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87

2003.06.05

‘월수 300 보장’ 함정뿐인 유혹

업무내용 안 밝히고 임금도 광고와 딴판 … “275만원어치 물건 사면 정규직 채용”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03-05-28 15: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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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수 300 보장’ 함정뿐인 유혹

    사상 최악의 구직난이 계속되면서 믿기 어려운 조건을 내세운 취업광고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여자들이 하는 사업. 진실하게 도와주실 분. 300만가/ 즉시 출근. 정윤희.

    관리직 급구. 세상으로 하여금 나를 돌아보게 하는 힘! 열정적이고 도전적인 사업파트너 구함. 월 300만. 한나나.

    내게도 요즘 대부분의 젊은이들처럼 대졸실업자 시절이 있었다. 방 안에서 뒹굴대며 생활정보지의 광고를 뒤적일 때마다 시선은 이런 문구들에 끌렸었다. 진실하면 300만원, 열정적이면 300만원, 전화만 받아주면 300만원…. 세상에 한 달에 300만원을 버는 일이 이렇게 쉬울 줄이야! 25세가 넘은 ‘여자’인 데다 자격증도 하나 없는, 채용의 악조건은 몽땅 갖추고 있는 듯했던 당시의 내게 광고문구들은 그야말로 ‘판타지’였다. 그러나 회사이름도, 업무에 대한 소개도 없이 부르기 좋은 여자이름만 한 줄 써놓은 광고를 믿고 찾아갈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이틀 교육받고도 회사 실체 아리송

    ‘월수 300만원 광고의 진실’을 이번 주 ‘현장 속으로’ 주제로 잡은 건 그때 궁금해하면서도 차마 뛰어들지 못했던 광고 속 직업의 현실을 차근차근 알아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과연 어떤 회사인지, 무슨 일을 시키는지, 진짜 300만원씩이나(!) 주는지 가뜩이나 비참한 나를 더 비참하게 만들었던 이 환상적인 광고의 궁금증들을 다 풀어보리라.



    생활정보지를 뒤지며 월수 300만원을 보장한다는 업체마다 전화를 걸었다. 구직자라고 밝히면 그쪽에서 제일 먼저 묻는 것은 이름과 전화번호, 주소, 나이 등 기본 신상정보다. 그런 후에는 일단 이력서를 써서 면접을 보러 오라고 한다. “무슨 일을 하느냐”는 질문에는 절대 제대로 대답해주는 법이 없다. “광고에 적힌 그대로다”라며 즉답을 피하거나 “오면 다 알게 될 거 왜 그리 성질이 급하냐”고 되묻는 게 보통이다.

    처음 간 곳은 ‘돈이 꼭 필요한 분. 전화만 받아주면 월 300만, 상여 400%, 퇴직금 보장’이라는 구인광고를 낸 업체였다. 이 ‘회사’는 서울 중심가의 꽤 유명한 빌딩 한 층을 통째로 쓰고 있었는데 첫인상부터 영 좋지 않았다. 출입구에서 면접약속을 잡은 C부장의 이름을 말하자 아는 이가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광고에 실린 전화번호를 알아야만 사람을 찾을 수 있다고 했다. 알고 보니 그 큰 사무실 안에 수백 개는 족히 될 듯 빼곡이 들어찬 책상에 앉은 이들은 거의 전부가 ‘부장’이었다. 부장이 아닌 이들은 ‘본부장’이다.

    생활정보지를 다시 뒤져 간신히 찾아낸 C부장의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자 사무실 한구석에서 중년의 사내가 걸어 나왔다. 그는 대학 졸업 학력 이외에는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은 ‘텅 빈’ 이력서를 반갑게 받아들더니 그제서야 내가 근무할 회사이름을 말해주었다. 일반 회사와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를 풍기는 이곳이 TV 광고에 자주 등장하는 C사라는 것이다.

    C부장은 “대학도 나왔고, 목소리도 예쁘니 이곳에서 전화를 받아주면 되겠다”며 “사무실-그는 칸막이도 없고 옆에 다른 책상들이 바짝 붙어 있는 큰 책상을 ‘사무실’이라고 불렀다-을 지키며 전화 받는 정규직을 뽑는 것”이라고 말했다. “시험 같은 건 안 치냐”고 물었더니 C사의 채용방침은 “사람의 그 어떤 것도 보지 않고 뽑는 선진적인 ‘블라인드 채용’”이라고 했다. 이곳의 블라인드 채용은 학력, 성별 등과 무관하게 실력만으로 사람을 뽑는 일반적인 블라인드 채용방식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일단 무조건 오는 사람은 다 뽑고 보는, 그야말로 철저한 ‘블라인드’ 방식인 듯했다.

