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96

2003.08.07

정대철 ‘히든카드’ 남았나

노대통령·386과 샅바싸움 한창 … 측근들 입 통해 제2, 제3 폭탄발언설 솔솔

  •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입력2003-07-30 14: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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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대철 ‘히든카드’ 남았나

    7월27일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 선친 묘소를 찾아 기도중인 정대표.

    7월24일, 청와대 인사개편론을 던진 후 지인들과 저녁 늦게까지 술자리를 함께했던 민주당 정대철 대표가 서울 신당동 자신의 아파트 앞에 모습을 나타낸 것은 밤 12시가 가까운 시각이었다. 기다리던 몇몇 취재진이 정대표에게 다가가자 정대표는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왜 이러고 있어. 안으로 들어가자”고 말했다. 평소 자택 공개를 꺼리는 그였지만 처지가 처지인지라 쉽게 마음의 문을 연 것. 정대표의 부인이 내온 맥주로 목을 축인 기자들이 인사개편 발언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정대표는 동문서답으로 대응했다. 느닷없이 거실 탁자에 놓인 수석(壽石)을 가리키며 “40년쯤 전 어느 정치인이 선물한 거야. 이 수석을 보고 있으면 근심이 사라져…”라고 말했다. 정대표는 취기 어린 표정으로 한동안 수석을 응시했다. 다음날 측근들과 또다시 통음을 한 그는 26일 새벽에 귀가했다. 이날 정대표는 하루 종일 집 안에서 칩거했다. 측근 L씨에 따르면 “지금까지의 대응논리나 손익을 따져보고 향후 전략을 심사숙고하는 시간이었다”고 한다.

    검찰 출두는 일단 버티기로 방향 잡은 듯

    정대표는 요즘 마음이 오락가락하는 것 같다. 유인태 청와대 정무수석이나 문재인 민정수석, 그리고 김상현 민주당 고문 등을 만나면 언론 보도와 달리 그들의 말을 잘 경청한다고 한다. 김원기 민주당 고문 등이 “검찰 조사에 응하라”고 설득하면 마음이 흔들리다가 측근들과 마주 앉으면 다시 저항 의지를 되살리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통음을 하면서 ‘모든 것을 포기할’ 마음을 보일 때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청와대와 386,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회한의 감정을 보일 때가 더 많다고 한다. 정대표측은 7월 말로 예정했던 검찰 출두를 뒤로 미룰 것으로 보인다. 일단 버티기로 방향을 잡았다는 것이다. 시간을 벌면서 청와대가 “대선에서 당의 승리를 위해 애쓰다 생긴 일”로 정리해주는 식의 해법을 염두에 뒀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나 이보다 “대책 없이 지금 출두하면 돌아오지 못한다. 혼자 희생양이 될 게 뻔하다”는 절박감이 더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정대표가 잡아놓은 7월 말과 8월 초 스케줄도 이런 분석을 뒷받침한다.

    정대철 ‘히든카드’ 남았나

    7월23일 노무현 대통령이 수석·보좌관 회의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정대표측은 조만간 김대중 전 대통령을 방문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대표는 7월28일 “민주당의 정신과 법통을 계승하려는 노력에 대해 미래를 포기하고 과거에 집착하려는 것으로 폄하해선 안 된다”고 말해 민주당에 대한 애착도 강하게 내비쳤다. 이런 일련의 행보는 ‘정(鄭)의 전쟁’으로 해석되기에 충분하다. 민주당과 거리를 두고 있는 노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움으로써 개인비리 양상으로 비쳐지는 ‘굿모닝게이트’를 정면돌파하겠다는 전략이라는 것.

    ‘정의 전쟁’을 준비중인 정대표 주변에는 5인의 참모들이 있다. 민영삼 민주당 부대변인, 정진우·송태경 비서실 차장, 손동호 국회정책연구원, 계보사무실 격인 ‘동북아시대연구소’의 고영하 소장 등이 정대표를 돕는 측근 5인방. 이들은 굿모닝게이트의 해법과 관련, 일관되게 강공 기조를 유지한다.



    정대철 ‘히든카드’ 남았나

    청와대 문재인 민정수석이 기자들과 대화하고 있다.

    정대표는 24일 청와대 인사개편을 요구한 직후 파문이 커지자 “특정 사안을 놓고 말한 것이 아니라 원론적인 것을 말한 것”이라고 한 발 물러섰다. 그러나 측근 5인방 가운데 한 인사가 곧바로 기자를 만나 수위를 급상승시켰다.

    “우리 입장에서 ○○○ 하나 날려서 될 일이냐. 신당 사무총장을 하겠다는 안희정의 말을 듣고 정대표는 기절할 뻔했다.”

    이 측근은 정대표의 청와대 인사개편과 관련해 구체적 퇴진 대상을 지목하는 강한 모습도 보였다.

    “문재인 민정수석비서관, 박범계·이호철 비서관, 이광재 국정상황실장과 민주당 안희정 국가전략연구소 부소장 등 386 세력들을 겨냥한 것 아니겠느냐.”

    다음날 동아일보를 비롯해 각 언론은 정대철-노무현 갈등설을 1면 톱으로 보도했다. 정대표 측근 5인방은 정대표와 청와대와의 물밑 교류도 여과 없이 쏟아낸다. 이런 식이다.

