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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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숨결·전통의 멋에 ‘흠뻑’

  • 글·사진=허시명/ 여행작가 www.walkingmap.net

    입력2004-05-20 10: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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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의 숨결·전통의 멋에 ‘흠뻑’

    북촌문화센터에서 진행하는 술빚기 강습에 참여한 사람들.

    가장 서울다운 공간은 어디일까? 먼저 고궁을 꼽을 수 있다. 하지만 고궁엔 온기가 없다. 사람이 살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온기를 느낄 수 있으면서 가장 서울다운 곳은 어디일까? 북촌이다. 북촌은 지금 한창 탈바꿈하고 있다. 개발 바람이 불어 새 건물을 짓는 것이 아니다. 있던 건물들이 새롭게 해석되고 있는 것이다.

    북촌은 청계천과 종로의 북쪽 동네를 이른다. 조선시대 때 그렇게 불려진 이름이다. 북촌에 대응하는 남촌은 청계천과 종로의 남쪽인 남산 자락이다. 남촌의 조선시대 때 흔적으로 남산골한옥마을을 꼽을 수 있다. 그러나 이곳은 서울 도처에 흩어져 있던 한옥들을 입양해 만든 공간이다. 그에 견주면 북촌의 실태는 사뭇 다르다.

    현재 북촌은 경복궁의 동쪽과 창덕궁(비원)의 서쪽에 있는 마을이다. 2001년부터 북촌 가꾸기 사업이 벌어지고 있는데, 모두 924채의 한옥이 밀집해 있다. 청와대와 궁궐 사이에 끼어 살면서 높은 건물을 지을 수 없었던 시절이 빚어낸 전통 공간이다. 그리하여 ‘북촌을 지키는 것이 바로 역사도시 서울을 지키는 것’으로 재해석되기에 이르렀다. 서울시는 한옥등록제를 실시해 보존가치가 있는 한옥들을 유지·보수하는 데 드는 비용의 일부를 지원하고 있다. 또한 한옥들을 매입해 열린 공간, 체험 공간으로 선보이고 있다.

    북촌한옥마을엔 구경할 게 많다. 가지처럼 뻗은 골목과 포도송이처럼 다닥다닥 붙은 한옥들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하루를 보낼 수 있다. 어른들에겐 ‘아직도 이런 곳이 남아 있었구나’, 아이들에겐 ‘옛날엔 이런 곳에서 살았구나’를 느끼게 해주는 공간이다. 하지만 북촌에 볼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체험할 수 있는 개방형 한옥들이 여럿 있다. 오늘은 그곳을 중심으로 순례해보자.

    북촌마을 순례는 지하철 3호선 안국역에서 시작된다. 헌법재판소 정문을 지나, 담을 따라 골목길로 들어서면 옻칠공방이 나온다.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1호로 지정된 생옻칠장 신중현씨가 사는 집이다. ㅁ자형 집 마당은 신씨의 작업장이다.



    제기든 밥상이든, 옻칠은 한 번에 끝나는 게 아니다. 예닐곱 번 사포질하고 덧칠하기를 반복해 곱디고운 옻칠을 완성한다. 마당이 좁아 많은 사람을 받을 수는 없지만, 신씨는 예약한 손님들에 한해 옻칠 체험을 허락한다. 하지만 본격적인 작업은 못 된다. 옻칠 작업이 까다롭기 때문이다. 대개 일반인들에게는 옻칠하게 될 목기(木器)를 사포질하거나 초벌칠하는 일이 주어진다. 일은 단순하고, 고되다. 성과가 금방 보이거나 깔끔한 작업도 아니다.

    신씨는 “옻오르고 지저분한 일이라, 누가 하려고 합니까”라고 말한다. 하지만 옻칠이 무엇인지, 어떤 과정을 거쳐서 그렇게 깊고 고운 칠이 되는지를 궁금해하는 사람들에게는 일이 주어진다. 옻칠을 하고 바로 가져갈 수 있는 게 아니니 돈을 따로 받지 않는다. 제사상 하나 완성하는 데도, 신씨의 손에서 한 달을 거쳐야 한다.



