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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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년 천하무적 184연승 스파이크!

팀이름 세 번 바꿔가며 69~85년 코트 평정 … 배구 역사 통틀어 전무후무한 ‘금자탑’

  • 기영노 / 스포츠평론가 younlo54@yahoo.co.kr

    입력2004-01-15 16:3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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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년 천하무적 184연승 스파이크!

    옛 대농 시절 유경화의 파도와 같은 스파이크가 태광산업 안선숙 김광자의 방파제를 넘고 있다.

    배구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둥근 공’을 다루는 경기임에도 약한 팀이 강한 팀을 이기기가 좀처럼 쉽지 않은 종목이다. 상대의 서브를 리시브해서 토스를 거쳐 스파이크로 점수를 얻는 시스템으로 진행돼 팀워크가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탓에 약한 팀이 거포를 보강했다고 해서 곧바로 전력이 향상되지는 않는다. 얼마 전 현대캐피탈 남자배구팀이 길손이라는 브라질의 세계적 공격수를 영입해 우승을 노렸으나 성공하지 못한 게 좋은 예다.

    그러나 강력한 레프트에 영리한 세터, 수준급의 라이트, 센스 있는 센터 등 포지션별로 각기 다섯손가락 안에 꼽히는 선수를 보유하면 ‘세계적 스타’가 없더라도 연승행진에 나설 수 있는 스포츠가 바로 배구다. 지난해까지 삼성화재 남자배구팀이 그랬다. 세터 최태웅, 레프트 신진식, 라이트 김세진, 센터 신선호 등 포지션별로 수준급 멤버를 고루 갖춘 뒤 독주를 거듭한 것.

    수준급 멤버 두루 갖춰 독주 거듭

    그렇다면 배구에서는 과연 한 팀이 몇 연승까지 올린 기록이 있을까. 놀랍게도 한국 여자배구에서 무려 184연승을 올린 팀이 있다. 이는 국제배구연맹의 통계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전무후무한 기록. 184연승의 주인공은 국세청, 대농 그리고 미도파다. 세 팀이 모두 184연승이라는 기념비적 기록을 세운 건 아니고, 1969년 국세청으로 시작해서 대농으로 이름을 바꿔 나중에 미도파로 이어진 하나의 팀이 세운 기록이다. 연승행진이 85년까지 이어졌으니 무려 16년 동안 승리를 거둔 것이다.

    국세청은 69년 추계리그부터 승승장구하기 시작했다. 당시 국세청엔 김은희라는 당대 최고의 세터와 레프트 이인숙, 센터 김영자가 버티고 있었다. 국세청은 대농과 미도파로 이름이 바뀌면서도 패배를 몰랐다. 그 사이 유경화 윤영례 이운임 등이 국가대표 세터로 활약했고, 레프트 공격수로 ‘나는 작은 새’ 조혜정과 나중에 서울대에 진학한 박인실, 여자배구 사상 가장 파워가 좋았던 김화복 등이 국가대표 공격수의 계보를 이으며 연승행진을 견인했다. 라이트 공격수로는 이정자 곽선옥 김옥순 등이 있었고, 박미희 정영운 등 센터들도 A, B퀵으로 상대 코트를 유린했다.



    184연승을 올리는 동안 고비도 여러 차례 있었다. 미도파 이창호 감독의 영원한 라이벌 전호관 감독이 이끄는 현대가 호시탐탐 기회를 노렸고, 호남정유 동일방직 산업은행 태광산업 한국도로공사 등도 선수를 보강하며 연승 저지에 나섰다. 특히 81년 2월 대통령배배구대회 현대전은 패배 일보직전까지 갔다. 당시 현대는 국가대표 레프트 이은경과 라이트 겸 센터 김영숙, 센터 김종순 등 화려한 선수진이 기량을 과시하는 최고의 팀이었다. 미도파는 경기가 시작되자마자 얼떨결에 두 세트를 먼저 내줬으나 3세트부터 전열을 정비, 이후 내리 세 세트를 따내며 3대 2 역전승을 거두고 간신히 연승행진을 이어갔다.

    16년 천하무적 184연승 스파이크!

    미도파 시절 이창호 감독(왼쪽 가운데).미도파 시절 주선진(오른쪽 앞쪽).

    그러나 스포츠에서 영원한 승자는 없는 법. 85년 광주에서 벌어진 종별배구선수권대회에서 미도파의 연승행진은 최후를 맞이한다. 좋지 않은 일이 생기려면 조짐이 있게 마련. 김화복이 선경과의 경기를 앞두고 몸을 풀다가 공을 밟고 넘어져 부상한 것이 화근이었다. 당시 선경 멤버는 미도파를 능가할 정도로 막강했다. 국가대표 센터 김애희와 센터와 레프트를 오가며 종횡무진 활약하는 진춘례가 버티고 있었던 것.

    첫 세트 대접전 끝에 18대 20으로 내준 것이 뼈아팠다. 만약 1세트를 이겼다면 200연승도 가능했다는 게 당시 미도파를 지켜본 배구인들의 한결같은 얘기다. 1세트를 이긴 선경 선수들은 ‘이거 한번 해볼 만한데’라는 생각이 들었는지 자신들의 실력 이상의 활약을 발휘했다. 선경 선수들이 예상 밖으로 펄펄 날자 오히려 미도파 선수들이 주눅들어 2세트를 19대 21로 내줬고, 마지막 3세트에선 듀스까지 쫓아가며 버텼지만 15대 17로 패했다.

    이창호 감독은 184연승이란 대기록을 세울 수 있었던 이유를 크게 세 가지로 정리했다. 그가 가장 먼저 꼽은 것은 구단의 전폭적 지원. 스카우트 비용은 다른 팀에 비해 많지 않았지만 체육관 시설 음식 교통수단 등 훈련 여건이 좋았다는 것. 둘째로 그는 수비배구가 먹혔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모든 선수가 수비가 최선의 공격이라는 생각으로 훈련하고 ‘공을 자기 코트에 떨어뜨리면 죽는다’는 정신력으로 경기를 치렀다고 한다. 끝으로 이감독은 당시엔 실업팀이 특정 여고팀과 자매결연을 맺고 선수를 뽑았는데 자매결연팀인 광주여상 남성여고 등에서 좋은 선수들이 많이 배출됐다며 “운이 좋았다”고 겸손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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