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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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이 곧 상생 … 초심 잃지 마라”

사부 송기인 신부가 노대통령에게 주는 고언 “부패와 타협하면 우린 편해도 후대는 희망 없어”

  • 부산 =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입력2004-05-19 18: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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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 안 해.”

    카랑카랑한 목소리에 말을 붙이기 힘들 정도로 찬바람이 인다. 노무현 대통령의 정신적 지주이자 사부로 통하는 송기인 신부. 그는 취재기자가 전화를 하면 언제나 인터뷰 거절 의사부터 밝힌다. 참여정부 초기 기자들을 만나 이런저런 말을 했다가 구설에 휘말린 뼈아픈 기억 때문이다. 헌법재판소의 노무현 대통령 탄핵 심판 결과 발표를 하루 앞둔 5월13일, ‘주간동아’ 취재기자의 전화를 받은 송신부의 첫마디 역시 취재거부 의사였다. 다음날 헌법재판소의 탄핵 기각 결정이 난 지 3시간 뒤인 오후 1시 반경, 부산 중구 대청동 가톨릭센터 송신부 사무실을 ‘무작정’ 쳐들어갔다. 예상대로 “왜 왔어”라는 퉁명스러운 반응이었다. 그러나 표정은 온화했다.

    -탄핵안이 기각됐는데 마음고생이 많았지요.

    “…그렇지 뭐. 사필귀정이야. 앞으로가 중요해. 과거는 잊고 새 출발 해야 해.”



    저녁에 5·18 관련 모임이 있다는 송신부의 눈길은 계속 행사 관련 자료에 머물렀다.

    -새 출발은 해야지요. 문제는 방향인데, 무엇을 새로운 지향점으로 삼아야 할까요.

    “개혁을 해야 해. 부패를 척결해야 해. 수십 년 동안 켜켜이 쌓인 부패구조를 무너뜨리지 않고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 공무원은 물론이고 사회 곳곳이 썩었어. 지난 1년 썩은 환부를 도려낸 정치권을 봐. 총선을 통해 환골탈태했잖아. 이제 정치는 새로운 싹이 나고 있어.” 돌아온 노대통령의 우회전 행보가 못내 아쉬웠을까. 송신부는 줄곧 개혁을 외쳤다.

    -열린우리당 내부에서는 “노대통령의 국정 2기는 상생과 화합의 정치여야 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본심이 아닐 거야. 그렇게 믿어. 내가 아는 그들은 개혁의 필요성을 잘 알고 있어. 다만 국민들이 개혁에 대해 부담을 느끼니 그런 표현을 쓴 것으로 이해해. 이번에 원내대표가 된 천정배 의원을 봐. 대표적인 개혁론자잖아. 당에 개혁을 추진할 인재들은 많아.”

    -노대통령은 집권 후 지금까지 줄곧 개혁을 외쳤고, 개혁피로증도 누적된 상태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국민들이 희생을 감수해야지 어쩌겠어. 세 그릇 먹던 밥 두 그릇으로 줄이고…. 지금 부패와 적당히 타협하면 우리는 편한 삶을 살 수도 있어. 그러나 우리 후대(후손)는 희망이 없어. 그들은 죽어. 그래서 부패를 청산해야 해. 친일 잔재를 털지 못해 우리가 불필요한 국력을 얼마나 낭비했어. 지금 부패고리를 끊어야 해.”

    송신부는 참여정부 출범 초기 ‘노무현 대통령에게 바라는 글’을 작성했다. 수신(겸손함)과 제가(친인척 비리 문제), 치국(인사 탕평책) 등에 필요한 세세한 부분들을 짚어준 이 글은 당시 노대통령 주변 인사들 사이에서 큰 화제가 됐다. 송신부는 글에서 조급증을 버리고 여유를 가지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주량(酒量)을 늘리라는 이색 주문도 했다. 1년이 지난 지금 송신부는 노대통령을 어떻게 평가할까.

    “알다시피 실수가 많았어. 말과 행동도 그렇고…. 측근들도 준비가 덜됐고. 그러나 노대통령은 과거와 다른 리더십도 보여주었어. 하고자 하는 의욕은 대단했잖아. 그건 평가해야 돼.

    예를 들면 대통령 측근들이 비리혐의로 모두 감옥에 갔어. 집권 초기 측근을 감옥에 보낸 대통령은 없어. 과거처럼 문제 삼지 않으려면 검찰에 전화해 ‘덮어’라고 하면 그냥 없던 일이 될 수도 있었어. 그런데 노대통령은 그렇게 안 했어. 결국 자기 팔을 잘라 새로운 시대를 연 거야.”

    -경제나 외교 등 정책적인 면은 어떤가요.

    “사실 통일과 외교문제는 현안에 일희일비해서는 안 돼. 언제나 통일한국을 염두에 두고 정책을 펴야 해. 동서화합을 일궈냈으니 이제 남은 것은 평화통일이야.”

