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89

2003.06.19

“수도권 규제가 기업 경쟁력 암초”

손학규 경기지사 “공장 총량제 탓 투자 발길 뚝” … 대권에 대해선 시인도 부인도 안 해

  •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입력2003-06-11 14: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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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도권 규제가 기업 경쟁력 암초”
    손학규 경기도지사는 취임 후 경기도의 도정 목표를 ‘세계 속의 경기도’로 정했다. ‘세계화만이 우리의 생존을 보장할 수 있다’는 확고한 믿음에 따른 것이다. “경기도의 경쟁력이 대한민국의 경쟁력”이라는 믿음 역시 손지사의 또 다른 도정 철학이다. 경쟁력 강화를 위해 손지사는 요즘 ‘수도권 규제 철폐’ 문제에 관심을 기울인다. 손지사는 지난해 대선 패배 이후 별다른 변화를 보이지 않는 한나라당에 대해서도 완곡한 표현으로 자기반성을 촉구했다. 이른 감이 있지만 2007년 대선에 대한 ‘꿈’도 부인하지 않았다. 6월5일 경기 수원시 지사관저에서 그를 만났다.

    -취임 1주년이다. 정치인에서 행정가로 변신했는데 어려움은 없는가.

    “지난 1년간은 경기도를 총제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땀으로 현장을 적신 한 해였다. 사회발전 속도만큼 국민들의 욕구도 빠르고 다양하게 변하고 있다. 지난 1년은 이런 변화의 흐름에 발맞출 수 있는 인프라와 시스템 구축에 총력을 기울였다. 시스템이 구축되면 명실상부한 선도 자치단체로서의 위상을 확보할 수 있다고 본다. 동북아 경제중심, 통일의 전진기지, 쾌적한 삶의 환경, 선진교육·문화 등 4대 도정 방침을 실현하는 것이 앞으로의 과제다. 나는 경기도의 경쟁력이 대한민국의 경쟁력이라고 생각한다.”

    -동북아 경제중심지로서의 구체적 계획은?

    “평택항 활성화와 배후지 개발에 주력하고 서해안지역의 항만·공항과 고속전철역 등 주요 교통 거점들을 연결하는 광역교통망 구축 등 SOC 확충에 역점을 두고 있다. 이는 통일시대에 대비한 남북교류 협력의 전진기지 역할을 맡기 위한 준비작업이기도 하다. 수원·용인의 반도체 집적지, 성남의 디자인·벤처 집적지, 안양의 지식산업센터 등을 잇는 지식기반산업 벨트를 조성하고 나노(NANO)산업단지 유치도 적극적으로 추진할 예정이다.”



    -6월1일 노무현 대통령을 만난 재벌총수들이 정부의 수도권 규제 완화를 요구했는데….

    “기업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조치다. 불필요한 규제로 기업들이 한국을 떠나거나 제품 수출에 지장을 받는 경우가 허다하다. 쌍용자동차 평택공장은 마당에 텐트를 치고 자재를 쌓아놓았다. 우리나라 대외수출의 주력산업인 삼성반도체가 수도권에 600억 달러(약 72조원) 규모의 공장을 건설할 예정이지만 공업배치법 때문에 공장을 증설하지 못하고 있다.”

    “수도권 규제가 기업 경쟁력 암초”

    손학규 지사(오른쪽)는 지난 1년간 현장을 찾은 결과 국민들의 변화 욕구를 실감했다고 말했다.

    -수도권 공장 총량제 철폐는 국가 균형발전 전략에 어긋난다. 무엇보다 경기도의 이기주의라는 따가운 비판이 나올 텐데….

    “10년 전 목포에 대불공단을 건설했다. 지금 그 공단의 평균 입주율은 30%다. 수도권에 공장을 짓지 못한 많은 기업들이 왜 그곳을 찾지 않을까를 생각해봐야 한다. 장난감 회사인 레고사가 지난해 경기도 이천에 2억 달러 규모의 투자계획을 세웠다가 수도권 공장 총량제 때문에 독일로 떠났다. 3억 달러를 투자하려던 페어 차일드도 같은 이유로 독일로 발길을 돌렸다. 삼성전자는 왜 대불공단보다 중국공장을 먼저 검토하는가. 수도권에 투자하는 걸 막아 기업들을 지방으로 분산시킨다는 국가 균형발전 논리를 기업들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할 수는 없다. 그들은 이윤추구라는 기업논리로 현실을 본다. 기업 경쟁의 기본 단위는 인프라가 잘 갖춰진 대도시권이다. 이제 기업들이 세계시장에서 경쟁하도록 규제를 풀어주어야 한다.”

