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73

2003.02.27

“개 때문에 못 살겠다”

애견 늘수록 일반인들 피해·불만도 급증 … “분쟁과 갈등 조정 법으로 정해야 할 때”

  • 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

    입력2003-02-20 16: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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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 때문에 못 살겠다”

    약수터의 애완견들. 서울시에 의해 약수터 수질오염의 주범으로 지목됐지만 애완견 주인과 주민 사이에는 출입 문제를 두고 논란이 많다.

    개를 좋아하는 사람도 많지만 싫어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만약 애완견을 데리고 길을 가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제재를 받는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애완견 주인(이하 견주)이 그 자리를 피하면 분쟁은 막을 수 있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애완견에 대한 애증이 엇갈리고, 애완견에 대한 견해차도 커 시시비비와 분쟁이 그칠 날이 없다.

    애완견 인구가 급증하면서 이제 법을 정해서라도 애완견을 둘러싼 분쟁에 대한 명백한 판결을 내려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애완견이 옮기는 질병과 분뇨처리 문제, 소음을 둘러싼 갈등 등에 대해서는 애완견 전염병 지정 확대와 출입 또는 양육 제한 지역 지정, 관리 소홀로 인한 피해 배상과 보상 규정 신설을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이다.

    애완동물 관련법, 아파트 관리법 등 현재의 애완견 관련법에는 이와 관련된 조항이 없거나 있어도 처벌이나 배상 조항이 없어 규정 자체가 유명무실한 상황이다. 특히 공중도덕을 무시하는 몰상식한 견주나 애견의 건강상태에 대해 ‘나 몰라라’ 하는 ‘막가파’식 견주로 인한 사회적 피해는 예상외로 크다. 애완견 인구가 늘어나면서 피해를 당해도 마땅히 호소할 곳이 없는 일반인들의 불만 또한 커지고 있다. 애완견을 둘러싼 논란의 현장을 들여다봤다.

    장면 1

    2월14일 오전 8시 서울 서대문구 안산 약수터. 약수터에 모여든 주민들 사이에 애완견을 둘러싸고 고성이 오가고 있었다. “하니(애완견)가 살이 쪄서 운동도 시킬 겸해서 나왔는데 왜 그렇게 말이 많아요.” 한 견주가 약수터에 애완견을 데리고 온 데 대한 불만의 소리를 듣고 이에 항의하고 있었다.



    “개 분뇨는 직접 치워야 될 것 아닙니까. 개 오줌, 똥 때문에 시내 약수터가 오염됐다는 이야기도 못 들었소?”(주민)

    “아니, 개 오줌, 똥이 얼마나 된다고 수질오염 운운하세요.”(견주)

    견주의 이런 주장과는 달리 애완견에 의한 약수터 오염은 실제 심각한 상황이다. 서울시 보건환경연구원이 최근 실시한 수질검사 결과 서울시내 약수터 379곳 중 절반인 174곳이 음용수 부적합 판정을 받았다. 당시 수질오염의 주범으로 지목된 것이 바로 애완견 분뇨였다. 약수터 세 곳이 음용수 부적합 판정을 받은 서울 서대문구청 공원녹지과의 한 관계자는 “약수터에 가급적 애완견을 데리고 오지 말고 함께 올 경우 반드시 직접 분뇨를 치우도록 하고 있지만 이에 호응하는 견주가 별로 없어 애완견 분뇨 수거에 인부를 동원해야 할 정도”라고 호소했다. 하지만 현재 애완동물과 관련한 어떤 법에도 이에 대한 규정은 없다.

    장면 2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에 애완견을 데리고 온 사람들은 누구나 고개를 갸우뚱한다. 공원 정문에는 분명 ‘애완견 절대 출입금지’라는 알림판이 있지만 정문을 들어서면 ‘애완견을 데리고 오는 사람은 목끈과 분뇨 수거에 필요한 도구를 반드시 지참하라’고 씌어져 있다. 어떻게 된 일일까.

    “공원측은 효창공원이 김구, 윤봉길, 이봉창 선생 등 애국선열의 묘소가 있는 사적이기 때문에 애완견의 출입을 제지해야 한다는 용산구청의 입장에 따라 출입금지 안내판을 정문 앞에 세웠는데 ‘법적 근거가 없다’는 견주들의 반발이 거세자 서울시에서 공원 안에 출입을 허용한다는 안내판을 다시 설치한 것입니다.” 효창공원 관리사무소 직원의 말이다.