    -지난 1년 좌와 우, 진보와 보수 등 이념논쟁이 치열했고, 이는 국론분열 현상으로 이어졌습니다.

    “발전적인 논쟁은 필요하지만 논쟁에 그치는 것은 의미가 없어.”

    -다시 언론과 대립하는 분위기인데요.

    “개혁이 곧 상생 …  초심 잃지 마라”

    2월5일 고 안상영 부산시장 상가를 방문한 송기인 신부가 문재인 민정수석과 함께 유족을 위로하고 있다.

    “문제가 있다면 고쳐야겠지. 언론도 회사 이익이 아닌 나라를 위해 글을 써야 해. 그렇지만 과거처럼 그런 방법으로는 안 돼. 김대중(DJ) 정부 5년 동안 언론과 싸워 남은 게 없어.”

    -이라크 파병 문제도 따지고 보면 이념 갈등의 연장선상으로 볼 수 있습니다.

    “…안 가는 게 좋아. 그런데 이미 약속했잖아. 그럼 가야지. 하지만 노대통령과 정부는 화급을 다투는 다른 급한 사안들을 먼저 처리하며 시간을 벌어야 해. 당장 바쁘게 파병할 이유가 없어. 시간을 두고 천천히… 그러다가 현지(이라크) 상황이 달라지면 다른 방법을 찾을 수도 있고.”

    지난해 5월 스승의 날을 즈음해 송신부는 화가 많이 났다. 미국을 방문한 노대통령의 방미 행보가 마땅찮았기 때문이다. 노대통령은 당시 북핵 문제와 미2사단 배치 문제 등 현안 때문에 미국에 대한 자주적인 외교를 포기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송신부는 이에 대해 “원칙은 원칙대로 밀고 나가야지, 국민들이 바라는 걸 우선 해결해주자 하는 식의 외교는 인기영합이 된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당시 스승의 쓴소리에 청와대는 꽤나 민감하게 반응했다는 후문이다. 그로부터 1년 후, 공교롭게도 송신부를 찾은 5월14일은 스승의 날 하루 전. 일을 잘못 처리하면 언제든지 ‘이놈’ 하며 야단 치겠다던 스승에게,‘제자 노대통령에게 주는 고언’을 청했다. 송신부는 주저 없이 입을 열었다.

    “초심(初心)를 잃지 말고 가야 해. 기득권 세력의 힘이 막강하기 때문에 힘이 들지만 여기서 포기하면 안 돼. 개혁을 해야 모두가 살아. 그게 상생이야. 그러나 서두르면 안 돼. 현실에 너무 쫓기면 또 혼란이 와. 천천히 가도 늦지 않아.”

    -청와대가 다시 참모들을 발탁하고 있지만 참여정부 초기 발탁된 386들이 1년을 버티지 못하고 중도낙마했습니다.

    “실패했지 뭐….

    -실패의 원인은 무엇인가요.

    “…뜻은 높고 의욕도 앞섰어. 그런데 경험이 부족했어. 조직이 필요한 자질과 능력을 키우는 노력도 부족했고.”

    386에 대한 송신부의 평가는 이미 지난해 9월 내려졌다. 당시 부산 남구 남천동 사택에서 한 ‘주간동아’와의 인터뷰에서 송신부는 “자질과 경험이 부족한 386 인사는 실패”라고 밝혔다.

    -이번에도 같은 우를 경계하는 목소리가 나오는데요.

    “노대통령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아. 나는 그를 믿어.”

    -노대통령을 자주 만나나요. 아니면 전화통화라도.

    “임기 중에 안 만난다고 했잖아. 지난해 언제 한번 청와대에 들어가 저녁밥을 먹었어. 전화야 하고 싶으면 하는 거고….”

    평생 민주화 운동을 해온 송신부 주변에는 많은 정치인들이 있다. 정부 관료는 물론 지방도백, 심지어 지역의 이름 없는 386그룹까지 송신부의 동선은 넓다. 그는 지난 4월 초 구속 수감 중인 박지원 전 대통령비서실장을 면회했다. 살아온 궤적에 박 전 실장의 흔적은 없다. 면회 배경은 무엇일까.

    “배경은 무슨… 면회 갔다 온 지 10여일이나 지나 보도하면서 내용도 파악하지 않고 마치 음모가 있는 것처럼 보도하고…. 그게 무슨 신문이야. 박 전 실장이 법정에서 ‘남은 눈을 잃지 않도록 해달라’고 애절히 호소했다는 보도를 접하고 찾아갔어.”

    -김혁규 전 경남지사가 총리 후보로 거론되는데요. 6월로 예정된 지방선거에서 우리당이 이기면 노대통령이 좋은 선물을 줄 것이라고 말해 구설에 휘말렸습니다.

    “좋은 사람인데 어쩌다가…. 왜 구설에 오르는지 모르겠어. 노대통령 주변에는 좋은 사람들이 많아.” 송신부는 대만정부의 천수이볜 대만총통 취임식에 참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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