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37

2004.06.03

산중에 사는 즐거움

  • 정찬주/ 소설가

    입력2004-05-28 09: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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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중에 사는 즐거움
    하루를 마감하면서 나를 즐겁게 한 일이 무엇이었는지 가끔 되돌아볼 때가 있다. 소쩍새 울음소리를 듣거나 툇마루에 앉아 지는 해를 보면서 상념에 잠겨본다. 나를 즐겁게 한 일이란 거창하지 않다. 산중에 들어와 사는 나에게 뜻밖의 기적이 일어날 리도 없고, 행운의 여신이 갑자기 나타나 미소 지을 리도 없기 때문이다.

    오늘은 서울에서 내려온 정씨가 농막을 한 채 짓고 있는 곳에서 내 처소의 축대 위에 심으려고 대 뿌리를 몇 가닥 주워왔다. 한낮을 피해 오후 3시쯤 대 뿌리를 묻기 위해 괭이질을 하다가 나는 문득 멈추고 말았다. 지난 가을에 심었던 차씨가 두꺼운 껍질을 벗고 막 싹이 트고 있었다. 나는 반갑고 미안하기도 해 황망히 다시 묻고는 마음속으로 사과하며 호스로 끌어온 샘물을 차씨 위에 뿌렸다.

    작년 가을에 심은 대 뿌리도 죽순을 쑥쑥 내밀고 있지만 차씨의 발아(發芽)는 내게 아주 각별했다. 차밭 주인의 말에 따르면 차씨는 발아가 늦어 대개 장마철에야 싹이 튼다고 했다. 그런데 예상보다 빨리 싹이 텄으니 너무 반가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정성만큼 자라는 꽃 … 자연 통해 서로의 나눔 체험

    더구나 나는 요즘 차에 빠져들고 있는데, 햇차의 맛과 향을 음미하기 위해 차 나들이를 나가 순천을 거쳐 화개까지 다녀왔으며 직접 차를 만들기 위해 함양에서 온 옛 무쇠 솥을 구해놓았다.



    차 만든 경력이 20여년 된다는 진선생의 설명에 따르면 아래채 아궁이에 걸린 무쇠 솥은 고구마나 삶는 솥이고, 함양에서 온 솥이야말로 차 덖기에 그만이다.

    내일은 비가 오지 않는 한 무슨 일이 있어도 함양 솥을 걸기 위한 아궁이를 만들 생각이다. 이제 나는 쇠손 들고 벽돌을 쌓는 미장 일 정도는 할 줄 알게 되었으므로 혼자서도 아궁이 하나쯤은 만들 수 있다.

    차씨가 싹이 트고 있으니 동백나무씨도 흙 속에서는 싹이 텄는지 모르겠다. 동백나무씨를 친구한테서 한 주먹 얻어다 텃밭 옆에 심어두고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일부러 흙을 파서 발아 여부를 확인할 수는 없지 않은가. 흙에 묻혀 있던 차씨는 대 뿌리를 심다가 어쩔 수 없이 보게 되었지만 무엇을 엿본다는 것은 엉큼하고 떳떳하지 못한 일이다.

    연못에 핀 수련을 보는 것도 즐거운 일 중 하나다. 이곳 수련은 다른 곳보다 잎과 꽃이 더 큰데, 원래 품종이 그런 게 아니라 지난 초봄에 톱밥 썩은 퇴비를 두 포대나 뿌려준 결과다. 그래서인지 수련의 향기도 작년보다 더 진하다.

    마침 연못가에 해당화도 피어 있어 두 꽃의 향기가 탄성을 내지르게 한다. 연못가를 거닐다가 나도 모르게 아, 하고 발걸음을 멈추었다. 내 정성에 대해 수련이 응답했다고 느꼈다. 이런 나눔의 주고받음이야말로 이 산중에 사는 즐거움이리라.

    멀리서 새 쫓는 소리가 들려온다. 밭에 묻은 씨앗을 새가 파먹기 때문이다. 우리 집 텃밭에 어머니가 심은 깨씨도 새들이 말끔히 먹어버렸다.

    그래서 아버지가 서원터 마을로 가 한 농부한테서 깨씨를 얻어와 다시 뿌리려고 한다. 깨씨가 아까워 어머니가 적게 뿌린 결과다. 많이만 뿌렸으면 새들은 먹을 만큼만 먹었을 것이다.

    그런데 새 쫓는 소리는 사람마다 다르다. 대개는 욕심 많은 사람들이 더 그악스럽게 소리를 지르며 새를 쫓는다. 배가 고파 찾아온 흥부를 내치는 놀부처럼 새들을 문전박대한다. 나는 은근히 새들 편이다. 깨를 몇 되나 더 먹겠다고 하루 종일 밭에서 새를 쫓는 것인지 알 수 없다.

    반면에 아랫마을에 사는 마음씨 좋은 농부는 새들로 인한 피해를 별로 걱정하지 않는다. 씨를 많이 뿌렸으니 싹이 틀 것이라고 무사태평이다. 콩은 드문드문 나야 결국에는 수확이 더 많다고 하니 자연의 오묘한 조화다.

    그러고 보니 새를 하루 종일 인정머리 없이 내쫓는 사람은 진짜 농부가 아니다. 그는 몇십 년 전에 도회지로 나갔다가 자신의 건강과 낭만을 위해 이른바 전원생활을 한답시고 들어온 사람이다. 같은 농토에 살아도 새를 대하는 모습은 하늘과 땅 차이다. 누가 더 향기롭고 인간적인지는 더 말할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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