    “수도권 규제가 기업 경쟁력 암초”
    -수도권 과밀, 녹지공간 부족 등 부작용에 대한 대책은?

    “경쟁력이 있는 곳은 더욱 경쟁력을 키워줘야 한다. 21세기 세계화 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다. 대신 세금을 많이 거둬 지방에 재투자하는 윈-윈 전략이 필요하다. 환경과 수도권 인구집중 등은 중·장기적 전략을 통해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영국 프랑스 일본 등 선진국들의 경우 이미 수도권 규제 정책을 포기하고 경쟁력 강화 정책으로 돌아섰다.”

    손지사는 지난해 선거기간 중 당선되면 은행과 우체국 슈퍼마켓 등 모든 시설에서 영어를 사용하는 ‘영어마을’을 만들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취임 이후 손지사는 이 공약을 실행하기 위해 꽤나 많은 정성을 기울였다.

    “생각보다 반응이 좋다. 먼저 개설한 사이버 영어마을에 접속한 네티즌이 무려 200만명(3개월 기준)이다. 영어캠프는 무려 80대 1(수원시)의 경쟁률을 보인다. 영어마을은 단순히 영어 점수를 높이려는 캠프가 아니다. 21세기에는 과학기술과 서비스산업으로 승부해야 한다. 우리가 굴뚝산업에서 벗어나 물류와 서비스산업에서 경쟁력을 갖추려면 네덜란드 같은 역할을 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영어 구사가 필수다. 영어마을이 일정부분 효과를 거둘 것으로 확신한다.”

    미국의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텍사스 주지사를 지냈고,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아칸소 주지사 출신이다. 한국에서는 이인제 의원이 경기도지사를 지낸 후 대선에 도전한 바 있다. 손지사도 그 맥을 잇는 정치인으로 평가된다. 지난 대선 후 한나라당에서는 정치인 ‘손학규’에 대한 품평이 일었다. 본인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경기도를 잘살게 하고 기업하기 좋은 지역으로 만드는 것이 지금 내 생각의 전부다. 그것이 대한민국을 일으키는 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나에 대해 도지사만 할 사람이 아니라고 얘기하지만, 나는 경기도의 경쟁력이 대한민국의 경쟁력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모든 사안에 경기도만의 이기적 이해관계로 접근하거나 결론내리지는 않는다.”

    배석했던 한 측근이 “손지사는 지금 경기도라는 관문을 통과하고 있는 중”이라고 설명하자 손지사는 손사래를 쳤지만 싫지 않은 표정이었다.

    -친정인 한나라당의 대표 경선이 생각보다 국민들의 관심을 받지 못하는데….

    “한나라당이 지난 대선에서 왜 졌을까, 변화를 갈망하는 국민들의 뜻에 한나라당은 어떻게 부응할 것인가, 국민들에게 비전과 희망을 줄 준비는 됐는가. 이런 것들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모습을 경선에서 보여줘야 하는데…. 경선은 축제고 국민들의 에너지를 결집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그런 고민이 없어 대선에 진 것인가.

    “변화의 흐름을 읽는 능력이 부족했고 그것이 많은 패인 중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치 지도자에게 필요한 리더십은?

    “해양대학을 나와 선장으로 일하는 친구 말에 따르면 선장의 역할 중 가중 중요한 것은 ‘지금 우리 배가 어디에 있는가’라는 위치 파악이라고 한다.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야 바로 앞에 험한 파도가 있는지, 폭풍우가 밀어닥칠지 알 수 있는 것 아닌가. 그 토양이 구축되면 자연 우리가 갈 길이 보이고 그에 필요한 지도력은 자연발생적으로 등장한다.”

    -출범 100일이 막 지난 노무현 대통령에게도 같은 충고를 할 수 있나.

    “2월6일 노무현 당선자가 ‘우리는 여태까지 변방에서 살았다. 이제 세계의 중심을 이뤄야 한다’고 말하며 동북아 중심국가를 부르짖었다. 그러다가 중국이 싫은 표정을 짓자 ‘동북아 경제중심’이라고 용어를 바꿨다. 관념적 구호로 세계 속의 한국을 건설할 수 없다. 세계질서는 어떻게 형성되는가, 세계를 움직이는 힘은 어떻게 나오는가, 이런 것에 대한 진지한 고민 없이 자주와 민족을 얘기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손지사의 좌우명은 ‘수처작주(隨處作主)’다. 당나라 말기 대표적인 선사인 임제 의현이 남긴 말로, ‘어디를 가든, 무슨 일을 하든 주인의식을 가지라’는 뜻이다. 손지사는 한나라당과 경기도에 이 사자성어의 실천을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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