    그는 월급을 300만원이나 주는 사무직을 뽑는다면서도 나의 주민등록등본과 통장 사본만 있으면 그 외의 어떤 것도 필요하지 않다고 했다. “정말 내가 채용된 것이냐. 전화만 받으면 진짜 월급을 300만원 주는 것 맞냐”고 묻지 않을 수 없었다. “하는 일에 따라 다소 월급에 차등이 있다. 성격이 활달해 보이는데 사무실에 있는 게 답답하면 다른 일을 해서 더 많이 벌 수도 있다. 일단 내일 주민등록등본과 통장 사본을 갖고 다시 오면 정확한 월급과 업무를 소개해주겠다”는 것이 그의 대답이었다.

    결국 월급 수준이나 정확한 업무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 채 다음날 교육을 받기로 약속해야 했다.

    이곳만이 아니다. 기자가 찾아간 거의 모든 ‘월수 300만원 보장 광고’를 낸 회사들은 채용됐다고 말하는 순간까지도 정확한 업무와 급여를 말해주지 않았다. 아니, 교육을 이틀이나 받은 후에도 나는 ‘도대체 나더러 뭘 하라는 거지?’ 하는 궁금증을 떨칠 수가 없었다.

    생활정보지 한 페이지 안에 서로 다른 이름으로 5~6개의 광고가 있을 만큼 가장 많은 광고 게재율을 자랑하는 W사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W사는 계열사 7개를 거느린 W그룹에 속한 회사. 정수기와 비데 등으로 꽤 알려진 곳이다.

    모두 부장·상무 … 직함만 그럴듯

    ‘월수 300 보장’ 함정뿐인 유혹

    기자는 3일 동안 월급 300만원을 보장한다는 업체들을 열심히 찾아다녔지만, 결국 1만원도 벌지 못한 채 회사로 돌아오고 말았다.

    이곳의 ‘지부장’은 대졸자이며 젊은 여자인 나에게 “혹시 애로사항은 없느냐” “왜 이곳에 취업하려 하느냐”고 수차례 물었다. 알고 보니 그것은 “빚은 없느냐” 혹은 “신용불량자가 아니냐”는 질문이었다. 그가 갖고 있는 면접서류 묶음의 비고란에는 대부분 경제적 문제와 관련된 ‘애로사항’들이 빼곡이 적혀 있었던 것이다. 나는 법학과를 졸업한 후 계속 취업시험에 실패하다 나이가 들어버린, 정말 취직하고 싶은 ‘순진한’ 사람 역할을 충실히 하며 W사의 교육을 받아보기로 했다.

    ‘영업을 하지 않는 정규직’이 취업을 원하는 나의 유일한 희망사항이었다. ‘지부장’은 “여기 사람들은 다 W사의 정규직원이고 퇴직금, 상여금, 학자금도 받는다. 능력에 따라 고속승진을 하거나 다른 계열사로 스카우트되기도 한다. 아마 교육이 끝나면 어떻게 그렇게 되는지를 다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규직원인데 월급이 정해져 있는 것 아니냐”고 묻자 그는 “70만원 정도만 받아도 괜찮으면 고정급을 받아라. 하지만 요즘 세상에 누가 월급 받고 사나. 능력급을 선택하면 큰돈을 벌 수 있다”며 답답해했다.

    4대 보험에 대해서도 “그런 걸 회사에서 처리하려면 잡무를 할 사람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효율성을 위해 4대 보험을 각자 가입할 수 있도록 돈을 준다”고 설명했다. “최근 추세는 4대 보험을 다 개인이 드는 것”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그는 ‘유난히 호기심이 많은’ 구직자 탓에 “처음 이틀 동안은 사무실에서 교육을 받고, 그 후에 지방으로 1박2일간 워크숍을 다녀오면 할 일과 급여, 회사 시스템을 정확히 알 수 있다”는 대답을 반복해야 했다.

    “이곳이 능력만 있으면 승진도 하고, 돈도 많이 벌 수 있는 좋은 곳임을 분명히 알려주겠다”며 ‘상무’와 ‘처장’에게 인사를 시켜주기도 했다. “처장은 나이도 어린 데다가 여자인데 벌써 억대 연봉을 받는다”며 “미스 송도 충분히 이렇게 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귀띔이었다. ‘상무’ ‘전무’ ‘처장’ 등 높은 분들이 줄줄이 나에게 악수를 청했고, “좋은 회사 들어온 것을 축하한다”며 “꼭 성공하라”는 덕담을 건넸다.

    하지만 숱한 설명에도 기분은 내내 석연치 않았다. 그리고 그 이유는 다음날 역시 교육대상인 한 아주머니와 대화를 나누며 ‘내가 할 일’을 파악하는 순간 분명해졌다.

    남편이 신용불량자 선고를 받은 후 돈을 벌기 위해 이곳에 나오게 됐다는 이 아주머니는 이미 3일이나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회사에 대해 꽤 많은 정보를 갖고 있었다. “얼마 받는다더냐?”고 묻자 “광고에는 300 이상이라고 하는데 어제 지부장이 제일 못 버는 사람도 160 이상은 받아간다고 하더라”며 “그런데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라고 질문을 막았다.