    현행 애완동물 관련법에는 애완견의 출입금지 구역 지정에 관한 규정이 전무해, 관할기관에서 할 수 있는 일이 폐기물관리법에 따라 애완견의 분뇨 방치를 쓰레기 무단투기로 처벌하는 것밖에 없는 상황. 이런 해프닝은 전국 도시 공원지역과 절, 지하철 등 공공 이용 시설에서 견주와 일반인들의 분쟁으로 비화하고 있으며, 각 관리 주체들은 애완견에 물린 사람들의 항의나 애완견의 분뇨로 인해 골머리를 앓고 있는 상황이다. 일부 지방자치단체의 경우 공원지역에 애완견 출입을 제한했다 견주들의 반발에 부딪혀 제한조치 자체가 무산되기도 했다(경기 안양시 평촌 중앙공원). 한편 서울 용산구청측은 최근 견주들의 반발에도 효창공원 전역에 애완견 출입금지 원칙을 재확정할 예정이어서 논란이 예상된다.

    “개 때문에 못 살겠다”

    효창공원 정문에는 애완견 출입금지에 관한 안내판이, 공원 안에는 출입 가능이라는 안내판이 있어 애완견 주인들을 헷갈리게 하고 있다.

    장면 3

    서울 강서구 화곡동에 사는 김이순 할머니(66)는 손자들이 기르는 애완견 때문에 속앓이가 심하다. 3년 전 맞벌이를 하는 큰아들 부부의 부탁으로 고향을 떠나 서울 아들네로 왔는데 최근 손자들이 키우는 애완견의 털 때문에 알레르기 비염과 천식에 시달리고 있는 것. 게다가 피부 사상균증에 의한 피부염과 개옴까지 옮아 결국 낙향까지 결심했지만 아들 부부가 만류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최근 도시지역 이비인후과와 피부과에는 애완견에게서 옮은 각종 질환으로 인한 고통을 호소하는 환자가 부쩍 늘고 있다. 청담서울이비인후과 정하원 원장은 “개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이 애완견을 계속 키우겠다고 고집하는 것은 큰 병을 키우는 원인이 된다”고 말한다.

    한편 아파트 놀이터가 애완견의 독무대가 된 지는 이미 오래. 아파트 내에서도 애완견을 기르는 세대와 기르지 않는 세대 간에 애완견 놀이터 이용 문제로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이는 개 기생충 때문으로, 서울시 보건환경연구원은 지난해 서울시내 아파트단지 놀이터 열 곳 중 한 곳이 개의 회충 알로 오염됐다고 발표한 바 있다. 학계 연구결과 우리나라 개 10마리 중 3마리가 한 종류 이상의 기생충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밝혀진 후 이런 갈등은 더욱 심해졌다. 각 내과 클리닉에 올챙이처럼 배가 볼록해지면서 구토와 고열을 동반하는 개 기생충 감염 실태가 속속 보고되면서 다툼은 더욱 늘었다. 실제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공공놀이터의 경우 애완견이 자주 출입하는 곳으로 지목된 이후 아예 애완견 분뇨 처리장으로 변해 주변 주민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장면 4

    “세상에, 개 때문에 이사를 가야 하다니….” 개 짖는 소리 때문에 이웃이 원수가 돼 한쪽이 이사를 가는 경우도 있다.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 A아파트에 사는 이모씨(52)는 최근 시도 때도 없이 짖어대는 윗집 애완견 때문에 결국 집을 전세 놓고, 다른 전세 아파트를 구해 이사했다. 아래층 위층 간에 싸움이 일어난 것은 지난해 여름, 윗집에서 그레이하운드 종의 개를 사면서부터.

    “집에 수험생도 있는데 개 뛰어다니는 소리와 짖는 소리 때문에 살 수가 있어야죠. 그래서 항의를 했는데도 새벽만 되면 망치질 소리와 개 짖는 소리가 계속 나는 거예요.” 이씨는 경찰에 신고했지만 소용없었다. 신고를 하면 개 입에 마개를 씌우고선 “우리가 그랬다는 증거가 어딨느냐”며 버틴 것. 게다가 신고를 한 데 대해 앙심을 품고 협박전화까지 일삼았다. 그뿐만이 아니다. 엘리베이터 앞에 개 분뇨까지 놓아두기 일쑤. 이씨는 “윗집 아저씨가 정신병력이 있다는 소리를 듣고 결국 우리가 이사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사실 법적으로 따지면 이씨의 위층 사람은 개를 키울 수 없다. 공동주택관리령에 따르면 아파트에서 가축을 사육하려면 ‘이웃에 실질적인 피해를 주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문제는 이 규정이 너무 추상적이고 이를 어겼을 경우 처벌 조항이 없다는 점. 주용덕 아파트 토탈닷컴 대표(주택관리사)는 “사실 애완견을 키우는 행위는 그 자체에 전염병이나 소음 등 미래에 피해를 가져올 수 있는 요인이 있는 것으로 봐 공동주택에서는 구성원의 동의가 있어야만 애완견을 키울 수 있도록 돼 있지만 법이 유명무실해 별 효력이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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