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88

2003.06.12

‘족집게 밥상’ 받으면 행복할까요?

내 유전자에 딱 맞는 ‘맞춤식단’ 10년 내 가능 … 입맛 당기는 음식과 충돌 땐 어쩌나

  • 허두영/ 과학평론가 huhh20@naver.com

    입력2003-06-04 15: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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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족집게 밥상’ 받으면 행복할까요?
    아침식사를 거르는 이들이 적지 않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국민건강영양조사 자료에 따르면 우리 국민의 21.1%가 아침식사를 거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중고생(13~19세)의 36.9%, 20대의 45.4%, 30~40대의 21.5%가 아침식사를 거르는 것으로 조사돼 젊은층으로 갈수록 아침식사를 많이 거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이유도 각양각색이다. 등교·출근 준비하기도 바쁘다, 입맛이 없다, 화장실 가기가 부담스럽다, 살 빼야 한다 등등.

    각종 연구결과는 아침식사를 거르면 당뇨 비만 심근경색 등 성인병에 걸릴 확률이 높아지고 감기 같은 사소한 질병에 대한 면역력도 감퇴한다고 경고한다. 또한 오전시간에 집중력이 떨어질 뿐 아니라 점심식사 때 과식해 그 후유증으로 오후에는 몸이 나른해질 수도 있다. 게다가 쉽게 살이 찐다. 그래서 ‘아침밥은 임금, 점심밥은 머슴, 저녁밥은 거지처럼 먹어라’라는 말이 어느 정도 과학적 합리성을 갖는 것이다.

    최근 아침시간에 바쁜 직장인이나 학생을 위해 식단을 짜 매일 식사를 배달해주는 인터넷 쇼핑몰이 인기를 끌고 있다. 장을 볼 시간이 없는 맞벌이 부부나 독신자들이 월 3만~7만원 정도만 내면 간단하게 식사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양을 고려해 식단을 짜고 반찬이나 국 등의 메뉴를 자주 바꿔주기 때문에 질리지 않으면서도 균형 있는 식사를 할 수 있다.

    영양학 분야 활용 새로운 영역

    ‘족집게 밥상’ 받으면 행복할까요?

    최근 식단을 짜주는 서비스를 시작한 한 인터넷 쇼핑몰.

    한 인터넷 쇼핑몰이 아침식사로 제안하는 주문형 식단(2인분 가격)을 한번 살펴보자. ◇쇠고기미역국, 두부부침(2800원) ◇매운 북어국, 감자채볶음(4000원) ◇양파를 넣은 감잣국, 삼치구이, 오이부추무침(4400원) ◇다시마뭇국, 상추치코리생채, 양송이야채볶음(5300원)….



    이 쇼핑몰은 전문 영양사가 칼로리를 계산해 영양학적으로 합리적인 식단을 구성했다고 광고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식단은 대단히 일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생산자나 소비자는 단지 음식 취향과 가격이라는 정보밖에 활용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만약 이 업체의 전문 영양사가 나의 건강과 영양 상태에 대한 정보를 갖고 있다면 내게 꼭 맞는 식단을 마련할지 모른다.

    최근 인간 게놈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완료되면서 유전자를 영양학 분야에 활용하는 새로운 영역이 떠오르고 있다. ‘맞춤형 약품’ 또는 ‘맞춤형 식단’이라고 할 수 있다. 개인에게 꼭 맞는 약품이나 식단을 제공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물론 그에 대한 관리 또한 간단하다. 휴대전화나 전자우편으로 개인에게 필요한 다이어트 정보를 제공하는 업체를 활용하면 된다. 이 업체는 개인의 특성에 따라 맞춤형 다이어트 스케줄을 제공해준다. 사이트에 접속해 자신의 생활습관과 식습관, 건강상태 등을 입력하면 자신에게 맞는 식단과 운동 등 다이어트 정보를 원하는 기간 동안 하루 두 번씩(점심, 저녁) 받을 수 있다. 이 같은 정보서비스를 주문형 식단과 결합한다면 내게 꼭 맞는 식단을 배달받을 수 있다.