    역사의 숨결·전통의 멋에 ‘흠뻑’

    생옻칠을 하기 위해 사포질을 하고 있는 신중현씨.

    역사의 숨결·전통의 멋에 ‘흠뻑’

    부적을 찍고 있는 초등학생과 어머니.

    재동초등학교 사거리를 지나 가회동성당이 있는 큰길로 올라가면 가회박물관이 나온다. 북촌에는 쌈지만한 박물관으로 한국불교미술박물관과 가회박물관이 있다. 둘 다 열정적인 개인이 유물을 수장(收藏)해 일반인에게 흔쾌히 공개하는 공간이다. 물론 입장료는 있다. 하지만 평생 동안 혼신의 힘을 다해 구한 보물들을 몇 천원 내고 구경하는 것에 아까워하지 말 일이다.

    가회박물관에는 민화와 부적들이 주로 전시돼 있다. 박물관 마당에는 부적 원판이 있어서 부적찍기 체험을 할 수 있다. 부적도 여러 가지다. 별자리 문양이 있는 소원성취 부적, 우환소멸이라고 쓰여진 근심걱정 물리치는 부적, 로또 추첨통처럼 보이는 문양이 있는 행운 부적, 돼지가 그려진 재물부적, 좋은 사람을 만나게 해주는 부적, 사랑이 성취되는 애정화합 부적, 삼재팔난을 막아주는 부적 등이 있다. 그 부적판 위에 한지를 얹고 롤러나 솜뭉치를 이용, 광명단 주사로 찍어내면 부적이 된다.

    옻칠·부적찍기 등 직접 할 수 있어

    역사의 숨결·전통의 멋에 ‘흠뻑’

    매듭공방에서 매듭 만들기 체험을 하고 있는 한 참여자.

    역사의 숨결·전통의 멋에 ‘흠뻑’

    오죽공방에서 오죽공예품을 만들고 있는 최선희씨

    또 이곳에서는 일주일에 한 번씩 북강습과 민화강습이 이뤄진다. 밑그림이 그려진 민화를 채색해보는 일은 언제든지 할 수 있는 작업이다. 친구 집 찾아가듯 이곳을 찾아와 부적도 찍어보고, 민화도 그려보고, 느긋하게 차 한잔 마셔보면 옛사람들의 여유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가회박물관과 같은 골목을 이용하고 있는 체험공방으로 오죽공방과 매듭공방이 있다. 최선희씨가 운영하는 오죽공방에서는 책갈피 만들기, 팔찌 만들기, 휴대전화 고리 만들기 체험을 할 수 있고, 조금 더 큰 규모를 생각한다면 가족과 함께 등 만들기를 할 수 있다. 등을 만드는 데는 4~5시간이 걸리지만, 나머지는 1~2시간이면 할 수 있다. 등 만들기는 7만원이고, 나머지는 1만1000원 정도 든다.

    오죽공방 위쪽에는 심영미씨가 운영하는 동림매듭박물관이 있다. 이곳에서는 매듭을 만들어볼 수 있다. 실크실을 이용해 목걸이, 휴대전화 고리를 만드는데 참여비용은 5000원 안팎이다. 또 정기적으로 매듭강습도 운영한다.

    오죽공방이나 매듭공방에서는 소품이지만 앉은자리에서 직접 만들어보고, 또 이를 가져갈 수 있어서 좋다.

    북촌을 하루 찾아오는 것만으로 아쉽다면, 북촌문화센터가 운영하는 정기강습을 들을 수 있다. 북촌문화센터는 조선 말엽 탁지부 재무관을 지낸 민형기의 외아들 민경휘의 집을 복원한 한옥이다. 이곳에서는 다양한 전통문화 강좌가 진행되고 있다. 서울에 북촌이 있고 북촌에 서울이 있으니, 가족과 함께 그곳을 찾아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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