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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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발로 휘어잡은 무대 … 벌써 500회

  • < 김현미 기자 > khmzip@donga.com

    입력2004-10-04 15: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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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맨발로 휘어잡은 무대 … 벌써 500회
    이은미씨(34)의 개인연습실(마포구 합정동) 지하 계단을 내려서면 벽면 가득한 공연 포스터가 ‘라이브의 여왕’ 아지트에 도착했음을 알린다. 포스터 사이에서 발바닥을 뜬 브론즈 액자가 ‘맨발의 디바’를 상기시킨다. 200석이 채 안 되는 소극장 무대이든, 4000석이 넘는 대극장 무대이든 가리지 않고 종횡무진 누빈 발치고는 너무 가냘프다. 5월26일 이은미는 그 발로 라이브 콘서트 500회 기념무대에 선다.

    “공연 횟수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아요. 콘서트가 연중 행사인 가수라면 모를까, 저는 늘 무대에 있는걸요. 다만 올해가 1집 ‘기억 속으로’를 발표하고 프로가수가 된 지 10년째인 만큼 팬들에게 보답하는 의미에서 기념 콘서트와 베스트 음반을 준비했죠.”

    이번 공연은 올림픽공원 펜싱경기장에서 단 한 차례만 열린다. 대신 러닝타임만 4시간, 27곡을 직접 부르고 그의 음악 일생에 많은 영향을 준 6명의 선배들을 게스트로 모시는 등 콘서트 제목 그대로 ‘거대한 콘서트’다. 먼저 그 6명의 선배가 누구인지 궁금했다.

    “전인권 선배님. 저와 함께 한 곡을 부르고 오빠의 노래도 한 곡 부르죠. 다음으로 유열 선배님. 제가 1집 내고 여전히 무명가수였을 때 오빠의 전국 투어에 저를 불러주었고 그 후로도 저는 맹목적인 사랑을 받았어요. 대한민국 재즈계의 대모이신 박성연 선생님과 제가 가장 존경하는 아티스트 심수봉 선생님, 그리고 제 음악 일생에서 놓칠 수 없는 사람 정원영씨. 3집을 준비할 때 믿었던 음반기획자가 빚만 남기고 떠나자 저는 음악을 포기하려고 했어요. 그때 다시 음악을 하게 해준 분이죠. 또 한 분, 클래식 분야지만 음악적으로 서로를 이해하는 하피스트 곽정씨가 오실 거예요.”

    ‘거대한 콘서트’를 열겠다고 하자 유열씨가 그랬단다. “은미야, 500회 때는 선배들을 모시고 하고 1000회 때는 후배들과 해라.” 위아래로 동시에 인정받는 가수란 흔치 않은데 이은미는 그중 한 사람이다. 조용필씨가 한 인터뷰에서 가장 인상 깊은 가수로 이은미를 꼽은 것이나, 신예가수 린애가 “댄스가수가 될 생각은 없다. 이은미 선배처럼 라이브 무대에서 빛나는 가수가 되겠다”고 한 것은 한국 가요계에서 그의 위상을 짐작게 한다. 누구처럼 100만장씩 음반을 팔아본 적도 없고, TV에 자주 얼굴을 내미는 것도 아니고, 힘있는 기획사가 뒤에서 지켜주는 것도 아니고, 솔직히 예쁘지도 않다. 대신 이은미 하면 누구나 가창력 있는 가수로 기억한다.



    “가수의 사전적 의미가 ‘노래부르는 것을 업으로 삼는 사람’이에요. 왜 가수가 방송에 나와 100m달리기를 하고, 번지점프를 하고, 토크쇼에 출연해 사람들을 웃겨야 하는 겁니까. 저는 노래하는 재주밖에 없고, 음악인은 항상 무대에 있어야 하며 그때의 모습이 가장 멋지다는 확신을 갖고 있어요. 또 어느 날 갑자기 떠서 100만장 200만장씩 팔고 사라지는 가수가 되고 싶진 않아요. 히트음반이 나쁘다는 말은 아니지만 대중적으로 성공한 음반이 반드시 음악적으로도 성공했다고 할 수 없죠. 1집 ‘기억 속으로’가 지금도 꾸준히 나가요. 10년 동안 30만장 팔았어요. 2집도 비슷하고요. 제 음악이 10년 넘는 생명력을 갖고 있다는 게 자랑스러워요.”