    “노대통령이 기자회견한 날, 정대표는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사석에서 ‘형님’이라고 부를 정도로 친하지만 이날 유 정무수석이 많이 혼났다. ‘정말 그런 식으로 할래. 도대체 나한테 무슨 말을 하려고 그러느냐. (노대통령에게) 가서 그대로 전해라’고 고함쳤다.”

    신주류 한 관계자는 7월26일 “측근들이 지나치게 강경 기류를 만든다”며 “더 이상 갈등을 증폭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정대표가 주변정리에 나서야 한다”고 했다.

    청와대는 25일 과장된 정보 전달의 한 예로 정대표와 문재인 수석 간의 22일 회동건을 든다. 문수석은 이날 “정대표가 20분 만에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는 정대표 측근들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고 해명했다. 문희상 대통령비서실장이 정대표와 통화하기 위해 다섯 번이나 전화를 걸었다는 정대표 측근들의 주장도 사실무근이라고 윤태영 청와대 대변인이 밝혔다.

    그러나 정대표 측근들은 “안희정 사건 때에는 감쌌지 않느냐”며 청와대의 차별대우에 각을 세운다.

    “당이 없으면 청와대도 없다”는 ‘순망치한(脣亡齒寒)’론을 펴는가 하면, “지금 다 까발릴 수야 없지 않느냐”며 노대통령을 압박하면서도 “청와대에 대한 기대는 접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특히 신주류에 대한 감정의 골이 깊다.

    정대철 ‘히든카드’ 남았나

    이광재 국정상황실장, 안희정 민주당 국가전략연구소 부소장, 박범계 민정2 비서관(왼쪽 부터).

    한 측근은 “이번 사건을 통해 정대표를 보는 신주류의 시각이 얼마나 이중적인지를 확인했다”고 말했다. 외곽에서 정대표를 지원하고 있는 한 인사는 이번 사건을 놓고 ‘386의 실패한 쿠데타’로 규정하기도 했다. 청와대와 당에 포진한 386 측근들이 신주류 내 중진들을 날린 후 패권을 쥐려 한다는 의혹에 바탕을 둔 주장이다.

    따라서 정의 전쟁에 있어 386그룹은 1차 타깃으로 설정했다. “굿모닝게이트에 연루된 인사들이 많은데 유독 나에게만 화살이 날아온 배경에는 이들 386그룹의 숨은 역할이 있다”는 음모론에 따른 전선이다. 정대표는 측근들에게 “대선 때 있었던 일을 내가 다 아는데, 왜 나만 죽이려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궁극적으로 노대통령이 대척점에 있음을 정대표 측근들은 부인하지 않는다.

    이들은 정대표에 대한 검찰수사가 최악의 상황으로 전개될 경우 정대표의 신당불참설도 검토할 것으로 알려졌다. 비주류의 길을 걷겠다는 것이다. 정대표에 대한 수사가 정치자금 사건이 아닌 개인비리 사건으로 결론이 날 경우 선친인 정일형씨의 손때가 묻은 민주당에 기대는 것이 유일한 수단이라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시간 날 때마다 동작동 국립묘지로 달려가는 정대표의 모습에서 남다른 의지를 확인할 수 있다. 검찰에 출두하기 전 노대통령 및 청와대와 날카롭게 대립하는 모습을 국민들에게 각인시킨 뒤 나중에 반(反)노무현 세력과 정치적 호흡을 맞춘다는 구체적 수순도 거론되고 있다.

    당내 일부 인사들도 정대표의 입장에 동조하고 나섰다. 조순형 의원은 7월27일 “현행 비서실 체제를 개편하고 비서진도 물갈이해야 한다”며 정대표의 문책인사에 동조했고 김근태 의원도 “대통령 판단 하에 비서진을 개편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상자기사 참조). 그러나 최근 신주류를 중심으로 다른 분위기가 흘러나온다. 당·청 갈등으로까지 비화하고 있는 정대표 문제가 조속히 정리돼야 한다는 차원에서 은연중 개인적 결단을 촉구하는 기류가 보이고 있는 것. 정대표의 장고(長考)를 지켜보던 천정배 의원이 칼을 뽑았다. 그는 “적절한 시기에 (검찰에) 출석하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고, 그렇게 할 것으로 본다”며 정대표 수사문제와 당무의 분리를 주장했다.

    청와대는 정대표측의 전선 형성에 일절 대응하지 않고 있지만 곤혹스러운 표정이 역력하다. 이런 고민 때문에 청와대는 이번 문제를 ‘정치문제’가 아닌 ‘법의 문제’로 성격을 규정했다. 한 언론은 7월28일 청와대 한 핵심 관계자의 말을 인용, “청와대는 정대표 문제에 대해 해법이 없다는 게 정답”이라고 말했다.

    청와대가 이미 자신의 방패가 되어줄 의사가 없다고 판단한 정대표는 ‘정의 전쟁’을 통해 홀로서기를 시도하고 있다. 한 측근은 “26년 정치인생의 중대 갈림길에 선 정대표는 더 이상 누구의 눈치를 보거나 사정을 봐줄 형편이 아니다”고 말한다. 검찰수사가 최악의 상황으로 전개될 경우 정대표는 신당에 불참하는 것을 검토할 것으로 알려졌다. 비주류의 길을 걷겠다는 의사표시이자 노대통령과 갈라설 것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과연 두 사람은 서로를 버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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