    정작 그는 기자에게 묻고 싶은 게 있었던 것이다. 아주머니는 “법대 나왔다고 들었는데 맞느냐”며 말을 꺼냈다. 이틀째까지는 아무 얘기가 없었는데 오늘 아침 갑자기 ‘지부장’이 카탈로그를 보여주며 “정식직원이 되려면 275만원어치 이상 물건을 사야 한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본인이 사기 힘들면 다른 이에게 팔아도 되지만 어떤 식으로든 275만원의 실적은 올려야 한다”고 했단다. “그게 법이라던데, 법대 나왔다면서 그런 법 몰라?”

    나는 몰랐고 알 수도 없었다. 내가 아는 한, 그리고 방문판매업을 관리하는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 특수거래 보호과에서 아는 한 우리나라에 그런 법은 없기 때문이다.

    이틀간의 교육기간 동안 이들이 한 회사소개도 ‘거짓말’이 대부분이었다. 우선 정규직 채용이 보장된다는 출발점부터 사실이 아니다. 그들은 모두, 심지어 ‘사장’과 ‘전무’ ‘상무’조차도 W사의 직원이 아닌, 개인사업자였기 때문이다. 직책에 따옴표를 붙인 것은 이 직함을 사용하는 것 자체가 불법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다니고 있다는 W사측에서는 “회사 이미지가 실추된다고 불법광고를 하지 말라고 해도 우리 제품을 파는 판매인들이 자꾸 거짓말을 한다”며 “그들과 우리는 다르다”고 선을 긋기에 바빴다.

    실버타운 입주권 등 허황된 약속

    W사 관계자는 “생활정보지에 광고를 내서 정규직원을 채용하는 경우는 절대 없다”며 “이들은 모두 독립된 사업자로 회사의 판매를 대리해주고, 그에 따른 수수료를 받을 뿐 기본급은 0원인 사람들”이라고 분명히 말했다.

    때문에 고용인에게나 가능한 ‘승진’이라는 개념도 전혀 없다. 방문판매원 중 실적이 높은 이들은 판매인에서 팀장(지부장) 지구장 처장 본부장 총괄본부장 등 상위 직급으로 ‘위촉’될 뿐이다. 회사 관계자는 “그들이 자기를 사장이라 부르든 전무라 부르든 회사는 그들과 고용계약을 맺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공정위 소비자보호국 특수거래보호과 관계자는 “이들이 정규직처럼 느껴지는 명칭을 사용하는 것은 방문판매업법 11조 위반”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W사의 판매인들은 누가 봐도 명백히 위법인 이 같은 사실뿐 아니라 구체적인 사항에 대해서도 ‘거짓말’을 일삼는다. 가장 당황스러운 거짓말은 ‘W타운’ 건립계획에 관한 것이었다. 사내교육 시간에 강사로 나선 한 ‘지부장’은 “W타운은 이 그룹이 퇴직사원들을 위해 세우는 실버타운으로 만 65세 이상 장기근속자에게는 입주권을 지급한다”고 했다. W그룹이 운영하고 있는 한 골프장의 수익금이 전액 이 사업으로 들어가고 있다는 그럴듯한 설명도 덧붙였다. 이 타운의 실입주금은 3억5000만원에 이를 것이며, 현재 입사하는 이들은 물가 상승 등을 감안하면 5억~6억원은 족히 버는 것이라는 강의가 끝난 후 함께 교육을 받은 60대 할아버지는 “진짜냐?”며 여러 차례 감탄했다. 그러나 정작 W사 관계자들은 그 누구도 ‘W타운’에 대해 알지 못했다. “그렇게 좋은 곳이 있다면 나도 더 회사에 충성해야겠다”고 우스갯소리를 할 정도였다.

    판매인들의 거짓말은 끝이 없었다. 나는 그 많은 말들을 하나하나 확인해 반박하다가 그만 지쳐버렸다. W사뿐 아니라 C사, Y사의 감언이설도 대부분 사실이 아니다. 그들은 유명회사의 이름을 걸고, 정규직 채용과 다양한 복지혜택에 대한 ‘교육’을 며칠간 한 후에야 비로소 “당신이 이 물건만 팔면 그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 순간 자리를 박차고 나오는 나와 같은 이들은 300만원은커녕 단돈 1만원조차 벌지 못한다. 그리고 그 사람들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광고는 계속된다.

    취재에 들어가기 전 사무실에 앉아 생활정보지를 뒤적이며 월수 300만원이 넘는 광고마다 빨간 동그라미를 치고 있을 때 부장이 다가와 한마디를 툭 던졌었다. “그쪽 벌이 괜찮을 거 같으면 돌아오지 말고 그냥 그거 해라. 괜히 여기 와서 뭐하냐? 너 안 와도 돼.”

    하지만 난 3일의 교육을 마치고, 무슨 내용이 틀렸는지를 일일이 회사와 공정위 등에 확인까지 한 후에 다시 사무실로 돌아왔고, 밤새워 기사를 썼다. “세상에 남의 주머니에서 돈 빼내는 것보다 어려운 일은 없다”는 어른들의 말씀은 틀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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