    맨발로 휘어잡은 무대 … 벌써 500회
    이은미는 1988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신촌 다운타운가에서 노래를 시작했다. 그때까지 그의 음악교사는 음반이었다. 새러 본, 아레사 프랭클린, 애니타 베이커의 노래를 들으며 보컬리스트의 꿈을 키웠다. 그의 ‘섹시한 목소리’에 가장 먼저 주목한 사람이 이정선씨였다. 89년 2월 ‘신촌블루스’ 3집 앨범에 참여했고, 당시 김현식 한영애 등 선배 가수들의 독특한 창법을 두루 섭렵했다. 발라드, 록, 리듬 앤드 블루스(R&B), 재즈, 블루스, 솔을 넘나드는 자신의 음악을 ‘종합선물 세트’ 같다고 하지만, 그 말에는 어떤 장르라도 이은미의 몸을 통해 표현되면 곧 이은미만의 것이 된다는 자신감이 서려 있다.

    93년 7월 2집 ‘어떤 그리움’을 내고 세실극장에서 콘서트를 할 때였다. 돈 없는 신인가수 시절이라 대관료가 아까워 열하루 동안 매일 2회씩 강행군을 했다. 폭염에 에어컨도 제대로 가동되지 않는 극장에서 공연 엿새째 되는 날 그는 탈진해 버렸다. 아무리 힘을 주어도 목에서는 바람소리만 났다. “공연 시간은 다가오는데 대기실 거울 앞에서 제 모습을 보니 눈물이 쏟아지더군요. 화려한 의상에 야한 화장, 주렁주렁 장신구들까지….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실컷 울고 나서 화장을 지우고 청바지에 티셔츠 한 장을 걸쳤죠. 그랬더니 적당한 신발이 없는 거예요. 가져온 신발은 모두 하이힐이고. 그냥 맨발로 하자고 한 게 지금까지 이어졌죠.”

    ‘맨발의 여왕’이라는 상투적인 수식어를 좋아하지 않지만, 93년 이후 그가 줄곧 맨발 공연을 해온 것은 사실이다. 무대 위에서뿐만 아니라 녹음실에서도 그는 맨발로 작업한다. 가수들마다 녹음실 징크스가 있어서 어떤 가수는 속옷 바람을 고수하는데 그는 맨발이어야 편안하게 노래가 나온다. 심지어 TV에 맨발로 출연했다가 담당 PD가 감봉 처분을 받은 일도 있었다. 지금은 이은미 하면 당연히 ‘맨발’이지만 당시만 해도 파격이었다.

    종종 그의 가창력을 높이 평가한 공연기획자들이 뮤지컬 출연 제의를 하는데, 그때마다 뮤지컬 배우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며 거절한다. “노래 좀 한다고 누구나 뮤지컬 배우가 되는 게 아니잖아요. 제가 어설픈 춤과 연기로 무대에 서면 몇 년씩 땀 흘려서 연습해 온 뮤지컬 배우들에게 누를 끼치는 일이죠.” 무명시절에도 방송 PD가 동요를 부르라고 하자 “안녕히 계십시오” 하면서 돌아선 그녀다. “이선희씨보다 더 동요를 잘 부를 자신이 있다면 했죠. 제가 동요를 연습해 본 적도 없고 그 스타일의 노래를 좋아하지도 않는데 어떻게 방송에서 동요를 부르겠습니까.”

    이런 우직함과 솔직함이 이은미의 강점이요 약점이다. 지난해 한 월간지에 가요계의 립싱크 풍토를 비판한 글을 기고해 구설에 올랐고, 기획사와 연예인 사이의 분쟁에 연루되는 바람에 신보 ‘노블레스’를 발표하고 전혀 홍보를 못하는 등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래도 할 말은 다 한다.

    “방송을 할 때마다 제일 속상한 일이 음악을 제대로 연주할 수 없다는 거죠. 댄스하는 친구들이야 잘 차려입고 나와서 입만 뻥끗하면 되지만, 음악하는 사람들은 음향에 신경을 써야 하잖아요. 하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그런 음향시설이나 악기로는 립싱크의 정제된 사운드를 따라갈 수가 없어요. 자연히 가창력 있는 가수들도 TV에만 나오면 과장된 몸짓으로 본인의 소리보다 ‘오버’하게 돼요. 가수를 망가뜨리는 지름길이죠. 전 그게 싫어요.”

    5월26일 ‘거대한 콘서트’는 선곡과 프로그램, 의상, 무대, 조명, 음향까지 그가 직접 진두지휘했다. “난 연예인이 아니라 음악인”이라는 이은미의 10년 고집을 증명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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