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52

2016.08.24

커버스토리 | 빚 권하는 사회

“가계부채 청산, 정부가 나서라”

상환 능력에 따른 대출 원칙 확립, 집단대출 수정 필요…저소득층에 금융서비스 지원해야

  • 박창균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 cp19caubiz@gmail.com

    입력2016-08-19 15:5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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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0여 년에 걸쳐 가계부채 부담이 우리 경제를 짓누르고 있다. 과도한 부채 부담으로 정상적인 경제생활을 영위하지 못하고, 심한 경우 파산 외에는 방법이 없는 상황에 처한 사람을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거시적으로는 부채 부담으로 소비가 위축되고 경기침체가 장기화하는 조짐을 보이고 있으며, 가계부채 부실화로 금융시스템의 안정성이 위협받을 개연성이 어느덧 무시하지 못할 수준에 도달한 듯하다. 사실 더 답답한 것은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문제가 폭발할 때까지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는 법. 파국적 상황을 피하기 위해 정부는 무엇을 해야 할까.

    첫째, 상환 능력에 따른 대출 원칙을 확립해야 한다. 고액 자산가 등 일부 예외는 있으나, 상환 능력은 대체로 소득을 의미한다. 따라서 미래 예상되는 소득으로 원리금을 지불하고도 정상적인 경제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지 여부가 상환 능력을 판단하는 기준이 돼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가처분소득 대비 원리금상환비율로 계산되는 채무상환비율(debt service ratio)이 지표로 널리 쓰이고 있다. 서구에서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채무상환비율이 30%에 도달하면 해당 차주(대출자)의 상환 능력이 한계에 도달한 것으로 간주한다. 제도권 금융회사에서 더는 부채 조달이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모든 대출에 DTI 적용해야

    우리나라는 채무상환비율이 20%를 넘는 경우가 많지 않아 아직까지 다소 여유가 있다는 주장도 있지만 이는 우리나라 주택금융제도의 특징을 감안하지 않은 잘못된 생각이다. 거의 모든 나라에서 주택담보대출은 가계부채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므로 주택금융제도는 가계부채 문제의 양태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그간 정책적 노력으로 상당 부분 바뀌긴 했으나 주택담보대출에 분할상환 원칙이 확립돼 있는 서구와 달리 여전히 우리나라는 만기까지 이자만 상환하는 대출이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낮은 채무상환비율은 이러한 사정이 반영된 결과이므로 서구의 경우와 동일한 기준으로 해석할 수 없다.

    이러한 점을 감안해 감독당국이 대안으로 채택한 규제 기준이 총부채상환비율(Debt to Income·DTI)이다. 우리나라의 특수한 상황을 반영한 적절한 선택이었으며, 국제통화기금 등 국제기구도 가계부채 증가 억제에 크게 기여한 정책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두 가지 정도 보완이 필요하다. 현재 수도권지역으로 한정된 DTI 규제를 전국으로 확대하고, 주택담보대출뿐 아니라 차주의 모든 대출을 포함해 DTI를 계산한 뒤 이를 가계대출 감독 정책의 핵심 지표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 DTI 상한을 높게 설정하되 시장 상황을 보면서 규제 목적 달성에 필요한 수준까지 낮춰간다면 시장이 받는 충격은 줄어들 것이다.



    둘째, 가계부채 건전성 유지를 위한 규제 정책이 부동산시장 상황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잘못된 관행을 반드시 없애야 한다. DTI 규제가 수도권지역에 한정된다는 사실 자체가 금융감독 정책이 부동산시장 상황을 고려해 결정되고 있다는 직접적인 증거이기도 하지만, 최근 급증하는 아파트 집단대출과 관련한 논란도 금융감독 정책이 부동산 경기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빠르게 늘어나는 아파트 집단대출에 대한 위험 관리가 강화되자, 건설업계와 주택정책 당국 등이 앞장서 겨우 살아난 부동산 경기를 다시 죽인다는 우려를 내세우며 규제 완화를 강하게 주문하고 있다.

    집단대출 심사 강화가 부동산시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명백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수익성이 불확실한 사업장으로 들어가는 자금을 차단함으로써 부실 발생 여지가 상당 부분 축소됐다는 점이다. 집단대출은 후분양제도라는 우리나라의 기형적 주택시장 구조를 떠받치는 핵심 기제로, 금융 규제의 사각지대에 방치돼온 것이 사실이며 지금이라도 해소해야 하는 잘못된 관행이다. 집단대출의 근본 문제는 시공사의 보증과 공사 중인 아파트의 담보 가치에만 의존해 대출이 이뤄지고, 원리금상환 의무를 지는 입주 예정자의 상환 능력은 전혀 점검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분양 아파트 대출에는 DTI나 소득증빙 요구 등 핵심적인 금융 규제가 적용되지 않는데, 주택시장과 건설업계의 현실을 수용한다는 것 외에는 별다른 논리적 근거를 찾을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신용상담사 활용해 가계 지출 컨트롤해야

    마지막으로, 가계부채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은 채무자가 빚을 갚는 것이라는 원칙을 명시적으로 밝히고, 가계의 부채 상환을 촉구하는 사회 분위기를 확립해야 한다.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채무자가 상환에 적극 임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거나 상환 부담이 지나치게 크지 않도록 지원하는 것 정도에 불과하다. 가계부채가 누적되는 이유는 가계가 소득보다 많은 지출을 유지하기 때문이므로 해결책도 소득을 늘리거나 지출을 줄이는 방법에서 찾는 것이 당연하다. 소득을 늘리는 것이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다면 지출을 줄여 채무를 줄이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나라 가계 지출구조를 살펴보면 채무 상환 의지와 능력에 심각한 의문이 제기되는 것이 사실이다. 가계의 지출구조 개선 노력을 지원하는 장치로 신용상담사(credit counselor)제도 도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신용상담사는 가계의 지출과 저축, 투자 결정과 관련해 조언하고 문제 발생 시 채무자를 대리해 채권자와 협상하며 부채 상환 부담을 경감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가계의 금융주치의라 할 수 있다. 문제가 있음을 본인 스스로 깨달으면 이미 늦은 경우가 많으므로, 신용상담사에게 조언받아 조기에 발견하고 해법을 강구할 기회를 가질 수 있다면 사회적으로 매우 의미 있는 변화가 생길 것으로 기대한다.

    특히 저소득층은 금융지식이 부족하고 생계에 쫓기는 나머지 자기 상황에 맞지 않는 금융상품에 의지하거나 정상적인 상환이 불가능한 고금리 차입을 선택하는 등 잘못된 의사결정을 하는 경우가 많다. 정부는 저소득층이 쉽게 신용상담사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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