간 흔적도 확인된 바 없다. 경우에 따라 행담도 비리의혹 사건은 태산명동서일필이라는 결론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실속 없이 소리만 요란하다는 지적이다. 참여정부 출범 후 이처럼 여러 가지 의혹 사건이 제기됐지만 수사 결과 별다른 비리 혐의를 찾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처럼 소리만 요란한 사건이 잇따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권 인사들은 “그만큼 참여정부 관계자들이 국정을 깨끗하게 운영했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그러나 야당의 설명은 다르다. 야당은 국정 운영 과정에서 빈 수레처럼 요란한 소리가 나오는 배경에 대해 ‘국정 운영에 대한 미숙함과 자질 부족’을 이유로 꼽는다. 한나라당 당직자 Y 의원의 말이다.

    “해외자본 유치나 유전개발 등은 말 그대로 상대와 협상을 통해 상생의 방안을 찾아야 한다. 그러나 참여정부의 정부정책 추진은 전문가보다 업자와 정치 실세가 ‘됐나? 됐다!’ 해서 사업을 추진하는 식이다. 감사원 조사대로라면 철도공사 직원 하나가 이광재 의원 배경을 이용, 유전개발에 나섰고 행담도도 국가의 시스템이 아닌 청와대 실세와 업자가 결탁, 무리하게 추진하다 사고를 친 것이다.”

    한나라당은 흥행몰이 계속

    黨-靑 무기력 중증 ‘잔인한 계절’

    5월24일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왼쪽)와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이 베이징 인민대회장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그는 “그 과정에서 인치가 아닌 시스템에 의한 국정 운영이란 참여정부의 슬로건은 한갓 구호에 불과했다”며 “이런 현상은 국정 전반을 종합적으로 운영하는 시스템의 역할 부재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했다.

    여권 내부에서도 비슷한 반응이 흘러나온다. 대안도 거론된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앞서 언급한 대로 당 지도부의 카리스마는 이미 쇠할 대로 쇠했다. 계파별 원심력은 어느 때보다 크다. 과거에 비하면 당·청 간의 물리적 거리도 멀기만 하다. 그러는 사이 한나라당은 변신을 거듭하며 흥행몰이에 나섰다. 홍준표 의원이 발의한 국적법 통과 및 국적포기자 외국인특별전형 대입 불허를 내용으로 한 고등교육법 개정 추진, 정형근 의원의 ‘인도적 차원에서 대북 비료지원’ 촉구 등은 ‘과거의 한나라당이 아닌데…’라는 누리꾼(네티즌)들의 반응을 끌어냈다. 여권이 내부 권력투쟁에 몰입하던 5월 중순, 박근혜 대표는 전남 신안을 방문하고, 5·18묘역을 참배하며 중단 없는 서진(西進) 의지를 공개했다. 먼발치에서 지켜봐야 하는 청와대와 우리당에 5월은 잔인하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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