    그러면 내게 꼭 맞는 식단은 어떻게 짤 수 있을까. 적어도 10년 이내에 손가락에서 피 한 방울 뽑는 것만으로 나만의 완벽한 식단을 구성할 수 있다. 의사는 나의 혈액에서 추출한 DNA 유전자 정보와 단백질 정보를 분석한 뒤 앞으로 한 달간의 추천 식단을 구성하여 휴대전화나 전자우편으로 보내줄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당신은 몸 속의 조효소(助酵素)를 늘리기 위해 비타민 B가 풍부한 조개와 게, 쇠간, 두부를, 아내는 혈압을 낮추기 위해 팝콘과 상추, 복숭아 주스, 탄산수를 자주 섭취하라고 권고받는다. 몸에 좋은 음식의 종류와 분량, 그리고 섭취 주기까지 아주 자세하게 통보받는다. 물론 선천적으로 건강한 몸을 타고난 사람은 붉은 살코기, 땅콩버터, 아이스크림 따위를 맘껏 먹어도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다.

    앞으로 개인의 음식에 대한 취향은 유전자 특징에 따라 결정돼, 각종 영양소의 균형을 자율적으로 맞출 수 있게 될 것이다.

    ‘족집게 밥상’ 받으면 행복할까요?

    한 회사 구내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하는 회사원들(왼쪽)과 살 빼기 프로그램에 참가한 초등학생들. 질병 발생요인의 상당 부분이 음식물에 있는 만큼 이제 일률적인 메뉴로 식사하는 풍경은 사라질지 모른다.

    만약 콜레스테롤이나 체지방 수치를 전혀 신경 쓸 필요가 없는 사람이라면 새우나 베이컨이 많이 들어 있는 샌드위치를 아무 거리낌 없이 먹어도 될 것이다. 또 건강을 위해 돈을 쓰는 것을 전혀 주저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몸에 좋다는 약이나 영양제를 얼마든지 사 먹어도 된다.

    하지만 콜레스테롤 수치에 민감하고 건강보조제를 살 때마다 망설여야 하는 보통사람이라면, 피 한 방울을 희생한 대가로 얻을 수 있는 이런 ‘족집게 식단’을 마다할 리 없다. 유전자 정보가 제시하는 식단에 따라서 식사를 하면 콜레스테롤에 대한 걱정은 사라지고, 별 효과가 없는 비타민 영양제를 사는 데 돈을 쓸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다.

    게놈시대 첫째는 ‘식도락 혁명’

    그 과학적 전제는 누구나 알고 있는 이른바 ‘식이요법’이다. 암이 발생하는 요인의 30% 정도를 음식물이 차지하고 있는 만큼 식이요법은 매우 중요한 만성 질환 치료 방법이다. 체질에 맞게 조정해 먹는 음식물은 때론 개인 유전자 특성의 발현을 막거나 유전자 자체를 변형시키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식이요법의 영향이 개인의 유전자 구성에 따라 달라진다는 사실이다.

    음식을 먹을 때 일어나는 생물학적인 현상을 살펴보자.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과학자들은 음식은 그저 신진대사를 통해 세포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았다. 그러나 음식으로 섭취한 모든 화학물질이 신진대사를 통해 분해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화학물질은 전혀 분해되지 않을 수도 있다. 때때로 그것은 내장에서 소화되는 순간 단백질과 결합하여 특정한 유전자 특성을 발현시키는 역할을 하는 리간드(ligand)가 되기도 한다.

    ‘족집게 밥상’ 받으면 행복할까요?
    유전자 영양학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영양소를 고루 갖추지 못한 식단을 짤 경우 만성 질환을 일으키는 방향으로 유전자가 발현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결국 개인에게 맞는 맞춤형 식단을 구성해야 영양의 균형을 이룰 수 있다는 것.

    콩에 들어 있는 화학물질인 제네스타인은 에스트로겐 호르몬 수용체에 달라붙어 유전자의 활동을 조절한다. 개인마다 에스트로겐 호르몬 수용체가 제네스타인에 서로 다르게 반응할 수도 있다. 유전자의 특성이 다르면 똑같은 식단이 상반된 결과를 보일 수 있는 것. 콩을 통해 섭취한 제네스타인이 어떤 사람에게는 체중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는 반면 어떤 사람에게는 살이 찌게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인간의 유전자는 이미 99.9% 이상 해독됐다. 이제 그것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방식이 백화제방으로 세상에 선보일 것이다. 인간 게놈시대가 가져올 첫번째 변화는 바로 ‘식도락’의 혁명적인 변화가 될 가능성이 높다. 결국 이것은 모든 생활의 유전자 결정론의 또 다른 변형일 수도 있다.

    내 유전자는 내가 먹고 싶어하는 것과 먹어야 하는 것을 정말로 알고 있을까. 혹은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 과연 내 유전자도 원하는 것일까. 만일 먹고 싶은 것과 유전자가 요구하는 것이 다르면 어떻게 할 것인가. 내 밥상마저 맘대로 차려 먹을 수 없는 시대는 과연 개인에게 행복일까 불행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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